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 전략이니 하는 것을 잘 몰라요. 묻고 싶은 게 더 많습니다. 대답할 것은 대답하고 못할 것은 거꾸로 묻겠습니다.”
분열을 미래의 걸림돌로 꼽는 이가 많다. 이분화에 가까운 사회다. 이것 아니면 저것, 내 편 아니면 네 편이다. 관념은 남고 실제는 사라졌다. 실제가 아닌 관념을 두고 편을 나눠 다툰다.
도법은 흑백, 백색이 아닌 회색이다. 누구 편도 아니다. 화쟁(和諍)의 시각으로 세상을 본다. 제3지대에 서고자 한다. 관념이 아닌 실제를 들여다본다. 진영이 아닌 진실의 편에서 사안을 보려 한다.
화쟁은 모든 논쟁을 화합으로 바꾸려는 불교 사상이다. 대립과 모순·쟁론을 조화·극복해 하나의 세계를 지향한다. 원효는 저서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에서 화쟁 이론을 전개했다. 원융회통사상(圓融會通思想)이라고도 한다.
도법은 조계종 분란 때마다 수습에 나섰다. 1998년 조계종 분규 때 총무원장 권한대행으로 일했다. 2010년 6월 자승(慈乘·61·총무원장)과 명진(明盡·65·당시 봉은사 주지)이 충돌했을 때 화쟁위원장을 맡았다. 4월 1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그를 만났다.
연꽃의 길, 난초의 길
▼ 화쟁위원회 활동은.
“되거나 말거나 합니다. 인생은 빈손으로 온 것이니 이것저것 해본다고 손해날 게 없습니다. 뭐든 열심히 해보자는 주의예요. 뭘 갖고 왔어야 손해날 게 있겠지요.”
▼ 화쟁 사상은 원효에서 비롯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화쟁이 곧 불교예요. 2600년 전 부처님 당대에는 당시에 맞는 이론이 있었습니다. 수백 년 후 대승불교가 일어납니다. 한반도 땅에서는 원효 스님이 화쟁 이론을 정립하고요. 화쟁 사상은 불교의 세계관을 기본으로 삼습니다. 불교는 모든 존재가 관계로 이뤄진 것으로 봅니다. 우주 전체가 하나의 살아 있는 그물(인드라망)이고, 낱낱 존재는 그물코와 같아요. 모두가 연결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존재하는 게 세계와 우주이며, 인간입니다.
낱낱 존재 사이에서 대립,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므로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찾아야 해요. 싸워서 승부 내는 게 아니라 서로가 동의하는 내용을 도출해 삶을 꾸려나가야 합니다. 더불어 살려면 서로 협력하고 나눠야 한다는 게 불교의 세계관입니다. 화쟁 사상은 어느 시대에나 인간이 사는 곳에서 요구되는 것이지요.”
도법은 절집에 앉아 참선, 수행만 하는 승려가 아니다. 속세에 발을 담그고 생명·평화운동을 해왔다.
▼ 난초는 깨끗한 환경에서 살면서 고고한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반면 연꽃은 진흙탕에서 더러움을 정화하며 깨끗하면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워냅니다. 스님께선 법정 스님을 난초에 비유하고 자신은 연꽃과 같은 삶을 지향하겠다는 취지로 말한 적이 있습니다.
“별 얘기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연꽃은 불교의 인간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겁니다. 조계종이 대표하는 한국불교는 연꽃의 인간상보다 난초의 인간상을 추구해왔어요. 은둔이나 수행을 중요시하지요. 성철 스님 같은 분을 난초에 비유하는 것은 수양하면서 꽃향기를 피우셔서입니다. 법정 스님도 그렇고요.
연못에는 똥오줌, 피고름이 뒤섞여 있습니다. 연꽃은 연못에 뿌리내립니다. 더러운 곳에 살면서 오염되지 않고 오히려 연못을 정화하면서 고개를 세워 꽃을 피웁니다. 대승불교의 보살이 상징하는 인간상이 연꽃과 같습니다.”
▼ 원효가 떠오릅니다.
“원효 스님이 연꽃 같은 인간이죠. 천촌만락을 다니며 분노의 현장, 욕심의 현장에 함께하면서 욕심, 분노에 매몰되지 않고 화쟁의 시각으로 문제를 풀었습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내가 해온 것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