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공수처 설치, 엘리트 기득권 싸움
윤석열 직무정지, 공공성 결여된 짓
문빠, 매우 나쁜 의미에서 종교 체제
민주당이 기득권에 포위? 제정신 아냐
386이 민주건달? 건달이 들으면 서운할 것
정의당은 민주당 2중대, 진보정치 궤멸
계산하는 유시민 보면 혐오감 느껴
與, 온갖 대의명분 사용해 대중 현혹
2월 3일 서울 서교동에서 만난 김규항 작가는 더불어민주당을 두고 “수구정당”이라고 말했다. [지호영 기자]
“저는 지금의 진보·보수 구도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안티조선 운동과 관련해서 ‘조·중·동’ vs ‘한겨레·경향’이라는 구도가 생겼는데, 제 관점은 아니었고 자유주의자들의 의제였죠. 안티조선 운동에 저를 포함한 좌파 일부가 연대했던 셈인데, 지금은 그런 구도가 유의미하지 않죠. 최근 한겨레 기자들의 집단 반발에서 드러났듯, 이미 진영 논리로 추락했고요. 그러니 저한테는 모두 ‘우리 신문’은 아닌 겁니다. 제 생각을 시민과 소통하는 수단일 뿐이죠.”
조국·오연호가 깨버린 룰(rule)
그는 1998년 첫 칼럼을 쓰면서 언론에 등장했다. 이후 진보논객으로 이름을 날렸다. 2000년에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홍세화 장발장은행 은행장과 잡지 ‘아웃사이더’를 창간했다. 개중에서도 그는 유독 계급 문제에 천착했다. 혹자는 그를 두고 ‘비타협적 좌파’라고 평했다. 한때 진 전 교수와 격렬한 ‘진보 논쟁’을 벌인 적도 있다. 그러다 두 사람이 오랜만에 같은 전선에 섰는데, 바로 ‘조국 사태’ 때다.- ‘조국 사태’에 대해 쓴 글을 읽어보면 분노가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좌우를 막론하고 (조국 사태에) 분노를 안 느끼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제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보수적인 부모들은 아이가 일류대 학생이 되길 바라고, 진보적인 부모들은 아이가 의식 있는 일류대 학생이 되길 바란다’고요. (386세대인) 제 또래들에 대한 비판이었죠. 조국 씨는 그중에서도 아주 독특한 캐릭터 같아요. 사회적 발언과 (실제) 행태가 배치되는 수준도 그렇고, 그런 행태가 공론화됐을 때 파렴치함의 수준도 그렇고요.”
2011년 조국 당시 서울대 교수는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와 ‘진보집권플랜’을 출간했다. 당시 김 작가는 한겨레 칼럼을 통해 책 제목을 문제 삼으며 “‘시민집권플랜’ 혹은 ‘민주집권플랜’쯤이면 충분하다”고 쓴 바 있다.
- 10년 전부터 민주당이 진보를 참칭하고 있다고 본 셈입니다.
“지금 민주당을 진보라고 일컫는데, ‘진보집권플랜’이 나오기 전만 해도 민주당은 스스로를 개혁세력이라고 했어요. 일종의 룰(rule)이 작동한 겁니다. 진보는 좌파적인 의미, 그러니까 노동계급 문제나 사회주의·사민주의적 전망을 논하는 세력을 지칭했는데 두 사람(조국, 오연호)이 룰을 깼죠. 일종의 역사적 전환이라고 생각해 (두 사람을) 비판하는 글을 썼습니다.”
김규항·진중권의 ‘진보 논쟁’은 이때 발발했다. 진 전 교수가 같은 한겨레 칼럼을 통해 김 작가를 겨냥해 “‘전능한 위치’에서 ‘진짜 좌파’와 ‘가짜 좌파’ 딱지를 붙이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그러면서 진 전 교수는 “(김 작가가) 조국·오연호에게 ‘중산층 엘리트’ 딱지를 붙였다. 정권이 바뀐다고 조국 교수의 팔자가 설마 획기적으로 바뀌겠는가. ‘중산층’에 ‘엘리트’쯤 되면 굳이 ‘좌파’ 딱지 없어도 먹고산다”고 썼다.
윤석열 복귀는 ‘상식의 회복’
- 진 전 교수는 정권 바뀐다고 조국 교수 팔자가 바뀌겠느냐 썼는데, 결과적으로는….“제가 아까 역사적 전환이라고 표현했는데, (당시) 진중권 씨가 생각이 짧았죠.”
- 두 분은 인연이 있지 않나요.
“아주 친하지는 않았지만 인연은 오래됐죠. 제 결혼식 사진에도 나오는 인물이니까요.(웃음) 근래는 못 봤어요.”
- 진 전 교수와의 논쟁에서 “개혁우파 세력이 집권하면 세상이 어떨까는 전주를 보면 된다. 버스 노동자들이 86일째 추위와 폭력 속에 파업하고 있는데 민주당이 장악한 전주시와 전주시의회는 이명박보다 덜하지 않다”라고 썼습니다. 현 정권의 행태를 예측한 것처럼 보입니다.
“예측이 아니라, 이미 그때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수면 아래에는 완성 단계에 있는 문제였습니다. 스캔들이 터진 뒤에야 조국 씨에게 실망한다? 너무 둔한 거죠. 진중권 씨와 논쟁할 때 저를 ‘진보감별사’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런 얕고 경박한 태도가 자유주의 세력이 진보 딱지를 차지하고 (진보정치의) 현실을 장악해 가는 상황을 더 악화시킨 셈이죠.”
흔히 문재인 정권을 두고 ‘운동권 정권’이라 한다. 그가 보기에는 허구의 딱지 붙이기다. 그의 블로그에서 찾은 문장에 따르자면 그렇다.
“그들이 고수하는 운동권 습성이 딱 하나 있긴 하다. 당시 적, 현재의 극우 기득권 세력을 여전히 사회 진보와 윤리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그래서 희한한 상황이 연출된다. 극우 세력의 특권과 자산을 제 것으로 만드는 걸 사회 진보이자 윤리 회복이라 믿는다.”
- 문재인 정부는 검찰개혁과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가 역사의 진보라고 주장합니다.
“(내세운) 대의명분은 그런데, 사실은 엘리트 권력끼리의 기득권 싸움입니다. 검찰을 어느 쪽이 장악하느냐의 문제죠. 여권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때문에 검찰에 부정적 감정을 갖는 건 이해합니다. 저는 노 전 대통령이 검찰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고졸로 대통령까지 된 분이 그깟 모욕을 받았다고 죽겠습니까. 그분이 죽은 건 너무 허무한 상태에 처했기 때문이었겠죠. 2009년 노 전 대통령이 홈페이지에 ‘여러분은 저를 버려야 한다’고 쓰기도 했어요. 한겨레 사설 제목은 ‘노 전 대통령, 국민 가슴에 대못 박았다’였습니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니 (여론이) 확 바뀌어버렸어요. 한 정권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뒤바뀌는 것은 지나치게 감상적이죠. 정치인들은 그것을 이용하고요.”
그의 머릿속에서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드라이브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포개진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애용한 레토릭(rhetoric)인 ‘상식’을 자기 방식대로 활용했다.
- 직무가 정지됐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복귀한 걸 두고 “상식의 회복”이라고 하셨더군요.
“윤 총장에 대한 직무정지는 한 진영의 검찰 장악이라는 의도가 뻔히 보이는 일이었어요. 저는 윤석열이라는 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없습니다. 굉장히 고지식한 사람 같다는 생각은 합니다. 그 연배의 ‘엘리트 아재’ 중에는 드문 태도를 갖고 있다고 봐요. 하지만 그의 이념과 세계관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단, 그에 대한 직무정지는 누가 봐도 정략적이고 공공성이 결여된 짓이었죠. 그러니 윤 총장이 업무에 복귀한 건 상식에 해당하는 일이죠.”
- ‘조국 지지’냐 ‘조국 반대’냐가 정치 성향을 나누는 잣대처럼 쓰입니다.
“저는 자유주의 진영 내의 윤리 논쟁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한국 사회 상위 20%끼리의 싸움이죠. 80%의 삶엔 큰 의미가 없고요. 그 윤리 논쟁을 사회 진보와 관련한 엄청난 대립인 것처럼 부풀리는 게 극렬 지지자들이죠.”
- 극렬 지지자들이 친문 혹은 문빠라고 불리죠.
“(문빠는) 매우 나쁜 의미에서 종교 체제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노동문제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수구세력을 절멸하는 게 선결 과제다. 그러니 이 정권을 지켜야 한다.’ 파탄이 난 논리죠. 사회 진보가 한 정권, 한 인물의 수호로 환원되는 것은 우상화입니다. 나치나 스탈린주의, 모택동의 중국도 마찬가지였죠. 사회주의를 자처하는 저 위(북한)의 말도 안 되는 전제정도 같은 우상화에 빠져 있죠.”
박노자와 강남순, 의아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9월 9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신임 장관 등 임명장 수여식에서 조국 당시 신임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박노자 교수는 왜 그런 주장을 할까요.
“저도 궁금하군요.(웃음) 그의 주장은 (조 전 장관이) 잘못이 없다는 건가요, 잘못은 분명한데 다른 사람에 비해 가혹한 대우를 받는다는 건가요. 지식인으로서 부끄럽고 매우 궁색한 논리예요. 엘리트일수록 특혜 없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해야죠. 비슷한 취지의 주장을 하는 분이 많이 있죠. 강남순 교수(텍사스 크리스천대)는 제가 발행하는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에 페미니즘 꼭지를 연재하던 분인데….”
강 교수는 2019년 9월 1일 페이스북에 “법무장관 후보자인 조국 교수를 끌어내리기 위하여 제1야당은 물론 소위 ‘진보’라고 하는 이들이 ‘순수주의’를 내세우며 조국 교수만이 아니라 그 가족들에 대한 상상하기 어려운 야만적 비난을 퍼붓고 있다”고 썼다. 김 작가가 덧붙였다.
“저는 ‘조국 반대’가 대단한 진보적 의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좌파와 페미니스트가 그런 논리를 내놓으면 의아하죠.”
- 좌파와 페미니스트 지식인들이 평소에는 근본주의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조 전 장관에 대해 말할 때는 현실주의적 이유를 들이대는 것 같더군요.
“그 현실이 뭘까요. 자신이 속한 계층이나 집단의 이해득실이겠죠. 소신 있게 말해도 밥 벌어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이 그러는 이유는 철학과 사회의식에 큰 구멍이 있다는 뜻입니다. 고작 이런 일 갖고 ‘삑사리’가 날 정도면 도대체 이 사람들이 갖고 있는 지성이 어떤 거였을까 의심할 만해요.”
- ‘조국 백서’에서 김민웅 경희대 교수는 “우리는 대통령만 바꾸고 이 사회의 기득권 체제에는 아직 손도 대보지 못했다. 승리했다고 여겼으나 사실은 포위돼 있었다”고 했습니다.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민주화운동을 했던 자유주의 세력이 기존에 수구라고 불리던 세력과 대등한 수준에 이른 지는 오래됐어요. 사회 문화 부문에선 오히려 압도하죠. 그런 기반을 갖고 있었으니 ‘진보집권플랜’ 같은 담론을 터뜨릴 수 있었던 겁니다.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라는 표현은 맞아요. 단, 자신들이 기득권의 절반 이상을 점하고 있다는 사실은 빼놓고 얘기하죠. 그런 주장을 너무 진실한 표정으로 하면, 사회적 견해가 아니라 맹목적 신앙인 거죠. 제정신이 아닙니다.”
- 홍세화 씨는 ‘신동아’ 인터뷰에서 민주화운동 세대를 ‘민주건달’이라 칭했습니다. 제대로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실제로 돈 버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건달이 들으면 서운할 겁니다. 건달들은 자신들과 양아치를 엄격히 구분합니다.(웃음) 양아치죠. 사익 추구에 명예 따위는 내팽개친 지 오래니까요.”
행동대장 조국과 슬픈 코미디
그는 2019년 8월 22일 블로그에 “진보 기득권 세력의 최근 행동대장으로서 조국의 ‘애국이냐 이적이냐’ 선동에 열렬히 호응하는 인민이, 그 실체도 모호한 사법개혁이나 공수처 설치가 유전무죄 무전유죄 현실을 바꿔줄 거라 믿는 인민이, 조국의 이해 추구 행태에 새삼 실망하고 분노하는 건 슬픈 코미디”라고 썼다.- 왜 슬픈 코미디라고 했나요.
“사회경제적 상층이 조국 씨를 지지하는 것은, 뭐 그럴 수 있죠. 이해관계가 합치되니까요. 하지만 생존의 절벽에 있을 뿐 아니라 아이들의 교육 경쟁에서도 뒤처져 있는 사람들이 조국 씨를 지지하는 것은 참 슬픈 일이죠. 사이비종교 같은 거니까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조국이 어떻고 추미애가 어떻고 매일 논쟁하는 사람들은 사실 상위 20% 계층이에요. 그들이 과잉 대표돼 있죠.”
이 대목에서 그는 “민주당 지지세가 강력해진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면서 말머리를 돌렸다.
“1980년대 후반 울산, 거제의 대공장 정규직 등 대기업 생산직들이 노동운동의 주력이 됩니다. 이들이 독점자본, 즉 재벌과 부딪쳤습니다. 그러다 독점자본과 국가는 어느 순간 전략을 바꿉니다. 임금과 사내 복지 수준을 확 올리면서 대기업 정규직을 중산층화한 겁니다. 이후 대기업 정규직의 묵인과 협조 아래 신규 고용과 나머지 노동자를 몽땅 불안정 비정규직으로 만들었죠. 울산에 가보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형님들’이라고 표현해요.”
- 형님들이요?
“그들 세대에는 정규직 고용이랄 게 없으니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세대 비슷하게 나뉘어버린 거예요. 한국의 상위 20%는 몇 개 독점자본과 대기업 정규직, 그리고 공공부문 정규직이 차지하고 있어요. 그 20%가 민주당 지지자의 주력이자 민주노총의 주력이에요. 이 사람들이 과거에는 진보정치를 지지했어요. 이제는 관심이 계급에서 주식과 부동산으로 바뀌면서 진보정치를 부담스럽게 여기게 됐습니다. 나름 과거에 민주화운동을 지지했으니 국민의힘을 찍을 수는 없고, 그러면 민주당이 딱인 겁니다. 노동 의제에서 두 세력의 차이가 없다는 걸 모르지는 않지만, 저쪽(국민의힘)은 수구라고 애써 강조하면서 민주당을 지지하는 거죠.”
- 그럼 정의당이 민주당의 자리를 꿰차는 게 진보입니까.
“정의당은 태생부터 민주당 진영의 일부(참여당계)와 NL(민족해방 계열), 옛 진보신당에서 나간 PD(민중민주 계열)가 결합한 애매한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원래 진보정치는 ‘의회 전술’이죠. 자본주의 변혁 혹은 개혁이라는 목표를 위해 의회를 사용하는 것이지, 의회가 최종 목적이 아니에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의회가 목표가 됐습니다. 몇 석을 얻느냐가 중심이 되다 보니 대중적으로 알려진 심상정·고 노회찬 같은 정치인들이 과(過)대표됐습니다. 이분들이 자유주의 진영에 가까워지면서 ‘민주당 2중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됐어요. 엄격히 말하면 진보정치는 잠정적으로는 궤멸한 상태죠.”
유시민 좋아하지 않는 데 필요한 건 기억력뿐
김규항 작가는 “좌우를 막론하고 (조국 사태에) 분노를 안 느끼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고 말했다. [지호영 기자]
“그에 관한 오랜 속담이 있다. ‘유시민을 좋아하지 않는 데 필요한 건 기억력뿐이다.’”
배경은 이렇다. 1월 22일 유 이사장은 2019년 12월 24일 유튜브 ‘알릴레오’에서 검찰이 노무현재단 계좌를 사찰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사실이 아니었다고 판단한다”며 검찰과 재단 후원회원, 시민들에게 사과했다. 김 작가가 말했다.
“지난해에 정치비평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놓고 실제로는 깊숙이 개입하면서 (정치활동을) 했잖아요. 결국 사과까지 할 상황으로 이어졌는데, 사과의 문장은 정말 점잖고 성찰적이에요. 표정이 확 바뀝니다.”
- 블로그에는 “얼마간 침묵하다가 잔뜩 사색하는 얼굴로 ‘어떻게 살 것인가’ 같은 책을 내고, 그게 먹히면 다시 스위치가 켜지듯 예의 정치적 활동을 재개할 가능성이 높다”고 썼던데요.
“성찰하는 표정과 교활한 정치활동, 이 두 가지가 계속 반복돼요. 유시민 씨는 그런 반복이 많은 대중에게 먹힌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계산하면서 행동하죠. 누구나 상황이나 처지에 따라 얼마간은 두 가지 모습을 모두 보입니다. 하지만 유시민 씨는 그 격차가 혐오감이 들 정도죠. 굳이 그렇게 살아야 할까요?”
- 민주당은 거대 의석을 갖고 별 토론 없이 쟁점 법안을 통과시키는데 자유주의 감수성도 부족한 것 아닙니까.
“민주당이 이념적으로 자유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고, 내부에는 진보 이념의 찌꺼기까지 갖고 있지만 이젠 수구 정당입니다. 기득권 유지를 위해 의미 있는 사회 변화를 거부하는 집단을 수구라고 한다면 국민의힘은 구(舊)수구이고 민주당은 신(新)수구죠. 진영의 기득권을 늘리기 위해 모든 사회적 대의명분을 사용하면서 대중을 현혹하고 있어요.”
그의 비평은 정치적이다. 좌파라는 지향을 명징하게 드러내고 이 기준에 맞춰 시사를 진단한다. 그의 태도는 정치적이지 않다. 대중에게 아부하지 않고 대중이 듣고 싶은 말을 해주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많은 시민은 주권자로서 특정 정치세력의 이념이 자신이 속한 계급, 계층과 얼마나 합치되는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치는 사회 성원 일반이 가진 의식의 반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시민들이 ‘우리가 어떤 꼴이기에, 얼마나 만만해 보이기에 정치권이 저럴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됐습니다.”
도리 없는 시기가 있다
대중과의 접점이 줄면 공론의 장에서는 주변부로 밀려난다. 그는 “지난해 신간(‘혁명노트’)을 냈더니 ‘대중과의 접촉이 적고 누구보다 조용한 논객’이라는 평이 나왔다”고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대중과 더 많이 접촉하려면 방송에 나가야 하는데, 방송에서 계급을 논하고 자본주의 극복을 이야기하면 그건 방송 사고인 겁니다. 명시적으로 써 있지 않지만, 방송이라는 콘텍스트에는 엄격한 제약이 있고 어기면 모두가 불편해지죠.”
- 활동을 안 한 게 아니라….
“저 개인이 아니라 (좌파적) 지향이 민주당이나 자유주의 세력에 계속 밀려나면서 쪼그라든 결과겠죠. 역사에는 그래프가 있고 노력해도 도리가 없는 시기가 있기 마련이죠. ‘조국 사태’는 불과 얼마 전 일이지만, 제가 민주당이 진보가 아니라고 비판한 건 벌써 20년이 돼가요. 그간의 사회적 상황을 고려하면 저의 주장이 대중적으로 읽히기는 어려웠겠죠.”
‘더 팔리기 위해 애써 대중과 코드를 맞출 생각은 없는 사람.’ 그와 90여 분간 인터뷰를 한 뒤 든 생각이다. 그에게서 ‘이 정도면 글쟁이로서 괜찮은 삶’이라는 낙관이 읽혔다. 그는 “대중을 오랫동안 불편하게 했는데도 여전히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