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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는 내 유일한 숨구멍 카메라만 보면 쌩쌩해져요”

데뷔 43주년 ‘변호인’ 여걸 김영애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연기는 내 유일한 숨구멍 카메라만 보면 쌩쌩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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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재미와 큰 감동

‘변호인’은 노 전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맡았던 부림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여서 개봉 전부터 논란이 많았다. ‘부산의 학림사건’이라는 의미인 부림사건은 1981년 발생한 부산지역 최대 용공조작사건. 영화가 개봉하자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졌고, 누군가 영화 티켓을 대량 예매했다가 상영 직전 취소하는 일도 벌어졌다.

▼ 영화 평점을 0점 처리하는 ‘평점 테러’도 있었는데.

“신경 안 썼어요. 그런 사람이 전체의 100분의 1도 안 되더라고. 영화를 보지도 않고 평가한다는 게 어이없잖아요. ‘변호인’ 반응을 보면서 이 세상에는 상식적인 사람이 훨씬 많다는 걸 알았어요. 영화 보고 내게 전화한 사람들은 거의 다 보통 사람들이에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그런 사람들이 ‘정말 가슴이 먹먹했다’ ‘울컥했다’며 울면서 전화했어요. 세상이 험해도 좋은 사람이 더 많기 때문에 세상이 굴러가는 거라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는데 그 생각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아요.”

▼ 흥행 요인이 뭘까요. 노 전 대통령의 영화라서?



“그 점도 작용했겠죠. 나도 변호사 노무현에 대해선 몰랐는데 이번 영화를 하면서 사람들이 왜 그를 좋아하는지 좀 알았어요. 그렇다고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난 감동과 재미를 다 주는 영화가 최고라고 생각하는데, ‘변호인’은 잔재미와 큰 감동을 주죠. 게다가 정의가 뭔지, 난 어떻게 살았는지를 되돌아보게 하고. 그런 점이 보수와 진보를 떠나 보통 사람들을 입소문으로 끌어들인 게 아닌가 싶어요.”

▼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기보다 연기자들의 힘이 컸다는 평가도 나오던데.

“공감해요. 영화를 보고 나서 위기감, 기분 좋은 경쟁심을 느꼈어요. 달랑 한 신 나오는 친구까지 어찌나 연기를 잘하든지. 어떤 감독이 ‘이렇게 출연진의 연기에 구멍이 없는 영화는 첨 봤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 것 같아요. 난 영화를 보면 작품에 빠지기보다 한발 뒤로 물러서서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데 아쉬울 때도 많아요. 내가 인정하는 사람은 따로 있죠.”

▼ 그게 누군가요.

“송강호 씨, 김용림 선배, 윤여정 선배, 김영옥 선배, 하정우. ‘베를린’과 ‘더 테러 라이브’ 보면서 정우한테 홀딱 반했어요. 정우가 감독하고 주연하는 ‘허삼관매혈기’라는 영화가 곧 크랭크인 해요. 특별출연으로 한 신 나오게 됐어요. 꼭 하고 싶은 작품이라서 그런지 벌써부터 막 설레요.”

▼ ‘변호인’의 송강호와 임시완을 배우로서 평가한다면.

“송강호 씨가 원래 연기를 잘하는 건 알았지만 옆에서 보니 그 이상이었어요. 영화 전체를 꿰고 있는 점도 놀라웠고. 시완이는 아직 미완이지만 최선을 다한 점을 높이 평가해요. 고문 신이 여간 힘든 게 아닌데, 왜 이런 걸 한다고 했지 싶을 정도로 안쓰러웠어요.”

▼ 배우 생활을 40년 넘게 하면 연기 도사가 되지 않나요.

“지금껏 한 번도 연기가 쉬웠던 적이 없어요. 많이 해본 캐릭터라도 작품이 다르니까 매번 새로워요. 그래서 늘 힘든가 봐. 사람들은 오래 하면 저절로 된다고들 하는데 난 타고난 천재가 아니라서 그런지 캐릭터가 내 안에 어느 정도 자리 잡기 전까지는 너무 힘들어요. 연기가 편하게 나오기까지 오래 걸리는 편이에요.”

배우는 내 운명

기자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맑고 선했다. 젊은이의 그것 못지않은 생기가 감돌았다. 비결을 묻자 그는 “철이 안 들어서 그렇다”며 웃음을 빵 터뜨렸다.

“정말 감당하기 힘든 일을 많이 겪었는데도 비교적 닳지 않아서 아직도 철 안 든 얼굴을 갖고 있나봐요. 일도 연애도 그래서 더 고달팠지만.”

그가 달려온 배우 인생은 기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그는 1971년 M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드라마 ‘민비’(1973)로 스타덤에 오르지만 유부남이던 밴드마스터 이종석 씨와 사랑에 빠져 20대 중반 배우인생의 위기를 맞는다. 1978년 이씨와 결혼한 뒤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더욱 활발한 활동을 펼쳤지만, 중년배우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2001년 이혼 소식을 전해 주위를 안타깝게 한다. 2003년 황토팩 사업을 함께하던 5세 연하인 박장용 씨와 재혼한 후에는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듯했다. 그러나 사업 실패로 이마저 오래가지 못하고 2008년 두 사람은 남남으로 갈라선다. 이후 연기 활동을 재개한 김영애는 여러 작품에서 존재감을 발휘하지만 ‘해품달’에 출연하던 2012년 췌장암 판정을 받는다.

여자로서 견디기 힘든 세월을 보내면서도 지난 43년간 그는 드라마 56편, 영화 53편에 출연했다. 데뷔 후 해마다 두세 편의 작품을 꾸준히 해온 셈이다. 배우는 선택받는 직업이기에 이 정도로 오랜 생명력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비결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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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 │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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