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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진단 | 위기의 여론조사

태생적 한계, 정치적 의도가 혼란 가중

다르고 틀리고 헛갈리고…

  • 정한울│EAI 여론분석센터 부소장 hwjeong@eai.or.kr

태생적 한계, 정치적 의도가 혼란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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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례로 10월 초 대부분의 언론은 ‘추석 전후로 여론이 크게 변했다’고 진단했는데, 야권 후보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치고 올라가 그 격차를 벌렸다는 보도와 박근혜 후보의 우위가 유지되고 있다는 보도가 동시에 나왔다. 일대일 가상대결 여론조사에서도 안철수, 문재인 후보 모두 박근혜 후보를 추월했다는 기사와 안철수 후보는 박근혜 후보를 추월했지만 문재인 후보는 아직 박근혜 지지율에 미치지 못했다는 기사가 동시에 나왔다.

또한 야권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문재인, 안철수 후보 양 진영이 여론조사 문구와 방법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여 여론조사가 과연 믿을 만한 것인지 국민의 의문을 가중시켰다. 문재인 측은 ‘적합도’를 묻는 문항을 선호했다. 반면 안철수 측은 양자간 ‘선호도’ 또는 ‘당선 가능성’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다 최종적으로 박근혜 후보와의 일대일 가상대결 조사 결과를 가지고 단일후보를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이런 양측의 갈등은 때 아닌 ‘여론조사 방법론’ 논쟁을 일으키며 국민적 관심을 불러모았다. 결국 양 후보는 단일화 합의에 실패했고, 그 과정에서 여론조사 방법에 관한 심각한 의혹과 음모론까지 대두됐다.

한 여론조사 기관이 선호도 조사만 진행하다 적합도 조사를 병행하자 안철수 진영에서는 “사실상 문재인 후보를 지원하는 편파적 행위”라고 공격했다. 여론조사는 조사문항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소위 ‘워딩(wording) 효과’가 있게 마련이다. 또 다차원의 개념을 하나의 조사문항으로 측정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번 야권 단일화 과정에서 불거진 여론조사 잡음은 이런 여론조사의 태생적 한계가 정치적 의도의 문제로 환원될 여지가 있음을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라 하겠다.

통설의 범람



태생적 한계, 정치적 의도가 혼란 가중

지난해 12월 19일 밤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민주통합당 당직자들이 문재인 후보의 패배가 확실시되자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대선이 끝난 뒤 일반 국민보다는 주로 정치권과 언론계에서 여론조사의 신뢰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 까닭은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 중 은밀하게 접했던 실시간 여론조사 결과가 실제 대선 결과와 큰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야권 후보단일화 실패와 이후 문재인 캠프의 과거지향적인 ‘유신후보 심판론’이나 ‘이명박근혜’ 프레임은 전혀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선거 전략상의 오류였다. 그러나 안철수 전 후보가 적극적인 선거 유세에 나서고 대선 후보 TV토론을 거치면서 투표일 직전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추월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정치권과 언론에서 회자된 게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투표함을 열어보니 박근혜 후보가 예상보다 큰 격차로 승리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선거 후 평가 담론을 주도하는 정치권과 언론에서 여론조사 신뢰도에 의문을 제기하는 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정치권이나 조사업계 통설이 여지없이 깨진 것도 선거여론 및 여론조사 전반에 대한 불신을 강화한 계기로 작용했다. ‘수도권 유권자는 진보적이다’ ‘투표율이 높으면 야당이 유리하고 낮으면 여당이 유리하다’ 등의 말은 일종의 선거법칙처럼 통용됐고, ‘국민은 여론조사 우세후보에 편승한다’ ‘SNS 여론이 전체 여론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이번 대선엔 부동층이 적고 고정표가 많다’ 등의 주장도 마치 정설처럼 인식됐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주장들은 여론조사 방법 자체의 문제는 아니지만, 대체로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정당화되곤 했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야 할 것은 여론조사에 대한 일반인의 오해다. 여론조사는 민의를 파악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지, 민의 전체와 동일시할 수 없다는 점을 우리는 자주 간과한다. 여론조사는 투표로 실현되는 대의민주주의 체제가 유권자의 의사를 제대로 대표하고 있는지 모니터링하는 방법론일 뿐이다. 여론조사에 응답하는 것은 결코 정치적 참여가 될 수 없다. 어떻게 조사기관에서 임의로 선정한 응답자가 유권자를 대표한다고 여기고, 조사기관의 질문에 답한 것을 어떻게 자발적 정치 참여와 동일시할 수 있겠는가.

민의는 다의적이고 다면적인 데 반해 여론조사는 단일 차원에 대한 태도를 수량화한 결과일 뿐이다. 야권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적합도’니 ‘선호도’니 논쟁이 인 것은 유권자의 태도 자체가 다의적이고 다면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초기 여론에서 안철수 후보가 적합도, 선호도, 당선 가능성 등 모든 차원에서 우위를 점했지만, 후보 등록 이후 안 후보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반면 문 후보의 인물호감도와 안정감이 부상하면서 유권자의 태도가 다층적으로 변화했다. 즉 후보 적합도에서는 문 후보를 높게 평가하면서도 박근혜 후보와의 경쟁력에서는 안 후보를 높게 평가하는 것을 여론조사를 통해서 파악할 수 있었다.

단일 후보에 대한 ‘지지’라는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여론을 한두 개의 질문으로 파악하고, 더구나 그것으로 단일 후보를 결정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민심을 얼마나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여론조사를 얼마나 편의적으로 활용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다. 여론조사는 유권자 구성원 간의 선호의 차이를 풍부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어느 선호가 그 사회와 유권자에게 더 바람직한지, 어떤 측면을 더 우선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줄 순 없다.

그 답을 찾는 것이야말로 유권자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정치인과 정당이 할 일이다. 누구를 단일 후보로 할지, 어떤 정책적 결정을 내릴지를 여론조사에 맡기는 것은 정치적 리더십이 없음을 고백하는 것과 다름없다. 단일화 룰 합의의 실패는 여론조사의 실패가 아니다. 단일화 주체들의 정치력 공백을 의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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