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新대동여지도’ 바로가기
19년 전, 위암으로 투병 중인 부모님 병간호에 여념이 없던 김승기(72) 씨. 언제부턴가 피곤하고 속이 쓰린 증상이 시작됐다. 양친이 위암 초기에 비슷한 증상으로 고통스러워하던 모습이 문득 뇌리를 스쳤지만 ‘설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암은 가족력이 있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때는 믿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고통은 날이 갈수록 더해갔다. 김씨는 고민에 빠졌다. 병상에 누워 계신 부모님 곁을 자기만 살겠다고 비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만일 암으로 판명이 난다면, 몹쓸 병을 아들에게 물려줬다고 생각해 괴로워하실 것 또한 분명했다. 괜한 걱정을 끼쳐드릴 순 없다고 생각하자 답은 하나였다.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아보자.’


불길한 예감은 왜 항상 비껴가지 않는 것일까. 김씨가 부모를 간병할 동안, 그의 몸 안에서도 암세포가 자라고 있었다. 검사 결과 이미 위암 말기였다. 림프절의 열에 아홉은 전이됐을 만큼 암세포가 온몸 구석구석 퍼져 있었다.
“암세포가 옴몸에 퍼져 도리가 없대요. 오래 살아도 6개월은 못 넘긴다고….”
병원에서는 수술을 하더라도 1년 6개월쯤 뒤 재발할 우려가 있다고 예상했다.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며 수술을 권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충격을 받은 사람은 아내 하성임(65) 씨다. 시부모에 이어 남편까지 위암에 걸렸으니 그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일단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자는 심정으로 의료진을 설득한 끝에 수술 날짜를 받아냈다. 그러다 막상 수술실에 들어가는 남편을 보니 겁이 덜컥 났다. 다행히 수술은 무사히 끝났지만 20일은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하씨에게는 20년 같은 20일이었다.
경과는 나쁘지 않았다. 완치 확률은 반반. 병원에서는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권했지만 김씨는 한사코 거부하고 퇴원을 결심했다. 주치의가 집까지 찾아와 설득했지만 김씨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5개월 뒤 항암치료를 받아볼까 싶어 병원을 찾은 김씨는 다시 발길을 돌렸다. 멀쩡하던 사람이 방사선 치료를 받은 후 ‘반쯤 죽어서’ 나오는 모습에 충격을 받은 것. 50%의 확률에 기대 남은 생을 고통스럽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김씨는 그즈음 평소 알고 지내던 약사 부부를 통해 효소에 대해 알게 됐다. 집으로 돌아온 김씨가 찾은 건 집에서 가까운 바다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항암효과가 좋다고 알려진 청각 등의 해조류. 그걸로 효소를 만들었다.
김씨는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제철 채소와 과일, 산야초 등 150여 가지의 재료를 한데 넣고 숙성시켰다. 재료마다 좋은 성분이 다 다르므로 다양한 성분이 복합적으로 숙성되면 효과가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하나둘씩 담근 효소 항아리가 어느새 20여 개로 늘었다. 그중 가장 오래된 것은 무려 16년 전에 담근 것이라고 한다. 김씨는 물과 이 효소를 5대 1 비율로 희석해 매일 2L터씩 마셨다. 효소를 마신 지 1년 남짓 되자 아픈 곳도 차츰 사라지고 피로도 빨리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