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안함 사건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이었던 조광현 해군 UDT/SEAL 전우회 명예회장은 세월호 사고 현장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 잠수안전단장 및 수색자문위원장으로 6개월간 팽목항에서 잠수사들의 수색작업을 감독하고, 수색 종료 후엔 선체처리(인양) TF팀 위원으로 활동했다. 이 글에서 그는 세월호 사건에 대한 정부 대응의 문제점과 효율적인 해양안전 시스템을 만드는 방안을 제시했다.
세월호 참사는 수십 년간 사회 전반에 걸쳐 쌓인 안전불감증, 부정부패, 직업윤리, 책임의식 부재 등의 총체적 부실이 빚어낸 결과였다. 물 위에 떠다녀서는 안 될 세월호의 전복과 침몰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필연적인 사고였다. 이러한 구조적인 후진성에서 벗어나지 않고는 대한민국은 결코 선진국이나 안전한 나라 대열에 설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고 당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없었다.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어린 학생들을 살리기 위해 선실로 뛰어든 교사, 승객, 승무원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에서 우리 사회 저변이 건강하고 희망이 있다는 위안을 받기도 했다.
먼저 지난 1년간 벌어진 일을 짚어본 후 앞으로 정부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려 한다.
모든 안전관리체제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예방 및 대비 단계와 사고 발생 시 대응과 수습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단계인 예방과 대비 분야를 살펴보자.
세월호 사고는 잘못된 관행에 따른 인재(人災)였음이 검경 조사, 국회 국정감사, 감사원 감사, 해난 심판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해양 · 선박 관련법과 제도(면허, 검사, 점검, 교육훈련, 운항관리 등)는 갖췄다. 문제는 관련기관 · 단체의 관리 · 감독 부실과 선사 · 선박의 규정 불이행이었다.
선체 침몰 막을 수 있었다
해양사고 대응 관련법이 이원화돼 사고 초기 지휘체계의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사고 발생 후 초기 대응은 엉터리였다. 대응 주체인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의 직무유기 및 도피가 피해를 키운 첫째 이유였다. 게다가 수색구조본부의 미숙한 현장 지휘로 선체 침몰 방지 및 지연 조치가 따르지 않았다. 결국 세월호는 전복 이틀 만에 완전 침몰하고 말았다. 선박 조난사고가 나면 제일 먼저 현장에 투입해야 하는 것이 잠수 바지(barge·밑바닥이 편평한 운반선)다. 하지만 3일 이상 투입이 지연된 탓에 실종자 수색 및 구조에 큰 차질을 빚었다.
또한 구조 당국의 민간 잠수사 공모도 미숙해 수백 명의 민간 잠수사가 몰려 혼란을 초래하고 잠수사 간 갈등을 빚기도 했다. 악조건의 심해 잠수 경력이 풍부한 산업잠수사가 필요했다. 그러나 자격제도의 미비로 옥석 구분이 어려웠다. 향후 국제 자격기준제도와 잠수 경력인증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 밖에 다이빙벨, ROV(원격수중탐색장비), 재호흡 스쿠바 투입 실패 등 우여곡절을 겪었고, 민간 잠수사 2명이 작업 중 사망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사고 발생 한 달이 지나면서 과거 서해 페리호와 천안함 사건 때처럼 선체를 인양해 남은 실종자를 수습하자는 이야기가 조심스럽게 나왔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이 “하루도 힘든데 1년을 어찌 기다리느냐”고 거세게 반발하는 바람에 인양의 ‘인’자도 꺼낼 수 없는 분위기가 됐다. 그 후 11월까지 6개월간 실종자 수습이 10여 명(희생자 전체의 3%)에 그친 것은 장기간 경과에 따른 뻘(개흙) 유입, 태풍의 영향 등으로 선내 비철 구조물과 벽체, 바닥, 천장 등이 붕괴돼 선체 내 이동과 수색이 위험하고 힘들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인양 결단은 국민 통합 의지
선체가 바로 서 있는 상태였다면 구석구석 정밀수색이 용이했을 것이다. 하지만 90도로 누워 모든 구조물이 한쪽으로 몰리고 쌓여 있어 잠수사가 일일이 손으로 더듬어서 하는 수색이었다. 이 작업이 얼마나 힘든지는 경험해본 잠수사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세월호 수색 6개월 여간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본부장 이하 모든 부처가 진정성을 가지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재난 및 안전관리법과 수난 구호법에 사고 예방과 대비, 사고 발생 시 수습 및 복구에 대한 정부기관의 책임과 직무가 명시돼 있는 만큼 대형 참사로 이어진 결과에 대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하겠다.
사고 현장 수색구조 작전을 총지휘한 해경은 7개월간 체득한 경험과 교훈을 바탕으로 현장 중심의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고 매뉴얼을 개선 보완해야 한다. 그래서 신속하고 적절한 초기 대응 능력과 구조능력을 갖춘 해양경비안전본부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세월호 인양에 대해선 이렇게 생각한다. 인양 가능성 검토와 정책 결정은 분명히 정부의 몫이다. 하지만 그 판단 근거와 당위성은 국민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4개월간의 현장 정밀조사와 기술검토 결과 인양이 가능하다고 판단됐다면, 진실 규명 차원과 희생자 가족의 염원, 국민 여론 등을 감안해 조속히 인양 국면으로 전환하는 것이 옳다. 이는 정부가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면서 국민 통합 의지를 실천하는 길이다.
물론 인양에는 막대한 예산과 시간이 들고 위험이 따른다. 오랜 갈등에 따른 피로감으로 반대하는 사람도 많으나 나는 인양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국민과 한 약속을 지킨다는 의지와 국민 통합의 가치는 돈보다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양의 당위성은 세 가지다. 첫째, 지난 1년간 제기된 갖가지 유언비어와 음모론을 검증해 국론 분열과 갈등을 확실하게 해소해야 한다. 둘째, 희생자 가족의 염원인 남은 실종자 수습에 필요하다. 셋째는 사고 예방과 대비·대응 및 수습 단계별 문제를 식별하고 교훈을 얻어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는 데 필요하다.
정부는 세월호 인양이라는 결단으로 국민 대통합 의지를 입증해야 한다. 그리고 잘못한 것이 있으면 책임진다는 자세로 임해야 희생자 가족과 국민으로부터 박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부가 가야 할 정도(正道)가 아닌가 싶다. 오늘날 말없이 지켜보는 대다수 국민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냉철하게 판단하고 있으며, 선동이나 거짓에 속지 않는 현명함도 지녔다고 생각한다.
특조위 활동에 대한 우려와 당부
4월 5일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조속한 선체 인양, 정부의 특별법 시행령 폐기, 희생자 배·보상 절차 중단 등을 촉구하며 도보행진을 하는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우려스러운 건 특조위가 정치적 중립성과 활동의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이념이나 정치적 목적이 개입하는 상황이다. 그 경우 소기의 목적인 진상 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은 요원할 것이다.
필자는 재난 및 안전관리법과 특별법을 보면서 한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다. 현대사회에서 재난사고 종류는 수백 가지가 넘는다. 하나의 재난사고를 연구하는 데도 그 특성과 규모에 따라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하다. 이를 감안하면 세월호특조위가 육지와 수상의 모든 자연재해, 사회재난, 특수재난 등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제한된 시간과 인력으로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우려가 들었다(특별법 제5조 위원회 업무 중 제6항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종합대책 수립).
해양안전 분야만 해도 그렇다. 각종 해양·해운 관련 법규, 여러 종류의 선박별 국제안전기준(조선, 선박구조, 안전장비, 운항, 관리, 정비 등), 선원자격 및 교육훈련 제도, 각종 사고 유형에 따른 예방, 대비, 대응, 수습대책, 선박통항관제, 해양오염사고, 각종 해양자연재해 등 광범위하고 다양한 분야의 조사 연구가 필요하다. 세월호가 해양사고인 만큼 문제를 제대로 식별하고 교훈을 도출해 대책을 수립함으로써 안전한 바다를 만드는 데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 특조위에 참여하는 민간 전문가는 해당 분야의 지식과 기술, 풍부한 현장경험 등 3박자를 갖춰야 한다. 그래야 수준 높은 활동을 통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민간 전문가들의 분야별 참여 기준 설정이 필요한 이유다. 아울러 특별법의 목적과 취지가 옳은 것이라면 정부도 특조위도 대승적 차원에서 국민이 바라는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진정성 있는 노력을 다해 주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바라마지 않으며, 파행이 계속되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군을 활용하라
이 기회에 50년 넘게 바다에서 종사해온 사람으로서 국민안전처에 해양안전과 관련해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세월호 참사를 겪고 국민안전처가 신설되자 해양 구조 · 구난에 대한 백가쟁명의 소리가 높다. 물론 국민과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해야겠지만, 당위성과 합리성을 근거로 폭넓은 검토를 거쳐 정책을 결정해야만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본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 해양사고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여러 선진화된 대응 시스템과 구조구난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여기엔 많은 예산과 인력, 장비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이 구조와 구난 개념 및 그 비중을 혼동한다. 구조는 조난당한 생존자를 구해 살려내는 활동이고, 구난은 침몰된 선박이나 항공기 또는 물자(재산)를 인양하는 수습 작업이다.
따라서 그 긴급성과 중요도는 구조가 90% 이상이고 구난은 10% 정도다. 선박·항공기가 침몰하는 경우 구조와 구난 구분이 모호하긴 하다. 어떤 경우에도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은 생존자 수색 · 구조이고, 그다음이 사망자 수습이다. 인양은 마지막 단계다.
필자는 귀중한 생명을 구하는 긴급구조와 초기 대응 능력을 선진화하는 데 추가적인 예산과 인력 소요를 최소화하기 위해 ‘민관군 통합 구조 네트워크’ 구성을 제안한다.
선진국은 잘 훈련된 병력과 우수한 장비를 갖추고 언제나 출동 준비가 돼 있는 군을 적절히 활용한다. 특정 분야에서 민간보다 우위에 있는 군을 평시 재난에 투입하는 것이다. 이를 MOOTW(Military Operation Other Than War · 전쟁 이외의 군사작전)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 군도 긴급재난 시 신속 전개수단(C-130, UH-47, UH-60 항공기 등)을 골든타임 내에 즉각 투입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즉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해상 대테러·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 상황에 대처하는 시스템을 재난 대응에 활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평소 군별, 부대별로 임무를 부여해놓아야 할 것이다.
며칠 전 국민안전처와 국방부가 재난지원 업무협약을 맺었기에 기대하는 바 크다. 물론 해양경비안전본부의 긴급 구조능력과 심해잠수 · 구난 능력도 순차적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제안하고 싶은 것은 해상재난 발생 시 가장 신속하고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수색·구조가 가능하도록 지역별로 통합된 해양구조 시스템을 갖추자는 것이다. 각 지역의 연근해 어선, 낚시어선, 관공선 등을 타는 사람은 그 해역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다. 거기에 지역의 민간 스쿠버 잠수팀이 추가되면 긴급 · 응급구조 능력이 더 확대될 수 있다.
수색 · 구조능력을 갖춘 민간단체의 선박과 장비, 인력을 지역 구조체계에 참여시키는 네트워크 구성이 자율적으로 이뤄지도록 지원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지난해 가을 홍도 유람선 좌초 사고가 발생했을 때 홍도 주민 자율구조대가 신속하고 완벽하게 구조한 사례는 시사하는 바 크다.
모든 분야의 저변에 있는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움직일 때 그 조직은 건강하고 통합된 활동이 가능하다. 민관군의 장점이 결합할 때 시너지 효과가 나올 수 있고 더욱 촘촘한 안전 그물망을 짤 수 있다고 확신한다.
끝으로 세월호 참사가 안전한 바다를 위한 등대가 되고 희생자 가족들이 하루속히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정부와 특조위가 진정성을 갖고 열린 마음으로 소임을 다해주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