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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에세이

퀴즈가 각광받는 날을 꿈꾸며

  • 신영일 │아나운서

퀴즈가 각광받는 날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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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방송 분야에서 자신의 족적을 뚜렷이 남겨야 성공한 방송인이라 할 수 있다는 선배의 얘기를 들은 게 벌써 17년 전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나도 꽤 성공한 방송인이라 자부해도 될 것 같다. 적어도 ‘퀴즈’라는 분야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경력을 쌓았으니 말이다. 처음 퀴즈 프로그램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방 근무를 마치고 상경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새내기 아나운서에게 회사는 생방송 퀴즈 프로그램을 맡기는 모험을 감행한다. 뭔가 신선한 얼굴을 찾던 레이더에 운 좋게 내가 포착된 것이다. ‘생방송 퀴즈 크래프트’라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시청자가 인터넷 접속을 통해 퀴즈풀이에 동참할 수 있는 새로운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참여가 폭주하자 서버가 다운되는 바람에 생방송 중에 ‘접속이 지연되어 죄송하다’는 사과 멘트만 여러 차례 반복한 아픈 추억을 안겨주었다. 몇 달 못 가 프로그램은 막을 내렸고 ‘프로는 망가졌지만 MC 하나 발굴했다’는 위로를 받은 게 기분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퀴즈는 4년 6개월을 함께한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5년을 진행한 ‘퀴즈 대한민국’으로 이어졌다.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막을 내린 퀴즈 프로그램도 대여섯 개는 될 것이다. 지금 진행하는 ‘EBS장학퀴즈’도 2008년 3월부터 함께했으니 앞으로 인연이 죽 이어진다면 17년을 진행한 초대 MC 차인태 선배의 기록을 넘어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다소 무리한 상상도 해본다.

퀴즈 프로그램을 오래 하다보니 퀴즈와 관련된 질문도 많이 받는다. 가장 흔한 게 그동안 웬만한 퀴즈 문제는 다 접해봤으니 직접 문제를 푼다면 다 맞히지 않겠느냐는 것인데 죄송하게도 전혀 그렇지 못하다. 그 수많은 문제와 정답을 다 기억하지도 못할뿐더러 솔직히 말해 내가 퀴즈를 잘 풀어 퀴즈 진행자가 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끔 ‘내 진짜 퀴즈 실력을 알면 사람들이 내가 진행하는 퀴즈 프로그램을 안 보겠지’하고 피식 웃음이 나올 때가 있는데 내 퀴즈 도전기도 꽤 역사가 깊은 편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 친구와 팀을 이뤄 당시 인기 있던 KBS의 초등학생 대상 퀴즈 프로그램 ‘퀴즈로 배웁시다’ 예선에 도전했다. 여의도에서 예심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잘 봤으니 곧 방송에 출연하겠지’ 하는 순진한 기대를 했는데 결국 연락은 오지 않았다.



퀴즈를 잘 푸는 비결

퀴즈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방송인은 대체로 다른 퀴즈 프로 섭외에 응하지 않는다. ‘잘해야 본전, 못하면 큰 망신’인 데다 혹시 상금이라도 타면 자기가 갖기도 애매하기 때문이다(많은 경우 좋은 곳에 기부하는 쪽으로 이미지 관리를 한다). 나는 그래도 이런저런 섭외에 많이 응한 편이다. ‘퀴즈 MC’라고 모든 문제를 다 알라는 법도 없고 오히려 탈락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꽤 신선하게(?) 보일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시나 여러 차례 도전했으나 나가서 상금을 탄 기억은 없다. ‘1대 100’ 출연 당시 5단계에서 탈락했고, ‘퀴즈쇼 사총사’에 나가서는 결국 상금 타기 일보 직전에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퀴즈 MC가 그것도 몰라 탈락했느냐는 비난이 없었던 것을 보면 나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치가 그렇게 높지는 않았구나 하는 자기 성찰을 하기도 한다.

퀴즈 MC로서 또 하나 자주 받는 질문이 어떻게 하면 나가서 문제를 잘 풀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사실 상식을 묻는 정통 퀴즈 프로그램에 인기 연예인 섭외가 잘 안 되는 이유는 출연료가 적어서가 아니다. 나와서 잘 맞히면 똑똑한 이미지가 생길 수 있지만 만약 오천만이 다 알 것 같은 문제를 틀리기라도 하면 이미지에 크게 금이 갈 수도 있기 때문인데 이는 일반인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일반인도 방송에 한 번이라도 ‘임팩트’ 있게 나오면 인터넷 스타가 되는 세상이라 TV에 나오는 자신의 모습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원래 상식을 키우는 일에 무관심했거나 학교 다닐 때 공부와 담을 쌓았던 사람이 퀴즈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이는 경우는 없다. 즉 기본이 있어야 퀴즈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장학퀴즈의 경우 요즘은 각 학교에서 두 학생이 대표로 나오는데 대부분 문과와 이과 학생을 짝을 지워 내보낸다. 그래야 어떤 분야가 나오건 둘 중에 한 명은 알지 않겠느냐는 전략인데 실제로 퀴즈를 풀다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를 많이 본다. 잘하는 학생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잘 맞히는 반면 못하는 학생은 자신의 분야에서도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즉 특정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보다는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 ‘제너럴리스트’가 퀴즈에서 스타가 되는 것이다.

학창 시절부터 기본적인 학과 공부를 충실히 했고 고전 등 책읽기에 흥미가 있었고 무엇보다 역사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면 그 사람은 퀴즈를 못하려야 못할 수 없다. 거기에 신문 읽기를 통해 최신 시사까지 머리에 넣고 있다면 금상첨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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