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살이라고? 우리 팀에 내일은 없다
- ‘오더’ 짤 때 죽을 맛…꿈에 김응용 나타나
- 물개 박수? 나도 나이 먹었나봐…
- 칭찬도 비난도 시즌 끝난 후 하라
2015 KBO리그 개막전부터 가장 관심을 모은 팀은 한화 이글스다. 승부사 김성근(73)이 신임 감독으로 선임된 이후 한화는 지난가을 마무리 훈련 때부터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러한 관심은 일본 스프링캠프까지 이어졌다. 연일 쏟아지는 한화 훈련 기사로 일부 야구팬들은 ‘한화가 네이버를 사들인 건가? 야구 기사가 온통 한화 얘기뿐’이라며 불만스러워했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한화 기사를 써야 클릭수가 올라간다’는 얘기가 오갔을 정도. 이 모든 중심에 김성근 감독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시즌 개막과 함께 전력이 드러난 한화는 ‘김성근 효과’를 보고 있을까. 개막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단정 지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날마다 한국시리즈를 방불케 하는 접전을 치르며 경기가 가장 늦게 끝나는 한화로서는 ‘김성근 효과’를 충분히, 제대로 만끽하는 셈이다.
‘날마다 한국시리즈’
한화는 4월 13일 현재 10개 구단 중 8위다. 5승 7패. 1위 삼성(9승 4패)에 3.5게임 뒤져 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오랫동안 지적받아온 수비 불안이 해소되고 불펜이 탄탄해지면서 ‘져도 쉽게 안 지는 팀’으로 탈바꿈했다.
김성근 감독은 지난해까지 통산 1234승에 한국시리즈 3회 우승을 거둔 명장이다. 프로야구는 물론 국내 4대 프로스포츠 중 최고령 감독. 야구팬들은 이런 그를 ‘야신(野神)’이라고 부른다. 하위권에 맴돌던 팀이 그의 손만 닿으면 환골탈태했다. ‘야신’에 대한 ‘맹신’이 극에 달했다는 비판론도 제기됐다.
이런 상황을 김 감독이 모를 리 없다. 자신을 ‘도마’에 올려놓고 ‘얼마나 잘하나 두고 보자’는 시선으로 한화의 하루하루 성적에 따라 그의 능력을 평가하는 분위기에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토로한다. 그래서일까. 김 감독은 더그아웃에서 감정표현을 하고 있었다. 이전엔 좀처럼 볼 수 없던 광경이다.
김성근의 ‘물개 박수’
# 1 4월 10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전. 9회초까지 3-8로 끌려가던 한화가 기어이 동점을 만들고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마운드의 권혁은 9회말부터 역투, 롯데 타선을 막아냈고 11회초 2사에 터진 김태균의 솔로포로 승리는 한화 쪽으로 기우는 듯했다. 연장 11회말. 더그아웃의 김성근 감독도 바싹 말라가는 목을 축이며 마운드를 지키는 권혁의 공 하나하나에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김성근 감독은 11회말 2사 1루에서 송은범을 마무리로 올리며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아뿔싸. 송은범의 148㎞ 초구를 장성우가 투런포로 연결하며 이날 경기는 롯데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일어나서 경기를 지켜보던 김 감독은 털썩 자리에 주저앉더니 그라운드를 응시하며 연신 물을 들이켰다.
# 2 4월 9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벌어진 LG 트윈스와의 홈 경기. 한화는 이날 선발 유창식이 먼저 3점을 내주며 끌려갔지만 ‘이적생’ 이성열의 그림 같은 투런홈런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9회 윤규진의 폭투로 4-4 동점을 허용한 한화는 9회말 강경학의 볼넷 출루 이후 주현상이 희생번트를 시도했다. 이 사이 주자 강경학은 3루 베이스가 빈 것을 보고 3루까지 내달렸고 당황한 LG 양석환이 3루에 송구한 공이 뒤로 빠지는 바람에 강경학이 홈을 밟았다. 이 장면에서 김성근 감독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며 기쁨을 표현했다. 인터넷에서는 이를 ‘김성근의 물개 박수’라 일컬었다.
# 3 4월 7일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맞붙은 LG 트윈스와의 시즌 1차전. 3-3으로 맞선 두 팀은 연장 11회말 1사 만루에서 한화의 나이저 모건이 끝내기 안타를 때리며 4-3 역전승을 거뒀다. 보통 무표정으로 속내를 드러내지 않던 김성근 감독이지만 이날은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듯 계속 물을 들이켰고, 타구에 환호하려다 파울이 되자 실망하는 것은 물론 펜을 내던지며 속상함을 표현했다. 한화는 결국 승리를 거머쥐었다.
‘냉혹한 승부사’ 김성근 감독의 급격한 표정 변화는 야구팬은 물론 기자들한테도 생소한 광경이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사석에서 “나도 나이를 먹었나보다. 내가 그런 행동을 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하루살이 마운드’ 어이할꼬
한화가 매 경기를 ‘한국시리즈’처럼 치르면서 야구팬들은 가장 늦게 끝나는 한화의 물고 물리는 접전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4월 13일 현재 12경기를 치르며 5승7패를 거둔 한화의 ‘하루살이’ 마운드 운용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이도 많다. 선발투수 미치 탈보트의 4일 휴식 후 등판(탈보트는 팔꿈치 수술을 받고 재활을 거친 선수다)과 유창식의 3일 휴식 후 등판(4월 5일 마산 NC전에 선발로 5⅔이닝 78구를 던지고 그로부터 3일을 쉰 9일, 대전 LG전에 선발 등판해 3⅔이닝 67구를 던졌다)이 대표적이다. 한화 불펜의 절대 핵심 투수인 권혁은 개막 후 10경기 중 8경기에 등판, 10이닝 동안 총 167구를 던졌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투수들의 피로 누적에 따른 과부하를 걱정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은 “지금 이 팀에서는 내일을 볼 수가 없다. 팀 사정을 생각하면 하루살이 마운드 운용을 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개막 전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온전한 선수 구성을 하지 못한 팀 사정상 시즌 초반 승수를 쌓으려면 마운드를 풀 가동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올해부터 144경기를 치러야 하는 상황에서 초반부터 강도 높은 마운드 운용은 시즌 막판 한화에 큰 재앙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게 일부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김성근 감독은 LG, SK 시절부터 끊임없는 화제를 몰고 다녔다. 성적이 좋으면 좋은 대로, 안 좋으면 안 좋은 대로 뉴스메이커가 됐다. 그를 향한 야구계의 극과 극 시선이 존재하는 만큼 3년 만에 돌아온 프로야구 판에서 어떻게든 제대로 성적을 내야 하는 숙제를 떠안고 있다.
넥센과 시즌 개막 2연전을 치르고 대전으로 내려가 한화의 첫 홈 경기를 준비하는 김성근 감독을 만난 적이 있다. 김 감독을 만나려면 인터뷰 약속을 잡고도 감독실 앞에서 ‘대기’해야 한다. 김 감독을 만나려는 코칭스태프와 구단 관계자들이 줄을 서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보다는 선수단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기자는 오랜 시간 밖에서 서성이다가 감독실이 정리된 것을 확인한 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김성근 감독 취임식 때 이후로 처음 방문한 감독실은 이전에 비해 많이 바뀌어 있었다. 김 감독의 사진을 엄청난 크기로 확대해 걸개그림처럼 벽에 걸었으며 한층 산뜻하고 아늑해진 느낌으로 감독실을 꾸몄다. 기자가 “와, 정말 예쁘게 꾸몄네요. 이전 감독 방이랑 너무 차이 나는 거 아니에요?”라며 옆에 있는 홍보팀장을 쳐다보자 김 감독은 “어 그래? 많이 다르나? 허허…” 하며 자리를 권했다.
3월 29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승리한 후 김성근 감독이 선수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그는 3년 만에 경험한 시즌 개막전과 관련해 많은 얘기를 털어놨다. 넥센과의 2차전은 1승1패로 끝났지만, 두 경기 모두 다른 팀 경기보다 늦게 끝났고, 연장전까지 이어지면서 올해 개막전의 명승부로 꼽혔다.
“만약 2차전마저 졌으면 팀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았을 거야. 2차전은 어떻게 해서든 이겨야 했어. 그래서 선수들을 많이 뛰게 했지. 한화도 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렇게 해서 다소 침체된 분위기를 바꿀 필요가 있었거든. 그런 상황에서 나온 첫 승이라 솔직히 나도 기뻤고, 선수들도 경기를 하며 가능성을 느꼈을 거야. ‘우리도 이런 야구를 할 수 있구나’ 싶은 가능성을. 그게 가장 큰 소득이 아니었나 싶어.”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화는 팀 도루가 70개로 9개 구단 중 8위였다. ‘뛰는 야구’ ‘기동력 야구’는 한화와 거리가 멀었다. 개막 2연전을 통해 드러난 한화의 변화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뛰는 야구’다. 발이 느리기로 유명한 김태균까지 뛰었다.
평소 자신의 실수를 잘 인정하지 않는 김성근 감독은 개막전 12회 연장에서 서건창의 결승 홈런으로 아쉽게 패한 데 대해 “선수들은 잘했어. 감독의 판단에 문제가 있었던 거지”라며 투수 교체 타이밍과 관련해 솔직하게 고백했다.
“아직은 선수들의 성향이나 특징에 대해 완벽하게 파악한 상태가 아니다 보니 투수 교체 타이밍이 느렸어. 감독은 경기를 지켜보면서 어떤 선수를 믿어야 하는지 판단해야 해. 지금 마운드에 있는 선수를 믿어야 하는지, 아니면 뒤에 올라오는 선수를 믿어야 하는지 결정해야 하거든. 1차전은 마운드에 있는 투수를 믿었다가 패했고, 2차전은 다음에 올라올 투수를 믿고 가다가 이긴 케이스지. 어떠한 것에도 정답은 없어. 믿었던 선수가 배신할 수도, 믿지 않았던 선수가 의외의 선물을 안겨주기도 하니까. 그런데 답답하긴 해. 부상 선수들이 늘어나면서 내가 구상한 라인업이 뒤엉켜버려서 매일 아침 ‘오더’ 짜는 게 죽을 맛이야.”
“김성근 나오면 안 나가”
김성근 감독은 개막 2연전을 치르며 2년 전 한화가 롯데를 시즌 첫 2연전에서 만나 두 게임 모두 5-6으로 패한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고 한다.
“1차전에서 5-4로 리드하다가 끝내기 홈런으로 역전패를 당했잖아. 2차전까지 잡히면 선수들은 2년 전의 악몽이 떠올랐을 거라고. 신경 쓰였어. 선수들에게 다시 그런 기록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나보다 선수들이 그걸 더 싫어한 것 같아. 2차전은 멋지게 이겼으니까. 아무래도 올 시즌에는 이런(물고 물리는 접전) 시합을 많이 치를 것만 같아. 한화 선수들이 이전처럼 맥없이 지는 경기는 안 할 것 같거든. 그러면 상대팀들이 부대끼겠지. 우리를 만나면 부담스러울 거고. 그것도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낼 거야.”
그러면서 김성근 감독은 전임이던 김응용 감독이 며칠 동안 계속 꿈에 보였다고 털어놓았다.
“평생 김응용 감독 꿈을 꾼 적이 없는데 요 며칠 계속 꿈에 나타나는 거야. 내가 많이 걱정됐었나?(웃음) 한화를 맡고 나서 김 감독 생각을 많이 했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었지. 아마 그 사람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김성근이 얼마나 힘들까 하는.”
한국 야구사의 ‘거장’들이지만 두 감독은 그리 살가운 사이가 아니다. 몇 년 전 기자가 김인식 감독과 함께 두 감독을 한자리에 불러놓고 대담을 진행하려다 서로 ‘그 감독 나오면 절대 안 나간다’라고 하는 바람에 무산된 적이 있다. 그처럼 평소 가깝게 지내지 않던 김응용 감독을 꿈에서 봤다는 김성근 감독의 얘기가 신기했다.
김성근 감독은 10개 팀 감독 중 가장 극단적으로 찬반 양론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지옥훈련’으로 불리는 스프링캠프 동안 김 감독의 훈련 방법을 지지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인터넷 공간에서 설전을 벌일 정도다. 선수들도 헷갈릴 지경이다. 일본 고치 전지훈련에서 만난 한화 선수들은 ‘이렇게 죽을 둥 살 둥 훈련한다고 과연 우리 팀이 정말로 달라질 수 있을까’란 의문을 갖고 있었다. 김 감독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고민이 많았어. 사람들이 ‘김성근’이란 이름에 어떤 기대를 하는지 잘 알아. 연일 ‘지옥훈련’이란 제목 아래 한화 캠프에 대한 기사가 나오면서 반발세력이 생기는 것도 느꼈고. 김성근이 한화를 아마추어로 만들고 있다느니, 프로답지 못한 훈련 방식이니 하며 비난하는 소리도 들리지. 그들에게, 한화란 팀이 나를 왜 데려왔는지 묻고 싶어. 욕먹는 게 두려워서, 비난받는 게 싫어서 내가 지켜온 가치와 신념을 바꿔야 한다면 내가 여기 있을 필요가 없지. 감독들이 다 똑같은 방법으로 야구를 하면 얼마나 재미없겠어. 난 나대로, 다른 감독들은 그들 방식대로 해가면 돼. 그리고 이겨야 하는 것이고. SK 때도 이런 얘길 했지. 이기지 못하는데, 우승도 못하는데 재미있는 야구가 가능하냐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알아서 생각해줘.”
보이지 않는 힘, 恨
김성근 감독은 누구보다 자신에게 쏠리는 극단적 시선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간혹 이렇게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야구계에선 올 시즌 한화가 좋은 성적을 내면 큰일이라고 한다면서? 그렇게 되면 다른 팀들도 강도 높은 훈련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던데…(기자도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한테 형식은 중요하지 않아. 선수들이 훈련을 하면서 마음속에 무엇을 담아가는지가 중요하지. 다른 건 몰라도 한화 선수들의 의식이 지난 시즌에 비해 변화가 있는 건 분명해. 문제는 아직 몸이 따라주지 않는 건데, 이것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고 봐. 시즌은 길잖아. 좀 차분하게 지켜봐주면 안 될까? 뭐가 그리 조급한지 참.”
시즌 개막 전 프로야구 미디어데이 때의 일이다. 10개 구단 감독이 돌아가면서 올 시즌에 대한 각오를 발표했다. 지난 시즌 우승팀 삼성 라이온즈의 류중일 감독이 제일 먼저 마이크를 잡았고, 김성근 감독은 지난 시즌 꼴찌팀 감독이었지만, 신생팀 kt 위즈 덕분에 끝에서 두 번째로 말할 기회를 잡았다. 김 감독의 얘기 중 인상적인 대목이 “내년 시즌에는 (미디어데이 때) 끝에서 두 번째가 아니라 앞에서 두 번째로 들어오겠다”는 것이었다. 김 감독의 얘기를 듣던 다른 팀 감독들은 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나중에 김 감독을 만났을 때 그 얘기를 한 까닭을 물었다.
“선수들에게 이런 얘기를 자주 해. 야구에는 ‘보이는 힘’과 ‘보이지 않는 힘’이 있는데 보이는 힘(전력)으로 봤을 땐 우리가 삼성, 두산, LG한테 뒤지지만 보이지 않는 힘에서는 그들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힘이 뭔지 알아? 바로 선수들의 ‘한(恨)’이야. 한화 선수들은 한이 맺혀 있어. 이걸 잃지 않고 승부를 내면 난 승산이 있다고 봐. 그래서 미디어데이 때 다음 시즌 때는 앞에서 두 번째로 들어오겠다고 말한 거야. 그게 그냥 ‘뻥’이 아니었다고, 허허.”
그가 한화 부임 후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이 마운드다. 지난 시즌 한화의 팀 평균 자책점은 6.35. 프로야구 역대 최악의 기록이다. 김 감독은 한화 마운드 재건을 위해 일본에서 니시모토 다카시 코치를 영입했다. 그는 5명의 한화 일본인 코치 중 경력이 가장 화려하다.
니시모토 코치는 1975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드래프트 번외로 입단해 1977년 1군 주전투수가 됐고, 1980~1985년 6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 1981년 18승을 올려 팀의 센트럴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같은 해 일본시리즈 2차전에서 매 이닝 탈삼진의 진기록을 달성했으며, 두 차례 완투승으로 시리즈 MVP에 뽑혔다. 그는 요미우리, 주니치, 오릭스에서 뛴 18시즌 동안 504경기에 등판해 165승 128패 17세이브, 평균자책점 3.20, 1239탈삼진을 기록했다. 은퇴 후 한신 타이거즈, 지바 롯데 마린스, 오릭스 버팔로스 등에서 1군 투수코치를 맡았고, 2014년에는 오릭스 2군 육성 총괄을 담당했다. 2010년 지바 롯데 김태균, 2013년 오릭스 이대호 등 한국인 선수들과도 인연을 맺었다. 김태균과는 2010년 지바 롯데 일본시리즈 우승의 소중한 추억을 공유한다.
니시모토 코치 모신 까닭
니시모토 코치는 김성근 감독과 별다른 인연이 없다. 한화 코치로 부임하기 전까지 김 감독을 만난 적도 없다. 그런 그가 잘나가던 일본 코치 생활을 뒤로하고 낯선 땅에 발을 디딘 이유는 김 감독 때문이다. 그는 “김 감독의 명성은 일본에서도 매우 높다. 일본 지도자들은 그의 남다른 지도법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일본 야구인을 통해 코치직 제안을 받았을 때 망설임 없이 결정한 것도 김 감독의 지도법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 전지훈련 동안 김 감독과 동고동락하면서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김 감독은 야구 외에는 도통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는 분”이라는.
이런 얘기를 전해 들은 김성근 감독은 니시모토 코치에게 고마움을 나타냈다.
“니시모토는 일본 야구의 톱스타였어. 레전드(전설)나 다름없는 분이지. 개인적인 인연은 없지만 꼭 함께 야구를 하고 싶어서 일본의 지인에게 다리를 놓아달라고 부탁했는데, 니시모토 코치가 흔쾌히 내 손을 잡아주시는 바람에 마운드 재건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게 됐어. 그렇게 훌륭한 코치를 모신 건 내게 큰 힘이 되지. 톱 레벨의 투수였고, 코치로도 성공한 분이지만 겸손과 예의를 보여주는 점이 굉장히 인상적인 사람이더라고. 밖에서는 내가 일본 코치들을 쓴다고 뭐라고들 하는데, 그건 실상을 몰라서 하는 얘기야. 야구 잘 가르치면 되는 거지 일본, 한국을 나눌 필요가 뭐가 있어.”
고치 전지훈련 때 김성근 감독에게 궁금한 점을 말해달라고 선수들에게 부탁한 적 있다. 선수들의 질문을 받아 대신 인터뷰하는 형식이었다. 선수들은 쉽게 입을 떼지 않았다. 그나마 김 감독과 가장 친하다고 자부(?)하는 정근우와 FA 자격으로 삼성에서 한화로 이적한 배영수가 ‘SK 감독 시절보다 훈련량이 더 많지 않나요?’ ‘감독님은 도대체 잠을 언제 주무세요?’ 등의 질문을 했다. 선수들 대부분이 ‘감히’ 우리가 어떻게 감독님에게 질문을 하느냐며 기자를 피해 다녔다.
그때 주장 김태균의 반응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김태균은 담이 들어 훈련을 빠지고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이라 그에게 문자로 김성근 감독에게 평소 궁금한 내용을 질문해달라고 부탁했다. 다음은 김태균과 기자가 주고받은 문자 내용이다.
“김태균, 잘 해낼 거라 믿어”
기자 : 태균 씨, 감독님 질문이요.
김태균 : 뭘 물어봐야 돼요?
기자 : 평소 궁금했던 부분이오.
김태균 : 어렵네요. 다른 애들은 뭘 물어봤어요?
기자 : 체력관리, 수면시간, 식사는 왜 혼자 하시느냐, 한화 선수들의 눈빛이 처음과 달라졌느냐 등등이에요.
김태균 : 너무 딱딱하네 ㅋㅋ. 그런데 저도 감독님 뵌 지가 얼마 안돼서 언뜻 생각이 안 나요. 기자님이 도와주세요.
기자 : ‘1. 감독님, 제가 3루수를 맡게 되는 건가요?(김태균은 1루수) 2. 감독님, 펑고에 담긴 의미가 뭔가요? 3. 감독님, 제게 주장을 맡기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 중에서 고르는 게 어떨까요?
김태균: ㅋㅋ. 그런 질문은 어린 선수들이 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그래도 그중에서 고르라면 3번이 가장 낫네요.
김태균에게 이렇게 답을 받았고, 김성근 감독에게 그걸 물어봤다. 김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김태균을 주장으로 선정한 이유는 태균이 스스로 변해야 하기 때문이야. 태균이의 성장이, 성적이 팀 성장과 성적이랑 중요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태균이는 올해 무조건 잘해야만 해. 지금까지 김태균은 갖고 있는 것 10개 중 5~6개밖에 보여주지 않았어. 올해는 10개 가까이 내보여야 한다고. 내가 태균이에게 내준 숙제를 기억하고 있을 거야. 홈런 30개, 타점 120개, 타율 3할3푼. 주장이란 자리가 들어오는 것 없이 부담만 많다는 걸 잘 알아. 그래도 다른 사람이 아닌 김태균이라면 잘 해낼 거라고 믿어.”
김성근! 김성근! 김성근!
요즘 한화가 승리할 때마다 경기장에선 선수들 이름보다 ‘김성근’을 연호하는 소리가 더 크다. 김 감독이 경기 후 방송 인터뷰를 하면 한화 팬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김성근!’을 외친다. 한화 홍보팀의 한 관계자는 그때마다 전율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한화 팬들이 어떤 심정으로 김 감독의 이름을 외치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부에선 한화 선수들의 노력과 공이 평가절하되는 게 아니냐는 불편한 시각도 뒤따른다. 이에 대해 김 감독도 답답함을 호소했다.
“나도 이런 관심이 부담스럽고 달갑지 않아. 내가 뭔데 이렇게 관심을 받을까 싶어. 차라리 져서 욕먹는 게 마음 편해. 경기에서 이기면 그 포커스는 선수한테 가야 해. 감독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자리가 아니야. 욕먹는 자리지. 이젠 인터뷰도 부담스러워. 뭘 한 게 있다고 얘기를 하겠어. 나 (인터뷰) 할 시간에 선수들 얘기 좀 더 다뤄줘.”
매체마다 김성근 감독 관련 기사를 하루도 빠짐없이 다룬다. 일거수일투족이 보도된다. 야구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한화 이글스와 김 감독의 야구에 대해 시끌벅적한 토론이 이어진다. 아직은 시즌 초반이라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김 감독은 성적을 낼 수만 있다면 욕을 먹더라도 소신껏 팀을 이끌어나갈 것이다. 그는 이렇게 부탁한다. 자신에 대한 평가나 비난, 칭찬은 ‘지금’이 아닌 시즌이 모두 끝난 뒤 해도 늦지 않다고. 한화의 올 시즌 성적이 정말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