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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의 ‘해적 이야기’

북유럽의 약탈자 잉글랜드 왕조를 바꾸다

바이킹 해적

  • 김석균 해양경찰청장 | sukkyoon2004@hanmail.net

북유럽의 약탈자 잉글랜드 왕조를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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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칸디나비아에서 활동하던 바이킹은 약탈자이자 모험가였다. 뛰어난 항해술로 바다를 장악한 이들은 잉글랜드, 러시아, 프랑스 등 유럽의 거의 모든 지역을 약탈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끝내는 잉글랜드를 정복해 노르망디 왕조시대를 열었다.
북유럽의 약탈자 잉글랜드 왕조를 바꾸다

바이킹 선.

북아프리카의 사라센 해적이 지중해 연안에서 해적질을 일삼을 때 유럽에서는 바이킹 해적이 영국과 유럽 대륙의 해안지방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바이킹(Viking)은 ‘골짜기 강에서 온 사람들’을 뜻한다고 한다. 아마 이 말은 ‘피오르드(Fiord)’라 불리는 빙하의 침식작용으로 생긴 많은 협곡과 구불구불한 해안지형을 가진 스칸디나비아의 지형에서 유래된 것이 아닐까 한다. 이후 바이킹이라는 용어는 800년경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침략·무역·식민정책의 시대를 살았던 본국과 해외의 모든 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 지역의 스칸디나비아인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바이킹은 원래 외국과의 교역을 활발하게 진행한 정상적인 무역집단이었다. 본격적인 해적질에 나서기 전인 1세기경부터는 로마인과 무역을 했고 5세기에 이르러서는 번성하던 스칸디나비아 무역도시로 외국 상인을 맞아들여 활발하게 교역했다. 바이킹은 외국과 무역을 하면서 잘사는 다른 나라의 실상을 알게 됐고 침략과 약탈의 꿈을 키우게 됐다. 바이킹은 먼저 영국과 유럽의 수도원과 해안지역 등을 무자비하게 약탈하며 수도자들을 학살하거나 노예로 잡아갔다. 이후 바이킹은 피를 좋아하는 무자비한 약탈자의 대명사로 알려졌다.

바이킹이 정상적인 무역활동을 버리고 해적질에 나서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스칸디나비아의 척박한 자연환경이 제일 큰 요인이었다. 북유럽의 추운 날씨와 척박한 토양 탓에 수렵과 어업 외에는 별다른 것을 할 수 없어 생계를 잇는 것조차 힘겨웠다. 교역을 하면서 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땅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바다로의 진출은 이러한 욕망을 자극하는 당연한 돌파구였을 것이다.

뛰어난 항해술

한편 스칸디나비아는 엄격한 장남 상속제도를 유지했기 때문에 차남, 삼남들은 바다에 나가 약탈을 하든지 무역을 하지 않으면 생활을 할 수 없었다. 또한 스칸디나비아 본국의 정치적 불안도 바이킹의 해외 진출을 이끈 한 요인이었다. 9세기 후반 노르웨이의 금발왕 하랄이 작은 왕국으로 흩어진 노르웨이를 통합하면서 복속한 지역의 수장들을 무력으로 제거하려 하자 수장들이 자신의 세력을 이끌고 해외로 피신하면서 모험에 나서게 된 것도 한 요인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험난한 항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먼바다로 진출했던 타고난 탐험 정신과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생존하면서 만들어진 강인한 기질, 약탈의 피가 바이킹을 만들었다.

바이킹은 뛰어난 항해사였다. 능란한 항해술을 가진 바이킹은 가능한 한 해안을 끼고 항해하며 낯익은 지형지물을 이용했다. 원시적인 위치확인 도구를 가졌지만 태양과 별의 위치, 바람의 방향, 파도의 모양, 물의 색깔과 온도, 해조와 바다 포유류의 존재 등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바이킹 사공들은 최고 시속 28㎞의 엄청난 속력으로 오랜 시간 항해할 수 있었고 대양뿐 아니라 강에서도 활약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뛰어난 항해술이 무사히 고국으로 데려다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바다 건너 미지의 대양으로 진출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바이킹이 항해사에 기여한 특별한 공헌은 ‘Tack’이라는 항법을 개발한 것이다. 그들은 비스듬히 옆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대해 돛의 면을 좌우로 정교하게 바꾸어 바람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리하여 45도 이하의 지그재그 코스를 취해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항법을 고안했다. 이 항법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원시적이라도 일정한 의장과 키를 갖춰놓을 필요가 있었다. 바람을 맞고 나아가는 오늘날 요트의 항법을 바이킹이 처음 개발한 것이다.

끝없는 항해

바이킹이 활용한 항해 보조도구 중엔 태양의 방향을 알려주는 ‘태양석(Sun Stone)’이 있었다. 유럽의 북극 가까운 바다에는 무거운 바다안개나 비, 짙은 구름이 하늘을 자주 뒤덮어 태양이나 별자리를 가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날이면 바이킹은 섬광석(閃光石)이라는 광물로 만들어진 태양석을 이용해 태양의 방향을 알아냈다. 섬광석은 유리처럼 광택이 나는 투명한 광물로서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태양이 있는 쪽을 향하면 색깔이 바뀌는 성질을 활용했다.

또한 바이킹은 ‘위도항해(Latitude Sailing)’라는 항법을 사용했다. 위도항해란 목표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그 목표지점과 동일한 고도를 따라 항해하는 것이다. 해상에서 정확한 위도를 유지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바이킹은 눈금을 새긴 긴 막대를 이용했다. 막대기가 갑판에 드리우는 그림자의 길이를 기록해서 그림자가 이전보다 길거나 짧으면 그림자가 원래 길이가 될 때까지 경로를 틀었다. 밤에는 북극성을 따라 키를 돌리면 계속 북서 방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들은 북극성의 자리를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선박과 북극성의 상대적 위치에 따라 경로를 바꿨다.

바이킹은 단순한 약탈자가 아니라 모험심 넘치는 탐험가들이기도 했다. 뛰어난 항해술을 이용해 자신들이 알고 있던 세계의 끝을 넘어서까지 항해했다. 북대서양을 가로질러 오늘날 캐나다의 래브라도,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까지 항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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