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호

“대기자(大記者) 아닌 대기자(待機者) 됐어요”

출입기자들이 본 인수위 24시

  • 구자홍 기자│jhkoo@donga.com

    입력2013-01-22 16: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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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음엔 ‘작은 인수위’… 업무 과다로 몸집 불려
    • 통의동·삼청동·창성동 ‘세 지붕 한 가족’
    • 명함·인터뷰·브리핑 3無 인수위
    • 900명 등록기자 들러리 만든 ‘인수위 단독기자’
    “대기자(大記者) 아닌 대기자(待機者) 됐어요”

    서울 삼청동 인수위 브리핑룸에서 기자들이 대변인의 브리핑을 기다리고 있다.

    밀봉불통(密封不通), 자가당착(自家撞着),‘세 지붕 한 가족’‘3무(無) 인수위’….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출입하는 기자들이 전하는 인수위의 현주소다. 새 정부 출범을 준비하는 인수위가 ‘철통보안’을 강조하면서 언론으로부터 ‘밀봉’과 ‘불통’의 대명사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대변인이 밀봉한 봉투를 들고 와 박 당선인의 인선 내용을 발표하고, 인수위 전체 워크숍 이후 ‘특별한 내용이 없다’며 브리핑을 거부한 것이 대표적 ‘밀봉불통’ 사례로 꼽힌다.

    인수위 공식 출범 이후에도 인수위원들은 “낮은 자세를 견지하겠다”며 명함도 만들지 않고, 보안을 이유로 언론 인터뷰에 일절 응하지 않는다. 스스로 ‘인수위 단독기자’라던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은 부처별 업무보고가 시작된 뒤에도 ‘단독’ 취재한 내용을 출입기자단에게 한동안 ‘풀’(pool·혼자 또는 몇 사람이 취재한 내용을 기자단과 공유하는 것)하지 않아 비판을 자초했다.

    인수위가 현판식을 치르고 공식 출범한 1월 6일.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인수위에) 자문위원을 두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만 분과별 ‘전문가 초청 간담회’ 형식으로 대체하겠다고 했다. 닷새 뒤인 1월 11일. 인수위는 분과별 외부 전문가 35명을 전문·실무위원으로 추가 임명했다. 이로써 인수위 규모는 인수위원 25명(최대석 위원 13일 사퇴), 부처 파견 공무원 53명, 새누리당에서 파견한 전문·실무위원 등 42명에 추가로 임명된 전문·실무위원 35명을 합쳐 총 155명으로 늘었다. 출범 때 ‘작은 인수위’를 표방했다가 1주일도 안돼 ‘전문위원’을 대거 임명한 것을 두고 ‘자리 나눠주기’를 위한 ‘꼼수 인사’라는 비판 여론이 비등했다.

    空約 된 ‘작은 인수위’



    “대기자(大記者) 아닌 대기자(待機者) 됐어요”

    진영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왼쪽)이 1월 13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 사무실로 들어가다가 취재진과 문을 사이에 두고 대화하고 있다.

    윤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전문위원과 자문위원은 성격이 다르다”며 “자문위원을 두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바꾼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인수위 주변에서는 “‘자문’을 ‘전문’으로 용어만 바꿨을 뿐, 본질적으로 하는 일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왔다. 한 인수위 출입기자는 “‘당선자’에서 ‘당선인’으로 ‘자’를 ‘인’으로 바꾼 수준 아니겠느냐”고 비유했다.

    인수위가 비난 여론을 무릅쓰고 전문위원을 추가 임명한 것은 인수위가 늦게 출범한 탓에 활동기간은 짧고 인원은 적어 원활한 정권인수 업무에 한계가 왔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인수위 인원이 늘면서 업무 공간 부족에 따른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대통령 당선인의 집무실과 비서실은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 인수위원회는 삼청동 금융연수원, 취임준비위원회와 국민대통합위원회, 청년특별위원회는 창성동 정부청사별관 등 세 곳에 흩어져 있다. 전문위원이 추가로 임명되자 인수위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네 번째 인수위 사무공간이 생겨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당선인 집무실과 인수위 사무실이 다른 곳에 자리 잡은 탓에 1월 14일에는 박근혜 당선인을 면담하러 찾아온 외국 대사를 태운 차량이 되돌아가는 일도 생겼다. 프랑스 대사와 필리핀 대사를 태운 차량이 박 당선인 집무실이 있는 통의동이 아니라 인수위가 위치한 삼청동으로 왔던 것. 이 과정에 건물 경비를 서는 경찰과 외국 대사 차량 운전자 간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돼 인수위 외교국방통일분과 직원이 직접 나와 통역한 뒤에야 통의동 사무실로 이동할 수 있었다.

    “양계장에서 모이 기다린다”

    인수위의 사무 공간 부족으로 인수위원뿐 아니라 인수위를 취재하는 언론사 기자들까지 큰 불편을 겪고 있다. 1월 15일 현재 인수위에 등록한 출입기자 수는 986명에 달한다. 그러나 인수위가 들어선 삼청동 금융연수원에는 이들을 수용할 만한 넓은 공간이 없다. 이 때문에 300석 규모의 대형 브리핑룸 1개와 소규모 브리핑룸 4개를 별도 운영한다.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좌석을 다닥다닥 배치한 탓에 인수위 출입기자들은 “양계장에서 모이(브리핑) 기다린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부 방송사와 신문사는 인수위 활동기간에 사용하기 위해 월세 200만 원을 넘게 주고 인수위 근처에 별도 사무실을 마련했다. 한 경제신문은 커피전문점 한구석을 한 달 동안 빌려 취재와 기사 작성 공간으로 활용한다. 이 경제신문 소속 기자는 “쾌적한 커피숍이 (인수위) 기자실보다 일하기 편하다”며 “하루 평균 6만~7만 원어치 커피를 마셔가며 일한다”고 전했다.

    한 일간신문의 인수위 출입기자는 “취재 공간이 협소한 데서 오는 불편은 몸으로 때우면 되지만, 부처 업무보고가 끝난 뒤에도 내용을 상세히 브리핑하지 않고, 위원들이 인터뷰도 하지 않는 데서 느끼는 모멸감과 열패감이 크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한 신문사 막내기자는 “인수위 출입문 앞을 교대로 지키는 게 일”이라며 “기자(記者)가 인수위에 오니 ‘대기자(大記者)’가 아닌 ‘대기자(待機者)’가 됐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한 고참 기자는 “윤창중 대변인이 스스로 ‘인수위 단독기자’라면서 브리핑을 자세히 하려 들지 않는 태도는 900명 넘는 인수위 출입기자 전체를 ‘받아쓰기’하는 초등학생으로 만들겠다는 얘기 아니냐”며 답답해했다.

    출입기자들은 대변인 사이에 손발이 맞지 않는 오락가락 브리핑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부처별 업무보고가 시작된 직후 한 언론매체가 “박 당선인이 부처 업무보고를 받고 격노했다”고 보도하자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은 “그런 적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박선규 당선인 대변인은 “(박 당선인이)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해 ‘대(對)언론 불통도 모자라 대변인끼리도 소통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입길에 올랐다.

    박 당선인을 오랫동안 취재해온 한 기자는 “대선 기간에 박 당선인이 줄기차게 ‘소통’을 강조했는데, 대선 승리 직후 꾸린 인수위가 ‘불통’의 대명사처럼 비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다”며 혀를 찼다.

    “대기자(大記者) 아닌 대기자(待機者) 됐어요”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1월 7일 인수위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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