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17일 진도실내체육관에서 굳은 표정으로 실종자 가족을 만난 박근혜 대통령. 그는 왜 울지도 못했는가.
이 사건을 키운 양대 주범은 선사(船社)와 선장 등 승무원의 무능과 시맨십(seamanship) 상실, 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국가 지도부의 리더십 결여다. (주)청해진해운과 세월호 승무원의 무능과 무책임, 해양인 정신 실종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의 지적이 있었으니 여기에서는 국가 지도력 붕괴를 분석해보기로 한다.
위험을 의식하며 국가를 이끌어야 하는 이들은 반드시 ‘Think the Unthin-kable(생각할 수도 없는 일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은 이들이 ‘Think the Thinkable(생각할 수 있는 일도 생각)’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일어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대책을 세워놓지 않은 ‘전형적인 방심’이다.
해양경찰은 한두 가지의 위험에만 집중해왔다. 국가적인 관심사이기도 한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을 막는 데 전력을 쏟아 부었다. 불법 조업하는 중국어선을 단속하던 해경 요원이 순직하고, 해경이 쏜 고무탄을 맞아 중국 선원이 사망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다보니, 다른 것을 등한히 하는 우(愚)를 범했다.
그 사이 종종 해난 사고가 있었으나 어선과 화물선에 한정됐다(서해페리호 사건 이후). 배의 구조를 꿰뚫고 있는 승무원과 어부들은 대부분 자력으로 빠져나왔다. 사고는 대개 황천(荒天)에 일어났으니 해경 요원들이 배에 들어가 구조해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 때문에 해경은 재난을 당한 배에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제복에 대한 모독
그래서인가? 해경은 중국 어선에 올라가 강제 수색하는 지방해경청의 특공대는 키웠으나, 재난당한 배에 들어가 탑승자를 구하는 수색구조계는 없애버렸다. ‘여객선이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Think the Thinkable’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이다.
여객선에서는 배의 구조를 모르는 승객이 절대 다수이니 사고가 일어나면 ‘무조건’ 승무원이 갑판 같은 안전구역으로 승객을 유도해야 한다. 승무원이 하지 못하면 제복 입은 이가 해야 한다. 소방방재청 요원이 화재가 난 건물에 들어가 사람을 구조해내듯, 해경 요원도 여객선에 뛰어올라가 승객을 끄집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연안 여객선의 구조를 반드시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연안 항로를 다니는 여객선의 수는 많지 않으니, 해경은 여객선의 구조를 숙지해 승객을 유도하는 훈련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세월호는 북쪽에서부터 인천-평택-보령-군산-목포-완도-제주의 8개 해양경찰서 관할수역을 지난다. 그러나 8개 해경서 모두 세월호 구조를 숙지해 사고 시 승객을 유도해내는 연습을‘전혀’하지 않았다.
세월호는 유속이 빠른 맹골수도에서 사고를 당했지만 바다에 뛰어든 이들은 심장마비 등에 걸리지 않은 한 다 살아났다. 목포해경서 소속의 123정이 도착한 뒤에도 세월호는 상당시간 60도 정도로 기울어진 채로 있었다. 따라서 123정 요원들이 배에 올라가, 구명조끼를 입고도 겁에 질려 복도와 선실에 갇혀 있던 승객들을 유도해 바다에 뛰어들게 했다면,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여러 배가 바다에 떠 있는 이들을 대부분 구조했을 것이다.
그렇게 됐더라면 대한민국은 소수의 희생자를 애도하면서도 123정 요원들이 해낸 인간 승리에 기뻐했을 것이다. 용감한 행동을 한 해경 요원은 줄줄이 ‘영예로운 제복상’ 수상자로 선정되고, 구조에 참여한 배의 선원은 전부 ‘의인(義人)’으로 추대됐을 것이다. 박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지지율도 올라가고 애국심도 고양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국가가 정한 제복은 아무나 입는 것이 아니다. 제복을 입은 이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제복에 대한 모독이다. 군복을 입은 군인이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그 나라의 안보는 유지될 수 없다. 시맨십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제복정신’인데, 해경은 이를 보여주지 못했다. 해경은 얼이 빠진 게 아니라 얼이 없었다. 박 대통령은 그것을 몰랐다.
대통령 보호에 초점을 맞추다니
초동 대처 미흡으로 세월호가 뒤집혀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한 다음부터는 해경만으로는 대처할 수 없게 되었다. 국가적인 리더십이 필요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때 박근혜 정부는 국무총리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모습을 보였다. 해경청을 거느린 해양수산부, 재해재난 발생 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맡게 되는 안전행정부, 해군을 거느린 국방부를 동원하려면 총리가 나서는 것이 좋다는 ‘꾀’를 낸 것이 시발이었다.
우리나라의 국무총리는 행정부처를 통합 지휘할 수가 없다.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대통령과 부처가 권력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실종자를 찾아내려면 해군과 국방부를 움직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총리에게는 대통령을 대신해 군 통수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돼 있지도 않다.
국무총리의 주 임무는 부처 간의 이견을 ‘조정(調整)’해내고, 대통령의 허물을 뒤집어써주는 ‘방탄(防彈)’을 하며, 대통령을 대신해 행사를 치르는 ‘대독(代讀)’이라는 게 상식인데도,청와대는 총리를 실권도 없는 ‘범정부사고대책본부장’에 지명해 막아보려고 했다. 총리가 책임지고 사임하는 것으로 사태를 무마하려고도 했다.
이는 박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이 Think the Thinkable도 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박 대통령은 여성이기에 재난에 대한 리더십이 약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참모들의 정확한 보좌가 더욱 필요한데, 이들은 박 대통령 보호에만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총리 이하 여러 장관이 희생자 가족으로부터 불신을 받고, 희생자 가족이 청와대로 행진하고, 종북·친북 세력이 그에 편승해 선동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