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호

‘언론개혁’ 가면 쓰고 ‘언론 힘 빼기’ 나선 文정부 [신평의 풀피리 ㉙]

다수 의석으로 국가 제도 변개(變改)하려는 탐욕

  • 신평 변호사·㈔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

    lawshin@naver.com

    입력2021-02-1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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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 2월 임시국회에서 ‘언론개혁’ 입법 추진

    • 친(親)정부 가짜뉴스 방치하며 반대파에만 칼날 겨눠

    • 이미 권력자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국내 언론 환경

    • 건전한 비판 가로막는 한국 명예훼손 법제

    • 文정부 언론개혁 시도는 검찰개혁 추진과 쌍생아

    • 삿된 길 빠져나와 진정한 촛불혁명 계승자 돼라

    *19대 대선 당시 신평 변호사(65·사법연수원 13기)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중앙선대위에서 ‘공익제보 지원위원회’ 위원장과 ‘민주통합포럼’ 상임위원을 지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여권을 향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으며 공평무사(公平無私)한 지식인의 본보기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 경북 경주에서 농사를 짓고 시를 쓰며 산다.

    2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이낙연 대표. 이 대표는 이날 “민주주의에서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가치이지만 고의적 가짜뉴스와 악의적 허위 정보는 명백한 폭력”이라며 언론개혁 입법을 강조했다. [뉴스1]

    2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이낙연 대표. 이 대표는 이날 “민주주의에서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가치이지만 고의적 가짜뉴스와 악의적 허위 정보는 명백한 폭력”이라며 언론개혁 입법을 강조했다. [뉴스1]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검찰에 이어 언론을 개혁하겠다고 한다. 언론개혁법안을 만들어 2월 임시국회에서 야당 반대가 있더라도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주된 내용은 이렇다. 가짜뉴스를 생산한 측에 손해액의 세 배에 이르는 손해배상금을 물린다. 관련 기사에 의해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자는 그 기사 열람을 차단해 달라고 청구할 수 있다. 또 댓글로 상처를 입은 이는 이미 가능한 댓글 삭제 조치 외에 그 댓글을 단 게시판 운영 중단까지 요청할 수 있다.


    언론 장악은 독재 유지 수단

    지난해 10월 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주제로 열린 긴급 토론회 현장. 이날 토론회는 한국신문협회와 한국기자협회 등이 주최했다. [뉴스1]

    지난해 10월 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주제로 열린 긴급 토론회 현장. 이날 토론회는 한국신문협회와 한국기자협회 등이 주최했다. [뉴스1]

    영국 좌파 정치인이자 정치평론가인 크로스만(R. H. S. Crossman)은 현대 권력은 생산수단을 통제하는 사람에서 매스커뮤니케이션 수단과 파괴 수단(선전과 군대)을 통제하는 사람에게로 넘어갔다고 했다. 현대사회의 특질을 정확히 꿰뚫고 언론 장악으로 독재를 시도하는 여러 정권의 속성을 간파한 분석이다. 

    영국 작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소설 ‘1984’에서 전지전능한 독재자 ‘빅 브라더(Big Brother)’가 독재 유지 수단으로 정보를 통제, 왜곡, 말살하는 시대를 그렸다. 그 이유가 크로스만의 말에 담겨 있는 셈이다. 

    정부 여당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가짜뉴스 폐해가 극심하다고 강조한다. 과연 그럴까. 최근 기존 언론 외에 인터넷을 통한 정보 제공이 보편화한 건 맞다. 특히 유튜브를 통해 정치적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이 짜증스러울 정도로 많다. 그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주장 중 사실이 아닌 게 적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마치 자신이 심판자라도 되는 양 남을 부당하게 폄훼하려는 의도에서 비난하고 단죄하는 수준 낮은 내용을 퍼뜨리는 게 무척 거슬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성가신 언론의 폐해가 정부 여당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토록 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언론을 시청하는 사람은 그 정보가 허약한 기초 위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감안한다. 열성적인 추종자가 아닌 이상 대부분 그대로 흘려버린다. 

    게다가 이처럼 불완전한 정보를 양산하는 주체는 정부 여당을 옹호하는 쪽에도 만만치 않게 많다. 미국 가짜뉴스(disinformation) 제조창 ‘큐어난(QANon)’에 필적할 만한 존재는, 한국의 경우 열렬한 친정부 세력 김어준류(類)가 만들어내는 ‘나꼼수’ 등이라고 여겨진다. 가짜뉴스를 만들어내는 주체가 권력을 등에 업고 있으면 이를 통해 사회를 조종할 힘을 바로 얻게 된다. 이 경우 사회적으로 위험할 수 있다. 

    반면 권력 반대쪽에서 만들어내는 가짜 정보, 허위 정보는 사실 위험이 크지 않다. 현 정부가 존속하는 동안 김어준 씨 등을 견제하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이른바 언론개혁법을 통해 정부 여당이 노리는 것은 자기들에게 비판적인, 반대쪽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헌법상 기본권 중에서도 우월적 기본권인 언론 자유를 부당하게 제압하려는 시도다. 이 글에서 정부 여당의 이른바 언론개혁 시도가 갖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좌절된 노무현 정부 언론개혁은 방치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가운데)가 2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자신이 대표발의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법안에는 허위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이 포함됐다. [뉴스1]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가운데)가 2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자신이 대표발의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법안에는 허위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이 포함됐다. [뉴스1]

    최근 언론법 변천 과정을 돌이켜보자. 노무현 정부는 2004~2005년 작심하고 신문법, 방송법 등 언론에 관한 법률을 대폭 정비했다. 이것을 ‘언론개혁 입법’이라고 불렀다. 당시 골자는 언론사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며 곧바로 노무현 정부 ‘언론개혁 입법’을 손질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것은 이명박 정부가 행한, 보수 쪽으로 향하는 사회 개조 작업의 핵심이었다. 정치권에서는 세칭 ‘미디어법 개정 논란’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현재 여당은 당시 야당으로서 국회를 점거하는 등 당의 명운을 걸고 반대 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그때는 이명박 정부 뜻대로 ‘언론개혁 입법’이 상당한 범위에서 수정됐다. 

    문재인 정부가 언론을 개혁하려 한다면, 당연히 노무현 정부가 한 ‘언론개혁 입법’ 정신을 부활하는 법제화 작업부터 서둘렀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정부 여당은 이에 관한 일은 하지 않는다. 대신 시쳇말로 ‘쪼잔하게도’ 자기들에게 가해지는 정치적 비판을 어렵게 만들려고 누가 봐도 언론 자유를 제한하고 침해하는 쪽으로 법을 개정하려 하면서 갑자기 ‘언론개혁’을 부르짖고 있다. 

    현 정부가 하는 일이 대체로 이렇다. 장래를 내다보는 역사의식 없이 눈앞 이익 추구에만 급급하다. 국민을 위한 진정한 사법개혁은 외면하다 정권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돌연 ‘검찰개혁’을 외치며 온갖 무리수를 두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는 검찰청을 없애고 수사권을 완전히 폐지하겠다는, 세상 어느 나라에도 없는 ‘개혁’을 하겠다고 설치고 있다. 이렇게 국정 의제를 설정할 때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노무현 정부가 명분과 역사성을 그 나름대로 중시했다면, 지금 정부는 목전의 이해관계에 매몰된다. 

    현재 한국 언론 환경은 권력 쪽에 유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정부 여당의 ‘언론개혁’ 시도는 이처럼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 자기 쪽에 기울어지게 하려는 것으로 읽힌다. 언론법 학자로서 내가 누차 지적했듯, 현대사회에서 언론을 억압하는 기제는 총칼이 아니다. 명예훼손에 관한 법제다. 한국의 명예훼손 법제는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엄격하다. 언론처럼 어떤 표현행위를 하는 화자(話者)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게 돼 있다. 상대적으로 언론에 언급되는 대상자(對象者) 쪽에 유리하다. 화자와 대상자를 분리할 때 권력을 가진 자는 주로 대상자다. 

    ‘유엔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규약(ICCPR)’은 가장 심각한 명예훼손의 경우에만 형사처벌을 고려할 수 있고, 이때도 징역형은 절대 허용하면 안 된다고 명시한다. 우리 형법은 이런 세계적 추세를 무시하고 명예훼손죄에 징역형을 규정했다. 심지어 진실한 사실을 보도한 경우에도 화자가 처벌받을 수 있다.


    건전한 비판 가로막는 국내 명예훼손 법제

    이런 법·제도보다 더 큰 문제가 또 있다. 우리나라 경찰, 검찰과 법원이 명예훼손에 관한 수사나 재판을 하며 언론 자유의 고귀한 가치를 거의 감안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명예훼손에 관한 민‧형사 재판이 진행될 때 입증책임을 지는 쪽은 사실상 피의자나 피고인, 즉 화자다. 가령 미투 사건이나 내부고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수사기관과 법원은 문제를 고발한 자에게 사건 실체를 입증하도록 요구한다. 화자의 설명이 부족하면 검사는 그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하고, 법원은 별 고민 없이 유죄판결을 내린다. 미투나 내부 비리의 주요 증거는 부당한 성적 행위를 한 사람 또는 고발당한 회사나 조직이 대부분 갖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런 상황은 언론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사회 고발성 기사를 쓰는 기자는 항상 수사를 받고, 법정에 불려 다니며 유죄판결을 받을 위험에 노출된다. 그런 기자들이 평소 갖는 불안감이나 스트레스가 얼마나 크겠는가. 그러다 보면 ‘자기검열’ 함정에 빠져 기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흐물흐물한 기자’로 전락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1964년 연방대법원이 “공인에 관한 보도의 경우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가 입증되지 않는 한 (언론사가) 손해배상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판결을 했다. 이후 지금까지 언론사가 공인에 대한 보도로 손해배상 책임을 진 명백한 사례가 단 한 건도 없다. 이것만 봐도 우리 언론 환경의 열악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한국의 엄격한 명예훼손 법제는 출판문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국내 출판사 대부분은 정치적으로 논쟁 소지가 있는 책 출판을 꺼린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에 대한 건전한 비판이 막혀버리는 사례가 매우 많다. 

    정부 여당에서는 지금 자신들이 가짜뉴스에 의해 큰 피해를 받는 양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예를 하나 들어보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고통받는 현재의 한국에 가장 필요한 것은 백신 접종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아직 코로나19 백신이 없다. 이에 대해 우리가 백신을 확보하지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것이며, 백신 안전성을 봐가며 좋은 백신을 선택하려고 한 것일 뿐이라는 주장이 있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 비해 백신 접종이 늦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명백한 가짜뉴스다. 

    코로나19는 지난해 연초부터 세계적으로 번졌다. 지난해 봄부터 여름에 걸쳐 세계 각국 정부가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하려고 전쟁 같은 경쟁을 벌였다. 그때 우리 정부는 백신과 치료제 국산화라는 허황된 꿈을 피력하며 가만히 있었다. 관련 공무원에게 백신 확보를 위한 적절한 권한도 주지 않았다. 소중한 국민 생명을 판돈으로 걸고 벌인 필패(必敗)의 도박 아닌가. 그 결과, 한국은 지난해 11월 30일까지 백신을 하나도 확보하지 못했다. 이미 베트남, 인도, 네팔,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들까지 백신을 확보한 뒤였다. 

    지금 세계 각국에서는 코로나19 백신이 광범위하게 접종되고 있다. 그 결과로 코로나19 감염률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우리는 그저 손 놓고 쳐다보고 있을 따름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 접종할 백신도 없는데, 가상 백신 수송 훈련을 요란하게 하며 한국 코로나19 대책이 최선이라고 찬양한다. 권력을 가진 측에서 퍼뜨리는 가짜뉴스는 매우 위험하고 파괴적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문제 되는 가짜뉴스는 바로 이런 것들이다. 어느 정치인에 대한 지질한 스캔들을 알리는 것 따위는 이것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전자는 그대로 놔두고, 후자만 꼬집어 이것이 마치 우리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치는 것인 양 호들갑을 떨며 제재하겠다고 나선 것이 이른바 언론개혁의 실상이다.


    현 정부 언론개혁과 검찰개혁은 일란성 쌍둥이

    현재 정부 여당이 가짜뉴스를 규제 단속하겠다며 언론개혁법안 개정을 서두르는 것은 명분도 없고, 그 내용도 잘못됐으며, 대상도 틀렸다. 지금 법제 안에서도 정부 여당이 지적하는 가짜뉴스에는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잘못된 기사나 댓글을 규제하는 현행법 제도조차 언론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 아니냐 하는 비판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정부 여당은 지금 아전인수 격으로 곳곳에서 억지를 쓴다. 압도적인 국회 의석수를 바탕으로 자기들 이익 실현을 목표로 국가 제도를 변개(變改)하려는 탐욕에 젖어 있다. 그들에게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원대한 시야가 없다. 진실성도 결여됐다. 지금의 언론개혁은 검찰 힘 빼기와 다름없는 검찰개혁과 일란성 쌍둥이다. 국민 뜻을 받드는 진정한 사법개혁, 언론개혁은 그들 안중에 없는 것 같다. 제발 권력에 취해 비틀거리며 자꾸 삿된 길로 들어서지 말고, 촛불혁명 계승자답게 깨인 정신으로 바른길을 걸어가기를 바란다.

    매화 꽃망울이 벌써 터졌다. 이미 풀린 흙에는 물기가 번졌다. 나무는 물을 빨아들이며 봄을 맞는다. 머지않아 산수유, 자두를 앞세우며 산야는 찬란한 꽃대궐로 바뀐다. 내 생애 한 번 더 맞는 봄이다. 그 봄을 고이고이 아끼고 싶다.

    매화 꽃망울이 벌써 터졌다. 이미 풀린 흙에는 물기가 번졌다. 나무는 물을 빨아들이며 봄을 맞는다. 머지않아 산수유, 자두를 앞세우며 산야는 찬란한 꽃대궐로 바뀐다. 내 생애 한 번 더 맞는 봄이다. 그 봄을 고이고이 아끼고 싶다.


    ● 1956년 출생
    ● 서울대 법학과 졸업, 법학박사
    ● 제23회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제13기
    ● 인천지방법원, 서울가정법원, 대구지방법원 판사
    ●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헌법학회 회장 등 역임
    ● 한국문인협회 회원
    ● 2018년 대한민국 법률대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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