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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성향이 있나봐 부자만 보면 훔쳐서 가난한 이에게 주고 싶거든”

‘민족대표 34인’ 스코필드 박사 이야기

  • 최진영 | 중앙대 영문학과 명예교수

“범죄 성향이 있나봐 부자만 보면 훔쳐서 가난한 이에게 주고 싶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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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찬은 앞으로 큰일 할 학생”

제가 몹시 놀랐던 것은 박사께서 당신의 몸에 닿았던 내의는 절대로 세탁물로 내어놓지 않고 매일 밤 손수 목욕실에서 세탁하신다는 점이었습니다. 아주머니가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듣지 않으셨답니다. 또한 계절의 변화에도 개의치 않고 항상 푸른빛 도는 회색 양복 한 벌에 낡아서 베이지색이 되다시피 한 흰 셔츠를 입고 빨간 넥타이를 매셨습니다. 어쩌다가 새 양복을 선물 받아도 다른 일에 쓰시는지, 입은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박사의 일상에서 첫째가는 일은 한국의 고아들을 위해 세계 각처로 후원을 요청하는 서신을 하루에도 수십 통씩 쓰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타이프를 치거나 우편 업무를 도와드렸습니다. 그다음으로 하는 것이, 열심히 공부하는 가난한 학생들에게 학비를 보태주는 일이었습니다. 이때 박사께서 처음으로 ‘정운찬’이라는 학생의 이름을 말씀하셨습니다. “집이 어렵지만 명석해 앞으로 큰일을 할 학생”이라며 학비를 보태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운찬 학생의 이름을 기억하게 됐고, 그 후 20여 년이 지나 각자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교수가 된 후 스코필드 박사 추모위원회 일을 하면서 만나게 됐습니다.

몇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인터뷰 | 최진영 교수 인터뷰



“신랄한 비판정신 뒤엔 ‘유쾌한 할아버지’ 계셨죠”


“범죄 성향이 있나봐 부자만 보면 훔쳐서 가난한 이에게 주고 싶거든”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최진영(78) 교수는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신여성’이었다. 서울사대 부속 중·고교를 다닐 때 이미 영어로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고, 서울대 영문학과 졸업 후 제1회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발탁돼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여성이, 그것도 미혼으로 유학 가는 예가 매우 드물 때였다.

“학창 시절에 영어에 푹 빠져 있었어요. 틈나는 대로 트랜지스터라디오를 켜고 ‘보이스 오브 아메리카’를 들었죠. 이인호 KBS 이사장과는 중학교 때 처음 만나 지금까지 절친한 친구 사이예요. 가끔 외국 분들이 학교를 방문하면 선생님들이 저와 인호만 남겨놓고 도망가곤 했지요(웃음).”

영어 실력은 스코필드 박사와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됐다. 최 교수는 가족과 떨어져 홀로 한국에서 지내는 스코필드 박사의 말벗이 됐다. 칠순에 가까운 박사는 손이 떨려 필체가 흔들릴 때가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최 교수가 대신 타이핑을 했다. 세계 각국의 친구들에게 한국의 고아를 도와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쓰는 일이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어린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쳤지만, 가장 정성을 쏟은 일은 고아를 돕는 것이었어요. 늘 ‘어린 고아가 가장 약자다,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다’라고 하셨어요. 기독교적인 가치관에서였겠지만, 친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새어머니와 관계가 썩 좋지 않은 탓에 외로운 유년 시절을 보낸 것 역시 이유였지 않을까 짐작합니다.”

스코필드 박사는 자기 관리가 투철한 신사였다. 불편한 한쪽 다리 탓에 장화를 신었는데, 절대로 남 앞에선 신발을 벗지 않았다. 옷은 낡았어도 항상 깨끗하게 관리했다. 늘 잘 웃었고 농담도 즐겨 했다. 성경공부 하러 온 학생들과 종종 셔레이드 게임을 하며 어울렸다.

“한번은 제게 ‘President’라는 단어가 주어졌어요. 칠판에 한반도를 그리고 삼팔선을 그은 다음 남한을 가리키며 엄지를 치켜세웠어요. 그러자 학생들이 금방 ‘President’라고 외쳤죠. 그때 박사가 아주 크게 웃으셨던 기억이 또렷합니다.”

최 교수가 미국 유학을 떠나자 스코필드 박사는 ‘My granddaughter Jeanie’에게 자신의 일상과 한국의 상황 등에 대해 편지를 써 보냈다. 부정부패가 심각한 한국을 걱정했고, 갓 출범한 군사정부가 이왕에 사회 질서와 경제 기반을 다잡아주길 희망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해 있으니 조심하라고도 당부했다. 최 교수는 유학 중에 만난 남편과 결혼해 미국에서 아이들을 낳았다. 어머니가 된 ‘Jeanie’에게 스코필드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그들의 감성이 미와 선과 진을 향해 가도록 인도하면, 나중에 절대로 빗나가지 않는다”고 플라톤의 말을 인용해 조언했다.

‘남을 위해 살라’

스코필드 박사는 1969년부터 급격하게 몸이 쇠약해졌다. 최 교수는 1969년이 끝날 무렵 받은 편지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당시 뉴욕으로 이사하면서 미처 새 주소를 알려드리지 못했는데, 편지에 ‘나는 아프다. 네가 어디 있는지 알려다오’라고 적혀 있었다. 스코필드 박사는 사망 열흘 전인 1970년 4월 2일에 최 교수에게 대필로 쓴 마지막 편지를 보내왔다. ‘오늘 너의 편지를 받고 매우 반가웠다. 나는 이제 여든하나다. 게다가 정신적으로 쇠퇴해 있다….’ 최 교수는 “내게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할아버지로서의 사랑을 보여주신 분”이라며 “박사는 내게 큰 복이었고, 많은 은혜를 주셨다”고 했다.

최 교수는 스코필드 박사의 생애에 대해 “한 사람이 인생에서 그렇게 많은 일을, 그것도 남을 위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놀랍다”며 “그러한 인생의 자취가 내게도 많은 영향을 줬다”고도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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