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고통의 산물입니다. 역사 교과서를 두고 이념 논쟁이 벌어졌듯 이승만, 박정희, 친일 문제 등으로 전시물 하나하나마다 싸움의 고통을 넘었습니다. 여러분은 전시된 것만 보지만 그 안엔 고통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반동적 성공’을 잘하는 나라예요. 독재했다가 민주화하는가 하면, 찢어지게 가난했다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습니다. 문을 열지 않는 나라였는데, 증권시장을 보세요. 영국, 프랑스보다 우리가 외자 비율이 더 높습니다. 한국 경제가 외풍에 요동치는 것도 그래서인데 좋다, 나쁘다를 떠나 특이한 현상입니다. 익스트림 리액셔니즘(extreme reactionism)이라고나 할까요. 극단의 대극주의, 반동주의 성향을 가졌습니다.
근대화 혁명을 통해 힘을 어느 정도 축적했지만, 힘을 가진 것과 힘을 쓰는 것은 다른 차원이에요. 힘을 쓰려면 결심,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힘을 작동할 메커니즘도 갖춰야 하고요. 남북관계, 대중(對中) 외교, 대일(對日)관계 등 이슈마다 여야 간, 이념 간, 언론 간, 지성인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일례로 북한 애들이 한국 갖고 노는 거 보세요.
대한민국을 건드리면 힘을 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힘이 의미가 있어요. 한국의 이익을 북한이, 중국이, 일본이 해칠 때 전쟁할 각오가 있는 사람이 여기 있어요? 대통령, 참모총장이 그런 용기 가졌을까요. 전쟁을 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전쟁은 막아야죠.
그렇더라도, 우리 이익을 해치면 전쟁도 할 수 있다는 각오가 확실해야 합니다. 그게 국력이에요. 무기가 몇 개이고 병력이 얼마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결의가 중요한 겁니다. 베트남과 비교해보세요. 베트남보다도 덜 무서워하는 게 우리나라예요.”
▼ 성취의 역사를 이뤄냈으나 전쟁할 각오조차 다지지 못하는 나라라는 말씀이군요. 좌우 갈등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큰 아픔입니다. 최근에는 5 · 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어떻게 부를지를 두고 다툼이 일었습니다. 진보좌파와 보수우파의 갈등,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의 반목, 영 · 호남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면 향후 우리가 풀어야 할 통일 문제와 미래 발전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보수우파, 진보좌파 간 소모적 갈등을 극복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어려운 문제예요. 제도적인 얘기를 꺼내면 답하기는 쉽죠. 학자들이 제도 얘기하는 것은 눈속임이에요. 대통령제 대신 내각책임제로 가야 한다든지, 지방 분권을 강화해야 한다든지, 이렇게 답하는 것은 내가 볼 때는 눈속임입니다. 정말로 개혁하려면 제도적으로 접근할 것인지, 사람을 바꾸는 방식으로 갈 것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김영란법이나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을 보세요. 그게 정치요? 그게 국회요? 한국은 근본적 제도 개혁, 국가 개조를 자생적으로 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타율적으로 이뤄진 게 대부분입니다. 일례로 관리제도, 경영체제 등은 6 · 25전쟁의 산물입니다. 툭하면 브리핑하잖아요. 그게 미국 군대 산물이거든요. K팝의 뿌리는 미8군 부대고요. 한국에서 진정한 개혁은 타율적으로 이뤄졌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팔을 비틀어 재벌 열 몇 개가 없어진 적도 있고요.
우리가 자생적으로 진정한 개혁을 이뤄내겠느냐는 질문에는 물음표를 붙이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혁명이나 외부 압력으로 개혁할 것인가. 불행하게도 이제는 외부 압력이 없습니다. 박정희 독재가 심할 때 미국이 브레이크를 걸었는데, 그런 일은 더는 없습니다. 김대중 씨를 살려준 것도 미국 아닙니까. 우리 스스로 해야 합니다. 세월호 사건 때 좌파, 우파, 진보, 보수를 떠나 전 국민이 분노, 절망, 한탄했습니다. 이 같은 국민의 마음을 어떻게 비(非)혁명적 형태의 개혁 동력으로 승화시키느냐가 중요합니다.
상법상 주식회사는 물론이고 공법인격인 각종 재단, 학교, 교회, 법조마저 사유화, 대물림되는 도착적 근대화 상황에서 소수지만 초과이익공유제를 주장한다든지, 자식에게 상속 안 하고 종업원지주회사로 형태를 바꾼다든지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애국적 진보주의’라고 해서 극단주의 좌파와 손을 떼고 뭐 좀 해보겠다는 사람들도 있고요.
비혁명적 방법으로 자생적 개혁을 이뤄내려면 이런 소수가 핵심적 다수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극소수가 의미 있는 소수로 우선 성장해야 하고요. 대통령제 아래서는 대통령이 소수를 밀어주는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김진현 이사장은 “그게 정치요? 그게 국회요?”라며 한국 정치 현실을 개탄했다.
▼ 민주화 이후 세대가 국가 미래와 관련해 잘 해내리라고 보는 쪽입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젊은 세대가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절대억압과 절대빈곤을 모르고 자랐다는 겁니다. 1958년 동아일보에 견습기자로 들어갔는데, 매년 겨울이면 쓰던 기사가 뭔 줄 알아요? ‘서울에 동사(凍死) ○명’ 식으로 얼어 죽은 사람 통계 내는 겁니다. 쓰레기통 뒤지다 복어알 잘못 먹어 죽은 사람 기사도 자주 썼고요.
절대억압이라는 게, 박정희만 독재한 게 아닙니다. 일상생활에서도 독재가 가득했어요. 회사 선배가 ‘야, 담배 사와’ 식으로 얘기하던 때죠. 식민지 독재는 박정희보다 수백 배 심했죠. 남의 집 멀쩡한 처녀를 강제로 끌어다 위안부로 보냈습니다. 젊은 세대가 독재라는 개념을 너무나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국가 건설 과정을 똑바로 공부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