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기자들이 5월 12일 세월호 사건 관련 공영방송의 독립성 문제를 논의했다.
사이비 전문가로 인한 혼란은 대형 사고에 수반하는 새로운 유형의 양상으로 꼽아야 할 것 같다. 홍가혜와 함께 세월호 사태가 만든 유명인사가 이종인 알파잠수 대표다. 그는 2010년 천안함 사태 당시 국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당시 그가 보인 언행은 크게 신뢰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JTBC의 손석희 앵커는 그를 여러 번 인터뷰하면서 그를 화제의 인물로 만들어놓았다. 다이빙벨을 안 쓰면 안 될 것처럼 여론을 형성했다. 이상호 기자가 여기에 가세하면서 다이빙벨 투입 논란은 광우병 논란이나 천안함 논란 같은 거대 논쟁으로 번졌다. 결국 현장 투입 결과 다이빙벨은 부적절한 장비로 밝혀졌고 구조에 큰 혼선만 초래했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 언론은 얼치기 전문가가 득세할 필연적인 구조를 갖췄다.
미국의 심리학자 필립 테틀록은 쟁쟁한 사회학자의 예측이 형편없이 빗나가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 테틀록은 여기에 흥미를 갖고 전문가 284명의 의견을 장기적으로 검증했다. 그 결과 흥미로운 결론이 도출됐다. 의견의 적중률은 진보냐 보수냐 같은 이념 성향과는 상관이 없었다. 상대적으로 높은 적중률을 보인 전문가는 자신감이 부족하고 가설을 끊임없이 보정하는 사람이었다. 반면 자신의 이론에 경도된 전문가일수록 적중률이 떨어졌다. 이념적으로 극단적인 인물은 가장 형편없는 적중률을 보였다.
한국은 2008년 미네르바라는 희대의 사이비 전문가를 경험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를 향해 저주의 언사를 늘어놓으면서 ‘인터넷 경제 대통령’으로 떠올랐다. 김태동이라는 경제학자가 그를 가장 뛰어난 경제스승으로 치켜세움으로써 권위를 더했다. 하지만 그는 전문대 졸업 학력의 백수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자 대중은 그가 진짜 미네르바일 리가 없다는 설을 유포하며 인지부조화 증세를 보였다.
다이빙벨 논란은 미네르바 사태의 재판이다. 이종인은 보통 수준의 상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충분히 경계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인에겐 그런 상식적 수준의 식별력도 기대할 수가 없다. 이미 이념적으로 경도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실로부터 멀어 보일지라도 과격한 반정부 발언을 내뱉는 이가 인터뷰 대상자로 우선 선택되는 것이다.
한국인의 반정부 정서는 생래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 어떤 사고가 터지든 분노가 곧장 정부로 향한다. 언론이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조장하는 건지, 이러한 분위기에 언론이 편승하는 건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이는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를 따지는 격이다. 보수와 진보 언론은 참으로 오랜만에 하나가 되어 정부를 비판했다.
KBS의 ‘아사리판’
사고 첫날 ‘전원 구조’ 오보가 터져 정부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긴박한 상황에서 왜곡된 정보가 큰 지장을 초래했다. 이 책임의 적지 않은 부분은 야당 소속 교육감을 둔 경기도교육청에도 있다. 해경 자료를 받은 교육청이 사실과 다른 내용을 문자메시지로 발송한 것이다. 그러나 언론은 이 오보에 대한 책임을 오직 정부 쪽으로만 돌린다. 한 방향으로 소위‘야마(핵심주제)’를 잡아 ‘한 놈’만 물고 늘어지는 건 우리 언론의 오랜 관행이다.
진보 성향 오마이뉴스는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팔걸이의자에 앉아 컵라면을 먹은 것을 황제 컵라면으로 언급하며 특종 보도했다. 실제론 서 장관 바로 옆에 박준영 전남도지사도 컵라면을 먹고 있었고 더구나 박 지사의 거듭된 권유로 서 장관이 먹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 언론은 마치 사진의 나머지 절반을 도려내듯 서 장관 부분만 보도했다. 이 보도는 인터넷에서 일파만파의 파장을 불렀고 박 지사 부분은 한참 뒤에 알려졌다. 하지만 이미 정부를 향한 대중의 불신이 극에 달한 뒤였다. 한쪽 눈을 감고 한쪽 사실을 지운 이념 편향 보도의 대표 사례다. 정부 비판은 언론의 사명이므로 그것은 그것대로 적극 장려되어야 하지만, 이런 식의 비판은 정도(正道)가 아니다. 일부 네티즌도 이 보도에 대해 “완전 악질” “선동의 전형적 사례”라고 비판한다.
KBS의 젊은 기자들은 사내 게시판을 통해 KBS가 더욱 강하게 정부 비판을 하지 않는 데 대해 불만을 제기했다. 그러자 이 방송사 간부는 자사 뉴스의 정부 비판에 양적으로 부족함이 없었다면서 다이빙벨 보도 같은 것을 하자는 것이냐고 반박했다. 이런 가운데 KBS 보도국장이 사석에서 세월호 사고와 교통사고를 견주어 발언한 것으로 진보 성향 ‘미디어오늘’에 보도됐다. 보도국장은 미디어오늘이 자기 발언을 악의적으로 왜곡 보도했다고 주장했다. 유족은 청와대로 몰려가 KBS 보도국장의 파면과 사장의 사과를 요구했다. 청와대의 요청으로 KBS 사장은 국장을 경질했고 유족에게 사과했다. 그러자 해당 보도국장은 “사장은 정부에 불리한 뉴스가 크게 실리는 것을 막아왔다”면서 “사장도 사퇴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