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호

“국가주의적 해결방식 대신 자발적 시민결사에 맡겨야”

신동아-생명안전포럼 공동주최 토론회

  • 패널: 문은숙, 송호근, 이재은, 조광현, 최열 | 사회: 조성식

    입력2015-04-16 17: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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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제 : 치유와 통합, 안전사회를 위한 제언

    ● 일시 : 4월 9일 오후 3시 30분~6시 30분

    ● 장소 : 레이첼카슨 홀(서울 서소문 동양빌딩 A동)

    ● 패널 : 문은숙 국제표준화기구(ISO) 소비자정책위원회 제품안전의장,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이재은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 조광현 세월호 선체처리TF팀 위원·전 범정부사고대책본부 잠수안전단장, 최열 생명안전포럼 공동대표

    ● 사회·정리 : 조성식 신동아 취재팀장 | mairso2@donga.com



    사회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세월호가 남긴 상처와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광화문광장에선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의 항의농성이 계속되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서명이 이어진다. 여야 합의로 탄생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시행령을 둘러싼 충돌로 파행을 겪고 피해자 배·보상 결정에 대해 유족이 강하게 반발하는 가운데 정부는 세월호 인양 방침을 시사했다.

    갈등과 대립, 정치적 논쟁 속에 정작 세월호가 남긴 교훈, 세월호가 남긴 과제를 우리 사회가 잘 수행하는지에 대한 점검은 뒤로 밀려난 느낌이다. 그것은 안전한 대한민국을 건설하려는 우리 사회의 노력이다. 더는 이런 끔찍한 재난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생때같은 우리 아이들이 차가운 물속에서 엄마, 아빠,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어른들의 외면 속에 죽어가는 어이없는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사회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는 정부뿐 아니라 국민 모두 나서야 할 일이다. 국가와 개인의 이중혁신을 요구한다.

    세월호 참사 1주년을 맞아 ‘신동아’와 ‘생명을 살리는 안전사회포럼’(생명안전포럼)이 공동토론회를 마련한 것은 바로 이런 본질적 문제를 짚어보고 미래지향적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세월호 사건 직후 결성한 생명안전포럼은 각계 저명인사, 안전 전문가 100여 명이 참가한 지식인 모임으로 안전사회 캠페인을 벌여왔다. 이번 토론회가 사회적 갈등과 국론 분열을 극복하고 국민 통합의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최열 세월호 참사 이후 환경·안전 전문가가 모여 여러 차례 토론회를 열었다. 정부에 정책을 제안했는데 받아들일 자세가 안 돼 있었다. 그게 가장 절망적이었다. 많은 사람의 우울함과 상처를 해소하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고, 그 노력이 결실을 볼 때 국민통합이 이뤄질 것이다.

    “국가주의적 해결방식 대신 자발적 시민결사에 맡겨야”

    세월호 참사 1주년을 맞아 신동아와 생명안전포럼이 공동주최한 토론회.

    천편일률적인 정부 대책

    송호근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침통하다. 정부가 노력은 하는데, 책임이 뭔지 모른다는 게 문제다.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정부 내에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할지 역할분담이나 조정이 이뤄지지 않았고, 통치자의 의향이 무엇인지를 살피기만 했다. 그리고 정부가 해결의 주도권을 가짐으로써 시민사회의 영역이 좁아졌다. 정부가 말로써 선취한 것이다. 지난 1년간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았고 아픔이 확산돼왔다.

    이재은 우리나라 3대 참사로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꼽는다. 그때마다 정부의 대책이 천편일률적이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민방위본부를 민방위재난통제본부로 확대 개편하고 재난관리법을 제정했다. 대구지하철 화재 사건이 났을 때는 민방위재난통제본부를 소방방재청으로 확대 개편하고,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을 만들었다. 세월호 참사가 나자 소방방재청과 해양경찰청을 합쳐 국민안전처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재난 및 안전관리와 관련된 법령을 재개정 중이다. 정부가 나름대로 노력은 했지만, 획기적인 안전정책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기에 국민이 그나마 품었던 작은 희망마저 사라졌다.

    문은숙 안전불감증을 얘기하면서도 실생활에선 안전을 중시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회복탄력성’이 없는 것 같다. 또 피해자 가족과 정부가 손해배상을 놓고 충돌하는 상황이 빚어지면서 국민이 사건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게 됐다. 국제활동을 하면서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많이 추락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IT 강국? 국민 단결력? 사고가 났을 때 뭘 해냈나. 한국의 긍정적 이미지가 거의 실종될 정도로 타격을 받았다.

    조광현 사고 직후 현장에 가보니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현장지휘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잠수사 사망사고가 난 이후 범정부사고대책본부(본부장 이주영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 요청으로 6개월간 현장에 머물며 수중수색작업의 안전 문제에 대해 조언했다. 11월 수색이 종료된 후 인양 TF팀에 합류했다. 1년간 지켜보면서 세월호 사고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세월호 같은 배가 떠다닌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최근 대통령이 인양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혀 인양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실기(失機)하지 않았나 하는 우려가 든다.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다. 6월까지가 수중작업 하기에 좋다. 7, 8월이 넘어가면 태풍 시즌이 돼 제대로 일할 수 없다. 지난해도 그 시기엔 한 달에 반 정도밖에 물에 들어가지 못했다. 인양에는 업체 선정 등 많은 절차가 필요하다.

    “국가주의적 해결방식 대신 자발적 시민결사에 맡겨야”


    진상 규명=범죄자 처벌?

    사회 유가족은 정부의 배·보상 방침에 반발하면서 즉각적인 인양을 요구했다. 남은 실종자를 찾아야 하고 진상 규명에 꼭 필요한 물증이라는 이유에서다. 일부에서는 사고 원인 규명이나 관계자 처벌은 검찰 수사로 어느 정도 이뤄지지 않았느냐, 과도하게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것은 정치적 논란을 부를 수 있다고 우려한다.

    최열 유가족이나 국민이나 검찰 수사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기에 서명운동을 시작한 거다. 특별법을 만들어 조사해달라고. 서명한 사람이 600만이 넘는다. 그런데 특별법 제정이 늦어지는 바람에 특위(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이 12월엔가 임명됐다. 특위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어 조사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하려 했다. 그런데 다시 특위 활동을 제약하는 시행령을 만들었다. 세월호 사태에 가장 책임이 큰 해수부 (출신) 공무원들이 특위에서 실질적 권한을 갖게 한 것이다. 여론이 악화되자 배·보상 얘기를 꺼냈다. 사태를 해결할 방법은 대통령의 결단밖에 없다. 성역 없이 조사하게 해야 한다.

    송호근 우리가 보기엔 사건의 원인이 굉장히 복합적인데, 정부 쪽에서는 범죄가 어떻게 구성됐는지를 밝히는 것만을 진상 규명이라고 여긴다, 실제로 사고 낸 사람이 누구인지를 찾아내 처벌하면 된 것 아니냐고. 그런데 유가족은 가슴에 응어리진 한을 해갈할 수 있는 종합적인 뭔가를 마련하길 원한다. 핀셋으로 콕 집어내는 범죄자 처벌은 가장 좁은 범위의 진상 규명이다. 이준석 선장 처벌하고 유병언 문제 처리했으니 더는 할 게 없다는 태도다.

    그러나 이는 세월호 사태를 잘못 해석한 거다.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이 고속성장을 해오는 동안 비어 있던 게 무엇인지를 드러낸 역사적 사건이다. 우리 사회에 시민성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줬다. 이준석 선장이 그랬다. 시민으로서의 책임의식이 있었다면 구조선이 왔더라도 배에서 안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준석은 대부분의 사람이 그런 자세를 갖지 않았다는 걸 보여줬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진상 규명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다. 또 하나의 문제는 대통령이 국가개조를 외치면서 이 사건이 갖는 정치사회적 의미를 송두리째 가져가버린 것이다. 해결할 것처럼 말했지만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사회 사실 유가족은 지난해 선체 인양에 반대하지 않았나.

    조광현 이런 사건에선 타이밍이 중요하다. 서해 페리호나 천안함은 수색구조 단계에서 인양 단계로 전환하는 속도가 빨랐다. 그런데 세월호의 경우 침몰 후 6개월여 동안 수색작업이 진행됐다. 실제로는 침몰 직후 한 달간 수색작업의 90% 이상이 이뤄졌다. 그 후엔 10여 명을 찾았을 뿐이다. 한 달이 지나기 전에 국면전환이 이뤄졌어야 했다. 세계적인 인양 컨설턴트나 외국 전문가들도 그런 의견을 내놓았다. 당시 인양하는 데 1년 걸린다고 했다. 유가족은 1년씩 어떻게 기다리느냐고, 모든 걸 쏟아부어 실종자를 수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누구도 막을 상황이 아니었다.

    마지막에 내가 유가족에게 말했다. 앞으로 더 수색해도 찾아낼 가능성이 없다고. 과학적 근거를 대며 설명하자 반박을 못했다. ‘모양 좋게 하자’고 해서, 유가족의 수색 중단 요청을 정부가 받아들이는 형식을 취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화가 잘됐다. 그런데 선체 처리 국면으로 접어들고 이주영 장관 등 유가족과 통하던 사람들이 물러나면서 정부와의 소통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국가주의적 해결방식 대신 자발적 시민결사에 맡겨야”
    두 번 죄짓는 일

    송호근 모든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300여 명이 죽어갔다. 3일 동안 살아 있기를 바랐지만, 3일 동안 정부의 구난·구조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그 원인을 밝히는 게 진상 규명의 시발점이다. 이 기간에 정부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의구심과 불신이 증폭됐다. 구조 시스템을 민영화하면 공적인 책임감이 사라진다. 언딘(세월호 사건 당시 해수부와 독점계약을 맺은 구난구조업체)은 현장에 늦게 도착했을 뿐 아니라 민간 잠수사를 고용해 물속에 들여보냈다. (비정규직인) 이준석 선장의 행위도 그런 범주에 속한다.

    대통령이 ‘국가개조’를 말하면서 문제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정확히 설명만 했어도 국민의 분노가 그토록 폭발하진 않았을 거다. 그런데 이후 유병언을 잡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유병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걸로 비쳤다. 그 와중에 누구를 총리로 앉힐 것이냐는 문제로 시끄러웠다. 그렇게 아까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유병언이 죽었다. 책임전가할 사람이 사라지자 정부는 당황했다. 이게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유가족에게 중요한 것은 배상이 아니다. 그들의 요구는 이런 허망한 사회구조의 실체를 규명하라는 것이다.

    이재은 세월호 사건은 구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인재(人災)라기보다 관재(官災)에 가깝다. 그래서 정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간 정부는 대형사고가 발생하면 피해자에 대한 배상이나 보상으로 해결해왔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는 유가족만이 아니다. 많은 국민이 자신을 피해자로 여기면서 또한 가해자의 책임의식을 갖고 있다. 유가족과 국민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다시는 이 같은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유가족과의 대화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고,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국민과 함께 나아가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문은숙 유가족이 삭발을 하면서까지 정부에 묻는 건 딱 하나다. ‘왜 내 새끼가 구조되지 못했는지 알려달라’는 것. 돈은 그다음 문제다. 피해자인 유가족과 합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손해배상을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책임을 져야 할 정부가 마치 중재자로 나선 모양새다. 어느 사건보다도 배상액과 위로금이 많아 국민 세금을 축내는 것처럼 호도하는 건 두 번 죄를 짓는 일이다.

    조광현 선장이나 2, 3등 항해사가 제때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면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 정부는 재난관리 시스템을 제대로 점검하고 작동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 구조구난의 ABC가 지켜지지 않았다.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해 맨 먼저 할 일은 구조와 생존성 확보다. 선수(船首)가 이틀 동안 가라앉지 않고 수면에 떠 있었다. 현장에 3800t짜리 크레인이 있었다. 이걸로 배를 잡아 생존성을 확보했어야 했다. 그런데 누구도 그런 결단을 내리지 못하더라. 배가 계속 가라앉는데도. 현장을 알고 지휘할 수 있는 전문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거꾸로 가는 안전관리 시스템

    최열 세월호 사건이 사회안전 시스템과 국민의식을 바꿀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고 난 지 며칠 후부터 전문가들을 불러 밤늦도록 토론하고 대책을 모색했다. 앞으로 더 큰 재난이 닥친다면 원전(原電)에서일 거라고 얘기했다. 기자회견도 하고 토론회도 하면서 대책을 제시했는데, 아무런 피드백이 없었다. 그걸 보면서 청와대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좋은 의견을 반영했다면 이렇게 최악의 사태에 이르지 않았을 거다. 유가족이 왜 단식을 하나. 자식이 죽은 사건의 진상을 조사해달라고 요구하는데 안 들어주니 그러는 거다. 그 옆에서 폭식하는 사람들을 정부가 방치하면서 사건의 본질이 실종됐다.

    송호근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국가주의가 여전히 맹위를 떨친다는 걸 실감했다. 정치권도 그렇고 대통령도 그렇다. 대통령은 사회에서 뭔가 큰일이 일어나면 자신이 다 해결해야 한다는 구시대적 책임감을 가졌다. 비장한 표정을 지었지만, 지난 1년간 대통령과 정부는 아무런 해결 능력이 없음을 보여줬다. 국가주의 시대가 끝났음을 정치권에서 깨달아야 한다. 그게 유가족의 눈물이 갖는 사회적 의미다. 내 아들딸 죽음의 공적인 의미를 확인해달라는 요구다. 이런 공적인 의미를 시민사회 전반으로 확산시켜 어떤 행동이 일어나게끔 하는 게 정치의 임무인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국가주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조문하고 장례를 치른다.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해선 모든 국민이 슬픔을 나누는 사회적 제의(祭儀)가 필요했다. 그런데 이념 프레임을 뒤집어씌우니 갈등이 심화했다. 약간의 문제가 있지만, 시민사회 내부에서 스스로 확산되도록 내버려뒀어야 했다. 시민사회도 깨끗한 건 아니다. 관(官)과 유착해 이런 참사가 빚어졌으니 전반적으로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민영화의 무책임성을 어떻게 해결하고, 관료에 대한 감시·견제 시스템을 어떻게 작동시킬지에 대해 토론하고, 거기서 나온 방안을 권력기구에 넘겨줘야 한다. 권력기구는 그걸 넘겨받아 정치적 결단을 하면 된다. 그런데 정부는 사회 발전의 에너지가 될 수 있는 이런 부분을 ‘범죄 프레임’과 ‘보상 프레임’으로 덮으려 한다.

    이재은 행정학자, 위기관리학자로서 고민한 것이, 재난관리 시스템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이 사회가 앞으로 원전이나 독도, 남북한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지였다. 세월호 참사는 곧 표류하는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대한민국호(號)가 표류하는 이유가 뭘까. 현장 컨트롤타워가 없었다고들 하는데, 크게 보면 국가 전체의 재난관리·위기관리 시스템을 이끌어가는 핵심 체계가 빠져 있다. 중앙부처 조직을 개편하는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지금 전국 대도시마다 10층 이상의 빌딩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한 곳만 터져도 대형 참사로 이어진다. 수천 개의 초대형 빌딩을 중앙정부가 다 관리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제는 사회내장형 위기관리시스템(Social Embedded Crisis Management System)으로 가야 한다. 단일 기관, 단일 건물, 단일 시설에서 스스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줘야 한다. 그런데 거꾸로 간다. 중앙에서 30분 내에 출동하겠다는 식이다. 지역 공동체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중앙의 기능을 지시, 통제, 명령, 감독에서 지원, 협조, 조정, 연계로 전환해야 한다.

    “국가주의적 해결방식 대신 자발적 시민결사에 맡겨야”
    “단원고 폐교하자”

    송호근 재난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사고가 발생할 때 시민이 스스로 뭔가 할 수 있는 공공의식이 확산돼야 한다. 이것이 대책의 핵심이다. 그런데 국가는 책임을 전가하는 식으로 해결하려 했다. 지난해 5월 금수원 수색작전은 코미디였다. 보름 뒤에 유병언이 주검으로 나타난 것이 코미디 1막의 끝이었다. 2막은 8월에 단원고 학생들이 안산에서부터 여의도까지 행진한 거다. “정말 우리는 모른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 한을 풀어달라”면서. 세상에 이보다 더 기가 막힌 일이 있을까.

    정부가 제 기능을 못한다는 것은 유가족의 생계를 전혀 돌보지 않는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유가족의 정신질환과 단원고 학생들의 트라우마 치료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민간 자원봉사자들이 자비로 숙식하면서 돕는다. 이런 상황을 국가가 방치한다. 슬픈 일이지만, 나는 단원고를 폐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자리에 기념관이든 재난안전센터든 연구소든 뭔가 의미 있는 시설을 지어야 한다.

    문은숙 정부의 태도를 바꿀 수 있는 건 시민사회밖에 없다. 유가족이 외롭게 주장하는 모양이 된 데 대해 시민사회가 반성해야 한다. 유가족이 제기하는 의문은 매우 구체적이다. 다시 한번 점검할 필요가 있다.

    송호근 한국과 같은 위험사회에서 재난은 약자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이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또한 비정규직의 책임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준석 선장이 비정규직이다. 그에게 배의 안전에 대한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 수 있을까. 그들에 비해 경제적·사회적 혜택을 누리는 정규직은 과연 공적인 책임감이 단단한가.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한국 사회를 책임과 비책임 집단으로 나누는 것, 사회 전반적으로 책임의식이 옅어지는 문제를 수시로 점검하는 게 희망적인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다.

    사회 세월호 사고의 1차적 원인은 선장 및 선원들의 과실과 무책임한 행동이다. 2차 원인은 구조를 포기한 해경과 감독기관인 해수부에 있다. 이 두 가지가 피해를 키웠다. 아마도 구조작업에 좀 더 성의를 보였다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커졌을까 의문이다. 3차 원인은 보다 근본적인 이유로, 물에 띄워선 안 될 선박에 허가를 내준 부패 구조다. 조 위원께서는 사고 이후 정부의 수습 능력을 어떻게 보나.

    조광현 물론 검경에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감사원에서 감사도 했다. 해양심판원에서도 기술적 문제를 조사한 걸로 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 유가족을 비롯해 많은 국민이 문제제기를 한다. 이에 대해선 특별법에 의한 조사위원회에서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으로 본다.

    최열 1년간 많은 분야에서 많은 사람이 이 사건에 대해 기록하고 정리했다. 우리가 며칠 전부터 학생들의 글을 받았는데, 다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얘기를 쓰더라. 그만큼 사회가 성숙했다는 뜻이다. 중학교 1학년생이 이렇게 썼다. ‘나같이 연약한 소녀도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는 안전한 곳에 살고 싶어요.’ 배우 최민수는 지난해 연말 MBC 연기대상 수상을 거부했다. “아직도 차가운 바다 깊숙이 갇혀 있는 양심과 희망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는 게 거부 이유였다. 아무리 시스템을 잘 만들어도 사고는 날 수 있다. 관건은 사고가 났을 때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고 재발을 막는 예방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특위 활동이 중요하다.

    이념 프레임

    송호근 세월호 사건의 본질적 메시지가 흐려진 데는 이념 프레임의 영향이 크다. 진상 규명 요구를 정부에 대한 전복 음모, 또는 국가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 것이다. 반북단체나 굉장히 보수적인 단체가 등장해 폭식시위를 했다. 뭔가를 새로 시작하려면, 이런 이념 프레임에 맞설 보편적 프레임을 만들어내야 한다. 지난 1년 동안 드러난 직무유기가 뭔지, 미래 발전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지에 대해.

    문은숙 위안부 문제가 오늘날처럼 공론화한 것만 해도 수요집회를 수천 번 하면서 외롭게 끈질기게 일본 정부와 싸운 할머니들 덕분이다. 세월호 문제도 마찬가지다. 유가족이 외롭게 힘들게 싸우는데도 진상 규명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리 역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의문사로 남을 수도 있다. 송 교수 말씀처럼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

    이재은 진정한 어른, 유능한 리더가 없는 것도 갈등이 계속되는 이유 중 하나다.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는 보수와 진보를 아우를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한데, 지금 우리 사회엔 없다. 안전 문제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니 그 안에 대한민국이 있더라. 세월호를 계기로 대한민국이 건강한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 그런데 나라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건강하지 못하다. 이 문제도 짚어봐야 한다.

    조광현 안전사회 건설은 정부만으로는 안 된다. 국민 의식구조가 혁명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선진국과 달리 우리 국민은 안전교육의 필요성이나 중요성을 거의 못 느낀다. 교통질서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빼먹을까, 쉽게 넘어갈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기본과 원칙을 중시하는 교육을 유아기부터 해야 한다.

    문은숙 안전사고는 집단적으로 나타나고 미래에도 계속 발생할 것이다. 유능한 정부란 이것을 빨리 감지하고 대응하는 능력을 가진 정부다. 그런 점에서 국민안전처의 기능에 대해 회의적이다. 재난에 신속하게 대응하기엔 너무 비대한 관료 조직이다.

    이재은 10여 년 전 독일에 갔을 때 목격한 일이다. 야외 어린이 놀이터 기구마다 플라스틱으로 틈새를 막아놓았다. 아이들 손가락이 쇠사슬에 끼여 다칠까봐 그런 것이다. 시소를 타다가 넘어져도 안 다치게 바닥에 쿠션을 깔아놓았다. 싱가포르에선 유치원 통학버스에 교사 외에 안전요원이 동승한다. 이는 외국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이 아니다. 그만큼 안전 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해결방안을 찾아낸 것이다. 작은 안전 문제 하나하나를 깊이 성찰할 때 안전선진국이 될 수 있다.

    최열 새해 첫날 김훈 작가가 일간지에 기고한 글 중 이런 게 기억난다. ‘세월호를 내버리고 가면 우리도 똑같은 자리에서 빠져죽는다.’ 그게 가장 정확한 말이라고 본다. 우리는, 자신은 그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내일이라도 그런 일이 우리에게 닥칠 수 있다. 예전에는 시민사회에서 좋은 의견을 제시하면 바로 반응이 왔는데, 이 정부에선 그런 게 없다. 시민사회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국가주의적 해결방식 대신 자발적 시민결사에 맡겨야”
    시민의 자발적 결사체

    송호근 세월호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에 미시적 기반이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몇 년 전 서울에 산사태가 났을 때다. 아파트에 흙이 들어찼는데 자기 집 흙을 치우는 주민을 못 봤다. 결국 군인들이 와서 치웠다. 사회의 미시적 기초가 없어서다. 다른 말로 하면 ‘자발적 결사체’가 없다는 뜻이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원전 폐기를 선언할 때 별 반대가 없었다. 여론이 이미 그쪽으로 형성됐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와 국민 개개인이 꾸준히 토론하고 문제 제기를 한 결과다. 가령 우리의 고리 원전 문제는 어떤가. 국민여론이라 할 만한 게 없다. 몇몇 단체만 주장하고 정부는 눈치만 본다. 안전한 사회로 가려면 시민의 자발적 결사체가 필요하다. 민주주의의 미시적 기초를 만들어내는 것이 세월호 사태가 남긴 가장 큰 교훈이다.

    문은숙 세월호도 그렇지만, 안전사고 이면엔 늘 기업과 정부 권력이 결탁한 비리가 있다. 그래서 국민은 이중삼중 피해자가 된다. 시민의식 못지않게 이런 사회구조를 바꾸는 게 중요하다. 또 어릴 때부터 안전과 생명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몸으로 배우는 교육이 필요하다. 사람에 대한 생각과 태도, 시스템을 전환하려는 장기적 노력이 병행되지 않으면 안전사회 구축은 구호에 그칠 것이다.

    이재은 헌법을 고쳐 안전을 기본권으로 규정해야 한다. 정부가 베푸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로 인식돼야 한다. 재작년에 ‘위기관리학’이라는 책을 냈다. 거기서 첫 번째로 언급한 대목이, 위기관리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런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세월호 사건이 보여줬다. 위기관리가 제대로 되려면 정부와 시민사회, 기업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사회 국민 대다수가 유가족의 슬픔과 고통에 공감하고 한을 풀어주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언제까지 이 문제에 매달릴 수는 없다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유가족의 상처를 치유하면서 사회적 갈등과 국론 분열을 극복하고 국민 통합의 길로 나아가는 방안에 대해 얘기해보자. 덧붙여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말씀도 부탁드린다.

    최열 가장 당면한 과제는 특별조사위원회가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다. 국민안전처에서 국민과 대화를 한다는데 그런 정도로는 안 된다. 여야 정치인, 서울시장, 경기도지사 등이 모여 토론도 하고 역할분담도 해야 한다. 국민의 생각을 모으기에 앞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안전체험관을 만들어 학생들이 많이 찾게 해야 한다.

    “국가주의적 해결방식 대신 자발적 시민결사에 맡겨야”


    서로 격려하는 긍정적 자세

    송호근 도시가스회사 사장한데 들었는데, 우리가 불바다에 산다고 하더라. 언제 가스가 샐지 모르고 파이프가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 위험성이 지하철, 항공, 철도, 건물 등 도처에 널려 있다. 독일 시스템을 들여다보면, 1956년 제정된 시민교육법에 따라 모든 시민은 하나의 단체에 가입해 사회문제를 논의한다. 그런 것이 아마도 원전 폐기 때 국론이 통합되는 기반이 됐을 거다. 시민교육법의 궁극적 목적은 시민성을 길러내는 것이다. 재난 위험이 널린 상황에서 해결책은 시민이 스스로 의식을 갖추고 대비해나가는 것이다. 우리도 시민교육법을 제정해 적어도 두 달에 한 번은 모여 공적인 문제를 토론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발적 결사체가 만들어진다. 공적인 쟁점을 자기 문제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이 시민사회의 가장 중요한 숙제다.

    나는 ‘국민 통합’이라는 말에 담긴 획일성 때문에 그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갈등이 있지만 국가 발전을 위해 양보하고 자제하자는 게 정부에서 말하는 국민 통합 아닌가. 내 생각은 다르다. 정말 시끄러울 정도로 논의하고 문제점을 드러내야 국민 통합의 길이 열린다. 문제점을 정치권과 정책 주체들이 수렴해 해결해가는 성의를 보일 때 비로소 통합이 이뤄질 것이다.

    이재은 일단 이 사건으로 피해 입고 상처 받은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다 들어줘야 한다고 본다. 아울러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전면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조광현 무엇보다도 우리가 가진 가용자원을 충분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지역별 네트워크를 형성해놓으면 어디서 사고가 나든 신속히 구조에 나설 수 있다. 예를 들어 낚싯배는 수중탐색장비도 갖췄고 속력도 빠르다. 낚싯배만 잘 엮어놓아도 상황 발생 시 골든타임인 한 시간 내에 얼마든지 구조가 가능하다. 또한 잘 훈련된 군 인력과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

    문은숙 제품이나 시설을 안전하게 만들지 않았을 경우 그 책임을 엄격히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것이 안전사회로 가는 길을 앞당길 것이라 본다. 지금 너무 침울하다. 국민은 책임질 줄 모르고 정부는 무능하고 기업은 비리가 많다. 그런데 이럴수록 위기를 잘 극복한 사례에서 배우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사회 곳곳에 숨은 좋은 정신과 태도를 이끌어내 서로 격려하는 긍정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최열 한국인의 특성 중 하나가 비슷한 부류끼리만 어울리는 것이다. 그게 가장 안 좋은 면이다.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시스템을 갖춘 게 시민사회라고 본다. 그것을 활성화하는 것이 안전사회를 구축하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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