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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조작’ 무죄 판결에도 ‘상장폐지’ 폭탄”

‘카메룬 다이아몬드 게이트’ 주역 CNK인터내셔널 소액주주들의 눈물

  • 최호열 기자 | honeypapa@donga.com

“‘주가조작’ 무죄 판결에도 ‘상장폐지’ 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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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해외자원개발 아이콘’ → ‘희대의 주가조작 기업’
  • ● 1심 재판부 “허위공시, 주가조작 근거 없다” 판결
  • ● “4년 동안 손발 묶어놓고 경영부실이라며 상장폐지”
  • ● “우리는 MB정권 공신들의 파워게임 피해자”
“‘주가조작’ 무죄 판결에도 ‘상장폐지’ 폭탄”

CNK인터내셔널 소액주주들이 회사를 살리기 위해 다이아몬드 등 보석 판매 행사를 하고 있다.

4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옥인동 대로변 건물 앞에 사람들이 모였다. 건물 외벽에 ‘다이아몬드 특별판매’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렸고, 1층에 마련된 임시매장에서 보석들을 할인판매했다. 보석을 구매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할인이라 해도 보석은 고가다. ‘돈 많은 사람들인가 보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다. 판매원은 “구매자 상당수가 코스닥 상장사인 CNK인터내셔널(이하 CNK) 소액주주이거나 그들의 권유로 온 사람들”이라고 했다.

“여기 전시된 보석은 모두 CNK가 카메룬에서 들여온 원석으로 가공한 것입니다.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회사를 돕기 위해 주주들이 나서서 제품을 구매하는 행사를 연 거죠.”

행사장이 있는 CNK 서울지사 건물로 들어서니 수십 명이 모여 열심히 서류를 작성한다. ‘인터넷 CNK 소액주주카페 대표’라고 자신을 소개한 안모 씨는 “CNK가 자회사인 (주)CNK다이아몬드에 빌려준 11억5000만 원이 배임이란 판결을 받았다. 그래서 주주들이 돈을 모아 대위변제해주기 위한 약정서를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까지 자신이 투자할 약정금액과 함께 이름, 연락처, 주소, 주민등록번호를 적어 서명한 후 안씨에게 제출했다. 사흘 만에 약정자가 600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대위변제 출연 서약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CNK 주가는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졌고 그나마 거래정지 상태다. 주주로서는 큰 손해를 입은 상태. 회사 경영진을 고발해도 분이 가시지 않을 판인데 오히려 회사를 살리겠다며 직접 나서서 물건을 팔아주고, 회사가 못 받아낸 대여금까지 자기들 돈을 모아서 대신 해결하려 하다니.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묻자 한 소액주주가 목소리를 높였다.



“억울해서 그럽니다. 정말 이 회사가 사기를 친 거고, 우리가 속아서 손해를 본 것이라면 이렇게까지 억울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거든요. ‘주가조작’이란 혐의를 씌워 4년 동안 회사 운영을 못하게 만들어놨어요. 그래놓고는 이제 와서 회사가 부실해 상장폐지를 하겠다고 하면 납득이 되겠어요?”

다른 소액주주도 거들고 나섰다.

“경남기업 성완종 회장의 자살을 보며 우리랑 똑같이 당했구나 싶더군요.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검찰이 처음 수사를 시작한 명목은 ‘자원외교 비리’였어요. 그런데 걸리는 게 없었던지 배임·횡령을 걸고 넘어졌어요. CNK도 똑같아요. 처음엔 권력 실세와 결탁한 주가조작이라더니 무죄가 나올 것 같으니까 중간에 배임 혐의를 추가했어요. 배임·횡령 액수도 처음엔 110억 원이라고 하더니 정작 법원에서 인정한 건 10분의 1인 11억5000만 원이었어요. 그 돈도 자회사에 담보를 잡고 빌려준 건데 담보 설정이 늦어져 배임이 된 거고요. 법원에서도 담보에 대한 질권 설정이 완료돼 회사가 피해를 입은 건 없다고 판결했어요. 그런 무리한 기소로 결국 힘없는 소액주주들만 피해를 본 거죠.”

건물 창밖으로 햇살을 머금은 개나리와 벚꽃이 앞다퉈 꽃망울을 활짝 터뜨렸다. 게으른 목련도 기지개를 켜고 새순을 틔우고 있었다. 이처럼 봄은 겨울의 시련을 견딘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다. 그런데 여기 모인 CNK 소액주주들에겐 여전히 한겨울이었다. 지난 4년 동안 모진 한파와 폭풍을 견뎌내고 이제 겨우 봄을 맞나 싶었는데 또다시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닥쳤다는 것이다.

김은석 前 대사도 무죄

CNK. 이명박(MB) 정부 시절 이른바 ‘카메룬 다이아몬드 게이트’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며 ‘부실 사기 자원외교’의 상징이 된 회사다. 당시 기억을 더듬어보자.

2010년 12월 외교통상부에서 ‘중소기업인 CNK가 아프리카 카메룬에서 추정 매장량이 4.2억 캐럿에 달하는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권을 획득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 같은 발표는 정부가 사업성을 보증한 것으로 인식됐고, CNK는 단숨에 해외자원개발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당연히 주가가 폭등했다. 3000원대에서 한 달도 안 돼 1만6100원까지 치솟았다.

그런데 몇 달 후 정치권에서 CNK가 MB 정부 실세와 연결됐으며 광산 개발도 거짓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금융감독원에서 사실 확인에 나섰고, 2012년 1월 금감원 상위기관인 증권선물위원회에서 오덕균 CNK 대표와 주요 임원을 고발했다. 허위로 사업내용을 부풀리고 주가를 조작해 수백억 원의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혐의였다. 감사원도 외교통상부 김은석 에너지자원외교 대사가 CNK와 공모해 허위 보도자료를 배포했다며 중징계를 요구했다.

CNK에 대한 압수수색, 오 대표와 직원들의 해외출국금지 등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인 검찰은 2013년 2월 CNK와 오 대표와 김은석 전 대사를 각각 주가조작, 허위 보도자료 배포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CNK는 ‘해외자원개발의 아이콘’에서 한순간에 ‘희대의 사기기업’으로 전락했다. 당연히 주가도 폭락했다. 검찰은 오 대표에게 징역 10년, 김 전 대사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그런데 또다시 반전이 벌어졌다. 2년여 동안 48차례 공판이 열리는 등 치열한 법정 공방 끝에 지난 1월 23일 1심 재판부가 오 대표와 CNK의 주가조작혐의에 대해 무죄를 판결한 것. 김은석 전 대사도 무죄 선고를 받았다. 판결문은 186쪽에 달할 정도로 방대하다. 여기엔 재판부가 판단한 사건의 세세한 실체가 담겼다. 재판부는 검찰 공소사실의 허점을 조목조목 짚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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