- “대선 승리 공(功)이 당에 안 돌아온다” 불만
- ‘신박’ ‘짤박’ ‘옆박’…親朴의 분화
- 비주류 밀려나 정치보복 불안에 떠는 親李
- 직함 없는 당선인 참모들이 인수위 주도?
- 당권 놓고 세력 간 신경전 불꽃
새누리당 당직자들이 1월 2일 시무식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선거 승리의 공(功)이 당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당내에서 볼 때는 외부 인사 위주로 꾸려진 대통령직인수위의 갈팡질팡 아마추어적 정권 인수 작업도 못마땅하다. 여기에다 박근혜 대통령당선인의 측근 그룹인 친박계가 대선을 거치며 분화되고 있다. 비주류로 밀려난 친이계 출신은 ‘정치보복’ 가능성에 전전긍긍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집권 여당의 당권을 누가, 어느 세력이 쥘지를 놓고 신경전도 시작됐다. 축제 분위기는 일찌감치 사라지고 안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
“내 돈 들여 선거운동 했는데…”
박근혜 대선 캠프의 주축은 전·현직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당내 인사였다. 중앙선대위 공동선대위원장 4명 중에는 황우여 대표와 정몽준 전 대표가 포진했다(나머지는 김용준 김성주). 부위원장 8명 중엔 김진선 전 강원도지사를 제외한 7명이 전·현직 새누리당 의원이었다. 실질적인 선거 사령탑도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았던 김무성 전 원내대표였다. 선대위의 중추 기구인 종합상황실(권영세 전 사무총장), 공보단(이정현 전 의원), 특보단(이주영 전 정책위 의장), 당무조정본부(서병수 사무총장), 조직본부(홍문종 의원), 직능본부(유정복 의원)도 모두 당 중진이 이끌었다. 주요 실무진 역시 당료, 의원보좌진이 맡았다.
하지만 대선 승리 후 꾸려진 대통령직인수위에서는 이들이 모두 배제됐다. 공보단장을 지낸 이정현 전 의원만이 당선인 비서실 정무팀장을 맡았을 뿐이다. 인수위원장부터 외부 영입 인사인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이 기용됐다. 9개 분과로 꾸려진 전체 인수위원 24명 가운데 새누리당 현역 의원은 각각 경제 1분과와 2분과의 간사를 맡은 류성걸, 이현재 의원과 국정기획조정분과 강석훈 의원, 고용·복지분과 안종범 의원, 여성·문화분과 김현숙 의원 등 5명뿐이다.
그나마 이들은 정통 당내 인사인 ‘정무형 정치인’이 아니라 지난해 4월 총선 때 여의도에 처음 입성한 관료나 학자 출신이다. 제17대 이명박 대통령당선인의 인수위 구성 때는 정치·행정 경험이 많은 현역 의원 9명이 인수위원에 포함됐다. 7개 분과 중 5개 분과 간사를 현역 의원이 맡는 등 정무형 실세 인사들이 주축이 됐다.
인수위에서 당 출신이 사실상 배제된 것은 일단 논공행상과도 연결된다. 과거에는 대선에서 승리하면 인수위 단계에서부터 당 출신 창업공신들이 포진해 ‘점령군’ 행세를 했다. 이 과정에서 이너서클의 권력투쟁, 파워게임도 벌어졌지만 그들이 정권 내내 청와대와 정부의 요직을 좌지우지했다. 그러나 지금은 ‘논공행상’이란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다. 박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과 성격을 잘 아는 까닭이다.
문제는 당내 인사가 배제된 이번 인수위 인선이 새 정부의 첫 청와대 참모 인선과 조각(組閣) 과정에서도 그대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데 있다. 박 당선인이 당선 후 첫 일성으로 ‘대탕평’을 강조했기 때문에 창업공신이라고 특별히 배려하지 않을 것으로 당내에선 우려한다. 친박계 핵심인 한 중진 의원은 “솔직히 새 정부에서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부처에 입각할 것이란 기대를 가졌는데, 인수위 인선을 보고 마음을 접었다”고 했다. 그는 “당선인에게도 친박계 정치인들에게 부담 갖지 말고 인사를 하라고 말씀드렸다”고 덧붙였다.
대구·경북(TK) 출신인 또 다른 중진 의원은 “이번 대선은 과거와 달리 실탄(자금)이 내려오지 않아 내 돈 들여가며 선거운동을 했다. (박 당선인이) 그런 부분을 좀 알아줘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데 지금 논공행상은커녕 ‘TK 배제론’이 나오고 있어 답답하다. TK 지역에서 불평이 많다”고 토로했다.
당 출신 소외된 인수위
‘학자형’ 인수위원들에 대한 당내 불만도 크다. 인수위에서 잇단 실책이 나와 정권의 산뜻한 출범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인수위는 박 당선인이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첫 작품인 만큼 대놓고 비판은 못하지만, 친박계 안에서도 “정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복잡한 국정 현안에 너무 학문적으로만 접근하다보니 정부 부처 공무원들과 조율이 안 되고 겉돌기만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진다.
인수위에 대한 당내 인사들의 불신은 친이계 출신 심재철 최고위원이 공식 회의석상에서 ‘조언’ 형식으로 처음 표출했다. 심 최고위원은 1월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박 당선인의 일부 대선 공약의 경우 막대한 예산이 수반된다는 점을 거론한 뒤, 인수위에 ‘선별복지’라는 대원칙을 지킬 것과 일부 공약에 대한 ‘출구전략’ 마련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예산이 없는데 ‘공약이므로 공약대로 하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돈 때문에 공약 이행이 현실적으로 어려운데 ‘과거의 관행이다. 국민의 관점이 아니다’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융통성 없는 인수위의 행태를 꼬집었다. 또 “증세나 재정적자는 안 하겠다고 했으니 남은 방법은 세출 구조조정뿐이지만, 세출 구조조정으로 각 부처에 조 단위 예산을 염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훈수하기도 했다.
정우택 최고위원도 “인수위가 부처 이기주의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정권 이양기에 특정 조직·집단의 살아남기 싸움이 과열되면 민생을 좌우할 국가적 의제·사업은 뒷전으로 밀릴 수 있어 매우 우려되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인수위는 조정이 필요한 부분이 파악되면 부처 이기주의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며 당정협의를 통한 당의 지원 필요성을 역설했다.
새누리당 안에서는 발탁 과정에서부터 논란이 일었던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이 사사건건 언론과 충돌하는 데 대해서도 비판론이 일고 있다. 새누리당 이상일 대변인은 1월 9일 인수위 윤 대변인에게 공개적으로 쓴소리를 했다. 이 대변인은 SBS ‘서두원의 시사초점’에 출연해 이른바 ‘밀봉 인사’ ‘깜깜이 인수위’ 논란에 대해 “언론과 좀 더 소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 “인수위가 ‘인터넷 신문고’ 시스템을 만들었는데, 국민의 의견을 듣고 반영하는 등 피드백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여당이 인수위의 공보 시스템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친정체제 강화 포석
그러나 인수위에 대한 당의 비판은 제한적이고 극히 조심스럽다. 친박계 내부에선 거의 금기시돼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인수위 구성 초기부터 직설적으로 문제점을 짚은 인물이 ‘원조 친박계’로 불리는 3선의 유승민 의원(국회 국방위원장)이다. 유 의원은 박 당선인의 첫 인사 작품인 김용준 인수위원장 인선이 발표된 직후 기자와 만나 쓴소리를 쏟아냈다. 윤창중 대변인이 각종 칼럼과 정치평론에서 진보진영 인사들에게 막말을 했던 전력이 한창 문제가 되던 시점이었다.
▼ 윤창중 대변인 인선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나는 자진사퇴하는 게 맞다고 봐요. 인선 배경도 모르고, 당선인 인사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하긴 그래도, 잘못된 인선은 바로잡아야죠. 그 사람이 칼럼이나 방송에서 했던 막말들은 정치평론가로서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럴 수 있다고 쳐도, 그렇다면 계속 평론하면 되는 거지, 대변인으로선 아니죠.”
▼ 윤 대변인이 왜 사퇴해야 합니까.
“그 사람은 너무 극우입니다. 막말을, ‘창녀’니 ‘쓰레기’니 한 사람을…. 당선인이 아마 몰랐을 거예요. 당선인이 바빠서 종편에서 했던 말들, 칼럼을 다 읽어봤을까요? 누가 추천했건, 마음에 들었건, 당선인이 당황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 김용준 인수위원장 인선은 어떻습니까.
“선대위원장 하는 동안 사고도 한번 안 쳤지만 자기만의 목소리도 내지 않은 것으로 기억해요. 무색무취한 분 같고…. 그분이 인수위를 자기가 주도해서 꾸려갈 분은 아닌 것 같고, 그냥 무난한 분 아닌가 싶어요.”
▼ 박 당선인이 인수위를 친정체제로 끌고 가기 위한 인선이라고 봅니까.
“그런 느낌이 많죠. 아무래도 일하기 편한 사람들 위주로 간 거 같고, 그분들 중에 자기 목소리가 강한 분들은 안 보이는 거 같아요. 그냥 편안한, 당선인 구상대로 끌고 가는 인수위가 아닌지 보는 거죠. 그러면 실질적인 일은 이분들이 안 하고 다른 곳에서, 당선인 주변에서 주도할 확률이 높아지죠. 당선인의 측근들이 인수위의 여러 가지 구상을 끌고 가기에 적합한 인선이 아닌가….”
▼ 직함을 갖지 않고 이너서클을 형성한 그룹이 인수위를 주도하면 새 정부 출범 후에도 비슷한 일이 생길 수 있겠군요.
“보좌관들이야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들이니까, 당선인 의도대로 인수위를 강력하게 끌고 가겠다는 생각 아니겠어요? 당선인이 자기 생각대로 끌고 가려는 의지가 보이는 거 같은데, 그러면 잘못된 걸 바로잡고, 그런 역할을 누가 합니까. 그 부분이 제일 걱정돼요.”
유 의원은 박 당선인이 당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고,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 때는 정책메시지총괄단장을 맡아 활동했다. 이번 대선에선 중앙선대위의 공동부위원장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박 당선인과의 관계가 아주 오래됐으니 서로 대화를 안 해도, 말만 전해 들어도 생각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2007년 이후 공·사석에서 자주 쓴소리를 하면서 박 당선인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유 의원은 ‘박근혜 위기론’이 한창 제기되던 지난해 4월 “박근혜 비대위원장(당시)과 대화할 때는 한계를 느낀다” “박 위원장은 다양한 얘기를 듣지 않고 좋은 보좌를 받지 못해서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유 의원에게 박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해 국정을 운영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아울러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물었다. 기다렸다는 듯 거침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인사, 정책, 소통
‘복박’ 김무성 전 원내대표(왼쪽)와 ‘짤박’ 유승민 의원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따라서 보수 일변도 정책은 안 됩니다. 안보는 보수적으로 해도 되는데, 민생은 진보의 목소리를 많이 들어야 해요. 소통은 그냥 전화 몇 통 하는 게 아닙니다. 의견의 차이를 인정하고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는 게 소통이죠. 영어로 ‘agree to disagree(부동의에 동의한다)’란 말이 있는데, 소통은 민주적인 리더십이죠. 생각이 다르지만 대화하면서 합의점을 찾아가는 거죠. 자기 혼자 옳다, 자기 혼자 잘났다 하면 아무리 사람을 많이 만나고 대화해도 소통이 안 됩니다. 지금 당선인과 생각이 다른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요?”
대통령 취임을 앞둔 현 시점에서 박 당선인에게 이 정도 고언(苦言)을 할 인물은 새누리당에서 찾기 어렵다. 하물며 친박계 의원들은 박 당선인의 심기가 불편해질 만한 말은 입 밖에도 꺼내지 않는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친박계 인사들은 한결같이 “나도 생각은 있지만 말하지 않겠다”거나 “왜 나에게 곤란한 질문을 하느냐”며 손사래를 쳤다. 박 당선인에게 한번 부정적인 이미지가 박히거나 신뢰를 잃으면 회복하기 어렵다는 점을 잘 아는 까닭이다.
4·11 총선 이후 새누리당의 주류로 자리 잡은 친박계는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몇 갈래로 분화됐다. 친박계에서 이탈했다는 ‘탈박(脫朴)’, 다시 돌아왔다는 ‘복박(復朴)’, 친박계로 넘어왔다는 ‘월박(越朴)’, 처음부터 친박이었다는 ‘원조 친박’ 같은 말은 오래전부터 정치권에서 사용됐다. 여기에다 표면적으론 친이계지만 실질적으로는 친박에 합류한 사람들을 ‘주이야박(晝李夜朴)’이라고 한다. 또 주로 영남권 출신이 속한 ‘구박(舊朴)’, 수도권 등 비영남권 위주의 ‘신박(新朴)’이란 말도 생겼다. 구박과 신박은 대선 전략을 놓고 부딪치기도 했다. 구박은 집토끼 단속, 즉 전통적 지지층을 다지는 데 초점을 맞춘 반면, 신박은 산토끼 잡기, 즉 외연 확장이 필요하다고 맞섰다.
친박계의 분화와 암투
대선 승리 후에는 ‘친박 핵심’ 그룹이 새로 등장했다. 경선 캠프 비서실장을 지낸 최경환 의원이 선두에 있다. 그런가 하면 쓴소리를 자주 한 유승민 의원이나 경제민주화 논쟁에서 대기업 순환출자 문제 해소를 강하게 주장했던 이혜훈 의원 등은 스스로 ‘짤박’이라고 칭한다. ‘잘려나간 친박’이란 뜻이다. 또 친이계였지만 국회 상임위에서 박 당선인의 옆자리에 앉은 인연으로 당선인 비서실장에 발탁된 유일호 의원의 경우 ‘옆박’이라고도 한다.
정가의 호사가들이 지어낸 명칭이지만 친박계의 분화는 박근혜 정부에서의 권력지도와 연결돼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 당선인이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2인자를 두지 않고 핵심 측근들을 분할 통치하는 스타일이지만, 권력 속성상 일정 부분의 내부 헤게모니 다툼은 불가피하다. 특히 새누리당 안에서만 보면 박근혜 정부의 집권여당을 이끌어갈 당권 경쟁을 앞두고 있어 친박계 각 세력 사이의 암투가 예고돼 있다.
황우여 현 대표는 지난해 5·15 전당대회에서 선출됐다. 임기는 2014년 5월까지다. 일단은 임기를 다 채울 가능성이 높다. 3.6%p 득표율 차이로 승부가 갈린 이번 대선에서 박 당선인은 보수정당 후보로는 최초로 호남지역에서 두 자릿수 득표율을 기록했다. 대선 기간 호남에 상주하며 선거를 치른 황 대표에게 힘이 쏠리는 대목이다. 황 대표는 또 정치적인 색깔이 엷다. 새 정부 임기 초반 여당의 전폭적 협력을 받는 데 적합한 인물일 수 있다. 박 당선인은 선대위 해단식에서 주요 당직자들에게 “민생을 잘 챙겨서 시대교체를 이뤄나갈 준비를 지금부터 해 달라”고 당부했다. ‘박근혜 민생정부’와 여당의 초반 밀월관계를 암시하는 대목이다.
새누리당을 이끌고 있는 황우여 대표(오른쪽)와 이한구 원내대표.
가장 관심을 모으는 인물은 선대위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았던 김무성 전 원내대표다. 대표적인 ‘복박’으로 꼽히는 김 전 원내대표는 4월에 실시될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출마해 여의도에 재입성한 뒤 당권에 도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4월 재선거가 유력한 부산 영도와 포항 남-울릉을 놓고 저울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다음 날 ‘제 역할은 끝났다’며 감사 메모 한 장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 해외여행을 하며 머리를 식히던 그는 1월 3일 ‘부산일보’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원내대표 경선에 관심
김 전 원내대표는 “포항이든 영도든 그런 건 다 당에서 전략공천 하지 않겠나. 어디가 언제 (재판이)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특정 지역을 염두에 두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할 생각이 전혀 없다. 낭설이다. 이럴 때는 좀 더 쉬면서 혼자 사색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이는 현재 재판 중인 두 지역의 현역 의원(영도 이재균, 포항 김형태)을 배려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실제로는 판결이 난 후 당에서 자신을 전략적으로 공천해준다면 어느 지역이든 나설 뜻이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는 또 “1월 말까지는 일체의 정치와 관련된 행동을 하지 않겠다. 박근혜 정부의 어떤 임명직도 맡지 않겠다”고 했다. 원내대표까지 지낸 ‘정치인 김무성’이 임명직을 맡지 않겠다면 남은 자리는 단 하나, 당 대표다.
만일 김 전 원내대표가 언제가 됐든 당권에 도전하면 ‘원조 친박’ 유승민 의원과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유 의원은 홍준표 전 대표가 당권을 잡은 2011년 7·4 전당대회에서 3, 4위를 큰 표 차이로 따돌리고 2위를 차지해 최고위원을 지낸 바 있다. 유 의원은 당권 도전 의사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당장은 생각을 안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도전해볼 생각은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거듭 “당장은 아니다”며 “당장은 당선인 친정체제로 당이 갈 가능성이 높다. 집권 초반은 그렇게 갈 거다”고 내다봤다. 또 “지금은 당선인과 당의 관계가 중요하다. 당이 중심을 잡고, 당선인이 취임하면 인사, 정책, 소통 이런 부분에서 제 목소리를 내줘야 된다. 안 그러면 대통령도 망하고 당도 망한다”고 했다.
유 의원이 말한 ‘당에서 도전해볼 생각’은 원내대표 경선이 될 수도 있다. 이한구 현 원내대표의 임기는 5월에 끝난다. 정책위의장과 러닝메이트를 이뤄 새로 선출되는 원내대표는 유 의원의 말처럼 박 당선인 취임 후 당에서 인사, 정책, 소통과 관련한 제 목소리를 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원내대표 경선 출마자 물망에는 새로운 실세로 떠오른 최경환 의원과 서명수 사무총장, 이주영 전 정책위의장 등 친박 중진들도 오르내리고 있다.
새누리당의 친박계 인사들이 이처럼 박 당선인의 눈치를 보면서도 개인적으로 정치적 야망을 키우고 있지만 지금은 ‘비박(非朴)’으로 불리는 친이계 출신들은 전전긍긍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과거 대통령들과는 달리 임기 끝까지 여당을 탈당하지 않은 전례를 남겼고, 박 당선인이 국민대통합을 강조했음에도 친이 세력이 일종의 ‘정치보복’을 당할 가능성까지 떠올리며 불안해하는 모습이다.
‘전전긍긍’ 친이계
실제로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은 ‘정치보복’이란 말을 입 밖에 냈다. 임 전 실장은 1월 7일 한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 ‘이명박 정권에서 이뤄진 검찰 부실수사를 엄중 처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 대통령 친인척도 검찰수사를 받고 사법처리되지 않았나. 엄중하게 (법이) 집행되고 있다. 자칫 정치적인 보복 상황을 염두에 두고 제기되는 문제일 수 있다”고 반박했다. 내곡동 사저 매입 사건 등과 관련해 제기됐던 검찰의 ‘봐주기 식’ 수사 문제를 재론하는 건 정치보복이라는 주장이나 다름없다.
새누리당이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음에도 친이계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친박계와 친이계 사이에 파인 갈등의 골이 워낙 깊은 까닭이다. 이 때문에 친이계 일부 의원들은 이번 대선에서 차라리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랐다는 말이 의원회관 주변에 공공연히 나돈다. 이런 말이 확산되면서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뒤 실시되는 4월 재·보궐선거를 전후해 일부 친이계 현역 의원들이 탈당을 감행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특히 ‘MB계의 군기반장’으로 불렸던 이재오 전 특임장관의 거취가 주목된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 적극적인 선거운동을 하지 않았다.
물론 친이계 중에서도 정권 교체기에 활로를 찾은 인물도 없지 않다. 박 당선인의 ‘입’ 노릇을 하고 있는 박선규 당선인 대변인이 대표적이다. KBS 기자 출신인 박 대변인은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을 거쳐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자리까지 오른 친이계였다. 그는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지난해 10월,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대변인으로 투입된 뒤 공격적인 논평과 TV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측 대변인을 압도하는 언변으로 박 당선인의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산실이었던 안국포럼 출신의 조해진 의원도 비슷한 경우다. 조 의원은 대선 기간 중 당 대변인을 맡아 차분한 논리 전개로 문재인 후보 측의 공세를 무난하게 막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당선인이 후보 시절 수행을 맡았던 조윤선 전 의원 역시 친이계 출신이지만 선거 기간 능력을 인정받아 당선인 대변인으로 발탁됐다. 선대위에서 전략을 짰던 권영진 전 의원, 종합상황실 부단장이었던 백성운 전 의원, 유세기획단장을 맡은 박종희 전 의원 등도 원외 친이계 인사였지만 대선 승리에 기여한 공로로 새 정부에서도 입지를 확보했다. 이번 대선에서 박 당선인 지원 유세에 나섰던 나경원·원희룡 전 의원도 재기하면서 차세대 주자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선거 막판까지 초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가까스로 정권을 재창출한 새누리당에서 박근혜 정부 초반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새로 모습을 드러낼 야당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할지에 따라 정권의 명운이 달라질 수 있다. 또 이 과정에서 차기 대권구도도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