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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힐링 healing 필링 feeling

권태로운 나날을 짓눌러버리는 무거운 힘

철암의 ‘까치발’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권태로운 나날을 짓눌러버리는 무거운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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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로운 나날을 짓눌러버리는 무거운 힘

강원 정선군 고한읍 삼탄 아트마인 수직갱도탑 조차장에 붉은 연꽃이 피어 있다. 옛 광부들에게 바치는 설치예술 작품이다.

그 한복판에 ‘상상초콜릿’이 있다. 가게 이름이 상상초콜릿인데 더불어 딸린 이름이 더 인상 깊다. ‘시장에 처음 와본 초콜릿’이다. 이 작지만, 소박하고 아름다운 가게를 운영하는 박은주(35) 씨의 일곱 살 먹은 딸이 지은 이름이란다. 이름도 짓고 직접 글씨도 썼는데, 귀여운 딸의 소담스러운 글씨를 박 씨는 간판 삼아 달았다.

박 씨가 재래시장 한복판에 초콜릿 카페를 연 것은 건국대 CB센터와 하이원리조트가 협력한 결과다. 하이원리조트의 재정 지원과 CB센터의 사업 개념, 그리고 박 씨의 아이디어가 화학 결합해 이뤄진 소중한 성과다. 이 카페는 요즘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경력 단절 여성의 사회 진출의 한 모형이라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이 중요한 이슈는 사회가 함께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난제다. 능력과 의지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 지역과 기업과 개념과 아이디어가 결합돼야 한다.

“저 나름대로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엄두도 낼 수 없었죠. CB센터 분들이 개념과 절차를 맡아주고 하이원리조트에서 지원해줘 일이 가능해졌어요.”

박 씨의 말이다. 솜씨 있고 의지가 있어도 임차료 때문에 카페를 할 만한 장소조차 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CB센터와 하이원리조트가 고한시장 상인회와 만나 지속적으로 논의한 결과 시장 안의 공간 하나를 제공받았고 이로써 달콤한 초콜릿과 은은한 커피향이 쇠락해가던 고한시장 안에 번지게 됐다.

건대 CB센터와 하이원리조트가 협력한 마을사업은 상상초콜릿 외에도 다양하게 번져가고 있다. CB센터 연구진이 직접 기획해 추진한 ‘탄광 기념품 사업’은 이 지역의 역사와 광부의 삶을 섬세한 스토리텔링을 거쳐 기념품으로 제작해낸 일이다. 산업화 시절의 힘겨운 경험을 망각하거나 화석화하지 않고 오늘의 삶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치 있는 기억으로 재생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지역 특산물을 바탕으로 진짜 로컬 푸드를 내놓는 ‘동강할미꽃마을’, 정선 일대의 은성한 숲을 문화 자원으로 삼아 소통과 치유의 관계 맺기를 추진하는 ‘아이아리 숲e랑’, 1년의 절반 이상 난방을 해야 하는 이 지역 날씨의 특성에 주목해 조리용 개량화덕이나 난방용 태양온풍기, 난로튜닝 등 에너지 효율이 뛰어나고 비용이 저렴한 제품을 제작하는 ‘마을에너지공방’ 등도 진행되고 있다.



폐광 선탄장에 핀 연꽃

이 사업들의 개념을 확정하고 그 의미를 전국 곳곳으로 확산하는 김재현 건국대 환경과학과 교수는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일정 지역 안에서 △지역주민이 주도적으로 운영하되 △영업행위로 독자적 수입과 자립성을 확보하고 △고용확대·환경개선 등 지역과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사업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전개되지 않으면 지속적인 관계 맺기가 아니라 반짝 아이디어에 즉흥적으로 모였다 흩어지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지역 주민이 주체가 돼 지속 가능한 마을 사업을 만들어내는 일, 그것은 곧 붕괴된 마을공동체를 장기적으로 복원하는 일이 되며 이로써 한 나라의 뿌리와 줄기가 강건해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고한시장의 한 귀퉁이에 자리한 예쁘장한 카페 ‘상상초콜릿’은 진짜 마을 가꾸기를 꿈꾸는 전국 곳곳의 사람들에게 소중한 씨앗이 될 것이다.

고한시장에서 만항재 쪽으로 5분쯤 가다보면 오른쪽 기슭으로 거대한 수직갱도탑(수갱탑)이 보인다. 이 수갱탑 위치가 지금은 폐광된 삼척탄좌 정암광업소다. 1962년 설립됐다가 2001년 폐광됐다. 그로부터 12년 만인 2013년 5월 미술 전시를 중심으로 한 복합 문화시설 삼탄 아트마인(대표 김민석)으로 변모해 새로 문을 열었다.

거대한 수갱탑 안으로 들어가면 작업용 광차를 위한 조차장 시설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그 레일 위에 붉은 연꽃들이 피어 있다. 이 수직 갱도에서 인생의 절정기를 보낸 옛 광부들에게 바치는 미술작가의 작품이다. 검은 선로 위의 붉은 연꽃은 강건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예전에 광부들이 사용하던 샤워실, 화장실, 세화장 등도 지역 역사와 문화 예술 전시관으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지역의 역사성이 소거된, 희멀건 예술들이 아니다. 이를테면 광부들이 몸을 씻던 샤워실에 걸려 있는 작품들은 광부들의 엑스레이 사진이다. 진폐증이라는 치명적인 병과도 싸워야 했던 광업인의 고통이 담겨 있는 것들이다.

수갱탑과 맞붙은 옛 사무동의 시설도 입주 작가 스튜디오, 현대미술 전시, 미술 체험 공간, 옛 광업소 자료 수장고 등으로 변모했다. 자료 수장고의 기록물은 21세기 들어 각광받는 ‘아카이브 전시’라는 관점에서 볼 때도 가치가 상당하다.

“누군가에게는 골치 아픈 폐광 시설이겠지만 예술가들의 눈과 열정으로 보면 이만한 오브제가 달리 없습니다. 허허벌판에 일부러 이렇게 짓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죠.”

김진만 삼탄 아트마인 전무이사는 유럽의 다양한 사례를 거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또 이 공간이 새로운 생명 공간으로 되살아나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외교관 출신으로 전 세계가 20세기의 산업화에서 21세기의 문화화로 변모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유럽 산업혁명의 근거가 되는 곳이 독일 루르 탄광지대입니다. 그곳의 졸버레인 보쿰 박물관은 연간 250만 명 넘는 관광객이 찾습니다. 스페인의 탄광 지대 빌바오도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인해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성공했습니다. 산업의 시선으로 보느냐, 문화의 시선으로 보느냐가 관건이지요. 예전에는 낡고 오래된 것이면 무조건 부수는 게 능사였지만 이제는 새로운 시선으로 재활용하자는 공감대도 커졌습니다. 삼탄 아트마인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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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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