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호

안보와 대화론 사이 균형점 모색

외교·국방·통일분과

  • 허신열 | 내일신문 정치팀 기자 syheo@naeil.com

    입력2013-01-22 16: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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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장은 안보 우선론에 무게
    • 국방 강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양대 軸
    • 안보 정책 컨트롤타워 ‘국가안보실’ 신설 추진
    박근혜 대통령당선인은 1월 10일 장즈쥔(張志軍) 중국 정부 특사를 접견한 자리에서 “북한의 핵 개발은 국가 안보 및 우리 국민의 안위를 위해서도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강력한 안보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그러면서 “추가적인 도발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하겠지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통해 북한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을 포함한 대화와 협력의 창구를 열어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추가 도발만 없다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가동해 남북관계 개선 방향을 모색하겠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다.

    이 같은 발언은 “안보부터 확실히 챙기고, 나아가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진정한 평화를 구축해야 한다.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여건을 조성함은 물론 우리의 대북 정책도 진화해야 한다”는 대선 공약과도 일치한다.

    박선규 인수위 대변인은 1월 12일 3차 핵실험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당선인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큰 구상 아래 대화를 통해서 남북관계를 풀어가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면서도 “그런 의지의 한편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북한의 핵을 용납하지 않겠다, 북한이 무모한 도발을 할 경우에는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도 분명히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안보와 대화의 균형 모색’이라는 대북 정책의 큰 틀에도 불구하고 최근 박 당선인과 인수위의 행보는 ‘안보 우선론’ 쪽에 무게를 싣는 듯한 느낌이다. 박 당선인이 최근 인수위원들에게 “튼튼한 안보, 강력한 안보가 국민에게 드리는 가장 기초적인 복지”라고 강조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강력한 안보는 가장 기초적 복지”



    박 당선인은 인수위 외교국방통일분과 간사에 ‘꼿꼿 장수’로 불리는 김장수 전 국방부 장관을 임명했다. 인수위 정부 부처 업무보고에서 국방부가 첫 순서에 이름을 올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장수 간사는 1월 11일 업무보고 자리에서 “국방부 업무보고를 맨 처음으로 시작한 것은 국가 안보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인수위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대화론에 비해 안보 우선론이 힘을 얻는 가장 직접적인 배경에는 지난해 12월 12일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와 서해 북방한계선(NLL) 논란이 자리 잡고 있다. 남북관계의 유연성을 높이겠다는 당초 대북 정책에서 안보 강화 쪽으로 우회전할 수밖에 없는 압박요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북한의 계속된 도발과 함께 2015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노크 귀순’과 같은 국방 공백 상황이 잇달아 발생해 보수진영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도 ‘안보 우선론’의 배경이 되고 있다.

    북한 장거리로켓 발사 직후 최대석 당시 인수위원(1월 13일 사퇴)은 한 인터뷰에서 “북한이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강행한 만큼 상황이 달라졌다”면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공약만 강조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남북 간에 다양한 대화가 있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안보 강화를 위해 박 당선인은 우리 안보 현실에 걸맞은 적정 수준의 국방예산 보장, 군사전용위성·무인정찰기 단계적 확보 추진 등을 공약했다. 또 2015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관련해 한국이 주도하고 미국이 지원하는 새로운 ‘연합방위체제’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김장수 간사는 “언론에서 거론하는 미니 연합사 개념이 아니다”며 “전시에 한국군 사령관 밑에 미군 부사령관을 두고 협조단보다 대폭 강화된 형태의 참모단을 구성해 운영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거리미사일을 일찌감치 전력화하는 등 능동적이고 선제적인 억지전략을 펴 적극적인 방위 능력을 구현하는 데도 힘을 쏟기로 했다. 이를 위해 국방부는 500km 이상급 탄도미사일 개발 시기를 당초 2017년에서 2015년으로 앞당기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육군 기준 21개월인 사병 복무기간을 18개월로 단축하는 박 당선인의 공약에 대해선 국방부의 반대를 극복하는 것이 관건이다. 국방부는 병역자원 부족과 전투력 약화 등의 문제가 있다고 밝힌 반면 인수위에서는 공약 이행에 대한 의지를 확인하고 있다. 김장수 간사는 “투표일 직전에 나온 선심성 공약이라는 것은 오해”라며 “선거과정에서 기자들에게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국방예산이 확보된다는 조건 아래 복무기간을 단축하겠다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MB 정부보다는 ‘좌회전’

    이와 함께 박 당선인은 정권에 관계없이 안보와 관련한 총괄 업무를 수행할 ‘국가안보실’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국민 불안을 부추겼던 안보 공백을 최소화하는 한편 위기상황을 극복하는 구심점 기능을 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바탕이 됐다. 국가안보실은 기존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통합한 형태로 정책 조율, 위기 관리, 중장기적 전략 준비 등의 임무가 주어질 것으로 보인다.

    윤병세 인수위원은 1월 8일 “큰 틀에서 기존의 외교안보 기능보다 향상된 기능의 국가안보실이 설치될 수 있도록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대화론을 완전히 포기했다고 보긴 어렵다. 안보 우선론에 무게가 실린다고 해도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은 이명박 정부에 비해 ‘좌회전’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핵문제의 해결을 선행조건으로 ‘비핵개방 3000’을 내걸었던 이명박 정부와 달리 박근혜 정부에서는 최소한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동시에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박 당선인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부친인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 회담을 한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다. 그는 2002년 김 전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7·4공동성명 채택 당시 씨앗이 뿌려졌는데, 우리 시대에 결실을 보아 평화통일을 위해 같이 힘을 합쳐 노력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와 2000년 6·15 정상회담, 2007년 10·4정상선언의 기틀이 된 7·4공동성명은 박 당선인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기인 1972년에 체결됐다.

    북한의 최근 움직임도 남북관계 개선에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된다. 김정은 부위원장은 지난 1월 1일 자신이 직접 읽은 신년사를 통해 남북 대결구도 해소와 공동선언 이행 등을 강조했다.

    朴 취임식에 北 축하사절단 올까

    최근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과 함께 북한을 방문한 빌 리처드슨 전 미국 뉴멕시코 주지사는 “그들(북한 관리)은 남한의 새 대통령(박근혜 당선인)이 최근 한 발언에 매우 고무됐다고 말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북한의 입장을 반영하는 일본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도 1월 9일자에 박 당선인을 향해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라며 “선거공약이 빈말인가 어떤가를 지켜볼 것”이라고 썼다.

    박 당선인의 대선 공약에도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어가기 위한 다양한 내용의 정책이 담겨 있다. 특히 정치상황과 인도적 지원의 분리, 호혜적 경제협력 업그레이드 등이 주목된다. 이명박 정부 때 중단된 남북대화를 재개하려면 인도적 지원과 5·24조치 해제,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이 검토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남북 공동유해발굴 사업 재개, 이산가족 상봉 등이 1순위로 꼽힌다. 인수위에 개성공단 지원 사업을 담당하는 강종석 남북협력지구지원단 관리총괄과장이 실무위원으로 파견된 것은 개성공단 확대 의지로 읽힌다.

    이외에도 박 당선인은 대선공약을 통해 △신뢰와 비핵화 진전에 따라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을 위한 ‘비전 코리아 프로젝트’ 추진 △서울과 평양에 ‘남북교류협력사무소’ 설치 △TSR·TCR과 TKR 연결 복합 물류네트워크 구축 △통합 에너지망을 위한 가스관 부설과 송전망 구축사업 진행 등을 약속했다.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만약 2월 25일 대통령 취임식에 북한 축하사절단이 참석하거나 남북 간 특사교환 등이 이뤄질 경우 남북관계는 급물살을 탈 수 있다. 김진선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 위원장은 1월 11일 북한 사절 초청과 관련해 “된다, 안 된다 말한 적도 없으며 지금은 결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밝혔다. 가능성을 배제하진 않은 것이다.

    전직 통일부 고위관리는 차기 정부의 대북정책과 관련해 “기본적으로 진보정권에 비해 보수정권이 전향적인 입장을 가질 때 남북관계의 진전 속도는 훨씬 빠를 수 있다”며 “안보 우선론’을 통해 보수 진영의 폭넓은 지지를 얻으면서 동시에 대화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을 이끌어내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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