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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로 본 중국 | 저장성

날래고도 끈기 있는 ‘사천(四千)정신’ 본고장

浙 - 루쉰과 마윈의 고향

  • 글 · 사진 김용한 | 중국연구가 yonghankim789@gmail.com

날래고도 끈기 있는 ‘사천(四千)정신’ 본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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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유대인’

이처럼 월나라는 거칠고 사나운 야만인이었다. 중원의 도리 따위는 몰라도 당당한, 오랑캐 중의 오랑캐였다. 그러나 전당강이 물길을 바꾸듯 저장성은 야만적인 변방에서 문화의 중심으로 변했다. 수양제의 대운하가 열리자 저장성 경제는 크게 발전한다. 북방의 유목민족에게 중원을 잃은 송나라는 항저우를 수도로 삼아 남송 임안(南宋 臨安) 시대를 열었다.

당시 항저우는 인구 100만의 대도시로 ‘저잣거리에는 온갖 진귀한 보석이 즐비하고 집집마다 화려한 비단이 넘쳐’났다. ‘후저우(湖州)의 곡식이 여물면 천하를 배부르게 할 수 있고, 만 가구에서 베틀의 북 소리가 울리니, 금화(金華)의 옷이 천하를 덮는다’는 말은 저장성의 경제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려준다. ‘장쑤성과 저장성이 없다면 나라가 무너진다’고 할 정도로, 저장성은 줄곧 중국을 지탱해왔다.

저장인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민첩하고 날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강동의 날랜 병사들은 저장성을 삼오(三吳)의 근거지로 만든 힘이었다. 간장·막야 전설과 검의 대명사 용천검(龍泉劍)에서 알 수 있듯 오월은 명검으로 유명했다. 날랜 병사가 날카로운 칼로 승부를 벌이는 단병접전 전술은 오월의 장기였다. 오월 지역을 기반으로 삼은 초패왕 항우, 소패왕 손책 모두 속전속결로 단기간에 눈부신 전과를 올렸다. 저장성 펑화(奉化)현이 배출한 명장 장제스는 천하를 거의 다 얻었다가 호적수에게 뺏긴 점에서도 항우의 후배답다.

저장성 문인 역시 민활하다. 대문호 루쉰(魯迅)과 ‘문림(文林)의 고수’ 위화(余華), 모두 촌철살인의 재치가 번뜩인다. 중국 최고의 명필 왕희지, 양명학을 창시한 왕양명, 혁명가이자 작가인 추진(秋瑾) 역시 저장성이 낳은 인재들이다.



저장인은 상업에서도 빛을 발한다. ‘중국의 유대인’ 저장상방은 민첩하게 움직이고 끈기 있게 노력한다. 민첩한 사람은 끈기가 없고 끈기 있는 사람은 둔하기 마련인데, 두 미덕을 겸비한 저장 상인들은 ‘빠른 물고기 이론(快魚論)’과 ‘사천정신(四千精神)’을 낳았다.

빠른 물고기 이론이란 ‘빠른 자가 살아남는다’는 주장이다. 즉, 크고 강한 물고기가 작고 약한 물고기를 잡아먹지만, 빠른 물고기가 느린 물고기를 잡아먹을 수도 있다. 저장 상인들은 시장 조사·제품 개발·생산·판매·유통 등 사업 전 과정을 빠르고 유연하게 수행한다. 그래서 첫날 정보를 알아내고 바로 다음 날 주문을 내는가 하면, 사흘 안에 샘플을 만들고 일주일 안에 대량생산을 한다.

사천정신(四千精神)이란 온갖 고생을 감당하며 우직하게 일을 추진하는 마음자세를 말한다. 천산만수(千山萬水)를 다 가고, 천언만어(千言萬語)를 다하며, 천방백계(千方百計)를 다 짜고, 천신만고(千辛萬苦)를 다 겪는다.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으면 성공은 다가오기 마련이다.

‘천하와 통하는 항구’

날래고도 끈기 있는 ‘사천(四千)정신’ 본고장

운하마을 시탕(西塘). 영화 ‘미션 임파서블3’ 촬영지로도 유명하다(위). 신장 위구르 자치구 출신인 듯한 여자 상인(왼쪽)이 관광객을 응대하고 있다(아래).

저장성은 민영경제가 가장 발달한 곳이다. 2014년 중국 500대 민영기업 중 51개가 항저우에 있다. 공동 2위인 상하이, 톈진은 각각 15개에 그친다. 저장성은 중국에서 인터넷 쇼핑몰이 가장 많은 곳인데 그중 절반 이상이 항저우가 근거지다. 대표주자는 단연 마윈의 알리바바. 국내총생산(GDP) 대비 특허 출원 건수가 중국 내 2위로서 과학기술 혁신 잠재력이 강한 곳으로도 손꼽힌다.

2012년 억만장자가 많은 도시 순위에서 항저우는 베이징, 상하이, 선전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홍콩 제외). 부유층이 많은 만큼 명품 소비가 많고, 유명한 관광지답게 외지인들의 지출도 크다. 항저우다샤(杭州大厦) 백화점은 2010년 중국 최초로 연매출 50억 위안(약 8800억 원)을 돌파했고, 랑콤은 2012년 항저우 내 단 한 개 매장에서 전 중국 최고 매출인 1700만 위안(30억 원)을 달성했다.

닝보(寧波)는 안으로는 강남, 밖으로는 한국, 일본, 동남아 등 환황해권에 갈 수 있어 일찍이 ‘천하와 통하는 항구’라고 불렸다. ‘온 세계를 두루 다니는 것보다는 영파의 강변을 거니는 것이 낫다’고 할 만큼 해외교역이 발달했다. 지난해 닝보는 부산을 누르고 물동량 기준 세계 5위의 항구로 등극했다. 동해함대가 주둔한 핵심 군항이기도 하다.

지난해 11월 18일에는 저장성 이우(義烏)에서 화물열차가 출발해 12월 9일 스페인 마드리드에 도착한 후, 올해 2월 22일 이우로 귀환했다. 중국과 유럽 사이 1300km를 잇는 ‘이신어우(義新歐)’ 철도가 21세기 실크로드를 연 셈이다. 저장성은 신(新)실크로드 시대를 맞아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영화 ‘쉬즈더원’에서 벼락부자 진분은 중국을 두루 유람한다. 저장성 시시(西溪)의 가이드는 진분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준다. 송 고종은 금나라 군사에게 쫓기던 중 시시의 아름다움에 반해 행궁을 차리고 싶었다. 그러나 피난 가는 처지에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송 고종은 “시시여, 잠시 기다리시게”라는 시를 지어 아쉬움을 애써 달랬다. 이 이야기를 듣자 진분은 말한다.

“송 고종 늙은이야 돈이 없어 그딴 말밖에 할 수 없지만, 나는 가진 게 돈뿐이니 시시가 맘에 든다면 기다리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내 남은 인생밖에 없네.”

그러자 가이드는 진분을 호숫가에 지어진 호화주택에 데려가 집 사기를 권한다. “앞에 보이는 호수가 선생님 개인 소유가 되는 겁니다.”

이 대목은 두 가지를 보여준다. 첫째, 중국의 벼락부자는 자신감이 넘친다. 자신이 황제보다 낫다며 자고자대(自高自大)한다. 급속한 경제성장은 큰 부를 낳았고, 부유함은 자신감을 낳았다. 돈과 자신감은 부동산 버블을 한껏 부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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