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 2900원에 볼 수 있는 쿠팡플레이
‘라이브 방송’에 자체 제작 계획도
美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 닮은꼴
‘쿠팡 생태계’ 머물도록 하는 전략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신고서 제출
네이버는 신세계·CJ와 제휴설
쿠팡은 2020년 말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인 ‘쿠팡플레이’를 출시했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잠실 쿠팡 본사의 모습. [뉴스1]
쿠팡 창립자 김범석 이사회 의장이 즐겨 쓰는 문구다. 소비자의 삶에 쿠팡이라는 온라인 쇼핑몰이 ‘필수재’로 자리 잡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쿠팡이 그간 엄청난 규모의 적자를 감수하고 지속해서 물류센터를 만들어온 것도 이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다. 생활용품이든 식료품이든 당장 필요한 물건을 어김없이 주문 당일 혹은 이튿날 아침 집 앞으로 배송해 주는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다. 소비자가 이런 ‘쿠팡만의 서비스’에 익숙해지면 오직 쿠팡만 이용하리라는 계산이었다.
쿠팡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쿠팡의 월간 순 이용자는 10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쿠팡을 통해 이뤄진 결제 추정 금액은 21조 원가량이다. 국내에서 이 정도 규모의 거래액을 기록하는 업체는 ‘G마켓’과 ‘옥션’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와 포털 업체 네이버 정도뿐이다. 업계 후발주자인 쿠팡이 단숨에 업계 선두권으로 올라와 경쟁하고 있다.
쿠팡은 이처럼 ‘증명된’ 경쟁력을 지속해 강화하면 당분간 성공 가도를 달릴 수 있지 않을까? 이미 로켓배송에 만족하는 소비자가 많고, 업계 선두권 자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시작했으니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다. 지금 국내에서 쿠팡과 같은 대규모 자체 물류시스템을 갖추려 하는 업체는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만한 자금을 투자할 여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경쟁력을 이미 쿠팡이 선점한 탓이다.
왜 ‘라방’에 공들이나
하지만 최근 쿠팡의 행보를 보면 여전히 뭔가를 만들어가고 있는 느낌을 준다. 이것저것 새로운 영역에 손대면서 그림을 그려가는 모습이다. 쿠팡이 잘나가고 있기는 하지만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평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선두권에서도 여전히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탓에 이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 쿠팡은 도대체 왜 영역을 확장하려는 걸까.최근 가장 주목받은 행보는 쿠팡이 ‘로켓와우’라는 멤버십 회원에게 동영상 콘텐츠를 제공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쿠팡은 지난해 말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쿠팡플레이’를 출시했다. 쿠팡플레이는 한 달에 2900원을 내는 로켓와우 전용 서비스다. 회원이라면 추가 비용 없이 이용할 수 있다. 국내외 드라마와 예능, 영화, 다큐멘터리, 시사교양, 어학, 입시 강좌 등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다.
쿠팡은 향후 넷플릭스처럼 콘텐츠를 제작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김성한 쿠팡플레이 총괄 디렉터는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자체 제작 등 차별화한 서비스를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쿠팡플레이는 아직 콘텐츠의 양적인 면에서 부실하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가입 가격이 사실상 2900원으로 저렴해 경쟁력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넷플릭스(월 9500원)나 왓챠(월 7900원)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이다. 무엇보다 쿠팡의 로켓와우 가입자는 500만 명 수준이다. 이들 모두 사실상 쿠팡플레이 가입자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를 통한 성장 잠재력이 충분한 편이다.
쿠팡의 움직임은 예견된 일이었다. 쿠팡은 앞서 지난해 7월 싱가포르 OTT(Over The Top·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업체인 훅(Hooq)의 소프트웨어 사업 부문을 인수한 바 있다. 이후 10월에는 사업 목적에 기타 부가통신 서비스와 온라인 음악 서비스 제공업을 추가했다.
쇼핑하건 영상 보건 ‘쿠팡 생태계’
이와 함께 지난 1월부터 라이브커머스 서비스 ‘쿠팡 라이브’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라이브커머스란 실시간 온라인 방송을 통해 상품을 판매하는 서비스다. ‘라이브 방송’이라는 말을 줄여 ‘라방’이라고도 한다. 쿠팡 라이브는 쿠팡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판매자(벤더)가 직접 방송을 하거나 크리에이터에게 상품 판매를 의뢰할 수 있게 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소비자는 관심 있는 상품의 라방을 볼 수도 있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처럼 평소 선호하는 크리에이터를 ‘팔로우’하면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풀필먼트 사업 역시 쿠팡이 공들이는 영역이다. 이를 위해 올해 초에는 택배업을 시작하기도 했다. 풀필먼트 서비스란 창고 재고 관리나 배송 등 물류 전 과정을 대행해 주는 사업을 말한다. 지난 2019년에는 배달 앱 서비스인 쿠팡이츠를 선보이며 점유율을 꾸준히 높여가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사업을 다각화하는 전략은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미국 아마존과 비교되곤 한다. 아마존이 1995년 온라인 서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는 점은 쿠팡과 다르다. 하지만 이커머스 사업을 기반으로 거대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쿠팡이 유사한 전략을 쓰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실제 쿠팡이 시도하는 것 중에서는 아마존이 이미 하는 사업들이 있다. 일단 쿠팡플레이가 그렇다. 아마존 역시 ‘아마존 프라임’ 가입자에게 OTT 서비스인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제공하고 있다. 또 풀필먼트 사업의 경우 아마존 전체 매출의 20%가량을 차지할 정도다.
쿠팡 역시 단순히 물건을 팔거나 중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마존처럼 다양한 사업자와 소비자를 쿠팡의 생태계에 머무르도록 하는 데 공을 들이는 것이다.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문장이 단순히 온라인 쇼핑만을 지칭하는 게 아니었던 셈이다. 쇼핑을 하든, 영상 콘텐츠를 보든, 아니면 물건을 팔든 ‘쿠팡 생태계’ 안에서 하도록 하겠다는 전략이다.
그간 쿠팡은 이베이코리아나 11번가, 티몬, 위메프 등 이커머스 업체들과 경쟁 구도를 만들어왔다. 최근에는 네이버, 카카오 등 플랫폼 업체들과 함께 거론되는 경우가 잦다. 네이버가 포털 서비스를 기반으로 성장하는 플랫폼이라면, 카카오는 메신저를 중심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쿠팡은 이에 맞서 온라인 쇼핑을 앞세워 플랫폼 생태계를 구축하는 모양새다.
이런 흐름을 고려하면 쿠팡이 OTT나 라방 서비스를 시작하는 것을 두고 단순히 해당 시장에 진출하는 행보 정도로 해석하는 것은 단편적인 시각이 될 수 있다. ‘플랫폼 경쟁’이라는 큰 틀로 바라보는 게 쿠팡의 행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라방이다. 라방은 요즘 플랫폼 업체들이 가장 공을 들이는 시장이다. 라방이 제대로 운영되려면 해당 사이트의 기본 이용자 수가 절대적으로 많아야 한다. 짧은 시간에 반짝 물건을 팔아야 하는 특성 때문이다. 이용자 수가 부족하면 방송 콘텐츠를 만들 만한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수많은 제품을 사실상 기간 제한 없이 나열해 판매하는 기존 웹페이지 기반 이커머스와는 공식이 다른 판매 방식이다.
이커머스 업체들은 물론 오프라인 유통 업체들이 너도나도 라방을 하고 있지만 IT(정보기술) 업체인 네이버와 카카오가 시장을 주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온라인 쇼핑 영역에서는 후발 주자이지만, 라방에서만큼은 유리한 고지에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의 경우 자사 라이브 커머스인 ‘쇼핑라이브’가 정식 출시된 지 6개월 만에 누적 시청 횟수 1억 회를 돌파했다. 카카오쇼핑라이브도 지난해 5월 베타 서비스를 시작한 뒤 6개월 만에 누적 시청 1000만 회를 돌파했고, 다시 50여 일 만인 지난 1월에는 2000만 회를 넘어서며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쿠팡은 라방 서비스를 경쟁사보다 다소 늦게 시작하지만 이용자 수가 많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업계에서는 쿠팡이 네이버와 카카오의 행보를 의식해 라방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라방은 단순히 상품을 판매해 수익을 올린다는 점뿐만 아니라 경쟁력 있는 판매자들을 더욱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플랫폼 업체들에 필수적인 사업으로 여겨진다.
물류·소싱·콘텐츠 노리는 네이버
네이버의 경우 자사 라이브 커머스인 ‘쇼핑라이브’가 정식 출시된 지 6개월 만에 누적 시청 횟수 1억 회를 돌파했다(왼쪽). 카카오쇼핑라이브도 지난해 5월 베타 서비스를 시작한 뒤 6개월 만에 누적 시청 1000만 회를 돌파했고, 지난 1월에는 2000만 회를 넘어섰다(오른쪽). [네이버쇼핑 제공, 카카오쇼핑 제공]
하지만 네이버는 물류시스템과 배송, 상품 소싱 등 그간 경쟁력을 보유하지 않은 영역으로 보폭을 발 빠르게 넓히고 있다. 특히 경쟁력 있는 파트너와 손을 잡는 전략을 쓰고 있다. 최근 가장 주목받은 행보는 신세계그룹과의 업무 협력 논의다. 지난 1월 말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강희석 이마트 대표와 함께 판교에 있는 네이버 본사를 방문하면서 눈길을 끌었다. 신세계 측은 구체적 협력 방안을 논의한 자리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두 기업이 손잡을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신세계가 오랜 유통업 경력으로 쌓은 상품 소싱 능력이 네이버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전망이다.
앞서 네이버는 지난해 하반기 CJ그룹과 지분 교환 방식의 전략적 제휴를 맺으면서 업계에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네이버 쇼핑의 약점으로 평가되던 ‘물류’ 영역을 CJ대한통운으로 보완하고, CJ ENM의 콘텐츠 파워까지 결합할 경우 네이버의 경쟁력이 막강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네이버가 CJ의 OTT 서비스인 ‘티빙’을 플랫폼에 탑재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플랫폼 기업을 꿈꾸는 쿠팡으로서는 네이버의 행보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네이버가 물류와 소싱, 콘텐츠까지 갖춘다면 직접적인 경쟁이 불가피해진다. 쿠팡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에 나선 것도 이런 흐름 속에서 해석해 볼 수 있다. 쿠팡은 2월 12일(현지시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를 통해 “NYSE 상장을 위해 신고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쿠팡은 곧 투자자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상장 절차를 밟을 전망이다.
‘총알’ 장전하나
쿠팡은 지난 2019년 영업손실 7200억 원을 기록한 바 있다. 적자 폭이 줄긴 했지만 누적 적자가 3조 원을 훌쩍 넘은 것으로 추산되는 등 재무 리스크가 여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네이버나 카카오 등 자금력이 충분한 플랫폼 기업들과 경쟁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상장이 필수적으로 여겨진다. 반대로 네이버와 카카오 입장에서는 쿠팡이 ‘총알’을 충분히 장전하는 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상장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한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나 카카오가 플랫폼 기업으로서 이미 어느 정도 완성된 형태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면, 쿠팡의 경우 플랫폼으로서는 아직 미완성 단계인 게 사실”이라며 “상장에 따른 효과가 가시화하는 올해가 향후 이들의 경쟁 구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