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샌프란시스코 통신] 좀도둑 잡아주는 스마트초인종 불티나게 팔려

좀도둑 잡으려다 사생활 빼앗긴다?

  • 글·사진 황장석 ‘실리콘밸리 스토리’ 작가·전 동아일보 기자 surono@naver.com

[샌프란시스코 통신] 좀도둑 잡아주는 스마트초인종 불티나게 팔려

  • 미국 샌프란시스코베이 지역을 다니다 보면 범죄 예방을 위해 감시 카메라를 설치한 집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온라인 쇼핑이 증가하면서 현관 앞에 배달 온 택배 물품을 훔쳐가는 좀도둑이 기승을 부리는 상황. 주택 앞 감시 카메라는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그런데 인기 높은 감시 카메라가 최근 개인정보 침해 논란에 휩싸였다. 논란의 배경을 들여다봤다.
스마트 초인종 ‘ring’.

스마트 초인종 ‘ring’.

3월 2일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San Jose)에 있는 한 홈디포(The Home Depot) 매장. 각종 공구부터 벽돌, 시멘트, 페인트, 목재, 전자제품에 이르기까지 집을 단장하고, 보수하고, 심지어 새로 짓는 데 필요한 재료까지 판매하는 곳이라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손님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어지간한 축구 경기장만큼 큰 이 매장 한 구석에서 아시아계 중년 남성이 뭔가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가 꼼꼼히 살펴본 제품은 스마트 초인종(smart home video doorbell). 감시 카메라와 초인종을 결합한 것이다. 초인종처럼 설치해 두면 집 앞 영상을 녹화해 클라우드 장치에 저장해 두고 인터넷과 스마트폰 앱으로 손쉽게 확인할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에 있던 직원이 그 남성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뭘 도와드릴까요?” 

“요즘 동네에 좀도둑이 설쳐서 좀 불안하네요. 집에 감시 카메라를 하나 설치할까 하는데, 이게 초인종도 되는 제품인가요? 설치는 쉬운가요?”


온라인 쇼핑 시대 ‘현관 도적’들

스마트폰으로 방문객 확인이 가능한 ring의 라이브뷰. [유튜브 캡처]

스마트폰으로 방문객 확인이 가능한 ring의 라이브뷰. [유튜브 캡처]

최근 필자 옆 동네에 사는 중국계 친구도 좀도둑 피해를 보았다. 온라인 매장에 주문한 물건을 배달원이 현관 앞에 두고 갔는데 누군가 훔쳐갔다고 한다. 그는 “요즘 재수가 없는지 지난번엔 집 앞에 세워둔 차 안에서 테니스 가방이 사라졌다. 어떤 놈이 차 유리창을 깨고 훔쳐간 것”이라며 씩씩거렸다. 최근 온라인 쇼핑몰 배달원이 현관 앞에 둔 택배 상자를 훔쳐가는 좀도둑이 빠르게 늘고 있다. 연휴만 되면 지역 언론에서 ‘현관 도적(porch pirates)’ 피해 사례와 예방법을 보도할 정도다. 

홈디포 매장에서 남성 고객이 관심을 보인 제품은 링(Ring)이라는 회사에서 만든 스마트 초인종. 감시 카메라와 움직임이 감지되면 켜지는 조명, 클라우드 저장 서비스, 스마트폰 앱 등을 결합한 제품으로, 신기술 도입에 적극적인 샌프란시스코와 주변 지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2017년 현재 미국 주요 도시 가운데 재산피해범죄(강도, 절도 등) 발생률이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다. 스마트 초인종이 절찬리에 팔리는 또 다른 이유다. 



이 제품을 개발한 링은 2018년 초 1조 원이 넘는 회사 가치를 인정받으며 아마존에 인수됐다. 2013년 창업 후 5년 만에 거액에 팔린 건데 이후로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통계분석회사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세계 스마트 초인종 시장 규모는 2018년 5억 달러에서 2023년엔 14억 달러(약 1조6000억 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큰 시장은 미국이다. 

필자도 2017년 여름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온 뒤 현관에 링에서 만든 스마트 감시 카메라를 설치했다. 이 제품은 ‘딩동’ 하고 울리는 기능은 없지만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현관 앞에 있는 방문자와 스피커폰으로 대화할 수 있다. 이전 집에 살 때 새벽에 낯선 사람이 집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려 놀란 기억이 있어 주변 사람들 추천을 받아 해당 제품을 설치한 것이다.


촬영 영상 경찰 제공 논란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홈디포 매장에서 한 남성이 링(Ring)사의 스마트 초인종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홈디포 매장에서 한 남성이 링(Ring)사의 스마트 초인종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그런데 최근 승승장구하던 링이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에 휩싸였다. 논란이 불거진 원인 중 하나는 해당 회사의 스마트 초인종이 허가 없이 타인 영상을 녹화한다는 데 있다. 이 제품은 현관 바로 앞뿐 아니라 반경 9m까지 촬영할 수 있다. 지나다니는 사람이나 동물 등이 촬영 범위에 들어간다. 사유재산이 인정되는 구역 밖에 있는 다른 사람을, 그들의 허락 없이 촬영하는 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어린아이를 부모 동의 없이 촬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최근 문제가 불거진 건 각 가정에서 촬영한 영상을 스마트 초인종 제조사가 경찰에 제공한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링 측은 사법기관이 회사 사이트에 접속해 영상을 모니터링한 뒤 필요하다고 요청한 경우 촬영자 이름과 정확한 주소 등의 정보를 삭제한 뒤 제공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경찰로서는 예산 한 푼 안 들이고 공짜 감시 카메라를 집집마다 설치한 효과를 얻을 수 있으니 환영할 일이다. 지역 언론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보도에 따르면, 2월 현재 미국 내 지역 경찰서 약 900곳이 링과 협약을 맺고 영상을 제공받고 있다. 

링은 이웃에서 발생하는 범죄 해결에 도움을 주고자 지역 경찰에 영상을 제공한다며, 이 사실을 제품 홍보에 적극 활용해 왔다. 경찰 역시 경찰력이 곳곳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정보가 범죄 예방 및 수사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시민 가운데서도 좀도둑이 현관 앞에 있는 택배 상자나 차량 또는 집 안의 금품을 훔쳐갔을 때 스마트 초인종 녹화 영상 덕분에 경찰과 보험회사 등에 증거를 제공할 수 있었다며 찬사를 보내는 이가 적잖다. 그러나 사생활 침해 논란 또한 가시지 않는 상황이다. 

스마트 초인종 제조사가 경찰에 촬영 영상을 제공하지 못하게 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소비자가 제품 구매 후 영상녹화서비스에 가입하지 않으면 된다. 다만 이 경우 소비자 또한 실시간 영상만 확인할 수 있다. 집을 비운 동안 누가 우리 집 앞에 왔었는지 저장된 영상을 통해 확인하는 게 불가능하다. 현재 얼마나 많은 소비자가 이처럼 실시간 영상만 확인하고 있는지는 알기 어렵다. 스마트 초인종 영상을 녹화 저장해 주는 서비스 기본 이용료는 연간 30달러 수준이다. 회사 측은 이 서비스 가입자 수를 정확히 공개하지 않고,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이 이용한다고만 밝힌 상태다.


연방 의회, 정보제공 현황 제출 요구

논란이 커지자 미국 연방의회는 2월 링의 모기업 아마존에 공문을 보냈다. △링과 정보제공 협약을 맺은 도시와 경찰 목록 △해당 기관이 아마존의 안면인식 기술을 사용하는지 여부 △경찰에 영상을 제공한 모든 사례와 그 내용 △경찰 외에 영상과 개인정보를 공유한 제3자(기관, 개인) △영상 촬영 동의 조항을 포함한 개인정보 정책 등을 제출하라는 내용이다. △제조사가 사용자 동의 없이 경찰에 영상을 제공한 경우가 없는지, △제공한 영상 중에 원치 않게 촬영돼 시민에게 피해를 준 것은 없는지, △경찰이 아마존의 안면인식 기술을 사용해 영상에 촬영된 사람 신원을 불법적으로 확인하는 건 아닌지, △회사 측이 경찰 외 다른 기관이나 개인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지, △제공하고 있다면 그 대상이 누구인지 등을 확인하려는 취지다. △그 배경엔 범죄 예방과 수사를 목적으로 법이 보장하는 사생활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며칠 전 저녁 약속이 있어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왔다. 밤 10시가 다 된 시간인데, 밖에서 누군가 뭐라고 소리치며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방문자에 겁이 나고 뭐라는지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아 “노”라고 말하고 대꾸하지 않았더니 다른 곳으로 간 것 같다고 했다. 바로 스마트폰 앱을 켜서 녹화 영상을 확인했다. 제복을 입은 것으로 보이는 덩치 큰 남성이 “헬로, 새너제이 경찰입니다. 헬로. 헬로” 외치다가 문을 열어주지 않자 사라졌다. 안도감이 들면서 “스마트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섬뜩함도 느껴졌다. 이 모습을 경찰도 볼 수 있다는 건가.




신동아 2020년 5월호

글·사진 황장석 ‘실리콘밸리 스토리’ 작가·전 동아일보 기자 surono@naver.com
목록 닫기

[샌프란시스코 통신] 좀도둑 잡아주는 스마트초인종 불티나게 팔려

댓글 창 닫기

2020/06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