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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상상의 땅’ 동방의 충격 대항해시대 연 지식 寶庫

  • 김학순 │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상상의 땅’ 동방의 충격 대항해시대 연 지식 寶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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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도 믿기 힘든 이야기’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 직접 가지 않았다며 붙이는 의문부호 가운데 하나인 만리장성은 실제로 1500년경의 명나라 때까지 현재의 모습을 채 갖추지 못했다는 학설이 인정받고 있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를 여행하고 온 사람의 글에서 에펠탑이나 샹송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거짓이라고 말하기 힘든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반론도 나온다.

마르코 폴로가 여러 산맥을 여행하면서 어느 정상에 ‘노아의 방주’가 있는 걸 봤다고 주장한 부분도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그가 통과한 아르메니아의 아라라트 산이 바로 ‘노아의 방주’였다는 설이 이를 말해준다. 원유의 특징을 지닌 물질에 관한 이야기도 중동 산유국이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세계의 지붕’으로 불리는 고원지대에서 물이 천천히 끓는다고 얘기한 대목도 당시엔 허풍선이의 대명사처럼 통했으나, 고원지대에서는 대기압 때문에 끓는점이 낮아져 등반가들이 물을 끓이기 어렵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몽케 칸의 시신이 알타이 산에 묻힐 때 2만 명의 무고한 사람이 사자와 함께 저승길에 동행하도록 죽임을 당했다는 마르코 폴로의 얘기 역시 독자에게 비웃음을 샀다. 그러나 이 괴이한 이야기를 뒷받침할 만한 중국 사료가 발견됐다.

북극곰의 존재도 마르코 폴로가 최초로 서양에 전했다. 낯선 여행자들에게 기꺼이 아내나 딸을 내주어 동침하게 하는 풍습을 지닌 지방의 이야기도 그렇다. 이 책엔 ‘그것을 보지 않고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들어도 믿기 힘들 정도다’와 같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마르코 폴로의 말이 얼마나 신뢰를 얻지 못했는지는 이 책이 발간된 지 50년이 지난 1324년 그가 사망할 때까지 세계지도에서 아시아 지역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의 임종을 지켜보던 한 신부는 이 책에 나온 얘기 가운데 취소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나는 내가 본 것의 절반도 다 말하지 못했습니다.” 이 일화는 당대인들의 온갖 의심과 비방에도 그가 얼마나 강한 신념을 갖고 있었는지를 방증한다.

이 책은 들머리를 이렇게 시작한다. “모든 황제, 국왕, 공작, 후작, 기사, 시민, 그리고 여러 시대의 사람들과 세계 여러 지역의 신기한 일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 이 책을 가져가서 읽어달라고 청하시오.” 마르코 폴로의 구술을 바탕으로 이 책을 쓴 루스티첼로는 13세기 당시의 낮은 문자 해독률을 감안해 이 같이 권한 것으로 보인다.

중세 이래 최고의 베스트셀러

‘동방견문록’은 유럽에서 한동안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고전이라고 할 정도로 중세 이래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당대에만 10여 개 언어로 번역돼 읽혔다. 프랑스어로 된 원본이 남아 있지 않은 탓에 138개의 이본이 발견됐다는 기록도 나와 있다. 이 책과 비슷한 시기에 몇 종의 다른 ‘동방여행기’들이 씌어졌다. 예를 들어 프란체스코파 수도사였던 프라노 카르피니의 ‘몽골 기행’, 윌리엄 루브룩의 ‘여행기’, 작자 미상의 ‘맨더빌 여행기’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동방견문록’과 같은 명성을 누리지 못했다.

이 책은 여러 가지 논란에도 대항해시대를 열어 세계사를 바꾼 결정적인 책으로 평가받는다. 유럽의 비유럽, 비기독교 세계에 대한 식민 지배의 시발점이자 정복과 노예무역 시대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 책은 서양에서 아시아에 대해 알 수 있는 지식의 원천이자 상상력의 보고(寶庫)였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애초 목적은 달랐지만, 아메리카를 발견한 1492년 여행 계획을 짜는 데 이 책의 지리학적 정보를 활용했다. 콜럼버스는 이 책을 항해 내내 갖고 다녔다고 한다.

페르디난드 마젤란의 세계 최초 일주도 ‘동방견문록’ 없이 나오기 어려웠다. 그는 어릴 때부터 마르코 폴로와 콜럼버스를 존경하며 세계 일주를 꿈꿨다. 마르코 폴로는 항해에 도움이 될 정도로 상세하게 얘기를 풀어놨다. 무역풍과 계절풍, 여름과 겨울에 인도와 걸프만 사이에서 서로 반대방향으로 부는 바람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기술했다.

서양에서는 이 책 이후 해도(海圖)의 제작이 몰라보게 활발해졌다.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이 700여 년 전 마르코 폴로의 여행 코스를 따라 아시아를 횡단하며 이국의 풍물과 풍속을 체험하고 있다.

신동아 2013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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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순 │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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