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설위원 이영표는 월드컵 경기마다 뛰어난 예측력을 발휘하고 때로는 경기의 스코어까지 맞히는 바람에 ‘문어 영표’라는 별명을 얻었다. 오랫동안 해외에서 축구를 해온 경험과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대표팀 생활, 설득력 있는 말솜씨, 경기를 전체적으로 읽어내는 해석 능력은 KBS 월드컵 중계가 SBS의 차범근 해설위원과 MBC의 송종국-안정환 해설위원을 제치고 시청률 1위에 오른 배경이 됐다.
월드컵 경기 해설을 마치고 귀국한 이영표는 무척 바빴다. 박지성의 은퇴식을 겸한 K리그 올스타전에 출전했고, KBS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축구와 관련한 장외 행사를 소화하느라 스케줄이 빡빡했다.
8월 5일 그의 모교인 건국대 인근의 한 커피숍에서 기자와 만난 이영표는 월드컵 이후 방송 프로그램 등을 제외한 오프라인 매체와의 인터뷰는 ‘신동아’가 처음이라고 밝혔다. 인터뷰할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그와 얘기를 나누다보면 기자가 학생이고, 그가 교수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방송 해설은 그의 축구인생 2막의 1장이었다.
이영표와의 인터뷰를 Q&A 형식으로 정리했다.
Q: 은퇴 후 밴쿠버에 남아 유학 생활을 이어갈 것이라고 했을 때는 정해진 수순을 밟는 듯했다. 그런데 브라질 월드컵 중계방송 해설을 맡았다는 소식에는 다소 의외라는 생각이 들더라. 워낙 공부하고 싶어 하는 열정이 강했던 사람이라 밴쿠버에서의 생활을 포기하고 돌아온 게 의아했다.
A : 먼저 밝혀둘 게 있다. 내가 공부를 포기한 건 절대 아니다. KBS 측에서 학업과 방송을 병행하게끔 많은 배려를 해줬다. 앞으로 3년간 밴쿠버에서 생활하며 A매치 경기나 중요한 축구 중계에 해설위원으로 투입될 예정이다. 브라질 월드컵은 그 과정의 ‘예외’ 사항이었다. 내가 해설위원직을 수락한 이유는 하고 싶은 ‘공부’란 범주에 방송 일도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축구선수일 때는 축구만 잘하면 됐지만, 은퇴 후에는 축구를 둘러싼 주변 환경을 잘 알아야 한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고, 학교에서의 공부 외에 해설도 방송을 통해 축구를 배우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봤다. 방송이 어떤 시스템으로 이뤄지고, 축구에서 중계가 왜 중요하며, 거기서 해설위원의 역할이 무엇인지 배우고 싶어 도전한 것이다.
Q: 선수가 아닌 해설위원 자격으로 지켜본 브라질 월드컵은 어떠했나.
A: 선수 시절 월드컵을 세 차례 경험했다. 그런데 그 세 차례의 월드컵보다 이번에 해설위원으로 만난 월드컵이 공부 면에선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걸 얻게끔 만들었다. 선수 시절의 월드컵은 경기에만 집중했다. 그 나라의 문화, 월드컵 분위기, 준비 과정 등은 머릿속에 없었다. 오로지 경기에서의 승부에만 매달렸다. 이번에는 그라운드 밖에서, 그것도 높은 곳의 중계석에서 월드컵을 지켜봤고 흥분했다. 아마 최근 6개월의 현대 축구 흐름을 아는 가장 ‘핫’한 사람 중 한 명이 나일 것이다. 전술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지금이 제일 ‘핫’하다.(웃음)
중학생 눈높이 맞춰 해설
Q: 선수 시절, 중계방송을 통해 해설을 듣는 것과 자신이 직접 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을 것 같은데.
A : 사실 선수 때는 해설위원의 해설보다는 경기 장면에 몰두했기 때문에 해설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분의 해설이 더 좋은지, 안 좋은지 판단조차 없었다. 그러다 덜컥 해설을 맡고 난 다음부턴 화면보다 해설위원의 설명이 귀에 들어오더라. 그런 현상이 재미있었다.
Q: 브라질 월드컵 때 방송 3사 시청률 경쟁이 대단했다. 항간에서는 대표팀 선수보다 해설위원이 더 관심을 받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A : 처음에는 시청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내가 모르는 방송을 배운다는 게 첫 번째였다. 내 능력 밖의 일에 관심 두는 건 다른 일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브라질에 가보니까 내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방송 관계자들이 시청률 경쟁에 신경을 집중하더라. 그걸 알고 나니 심하게 부담이 됐다. 해설하면서 시청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안)정환이 형, (송)종국이, 차범근 감독님과 만나 식사도 하고 축구 얘기도 나누면서 이전과 다름없이 편안하게 지냈다. 방송3사 시청률의 승자가 어느 쪽이든 그것은 한국 축구 발전과 무관하다. 그러면서도 사람이다보니 KBS 시청률이 잘 나오니까 기분은 좋더라. 중계를 위해 고생하는 스태프들을 위해서라도 시청률이 잘 나오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