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interview

“돈 없어 소송 포기하는 사람은 없어야”

위철환 신임 대한변호사협회장

  • 한상진 기자 │ greenfish@donga.com

“돈 없어 소송 포기하는 사람은 없어야”

2/4
“무슨 개떡 같은 소리냐”

▼ 거절했습니까.

“거절 안 했어요. 좋다고 했죠. 다만 ‘여러모로 볼 때 내가 더 적합한 인물이니 내가 단일후보가 되겠다’고 했죠(웃음).”

위 회장은 서울교대를 졸업하고 서울 정릉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시험을 준비하는 5년 동안 낮에는 학교 선생, 밤에는 야간대 학생으로 살았다. 다들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지만,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 교사를 하다 사법시험을 준비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법대에 들어갈 때만 해도 사법시험에 대한 욕심은 없었어요. 그런데 한 학생이 장기결석을 하길래 부모를 불러서 물어보니 ‘소송에서 억울하게 져서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는 거예요. 돈이 없어서 졌다고. 그래서 뭐가 잘못됐는지 알아나 보자는 심정으로 공부를 시작했어요. 누군가 계속 같은 억울함을 토로할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거든요.”

▼ 시험에 붙을 거란 자신이 있었나요.

“다들 비웃더군요. 서울대 법대 나오고도 안 되는 사람이 허다한데, 야간대학에서 깔짝거린 걸 가지고 무슨 사법시험에 붙겠느냐고. 학교 선생 하면서 그냥 편하게 살라고. 사람들이 내 뒤에서 비웃는 게 다 들리더라고요. 그래도 난 도전하고 싶었어요. 할 수 있다는 신념이 있었고요. 하여간 죽기 살기로 공부했어요.”

▼ 선거도, 사법시험도, 다들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이었네요.

“누구나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어요. 눈앞에 유리천장이 하나씩 있는 겁니다. 전 그런 게 싫었어요. 4년 전 경기지방변호사회 회장 선거에 나갔을 때가 가장 심했죠. 서울 법대 나온 엘리트도 아니고, 판·검사 출신도 아닌 제가 변호사회 회장을 한다니까 다들 나보고 ‘웃긴다’고 그랬어요. 그래도 난 ‘그게 무슨 개떡 같은 소리냐’면서 밀어붙였어요. 선거를 두 달 앞두고 뛰어들었는데, 보란 듯이 성공했죠.”

▼ 살면서 실패를 경험해본 적이 있나요.

“고등학교 시험에 떨어졌죠. 전남 장흥의 시골 중학교에서 1, 2등을 다퉜는데 광주제일고 시험에서 떨어졌어요.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인데, 화가 나더라고요. 그때 저와 전교 1등을 다투던 친구도 같이 시험 봤다 떨어졌는데, 이후 나는 서울로 가서 신문배달을 시작했고, 그 친구는 부산으로 가서 약방 점원이 됐어요. 나중에 그 친구는 검정고시를 봐서 부산 수산대에 수석으로 합격했어요. 당시 최고 인기가 있던 잡지 ‘선데이서울’에 그 친구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나왔죠. 약국 점원이 수석 합격했다고.”

시장 수요에 맞게 변호사 늘려야

▼ 왜 검정고시를 안 보고 야간고등학교에 들어갔습니까.

위 회장은 또래들보다 2년 늦게 서울 중동고 야간부에 들어갔다.

“난 정통 과정을 좀 중시하는 사람입니다(웃음). 꼴찌를 하더라도 정규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죠. 신문보급소에서 같이 생활하던 친구들은 대부분 학력 인정을 안 해주던 전수학교 같은 곳에 다니거나 상고 야간을 다녔거든요. 그런데 난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 야간고등학교가 ‘정통 과정’은 아닌데….

“야간이지만 인문계잖아요. 그리고 그때는 중동고가 야간에선 최고였어요. 먹고살기 힘들어도 꿈은 원대하게 가져라, 그런 생각이었죠(웃음).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배울 게 있는 곳으로 간 거죠.”

2/4
한상진 기자 │ greenfish@donga.com
목록 닫기

“돈 없어 소송 포기하는 사람은 없어야”

댓글 창 닫기

2021/11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