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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건비 떼먹는 ‘IT 보도방’ 극성 원청 대기업은 ‘법적 책임 없다’ 발뺌

살인적 다단계 하도급에 무너지는 IT 근로자들

  • 최영철 기자│ftdog@donga.com

인건비 떼먹는 ‘IT 보도방’ 극성 원청 대기업은 ‘법적 책임 없다’ 발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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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건비 떼먹는 ‘IT 보도방’ 극성 원청 대기업은 ‘법적 책임 없다’ 발뺌

밤이 되어도 등이 꺼지지 않는 구로디지털단지. 다단계 하도급 구조의 최대 약자인 IT 근로자에겐 밤낮이 따로 없다.

SI 대기업의 하도급 횡포와 불공정거래 행위는 중소 SI업체들을 고사시키며 IT 근로자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대기업은 낙찰만 되면 세부 개발 분야는 모두 하도급을 통해 해결하면 되므로 정규직 고급 기술자를 보유할 필요가 없다. 중소기업은 상시적으로 일거리를 확보한다는 보장이 없는데다 덤핑, 원청 업체의 대금 늑장 지급 등으로 정규직원을 고정적으로 두기 어려운 상황. 국내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절반이 비정규직 프리랜서라는 통계가 나오는 것도 이런 현실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도급 중간 단계에서 IT 근로자(개발자)의 수수료만 떼먹는 SI업체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이들은 IT 관련 용어를 그럴듯하게 넣은 간판만 달고 있을 뿐 실상은 개발자를 모집하는 영업사원 한두 명만 둔 인력파견업체, 일명 ‘IT 보도방’이다. IT업계 하도급 구조에서 4차 하도급 이하는 대부분 인력파견업체라고 보면 된다.

이들은 인터넷 구인 사이트나 블로그 등을 통해 시스템·소프트웨어 개발자(이하 개발자) 인력을 확보한 다음 상위 단계 도급업체에 파견 또는 소개만 하고 보수(인건비)의 10~20%를 수수료 명목으로 떼어간다. 이런 먹이사슬이 적게는 5~6차, 심하게는 7~8차까지 내려가는데, 2~3차 하도급 업체 사무실에는 3차에서 8차 하도급까지 각 단계 업체에서 파견된 다양한 개발자가 섞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7~8차 하도급을 거쳐 원청 업체 또는 2~3차 하도급 업체에서 일하는 프리랜서 개발자들은 자신이 그렇게 많은 도급단계를 거쳤는지 알지 못한다. 중간 단계에선 인력파견업체 간에 서류만 오가기 때문이다.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프리랜서 개발자의 평균 보수가 일반 기업의 대졸자 평균 보수를 훨씬 밑도는 것도 도급 단계마다 인력파견업체가 수수료를 떼가기 때문이다. 이들 명목상의 SI업체, 즉 인력파견업체는 IT 관련 기술이 전혀 없어도 개발자를 모집할 능력만 있으면 엄청난 수익을 올린다.

원청 업체가 특정 프로젝트에서 책정한 개발자 1인당 인건비가 월 500만 원이라면 8차 도급을 거쳐 실제 개발자의 손에 들어오는 보수는 각 도급업체가 떼는 수수료를 10%로 잡을 경우 215만 원으로 줄고 20%로 잡으면 83만 원에 불과하다. 거꾸로 중간 하도급 단계의 각 인력파견업체들은 개발자 1명을 소개 또는 파견할 때마다 가만히 앉아서 매달 50만 원에서 100만 원의 수입을 챙길 수 있다. 수수료를 10%로 잡고 개발자 20명을 상위 인력파견업체에 소개하면 최소 3개월 최장 1년 이상 매달 1000만 원을 벌 수 있는 구조다. 프리랜서 개발자의 프로젝트가 짧으면 3개월, 길면 1년 이상 진행되기 때문이다.



죽도록 일하고 뺨 맞고

정규직 40여 명과 파견직 10여 명을 상시 채용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소 SI업체 이모 사장은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와 가산디지털단지에만 인력파견 SI업체가 50곳이 넘는다. 이러다간 실제로 프로그램과 시스템을 개발하는 업체는 모두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우려했다.

주로 인력파견업체에서 개발자를 지원받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소 SI업체 김모 대표는 “대기업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1인당 연봉을 9000만 원 정도로 책정해 인건비를 산정한다고 가정하면 2~3차 하도급 업체에서 직접 고용한 개발자는 경비를 포함해 4000만~6000만 원을 받을 수 있지만 그 밑으로 내려가면 2000만~3000만 원밖에 못 받는다”고 전했다.

문제는 실질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원청 업체 또는 하도급 과정의 중소 SI업체가 어떤 이유로든 보수를 지급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사업을 중도에 포기하거나 파산하는 경우, 또는 개발자의 능력을 꼬투리 잡아 해고하거나 보수 지급을 거부하는 경우, 중간 단계의 인력파견업체가 인건비를 모두 떼먹고 폐업 신고를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프리랜서 개발자들은 일만 죽도록 하고 보수는 한 푼도 못 건질 위기에 처한다.

중소 SI업체 김 대표는 “인력 장사를 하는 회사와 근로계약서도 안 쓰고 일하거나 계약을 했어도 실질적으로 계약을 맺은 당사자가 누구인지 모를 때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한다”며 “이런 경우엔 해고 당하거나 보수를 못 받아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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