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호

인간 본성의 탐구, 소설이라는 식당 또는 역사

  • 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입력2013-02-21 15: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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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본성의 탐구, 소설이라는 식당 또는 역사

    업둥이 톰 존스 이야기(전 2권)<br>헨리 필딩 지음, 김일영 옮김, 문학과지성사, 각권 1만8000원

    소설담론서나 소설작법서를 통해 익히 명성을 접해왔으나 뒤늦게 만나는 작품들이 있다. 번역이 쉽지 않아서, 또는 대중성이 없어서 소설가 지망생이나 연구자, 독자 대중에게 전해지지 못하다가 뒤늦게 번역 출간된 소설들이다. 한 나라 문화력(文化力)의 척도는 몇 가지 경우로 가늠할 수 있는데, 그중 하나는 이런 작품들이 제대로 완역돼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예를 들면, 로렌스 스턴의 ‘트리스트럼 섄디’,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그리고 마침내 이번에 번역 출간된 ‘업둥이 톰 존스 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1권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업둥이의 출생에 관해 알아두어야 할 적절한 내용 1장 작품 소개 혹은 향연의 식단표·27| 2장 올워디 영주에 관한 간략한 소개와 그의 누이 브리짓 올워디에 관한 좀더 상세한 설명·30| 3장 올워디 영주가 집에 돌아왔을 때 벌어진 기묘한 사건. 이에 대한 데보라 월킨스의 적절한 행동과 사생아에 대한 그녀의 타당한 비난·33| 4장 풍경을 묘사하려다 독자들을 위험에 빠뜨린 일. 그리고 그 위험으로부터의 독자의 탈출. 브리짓 올워디의 대단한 양보지심·38…

    위의 대목은 ‘업둥이 톰 존스 이야기’ 차례의 일단이다. 차례는 식당에 들어가 제일 먼저 찾는 차림표와 같고, 차림표는 식당 주인의 감각에 따라 명명되고 창조된다. 손님(독자)들은 차림표를 통해 ‘무슨 음식을 기대할 수 있을지 숙지한 뒤’ 음미할 준비를 하거나, ‘자기 입맛에 맞는 다른 식당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다.

    차례를 읽는 재미

    위에서 필자가 첫 인용으로 목차를 제시한 것은, 그동안 접해온 수많은 장편소설의 차례와 이 소설의 그것이 단연 구별되기 때문이다. 700쪽에 달하는 두 권 분량의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차례에만 14쪽을 할애하고 있다. 보통 한 권의 책은 부속과 본문으로 구성된다. 작품이 시작되기 전의 16쪽 정도가 부속에 해당되는데, 차례는 바로 여기에 속한다. 그런데 필자에게 ‘업둥이 톰 존스’의 차례는 부속이 아니라 본문의 가치, 곧 텍스트(작품)의 힘을 지닌다. 차례를 읽는 재미가 쏠쏠한데, 최근 2010년대 소설들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독특한 형식의 차례다. 독특하다는 것은 시간을 초월해 새로움을 확보한다.





    작가는 스스로를 돈을 받지 않고 개인적으로 식사를 대접하는 사람이 아니라, 돈만 내면 모두 환영하는 대중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으로 간주해야 하오. 잘 알려진 것처럼, 전자의 경우, 접대자는 자신이 원하는 음식만 제공하면 될 것이오. 따라서 음식이 심지어 입맛에 맞지 않거나 아예 형편없더라도 맛있다고 칭찬해야 하오. 하지만 식당 주인에게는 이와 정반대의 경우가 적용되는 법이오. 음식 값을 지불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미각이 아무리 까다롭고 변덕스러울지라도 식당 주인이 이를 만족시켜주기를 요구할 것이며,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으면, 자신들에게 제공된 음식을 책잡고 욕하며 심지어 자제력을 잃고 마구 욕설을 퍼불 권리가 당연히 자신들에게 있다고 주장할 것이기 때문이오. -‘1권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업둥이의 출생에 관해 알아두어야 할 적절한 내용: 1장 작품 소개 혹은 향연의 식단표’에서

    소설은 기본 서사(이야기)와 그것의 구성법(형식, 기법)으로 이루어진다. 이야기는 일상적인 영역에, 구성법은 플롯(미학)의 영역에 해당된다. 작가가 기본 서사를 어떻게 배치했느냐에 따라 같은 이야기라도 전혀 다르게 전달된다. 플롯 짜기에 민감한 작가들이 있는데, 대개 모더니스트들이 거기에 해당된다. 그들에게 플롯은 실험이자 놀이다. 그들은 주어진 세상(질료)을 그대로 재현하려고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자기 방식으로 해석하고 해체해 재구성할 것인지에 집중한다. 레고놀이에 능한 아이처럼 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해체와 재구성을 시도하고, 즐긴다. 그러나 플롯에 예민한 작가들일수록 내용, 곧 주제적인 측면을 한시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업둥이 톰 존스의 이야기’의 차례 및 첫 서두에서 보이는 짐짓 현란한 제스처는 아래와 같은 소설 본연의 소명을 직시하고 끝까지 완수해나갈 때 진정성을 획득한다.

    우리가 여기서 제공하고자 하는 음식은 인간의 본성이오. 하지만 우리의 현명한 독자들이 아무리 호사스러운 미식가의 입맛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이 단 한 가지 음식만 제공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랄 이의를 제기하거나 기분나빠할 거라곤 생각지 않소. (…) 학식 있는 독자들이라면 인간의 본성은(비록 여기서는 하나의 포괄적인 명칭 아래 모아놓았지만) 경이적일 정도로 다양해 작가가 이 방대한 주제를 다 소진하는 것보다 요리사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동식물을 (식재료로) 다 사용해 없애는 것이 오히려 더 용이할 거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오. -‘1권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업둥이의 출생에 관해 알아두어야 할 적절한 내용: 1장 작품 소개 혹은 향연의 식단표’에서

    소설 본연의 소명이란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것. 소설은 인간을 중심으로 세상(삶)의 이러저러한 면을 서사화하는 작업이다. 인간을 중심으로 구성된다는 것은 인간의 심리, 곧 인간의 욕망과 그로 인한 갈등을 대상화한다는 의미다. ‘업둥이 톰 존스 이야기’가 발표된 1749년은 유럽에서 계몽주의 시대, 나라마다 나름의 양상으로 전개됐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성 탐구에 귀결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서사의 진행은 서간체 형식으로 사랑(정념)이나 윤리 사상을 전파할 목적으로 한 인간의 성장을 다루는데, 주인공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사랑 이야기는 로맨스로, 윤리 사상은 철학소설로 분류된다. 헨리 필딩이 이 소설을 쓰도록 직적접인 자극제가 된 당시의 베스트셀러 ‘파멜라’(새뮤얼 리처드슨, 1740)를 비롯, ‘페르시아인의 편지’(몽테스키외, 1721), ‘캉디드’(볼테르, 1759), ‘트리스트럼 섄디’(로렌스 스턴, 1760), ‘신엘로이즈’(장 자크 루소, 1761) 등이 좋은 예이다.

    요즘 유행처럼 이 작품을 ‘생에 대한 변명’ 혹은 ‘생애’라고 부르지 않고 하나의 ‘역사’라고 칭하는 것은 합당할 것이오. 많은 공을 들여 방대한 양의 글을 쓰는 역사가보다는, 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큼직한 사건만을 기술하겠다고 공언하는 작가들의 글쓰기 방식을 나는 이 작품에서 사용하고자 하기 때문이오. 방대한 양의 글을 쓰는 역사가들은 자신의 연재물이 정기적으로 나올 수 있도록,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은 시기도 큰 사건이 벌어진 특정 시기를 묘사할 때처럼 상세히 묘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소. -‘2권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결혼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행복(중략): 1장 이 작품이 어떤 종류의 역사책인지, 그리고 다른 책과 어떻게 비슷하고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는 장’에서

    작가의 의도가 집약된 차례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총 18개의 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권당 10개 내외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은 소설(작품)론에 해당된다는 점이다. 위의 인용은 2권의 1장, 그러니까 작가가 이 소설의 제목을 톰 존스라는 업둥이에 대한 이야기로 명명한 것에 대한 의도 및 그에 따른 개념 정의와 장르 규정을 피력하고 있는 셈이다. 업둥이 톰 존스라는 사내의 이야기(history)란 곧 업둥이 톰 존스의 삶의 역사, 곧 인생사(life-history)가 되는 것이다.

    시간과 이야기의 관계 설정

    프랑스어에서 역사는 이야기를 뜻하는 histoire와 동일하다. 기록성이라는 고유한 속성에 따라 소설과 역사, 소설가와 역사가가 비교되곤 한다. 소설은 있는 그대로의 기록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주제)에 따라 선택되고, 재배치된다. 사건 재현을 위한 사실적인 구성이 아닌 창조를 향한 허구적인 재구성이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이러한 재구성은 플롯에 관계되며, 플롯은 몇 가지 항목-시간과 공간-이 유기적으로 작용할 때 한 단계 높은 미학의 차원으로 발전된다.

    ‘업둥이 톰 존스 이야기’는 작가가 표명하기를 로맨스와 서사시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로맨스는 소설 이전의 형태로, 주인공이 보통 사람보다 월등히 높은 선남선녀들의 세계를 그린다. 독자들이 우러러보는 세계이며, 사건(이야기)은 일어난 시간 순으로 제시된다. 사건의 재배치, 곧 시간의 재구성(플롯)이 자유자재로 이루어지지 못한, 소설 이전의 상태다. 현대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시간의 사용에 있다. 작가들의 시간에 대한 인식, 곧 작품 속에서 시간과 이야기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되었느냐가 관건이다.

    ‘업둥이 톰 존스 이야기’는 작가 헨리 필딩이 매우 기발한 장치를 고안해냈음에도, 이 시간의 사용에서 현대소설로 나아가지 못하고 계몽주의의 산물로 기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개의 소설론을 통해 작가가 소설을 쓰는 이유와 기법을 노출시킨 점에서 20세기 초 누보로망 작가들의 실험 작업과 동궤를 이룬다. 영국 계몽주의 시대의 인간과 소설, 그리고 소설론이 21세기 초 새삼 흥미롭게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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