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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 평택으로 가는 길

집값·땅값은 계속 오르고 ‘기지촌 할매’들 쪽방서 쫓겨날 판

미군 기지촌 여성들을 찾아서

  • 이양구 | 극작가

집값·땅값은 계속 오르고 ‘기지촌 할매’들 쪽방서 쫓겨날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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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으로 왔어”

할머니들에게 물었다. “원한다면 거절할 수도 있었던 거지요?” 대답은 이랬다. “싫다고 할 리가 없잖아. 그러려고 온 것인데.” 너나없이 가난하던 시절 기지촌으로 흘러와 나 혼자 몸 팔아 동생 학교 보내고 엄마 아빠 돈 보내드리고 말년에는 홀로 안정리에 남아 가족과도 연을 끊고 살아온 할머니의 대답이다.

게다가 1969년 닉슨 독트린 발표 이후 주한미군의 철수를 막기 위한 방편으로 1971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 직속으로 ‘기지촌정화위원회’를 설립하고 한미 합동으로 장기적이고 효과적으로 기지촌 여성에 대한 성병 관리에 돌입했던 사정까지 알고 나면 강제성이니 자발성이니 하는 구분이 공허하게 들린다. 그때 안정리 할머니들도 정부 시책에 따라서 ‘국화회’라는 자치회를 만들어 ‘너는 감찰하고 나는 감찰당하고’ 그랬다. 지금도 할머니들은 그때 감찰을 했던 할머니를 가리켜 “저년이 더했어”라고 쑤군거린다. 그러나 감찰을 했건 감찰을 당했건 내 눈엔 다 똑같이 슬픈 빛깔이다.

기지촌정화위원회 활동 기간에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국가의 관리 감독은 인권침해 요소가 다분해 기지촌여성인권연대에서 곧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할 것이니 법적 책임 여부는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다. 문제는 소송이 제기되고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또 누군가 소리 없이 사라져갈 것이라는 점이다. 일본이 조선인 위안부 생존자들에게 내심 기대하는 것을 우리 또한 기지촌 여성들에게 기대하는 것일까.

나는 5년간 햇살사회복지회를 다니면서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이 햇살사회복지회를 찾아 안정리 기지촌 할머니들을 만나는 장면을 목도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안정리 할머니들에게 죄의식을 벗고 당당하게 살라고 말했다. “우리도 첨엔 우리가 잘못했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러나 정작 기지촌 여성을 대표해 대답한 할머니 한 분은 ‘자발적 선택’임을 강조했다. “언니들이 그렇게 말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난 솔직히 자발적으로 왔어.”

이 ‘자발적 선택’의 논리는 단순히 ‘바깥세상’ 사람들이 기지촌 여성들을 바라보는 방식이 아니라 기지촌 여성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인식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들의 삶을 연극의 대본으로 옮길 때 ‘썩은 고기의 비유’를 들었다. 연극 ‘일곱집매’에서 극 중 심화자 할머니는 기지촌으로 흘러든 자신의 삶이 ‘자발적인 선택’이었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정작 또 다른 기지촌 여성인 김순영이 던져준 썩은 고기를 먹고 죽은 개에 대해서 그건 언니가 죽인 것이라고 소리친다.

나는 어느 날 안정리 거리를 걷다가 쓰레기통을 뒤져 먹고 난 뒤에 끙끙거리고 누운 강아지를 보았다. 먹을 것 없는 개들이 썩은 고기라도 먹고 죽어야 하듯 나라가 가난했던 1960~70년대 기지촌으로 흘러들어온 삶이 ‘자발적’인 것이었다고 쉽사리 치부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내게 “자발적으로 왔어”라는 할머니의 말은 “나를 쉽사리 피해자로 만들지 마. 이건 내 마지막 자존심이야. 내 삶은 내가 선택한 거야”라는 말로 들렸다. 그래서 이분들의 모습은 내게 도리어 어떤 상황에서든 인간의 삶이 쉽사리 훼손될 수만은 없는 것이라는 감동을 주었다. 그런 면에서 그녀들은 내게 큰 선생님들이었다. 나는 어떤 시인에게서도 받지 못한 감동을 그녀들에게 받았으니 이 말은 결코 위로의 말이 아니다. 내 걸음으로는 20분이면 될 길을, 4~5시간씩 걷다가 쉬다가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결코 다른 사람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전찬숙 할머니나 김복남 할머니의 잔영은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손가락질 안 받으며 살 공간

집값·땅값은 계속 오르고 ‘기지촌 할매’들 쪽방서 쫓겨날 판

먼저 세상을 뜬 할머니를 기리는 추도 모임.

어떤 사람은 기지촌 할머니들을 일반 양로원이나 사회복지단체에서 함께 관리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당사자인 할머니들은 이렇게 말한다. 거길 가면 사람들이 우리들의 ‘과거’를 들추며 손가락질해서 앉아 있을 수 없다고.

김순배 할머니는 12년 전, 교회에 나가서 기도를 하고 싶은데 사람들이 손가락질해 자꾸 눈물이 난다고 했다. 이 얘기를 듣고 우 대표는 ‘그러면 햇살사회복지회에서 기도를 하자’고 즉석에서 제안했다. 이후 그곳에서는 12년째 매주 화요일 기도회가 열린다. 김순배 할머니가 교회에 나가서 맘 편히 기도할 수 없었듯이 다른 할머니들 역시 양로원에서조차 편히 앉아 있을 수 없다고 한다. 그녀들의 ‘과거’를 아는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운 까닭이다.

그녀들에게는 그녀들만을 위한 공동체 공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녀들은 공동체 공간은커녕 저 혼자 편히 누울 공간조차 없다. 햇살사회복지회는 이름이 주는 이미지와 달리 아주 좁은 가정집 한 칸에 불과하다. 슬프지만 이것이 그녀들에게 ‘특별한’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앞에서 허 기자가 찍은 사진을 다시 보자. 이 사진에서 선글라스를 쓴 분은 엄숙자 할머니다. 이분은 이날 당사자 발언을 통해 “우리는 노래하고 춤추고 노느라고 고생 많이 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눈물이 나서 더는 말을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을 듣다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았다. 지원을 부탁하려면 불쌍한 척 연기도 하고 죽는 시늉도 좀 했으면 좋으련만 그녀는 그런 것조차 몰랐다. 클럽에서 미군을 상대로 일했다고 말해야 할 것을 “노래하고 춤추고 노느라” 고생했다고 말한 것이다. 눈물이 나서 더는 말을 못하겠다는 말을 들으며 웃은 것이 미안했다. 이 사진에서 복면을 쓴 할머니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그녀가 “여러분은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실 거예요. 우리는 당사자였기에 너무 아파요”라고 말한 할머니라는 것만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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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구 |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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