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호

스트레스가 낳은 ‘현대병’

공황장애

  • 윤호경 고려대 안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입력2014-06-19 10: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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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황장애는 불안장애의 한 종류다. 일반적으로 불안은 좋지 않은 이미지로 인식되지만, 그 자체는 무조건 나쁜 게 아니라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현상이다. 인간이 위험을 감지하면 본능적으로 불안을 느끼고, 이른바 ‘싸울 것인지, 도망칠 것인지’를 결정하게 된다. 그 덕에 인간은 지금껏 생존해왔고, 문명이 발달한 요즘도 여전히 본능적인 불안반응이 작동된다.

    그러나 이런 자연스러운 불안과 달리 편안하고 익숙한 상황인데도 갑작스럽고 심한 불안감에다 심혈관계, 신경계, 호흡기계, 소화기계 증상까지 동반되면서 ‘이러다 죽는구나’ 하는 극심한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게 공황장애다. 환자 자신도 실제적 위협과 두려움을 느낄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알지만 순식간에 그런 현상이 밀어닥친다. 마치 어느 건물에서 화재가 나지도 않았는데 비상벨이 오작동해 건물 안의 사람들이 혼비백산해 밖으로 나가려고 발버둥치는 형국과도 비슷하다. 말 그대로 공황(恐慌). 공포(恐怖)에 질려 당황(唐慌)하고 허둥지둥한다.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는 이 세상 어느 공포보다도 극심할 것이다. 이런 불안이 한 번만 있어도 고통스러운데, 반복되면 개인에게 심각한 고통을 안기거나 사회생활을 못할 정도로 행동에 지장을 준다.

    죽음에 대한 극심한 공포 경험

    공황장애의 평생유병률은 2~4%다. 100명 중 3명가량은 평생 이런 경험을 한 번쯤은 할 것이란 얘기다. 이렇게 상당히 흔한 질환임에도 우울증과 같은 병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아 다소 과소평가돼온 경향이 있다. 최근 들어 몇몇 연예인과 사회 유명 인사가 공황장애를 앓았다고 밝히는 등 사회적 인식이 바뀌면서 도움을 청하는 경우가 급증한다.

    대다수 환자가 호소하는 것은 가슴이 두근거리고 답답하며 목이 조이는 것 같고 숨 쉬기 어려우며, 화끈거리고 입이 마르며, 식은땀이 나고 소화가 되지 않는다는 등의 괴로움이다. 이런 증상들이 신체적으로 나타나므로 자신의 몸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할 반응일 수 있다. 그래선지 여러 병원과 진료과를 돌며 온갖 검사를 받거나, 혹은 같은 검사를 반복해서 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특별한 문제가 없다”다. 위에 나열한 증상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 신체적 질병은 없다. 숨이 막힌다고 폐검사를 할 순 있지만 그 검사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나고 소화가 되지 않는 증상을 설명할 수 있을까? 하지만 공황장애에선 자율신경계에 이상이 생겨 교감신경계가 과도하게 흥분하면 위의 모든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스트레스가 낳은 ‘현대병’

    공황장애 환자임을 털어놓은 연예인들. 이경규, 이병헌, 김하늘(왼쪽부터).

    회피반응 심하면 ‘광장공포증’으로 이어져

    공황반응의 원인으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와 피로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공황반응이 발생할 때를 돌이켜보면 여러 날 무리하고 피곤이 쌓인 경우가 많고, 거기에다 밤을 새우거나 술을 마시거나 한 다음 날이면 꼭 그런 비슷한 ‘기운’이 올라온다는 환자가 많다. 어느 경우나 마찬가지지만 공황장애에서도 충분히 자고 밤낮이 바뀌지 않게 규칙적으로 일주기 리듬을 유지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공황장애가 발생하면 생길 수 있는 또 다른 문제는 ‘회피반응’이다. 낯선 곳에, 도움을 줄 만한 지인이 없는 곳에서 공황반응이 나타날까 두려워진다. 회피반응이 심해지면 ‘광장공포증’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광장공포증(agoraphobia)의 ‘agora’는 그리스어로 ‘광장’이란 뜻으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공장소를 뜻한다. 광장공포증 환자는 사람이 붐비는 넓은 광장 같은 장소에서도 불안을 느끼고 터널·엘리베이터와 같은 갇힌 공간, 버스·지하철·비행기 등 급히 빠져나갈 수 없는 장소에 혼자 있는 걸 두려워해 피하게 된다. 광장공포증이 발생하면 일상생활에 많은 제한이 생기기 때문에 말 못 할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한번 오작동된 비상벨은 수리하지 않으면 다시 그러기 마련이듯 공황반응 역시 예방과 치료가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공황반응이 한 번 나타나면 이후에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고 그 빈도도 잦아지는 경향이 있다. 막연히 스스로 노력하거나 참는다고 해서 쉽게 좋아지는 문제가 아니다. 초반에 약물치료에 대해 몰라 늦게 도움을 받거나 혹은 막연한 편견으로 치료를 거부하면 더 심한 증상이 더 자주 발생할 것이므로 그때그때의 고통이 심한 것은 물론이고, 그 경험이 뇌에 더 깊고 강하게 각인돼 치료 효과 및 경과가 좋지 않다.

    한창 증상이 심하고 힘든 초기엔 약물치료만큼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 좋아진 이후 약의 용량을 줄이긴 하지만 약물치료는 계속 유지한다. 한번 공황발작이 일어나면 이후 얼마 동안은 재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이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일정 기간은 꾸준히 치료받아야 한다.

    공황증상에 대한 ‘조절감’ 익혀야

    하지만 증상 재발이 두렵다고 평생 약을 먹을 순 없다. 또한 비상벨을 고쳤다고 해서 다시 고장 나지 않으리란 법도 없고, 다른 건물에 갔다가 그 건물의 비상벨이 오작동을 할 수도 있다. 따라서 평소 훈련해 대비한다면 응급상황에서도 차분히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응급대비훈련에 해당하는 게 인지행동치료와 이완훈련, 호흡법 등이다. 이런 훈련이 예기불안을 줄이고 증상 발생 빈도를 낮춰 다시 자신감을 갖고 사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인지행동치료는 잘못된 자동사고, 즉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보니 나는 죽을병이 있는 것 같아’ ‘숨이 막히니 나는 숨을 못 쉬고 죽게 될 거야’ 하는 식의 극단적 비약을 바꿔주며, 생각을 바꾼 이후 두려운 장소나 상황에 조금씩 ‘노출’되게끔 하는 것이다.

    흥분된 교감신경을 가라앉히는 데는 한 손을 가슴에, 다른 한 손을 배에 대고 호흡하는 복식호흡법이나 근육에 힘을 줬다 뺐다 하는 걸 반복해 신체 이완을 유도하는 근육이완훈련도 큰 도움이 된다. 이러한 복식호흡이나 이완훈련은 마음을 안정시키는 심리적 효과뿐 아니라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해 과도하게 흥분된 교감신경을 가라앉히고 자율신경계 균형을 잡아주는 직접적 역할을 한다. 이런 훈련을 부지런히 해 몸에 익히면 나중엔 공황증상이 생겨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조절감’이 생기며, 이는 장기적으로 재발에 대한 두려움 없이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길이다.

    공황장애는 ‘현대병’이다. 스트레스가 가장 중요한 발생 원인 중 하나다. 바쁘고 각박한 세상을 살다보면 심리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관리할 여유가 없다. 그러다보면 한계에 다다른 어느 날 갑자기 ‘불청객’이 찾아오는 것이다. 예전엔 억압받고 핍박받던 며느리에게서 많이 발생했을 것 같은 현상이, 이젠 생존을 위해 알게 모르게 사방에서 압력을 받고 살아가는 직장인이나 새로운 모습을 항상 보여줘야 하는 연예인에게서 많이 발병하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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