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호

“‘한반도 한류’ 일으켜 통일의 문 열자”

대통령 중동 순방 수행한 박창식 의원

  • 조성식 기자 | mairso2@donga.com

    입력2015-04-23 16: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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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와 산업 연결하는 한류 기획자 필요
    • 중동의 사막은 식지 않았다
    • 한류가 문화영토 확장의 첨병 돼야
    • 남북 아리랑 공동 공연으로 문화통일부터
    “‘한반도 한류’ 일으켜 통일의 문 열자”
    드라마 PD 출신 박창식(56) 새누리당 의원의 행보가 주목을 받는다. 박 의원은 3월 18일 국회에서 ‘중동에서 청년의 새로운 길을 찾다-중동 4개국 순방의 성과와 의미’라는 주제로 간담회를 열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등 정부 관계자와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주한 중동국가(쿠웨이트, UAE, 사우디, 카타르) 대사관 직원, 아랍어 전공 교수와 학생 등 8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간담회는 박근혜 대통령의 중동 4개국 순방의 성과를 설명하는 자리였다. 박 대통령은 3월 초 7박9일 일정으로 역대 최대 규모의 경제사절단(115개 기업 · 단체, 116명)을 이끌고 중동을 방문했다. 당시 박 의원은 특별수행원으로 따라갔다. 간담회 다음날 박 의원은 국회에서 미국 정치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3’ 시사회를 열기도 했다.

    박 의원을 인터뷰한 레스토랑 뜰에는 목련이 조명처럼 환했다. 채 피어나지 않은 벚꽃은 미소를 머금고. 봄기운에 취한 탓일까. 박 의원은 문화와 한류 프로젝트를 주제로 열변을 토했다.

    한국 노래 배우는 중동 여학생들

    ▼ 박근혜 대통령과 남다른 인연이 있는지?



    “없다. 다만 2007년 대통령선거 이후 대중문화 모임에서 한 번 뵌 적이 있다. 내가 드라마제작사협회 부회장 할 때다. 그때 기념사진 찍은 게 있다. 박 대통령 뒤로 국회의원 몇 명이 서 있었는데, 나중에 다 떨어졌더라(웃음).”

    MBC, SBS에서 드라마 제작 PD를 하던 박 의원은 독립한 후 김종학프로덕션 대표이사를 지냈다. 2011년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회장이 됐고, 이듬해 19대 총선 때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2012년 대선 때는 미디어본부장으로 활약했다.

    ▼ 대통령이 드라마에 관심이 많나.

    “한류에 관심이 많다. 싱가포르를 방문했을 때 그곳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말 배우는 걸 보며 감동받은 모양이다. 문화가 먹거리가 되고, 문화강국이 땅 넓은 나라보다, 핵 많이 가진 나라보다 더 강한 나라라는 인식을 갖게 된 듯싶다. 나는 대한민국에 운이 따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안 된다. 이대로 가다간 한류가 고갈된다.”

    ▼ 그러잖아도 요즘 한류가 정체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중동에 간 이유도 그런 데 있다. 중동 인구가 18억이다. 이번에 가서 직접 목격하기도 했지만, 여대생·여고생 수천 명이 모여 한국 노래를 부른다. 한국 드라마를 보고 토론도 한다.”

    ▼ 어디서?

    “궁에서 박물관으로 가는 길이 있다. 대학교 근처 학원 같은 곳이었다. 우연치 않게 봤다. 수첩에 한글이 쓰여 있더라. 한국 가수 이름도 있고. 사진도 같이 보고.”

    ▼ 누가 인기를 끌던가.

    “전광렬, 안재욱, 이민호, 김수현, 엑소(EXO)…. 난 엑소를 모르지만. 한국말로 질문도 하더라.”

    박 대통령 일행의 방문국은 쿠웨이트-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쿠웨이트 순이었다. 아랍에미리트에는 연말 이전에 한국문화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박 의원은 “중동 지역에 우리 문화원이 없다. 문화원이 한국 문화 진출의 교두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명예문화대사

    ▼ 대통령 말동무를 했다는데.

    “공식 일정 수행할 때는 한계가 있었다. 주로 기내나 식사 자리에서 얘기했다. 방송, 한류, 전통문화 등이 주제였다. 중동에서 한류 붐이 일어났는데도 산업과 연결된 게 없다. 중국,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문화와 산업을 연계하는 기획자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고용노동부, 산업자원통상부, 문화체육관광부 등과 협력해 그런 기획을 하려 한다. 대통령이 한번 순방 갔다 오는 걸로 끝나선 안 된다. 사막은 식지 않았다. 엄청난 일자리가 기다린다.”

    ▼ 과거처럼 다시 중동 붐이 일 수 있을까.

    “노력하지 않고 준비하지 않은 사람은 가고 싶어도 못 간다. 1970년대엔 다 갔다. 그때는 힘과 기술만 있으면 됐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쪽 인건비가 더 싸다. 의료나 원전 등 고급 기술을 다루는 사람이 우대받는다.”

    “‘한반도 한류’ 일으켜 통일의 문 열자”

    아랍에미리트 국립박물관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오른쪽 끝이 박창식 의원.

    ▼ 대졸 청년 실업자가 넘쳐난다. 어떻게 연결할 수 있겠나.

    “우리는 중동을 엄청 고생하는 데로 여긴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날씨도 나쁘지 않다. 대통령께서 (순방 후) 중동 창구를 만들 것을 지시했다. 코트라나 현지 한인회, 대사관에서 나온 정보를 종합해 중동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한테 효과적으로 제공하는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는 ‘문화영토 확장’이라는 표현을 썼다.

    “국내 대도시 간 문화산업 경쟁은 끝났다.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해야 한다. 문화영토를 확장해야 한다. 거기에 자원외교를 결합하면 더 좋을 것이다. 내가 농담 삼아 이런 표현을 한다. (PD 시절) ‘모래시계’를 만들었으니, (중동에) 모래시계 바람을 일으키겠다고.”

    그는 방송사 PD 시절 김종학 감독, 송지나 작가와 호흡을 맞춰 ‘여명의 눈동자’(MBC) ‘모래시계’(SBS) 등을 제작했다. 평소 연구를 많이 한 덕분인지 그의 구수한 ‘문화 입담’은 그칠 줄 몰랐다.

    “지명도 높은 사람을 명예문화대사로 임명해야 한다. 가령 박지성을 영국 문화대사, 송혜교를 베트남 대사, 김수현을 중국 대사, 백건우와 윤정희를 프랑스 대사로 임명하면 그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다.”

    “중국 문화시장 선점해야”

    그는 2월 25일 서울 상암동 문화융합창조센터에서 박 대통령과 함께 융·복합공연을 관람했다. 지난해 정부가 매월 마지막 수요일을 문화의 날로 지정한 후, 박 대통령이 공연 현장을 찾은 것은 그날이 7번째다. 글로벌 넌버벌 퍼포먼스팀 옹알스의 공연이 특히 박 의원의 눈길을 끌었다고 한다.

    “진짜 재주꾼들이더라. 콧구멍 바람으로 풍선을 불고, 마술도 하고… 하여간 상상을 초월하는 공연이었다. 대사가 없고 옹알거리기만 하니 해외에서도 통하는 글로벌 공연이다. 대통령은 이처럼 여러 차례 문화 현장을 둘러본 후 일찌감치 제2 한류를 선언했다. 한류기획단을 만들고, 기업인, 스포츠선수, 소설가, 가수, 배우 등을 모아 제2의 한류를 창조하자고. 3월 문화부 장관이 한류기획단 출범 보고를 했다고 들었다. 대통령은 한류가 문화영토 확장의 첨병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것을 산업자원외교로 연결하라고 주문했다. 내 생각과 똑같다.”

    그는 “아시아 할리우드를 한국이 주도해야 한다”고도 했다.

    “할리우드에서 중국에 ‘아시아 할리우드’를 조성하려 한다. 유수의 영화사와 배급사들이 속속 들어간다. 그런데 중국에 우리 드라마와 K팝이 진출해 있지 않나. 그러니 아시아 할리우드는 한국이 주도해야 한다. 앞으로 2~3년 후면 상당수 미국인이 중국에서 스테이크 썰고 고급 영화관을 찾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중국은 엄청난 문화시장이다. 우리가 선점해야 한다.”

    그는 성공한 드라마 PD였다. 김종학프로덕션에서 드라마 40여 편을 제작했는데 히트작이 많다. ‘베토벤 바이러스’ ‘하얀거탑’ ‘이산’ ‘서동요’ ‘추적자’등이 다 그의 손을 거쳤다. 국회의원이 된 후 문화전도사를 자임한 그는 동료 의원들을 이끌고 한 달에 한두 번 ‘맘마미아’(뮤지컬), ‘백조의 호수’(발레) 등의 공연을 보러 다녔다. 많을 때는 30여 명이 함께 공연을 관람했다.

    ▼ 국회에서 ‘하우스 오브 카드 3’ 시사회를 연 것도 그런 맥락인가.

    “우리 문화 상품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려면 이런 정도의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만들어야 한다. 음악과 조명, 영상미가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국회에서 정치드라마 본다는 것을 화제로 삼을 게 아니라 미디어콘텐츠 시장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배우는 자리를 마련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정치 드라마다. 2013년 시즌1이 방영됐다. 주인공(케빈 스페이시 분)이 대통령 당선을 돕는 대가로 장관 자리를 약속받지만, 배신당하자 권모술수 끝에 자신의 입지를 찾는다는 줄거리다. 시즌 3은 대통령이 된 주인공이 국정을 이끌어가는 과정이 담겼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이 즐겨 본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우리도 국제적으로 통하는 이런 드라마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중국 역사를 소재로 한 시즌 드라마를 만들어 중국에 팔 수도 있다. 드라마 업계도 변하지 않으면 망한다.”

    2012년 9월 새누리당 미디어본부장이던 그는 당시 박근혜 대선후보를 경기도 용인의 드라마 ‘이산’ 세트장으로 안내한 적이 있다.

    “후보께서 너무 좋아하더라. 진짜와 똑같은 에밀레종을 보고 감동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영화나 연극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러는 제작 현장을 찾아 관계자들을 격려하면 좋겠다. 역할만 맞는다면 대통령이 드라마에 직접 출연하는 것도 좋다고 본다. 적극 권하고 싶다. 하나의 이미지다. 작은 걸로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거다.”

    “이미지 정치 필요”

    ▼ 이미지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세월호 사건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대통령이 광화문 광장을 찾아 유가족 손 한번 잡아줬다면 감동적이지 않았을까. 그런 이미지 정치를 잘 못하는 것 같다. 주변 참모들도 문제가 있고.

    “사실 대통령이 무슨 죄가 있나. 하지만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본다. 대통령이 가선 안 될 곳이 어디 있나. 안전상 문제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정치적 논란을 떠나 가볼 수 있다고 본다. (대선 때) 전태일재단을 찾은 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자꾸 국민과 만나야 한다.”

    ▼ 세월호 문제도 그런 식으로 접근하면 좋을 텐데.

    “야당 쪽에선 그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 하지만 우리 쪽 지도부가 저쪽 지도부와 조율할 수 있다고 본다. 그렇게 그림을 그려서 대통령께서 모양새 있게 행동하면 좋을 것이다.”

    ▼ 그런 게 이미지 정치 아니겠나.

    “미국 TV에 오바마 대통령이 계단에서 뛰는 모습이 나온다. 대통령에게 젊은이처럼 강하고 열정적인 에너지가 있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거다. 때론 표정 하나가 국민을 감동시킨다. 홍보 파트에서 그런 모습 한 달에 몇 장면만 언론에 나오게 만들면 대통령 이미지가 확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가 꿈꾸는 한류 영토 확장의 정점은 북한이다. 그는 이를 ‘한반도 한류’라고 표현했다.

    “북한에 한반도 한류를 일으키고 싶다. 잘만 하면 통일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한반도 한류를 통해 블라디보스토크, 제주도, 개성,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할 수도 있다. 문화부 장관한테도 얘기했지만, 8·15 때 평양에 가서 북쪽 아리랑과 남한 아리랑을 섞어 공동 공연을 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조용필 공연만으론 안 된다. 아리랑은 눈물샘을 자극하고 가슴으로 통하는 공연이다. 남북이 하나로 얼싸안고 눈물바다를 만들어낸다. 아무런 정치색이 없으니 김정은도 흔쾌히 응할 것이다. 그렇게 그네들을 자극하지 않는 문화를 자꾸 전파해 통일 염원이 스며들게 해야 한다. 리트머스 시험지에 잉크 번지듯.”

    ▼ 공연 참석차 우리 대통령이 평양에 가 김정은과 정상회담 하는 건 어떤가.

    “거기까진 좀… 미국과 중국이 반대할 것 같아서…(웃음).”

    그는 “아리랑 기획을 꼭 성사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정치적 부담이 있다면 민간단체가 나서는 게 좋을 것이다. 기업이 후원하고. 같은 민족끼리 얼싸안는 한반도 한류를 창조하는 거다. 북한에 우리 드라마 세트장을 짓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내가 이미 김진경 평양과학기술대 총장을 통해 북쪽에 그런 제안을 했다. 파주시 장단면 100만 평짜리 땅에 고구려·백제·신라 세트장을 짓겠다고. 이런 식의 한반도 한류가 번져나가면 북한도 문을 열지 않을 수 없고 언젠가는 남북을 가로막는 철조망도 녹을 것이다. 우리가 끌어안고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주인공은 그쪽이 맡게 하고 우리는 매표(賣票)만 하는 거지. 그렇게 그쪽 마음을 살살 녹이다보면 언젠가는 뭔가 물밀 듯이 밀려올 거라 믿는다.”

    박 의원의 한반도 한류 제안은 정치인의 의례적 수사(修辭)와는 달랐다. 아이디어가 독창적이면서 구체적이고, 열정과 의욕이 넘쳤다. ‘드레스덴 선언’이나 ‘통일대박’에도 좋은 뜻이 담겼겠지만, 그의 얘기가 훨씬 가슴에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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