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1420만 명에 달한다. 전년보다 17% 늘어난 수치다. 이들이 국내에서 쓴 돈은 20조 원이 넘는다. 가장 적극적으로 지갑을 여는 건 아무래도 쇼핑할 때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외국인 관광객 1만202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한국 방문을 선택하게 된 요인으로는 ‘쇼핑’(72.3%·중복응답)이 압도적으로 꼽혔다.
쇼핑 장소로는 명동(42.4%)에 이어 시내면세점(41.4%)이 가장 많았다. 지난해 서울 소공동 롯데면세점 매출이 1조9000억 원으로 롯데백화점 본점 매출(1조8000억 원)을 넘어섰다. 면세점 시장은 2010년 이후 연평균 29.1%씩 성장했다. 올해는 1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기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성장세는 제자리걸음이지만 면세점 사업은 매년 껑충껑충 뛰고 있다. 유커가 갑자기 줄어들지 않는 이상 한동안 계속 갈 사업”이라고 내다봤다. 유통업계에서 면세점을 황금알 낳는 거위로 보는 이유다.
서울 시내에는 현재 16곳의 면세점이 있다. 이번에 15년 만에 처음으로 새로 3곳이 추가된다. 지난 6월 1일까지 희망업체들로부터 신청을 받았는데, ‘면세점 대전(大戰)’이라 할 만큼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들까지 사활을 거는 양상이다. 면세점 허가의 정식 명칭은 ‘보세판매장 설치·운영 특허’다. ‘특허’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보세판매장(면세점) 사업에 국가 주요 수입원인 세금을 면해주는 특혜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면세점 ‘그 이상의 역할’ 해야

한화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인지도가 높은 63빌딩에 면세점을 만들어 쇼핑과 관광의 시너지 효과를 노린다.
이번 신규 시내면세점 특허권 경쟁에서 주목되는 것은 어느 지역에 면세점이 들어서느냐다. 면세점 입점으로 지역상권이 활성화할 수도 있지만, 교통혼잡 가중 등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면세점 허가를 심사할 때 주차장 확보 등 교통난 해소 방안도 최우선으로 고려해달라고 서울시가 요청할 정도다.
접수 결과 가장 많은 기업이 선호한 지역은 동대문이었다. 대기업 2곳과 중소기업 6곳 등 8곳이 선택했다. 기업들은 그다음으로 명동권역(대기업 1곳, 중소기업 2곳), 인사동권역(중소기업 2곳) 등 유커들이 많이 찾는 시내 중심가를 선호했다. 면세점 매출의 80% 정도를 차지하는 유커를 집중 공략하기 위해서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을 찾은 유커는 600만여 명. 이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는 명동(86.7%)-동대문(72.0%)-인사동(28.7%) 순이었다. 하지만 이 지역은 이미 인근에 면세점이 있고 교통체증이 심하다는 게 단점이다.
전문가들은 면세점이 외국인 관광객의 쇼핑 장소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관광, 문화예술 체험으로 이어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실제로 그간 면세점들은 호황을 누리면서도 외국인 관광객들의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재방문 비율이 매우 낮다는 게 그 반증이다. 관광가이드 김모(43) 씨는 “명동, 면세점, 남산, 동대문, 광화문 등 서울 중심 여행 코스는 여행사마다 그게 그것”이라며 다양성 부족을 지적했다.
이주형 경기대 관광학부 교수는 “시내 면세점이 외국인 관광객에게 단순한 명품 쇼핑 공간이 아니라 국내 우수 중소기업 상품도 적극 판매하고, 다양한 문화·관광·레저 상품과도 연계하는 등 지역과 국가에 도움이 되는 서비스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면세점 ‘그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