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방 가지고 가시라고요.”
앞쪽 자리에 앉은 정순미가 눈웃음을 쳤다.
“이 가방 드리려고 대표님 사무실을 빌렸어요.”
“그렇군.”
머리를 끄덕인 윤기철이 소파에 등을 붙였다.
“자주 빌려야겠어.”
“왜요?”
“우리 둘이 데이트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장소가 어디 있어? 안 그래?”
그때 정순미의 얼굴이 붉어졌다. 두 볼부터 붉어지더니 금방 눈 주위까지 번졌다. 정순미가 시선을 내린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잘 다녀오세요. 과장님.”
“잠깐만.”
정순미의 시선을 받은 윤기철이 손으로 소파를 가리켰다.
“앉아. 이야기 좀 하게.”
“무슨 이야기요?”
주춤거리던 정순미가 다시 자리에 앉았으므로 윤기철은 어깨를 폈다. 할 이야기는 없다.
“우리가 여기 있는 동안 아무도 들어오지 못해. 대표 동지가 보초를 서줄 것이거든.”
“글쎄,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요?”
“재미있잖아, 대표 동지를 보초 세우고 말이야.”
“장난하지 마세요.”
정순미가 눈을 흘기는 시늉을 했지만 웃음을 참느라고 콧구멍이 조금 벌름거렸다. 정색한 윤기철이 정순미를 보았다.
“난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여기 개성에 오기 전에 헤어졌어.”
정순미는 눈만 깜박였고 윤기철이 말을 이었다.
“내가 차인 거지. 솔직히 개성공단에 발령받으면 좌천이야. 밀려난 것이나 마찬가지지. 그러니 보통 여자라면 차는 것이 당연….”
“저기요.”
그때 말을 자른 정순미가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리더니 윤기철을 보았다. 다시 볼이 조금 붉어져 있다.
“그분 좋아하셨어요?”
“응?”
“사랑하셨느냐고요?”
윤기철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내가 엉덩이를 딥다 차인 것도 당연하지. 내 이용가치가 없어졌으니까.”
“…”
“아프리카 출장을 가서도 휴대전화 통화를 하는데 여긴 휴대전화도 안 터지잖아?”
“…”
“그 쌍년은 여기 사정을 두르르 꿰고 있었다고. 그래서….”
“저기요.”
다시 윤기철의 말을 끊은 정순미가 윤기철을 보았다.
“이제 그만요.”
“그러지.”
이제는 윤기철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입가에 웃음이 떠올라 있다.
“오늘 진도는 이만큼만 나가기로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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