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호

영화계의 ‘슈퍼 갑(甲)’ CJ

  • 정해윤 │시사평론가 kinstinct1@naver.com

    입력2013-02-22 10: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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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제국’ 미국의 소프트파워는 CNN이나 ‘뉴욕타임스’ 같은 언론이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에서 더 많이 나온다.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언론보다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영화는 대중의 의식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한국의 지식인들이 글과 말로는 미국을 비판하면서도 일상생활에선 ‘아메리칸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도 이런 소프트파워의 위력 탓이다.

    그런데 국내에선 종종 영화의 위력이 간과된다. 가령 대기업의 언론 소유는 큰 저항에 직면하지만, 대기업의 영화산업 진출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는 모순적 상황으로 비친다. 우리의 현실을 정확하게 보자면 특정 대기업이 단지 어느 하나의 영화사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거의 영화산업 전체에 걸쳐 지배권을 행사한다고 할 수 있다.

    시장 독식과 의식 지배

    현재 국내 영화산업계의 유일 최강자는 CJ E·M이다. CJ는 창업자 이병철 회장이 남긴 범(汎)삼성가 기업 가운데서도 독특한 위상을 갖고 있다. 우선 삼성그룹의 모태가 되는 제일제당을 소유해 장자(長子) 기업의 상징성을 확보하고 있다. 삼성이 소프트웨어에 약하다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영화라는 소프트웨어산업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CJ의 성공은 공정경쟁에 의한 것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대기업의 전매특허와 같은 ‘슈퍼 갑(甲)’의 지위로 시장 독식을 추구하는 양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멀티플렉스영화관 출현 이후 관객의 영화 선택권이 확대됐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는 착각인지 모른다. 멀티플렉스영화관의 스크린 대부분이 특정 영화에 장악되는 일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스크린을 장악한 쪽이 흥행을 결정하는 현상이 고착화하고 있다. 김기덕 감독은 이런 현실과 몇 년째 투쟁하고 있다. 그는 2012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피에타’로 도전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의 전작 ‘나쁜 남자’의 흥행 기록도 깨지 못한 채 막을 내려야 했다.



    ‘피에타’와 같은 시기에 개봉했던 ‘광해’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광해’는 1000만 관객을 넘겼는데 이는 작품성이나 흥미성만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된다. ‘광해’는 CJ가 투자-제작-배급을 수직계열화한 작품으로 CJ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다. 전체 스크린의 절반 정도를 장악한 결과가 흥행 대박으로 이어진 결정적 기반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극장을 휩쓴 CJ의 영화는 이어 CJ가 소유한 막강한 케이블 채널을 통해 다시 대량소비된다. 총 21개 케이블 채널을 보유한 CJ는 대중의 안방과 거실에서도 어떠한 방송사 못지않은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더구나 CJ 소유 tvN은 ‘쿨까당’이나 ‘끝장토론’같은 시사토론 프로그램을 통해 뉴스와 논평의 영역으로까지 발을 넓히고 있다.

    견제받지 않는 대기업 자본

    우리 사회는 공중파와 종합편성채널에 대해선 관심을 두고 사사건건 비판한다. 그러나 특정 재벌의 영화-케이블채널 독식 문제에 대해선 거의 침묵으로 일관한다. 보수는 CJ가 대기업이기 때문에 문제 삼지 않는다. 진보는 CJ가 진보진영 논리를 잘 전파하는 나팔수라고 판단하기에 입을 닫는 것 같다. 이에 따르면 CJ의 사업수완과 이념적 줄타기는 실로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기업의 탐욕은 골목상권 보호 논란에서 나타나듯 오직 제조의 영역에서만 관심 대상이 되는 것 같다. 덕분에 CJ는 엔터테인먼트 영역의 독과점 기업이면서 어떠한 견제나 저항도 받지 않는다. 미국에서 ‘월트 디즈니’같은 거대 영화사의 과도한 영향력에 관한 논쟁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우리 사회에서 미디어 제국이 되려는 대기업 자본이 토론의 소재가 되지 않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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