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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 新지방시대 리더

“내 임기 끝날 무렵 1인당 군민소득 5만 달러”

‘상상을 기적으로!’ 윤상기 경남 하동군수

  • 조성식 기자 | mairso2@donga.com 강정훈 | 동아일보 부산본부장 manman@donga.com

“내 임기 끝날 무렵 1인당 군민소득 5만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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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두 배로 늘 것”

▼ 첨단산업과 문화관광의 공존을 강조하며 ‘부자 하동’을 내세웠다. 관광은 그렇다 치고 산업은 어떻게 할 건가.

“금성면 갈사만에 170만 평(561만㎡)의 조선산업단지를 조성한다. 민자유치 사업인데 그간 공사가 지지부진했다. 제대로 된 투자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운이 따르는지 최근 미국 투자자가 나타났다. 그 업체와 8월 중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예정이다. 내일(토요일) 그 사람들과 하동에서 미팅하기로 했다. 주말 이틀간 내가 모시겠다고 했다.(웃음)”

▼ 예상하는 투자금액은?

“2조7000억 원이다. (최근 사직한) 김동연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장이 중간에서 도왔다.”



▼ 잘하면 빅뉴스가 되겠다.

“미국 자본이 들어오니 MOU 체결하면 대통령도 관심을 가질 것 같다. 올해 안에 정식 계약을 맺을 것으로 본다.”

윤 군수는 갈사만 사업이 하동 인구를 획기적으로 늘릴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 약 5만 명인데, 감소 추세라고 한다. 매년 300~350명이 사망하는데 태어나는 사람은 100명 안팎이라 줄 수밖에 없다는 것. 그의 계산대로라면 갈사만 단지가 완공되면 근로자와 그 가족의 유입으로 인구가 두 배 가까이 늘어난다.

“4년 후 내 임기가 끝날 때쯤 1인당 군민소득이 5만 달러가 돼 있을 거다.”

자신감 넘치는 그의 말에 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 하동엔 축제도 많던데, 윤 군수께서 각별히 생각하는 축제가 있다면?

“하동 야생녹차 축제를 10년간 해왔는데, 대외적으로 전파하지 못하고 군내 행사에 그쳤다. 이걸 왜 하동에서 하나. 서울에서 해 널리 알리고 돈도 벌어야지. 그래서 올해 안에 인사동 거리에서 녹차 시음회와 판매 행사를 하려 한다. 어제 모 대기업 오너를 만나 이 문제를 상의했다.”

▼ 참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 같다.

“(웃음) 비행기 표가 아까우니 한번 올라가면 보통 3~4명 만나고 온다. 어제 연세대 최유찬 교수도 만났다. 토지문학회 회장인데, 국회에서 심포지엄을 한다고 해서 군 차원에서 도울 일을 협의했다.”

▼ 하동엔 이병주문학관도 있는데.

“거기도 잘된다. 세미나가 자주 열린다. 어제도 경남 도내 중·고교 교장 200여 명이 거기서 행사를 했다고 들었다.”

▼ 블로그를 보니 8월 4일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가 있더라. 거기에 이런 문구가 있던데, ‘더러 군수의 뜻을 왜곡해 다소 오해하는….’ 이게 무슨 말인가.

“하동군 공무원이 한 600명 된다. 그 중 200명이 진주와 광양에 산다. 취임 다음 날인 7월 2일 직원 정례조회를 하면서 내가 말했다. ‘7월 안에 주거지를 옮겨라. 헌법에 주거이전의 자유가 있다. 하지만 국가와 공무원은 특별권력관계다. 군수와 군청 직원도 특별권력관계이기 때문에 내가 지시할 수 있다. 옮기지 않는 사람은 승진과 보직에서 불이익 주겠다’.”

▼ 말 좀 나오겠다.

“주변에서 ‘저놈아, 한두 달 저러다 말 거다’라는 말이 나왔다기에 내가 그런 얘길 한 거다.”

▼ 많이들 따르나.

“지금 하동 전셋값이 2배로 뛰었다. 그리고 방이 없다, 방이. 하동에 임대아파트가 몇 채 있는데, 그걸 8, 9급 공무원들에게 다 내주라고 지시했다.”

승용차 동승 인터뷰 | ‘인간’ 윤상기의 민낯

“우리 엄마 얘기하면서 울었다”


점심식사 장소까지 차로 15분쯤 걸린다기에 더 얘기를 나누려 동승했다. 정감 어린 시골 풍경이 차창 밖을 스친다. 그는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다.

“지리산과 섬진강과 바다, 이 3개가 일치하는 동네가 없다. 하동의 무한한 관광자원을 잘 접목하면 50년 뒤엔 오지 말라 해도 관광객이 넘쳐날 것이다.”

그는 계곡 주변에 관광용 레일을 깔아 정규 기차 노선에 연결하겠다고 말했다. “자치단체에서 이런 아이디어 가진 사람이 없다”며 껄껄거리는데, 잘난 체하는 걸로 비치지 않는다. 이 정도면 자랑할 만도 하지만.

-할 게 많아 군수 한 번 해선 안 될 것 같다.

“두 번은 해야지.(웃음)”

-3번 하고 도지사 하시라.

“에이, 나이가 60인데.”

-60이면 한창이다.

“(웃음) 욕심내면 안 되지.”

-프로필을 보니,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로마인 이야기’이고, 감명 깊게 본 영화가 ‘나타샤’더라. ‘나타샤’라니?

“(웃음) 한창 감수성 예민할 때 본 영화라….”

-스토리가 기억나나.

“몇 장면만 생각난다. 여주인공 얼굴이 인형 같았다. 그 순진함과 순수성에 반했던 거지.”

그는 어릴 적 꿈이 ‘군청 창고지기보다 높은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왜 하필 창고지기였을까. 어릴 때 그의 집안은 넉넉한 편이었다. 하지만 12세 때 부친이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사기꾼에게 당해 논밭을 날리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1960년대 중반 하동에 큰 홍수가 났다. 미국에서 원조한 밀가루가 집집마다 배정됐는데, 그의 집에는 150포가 배당됐다. 그런데 석 달이 지나도록 밀가루가 안 나왔다. 창고지기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내주질 않았다. 참다 못한 어머니가 1남6녀 굶어죽이겠다 싶어 군수 관사로 찾아가 항의했다. 며칠 뒤 1차분으로 배당량의 절반이 지급됐다. 그런데 반은 못 먹는 밀가루였다. 빗물에 쥐똥까지 섞여 상할 대로 상했던 것. 나중에 알고 보니, 창고지기에게 담뱃값 주거나 술 사준 사람은 진작 다 깨끗한 밀가루를 받아갔다. 어린 그의 눈에는 창고지기가 그렇게 높아 보일 수가 없었다. ‘반드시 저 사람보다는 높은 자리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상한 밀가루 받고 우리 엄마가 대성통곡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읍면동 간담회 맨 마지막 순서가 하동읍이었다. 현 읍사무소 자리가 예전 군청 자리다. 내가 주민들에게 그 얘길 하면서 울었다.”

저승사자

그때 일이 가슴에 사무친 그는 뒷날 도(道) 감사부서에서 근무할 때 창고부터 살피는 게 습관이 됐다.

“요즘은 기초생활수급자에게 돈을 지급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쌀 따위의 현물로 줬다. 시골 관청 창고를 점검하면 늘 재고가 모자랐다. 담당자가 술로 바꿔 먹었던 거다. 나한테 징계 받은 공무원 많다. 별명이 저승사자였다.”

그는 도 감사부서에서만 10년간 근무했다. 시장·군수 목 자르는 게 주 임무였다.

“내 손으로 날린 사람만 대여섯 명이다. 주로 인사 비리였다. 한번은 그중 한 명이 구제돼 도 인사담당 국장으로 복귀했다. 나를 죽이려 했다. 난 그때 6급이었으니. 1년6개월간 온갖 불이익을 받았다. 오죽하면 그만둘 생각까지 했을까.”

윤 군수와 주민들의 오찬 자리에 동석했다. 기자가, 시가 적힌 종이를 꺼내 윤 군수에게 들이밀었다. 도종환의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8월 6일 그가 블로그에 올린 시다. 조금 당황한 듯 그가 약간 떨리는 음성으로 낭송했다.

사람의 숲에서 오랜 날 외로웠던 그대여!

나는 지금 숲에 있습니다.

당신의 상처 난 마음을

골짜기 물로 닦아주고 나뭇잎의 숨결로 말려주는

숲에서 오늘도 그대를 기다립니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내 임기 끝날 무렵 1인당 군민소득 5만 달러”

평사리 들판



신동아 2014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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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기자 | mairso2@donga.com 강정훈 | 동아일보 부산본부장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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