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경제로 풀어쓴 현대사

세계지도 다시 그린 육·해상 인프라 혁명

대양을 호수로, 대륙을 마을로

  • 조인직 | 대우증권 도쿄지점장

세계지도 다시 그린 육·해상 인프라 혁명

2/3
유럽의 이민자들은 유럽에서 이미 경험한 화학비료를 새 터전에서도 아낌없이 사용했다.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 대륙 곳곳에는 대농장이 들어섰다. 이곳에서 산업화와 도시화가 먼저 진행된 유럽 대륙으로 곡물과 쇠고기 등을 수출함에 따라 서양인들이 쇠고기를 주식으로 먹는 문화가 본격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민은 사람들을 운반해주는 대형 여객선(Passenger Ship) 등 각종 해운산업을 꽃피우는 데도 일조했다.

1865~1894년 30여 년간 미국 뉴욕항에 입항한 이민자 분포를 보면 1880년대 말까지는 영국인 12만 명, 독일인 11만 명 등 서유럽 출신 비중이 높았으나 1890년이 넘어서면서 동유럽과 남유럽의 비중이 높아져 1907년부터는 이 지역 출신이 80% 이상을 차지했다.

‘이민대국’ 미국은 1850년 2300만 명이던 인구가 60년이 지난 1910년에는 9100만 명으로 급증했다. 영토도 빠르게 확대됐다. 독립선언(1776년) 당시 대서양 연안에 국한된 영국 식민지 13개 주에 불과하던 미국은 1803년 프랑스에 1500만 달러를 지불하고 미시시피강 동쪽의 루이지애나 주를 매입하면서 영토를 2배로 넓혔다. 서부 진출이 활발해진 1820년부터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국경을 확장해나갔다.

1845년에는 미국의 면화농장주들이 멕시코로 이주해 살다가 독립해서 세운 공화국을 텍사스 주로 병합했다. 이듬해인 1846년에는 캐나다와의 국경선을 획정하는 과정에서 오리건 주를 병합하고, 이후 2년 동안 이어진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 지역까지 차지했다. 이로써 대서양 연안에서 태평양 연안까지 확장된 거대한 대륙국가가 건설됐다. 독립 당시의 4배에 달하는 엄청난 영토다.

서부로 간 포티나이너스(49ers)



1848년에는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됐다. 영국이 자국 통화 파운드를 금에 연동시켜 운영하던 금본위제 시대라 그 여파는 엄청났다. 멕시코전쟁 후 불경기에 빠진 미국 동부에서만 약 10만 명이 캘리포니아로 떠났다. 유럽 등지에서 출발한 이민자 20만 명도 개발 대열에 가세했다. 주로 이동한 시기가 1849년이라 이들을 ‘포티나이너스(49ers)’라 한다.

금광 개발 5년여 동안 2억8500만 달러어치가 채굴됐다. 직전까지 미국 금 산출량의 21배에 달하는 양이었다. 요즘 중국이 서부 인프라 개발을 주창하며 ‘프런티어(Frontier)’라 이름 붙인 것은 미국 서부 개발 당시의 ‘개발’과 ‘희망’ 이미지를 참고했음에 틀림없다. 황무지 캘리포니아로 사람과 기술이 몰려들었고 덕분에 1850년 미국의 31번째 주로 승격됐다.

요즘도 흔히 쓰이는 ‘아메리칸 드림’의 어원 역시 서부개척 시대로 올라간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2년 링컨 대통령이 서부의 신흥 주(州)들을 우군으로 만들기 위해 ‘홈스테드법(Homestead Act · 자작농창설법)’을 제정한 것과 연관이 깊다. 5년간 서부 개척에 종사한 21세 이상 남성의 경우 서류 수속 비용만 대면 20만 평의 국유지를 무상으로 분양해주는 제도였다. ‘깃발만 꽂으면 땅을 준다’는 거짓말 같은 진실이 통하던 시기다.

모든 철도는 런던發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올 하반기에 정식 발족할 전망이다. AIIB의 주사업은 아시아 신흥국들의 인프라 개발 지원사업이다. 한국과 북한, 실크로드를 가로질러 유럽으로 향하는 철도 인프라 건설사업도 유력하게 거론된다. 비행기가 있어도 역시 철로를 통한 인적, 물적 교류의 활성화 및 파생산업으로 인한 경제발전 등은 도시는 물론 국가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필수적인 인프라임에 틀림없다. 성장률이 3% 초반대로 떨어진 한국으로서도 신(新)성장엔진 기능을 기대할 수 있는 사업이다.

철도의 역사는 1825년 영국 철도의 아버지이자 증기기관차(Steam Locomotive)를 발명한 스티븐슨이 만든 기관차에서 시작한다. 스탁턴~달링턴 사이 45km 구간에서 화물차와 객차 35량을 달고 시속 18km로 달린 이 기차는 주로 내륙 탄광지역에서 해안으로 석탄을 옮기는 용도로 쓰였다. 철도의 본격적인 실용화는 1830년 리버풀-맨체스터 간 45km 구간에서 이뤄졌는데, 화물의 정기운항 외에 3년 간 하루 평균 1100명의 승객을 시속 40km의 속도로 실어 날랐다. 국고에서 충당한 부채를 모두 상환했을 뿐 아니라 주주들에게도 평균 9.5%의 수익을 안겨줬을 만큼 이익도 컸다.

이에 힘입어 19세기 중반부터 영국을 중심으로 철도 건설 붐이 일었다. 영국에선 수도 런던을 중심으로 방사(放射)형으로 펼쳐진 노선이 속속 착공됐다. 종점은 달라도 ‘시발점은 런던’이었다. 1845년 3277km이던 영국 철도의 총 연장(延長)은 10년 뒤 1855년 1만3411km로 4배 가까이 늘었다. 철도 건설 붐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됐다. 철도 연결에 따른 생활권 단일화는 각국 시장 확대는 물론, 현대식 국민국가(Nation State)의 형성에도 크게 기여했다.



2/3
조인직 | 대우증권 도쿄지점장
목록 닫기

세계지도 다시 그린 육·해상 인프라 혁명

댓글 창 닫기

2022/07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