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타분한 옛것’ 고정관념 깬 전통의 ‘힙’한 변신
전통 의미 강조하되 현대 감성·라이프스타일 반영
SNS에서 유행하는 ‘할메니얼(할머니+밀레니얼 세대)’ 취향
코로나 불황에 지친 MZ세대, 옛것에서 위로와 즐거움 찾아
전통매듭 디자인 브랜드 ‘송오와매선’이 만든 공예품. [텀블벅 홈페이지 캡처]
한씨는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서 전통매듭을 보긴 했지만 그때는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면서 “젊은 디자이너가 전통을 현대 감성으로 재해석해 대중적 스타일로 만들어낸 걸 보며 ‘나도 이런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여름 ‘송오와매선’이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진행한 후원 펀딩에는 97명이 참여했다. 이들이 모아준 돈은 281만7000원으로, 당초 ‘송오와매선’이 목표로 한 50만 원의 563%에 달했다.
‘고리타분한 옛것’ 고정관념 깬 전통의 ‘힙’한 변신
고려청자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국립중앙박물관 공식 기념품. [국립중앙박물관문화상품숍 홈페이지 캡처]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해부터 고려청자 문양을 활용한 굿즈 시리즈를 꾸준히 내놓고 있다. 변씨가 구매한 스마트톡 외에도 많은 제품이 SNS 등을 타고 인기를 끌었다. 새 제품이 나오는 날 구매자가 몰려 ‘뮤지엄숍’ 사이트가 일시 마비된 일도 있다. 변씨는 “꼭 국립중앙박물관 굿즈가 아니라도 요즘 전통 문양을 활용한 디자인 제품이 다양하게 나온다”며 “얼마 전 취업한 후배에게 조선시대 민화 ‘어변성룡도’가 그려진 휴대전화 케이스를 선물했더니 무척 좋아하더라”고 밝혔다. 어변성룡도는 물고기가 변해 용이 된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그림으로, 조선시대에 과거 급제나 출세를 상징하는 문양으로 널리 쓰였다. 변씨는 “전통적 고전미와 현대적 세련미가 어우러진 작품에 독특한 의미까지 담겨 있어 선물하면서도 마음이 뿌듯했다”고 흡족해했다.
전통 기반 위에 현대 감성·라이프 스타일 반영
한복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의상으로 화제를 모은 걸그룹 블랙핑크. [동아DB]
한국관광공사가 외국인 시청자를 염두에 두고 제작한 한국 관광 홍보 영상 ‘한국의 리듬을 느끼세요(Feel the Rhythm of Korea)’ 또한 과거와 오늘의 매력적인 조화를 보여준 콘텐츠다. 이 영상 배경음악으로 쓰인 국악밴드 ‘이날치’ 노래 ‘범 내려온다’는 2월 중순 유튜브 조회수 4600만 건을 넘겼다. 박기수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전통에 기반을 두되 현대적 스타일과 B급 코드 같은 하위문화 요소를 잘 녹여낸 콘텐츠”라고 평가했다.
인스타그램에서 ‘할매입맛’을 검색하면 노출되는 게시물들. [인스타그램 캡처]
불황에 지친 MZ세대, 옛것에서 위로와 즐거움 찾아
그렇다면 최근 MZ세대가 옛날 감성에 빠져드는 이유는 뭘까.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그 배경에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유행하는 복고 열풍’이 있다고 진단한다. “삶이 고단하고 팍팍할 때면 사람들은 과거 좋았던 시절을 돌아보는 경향이 있다. 최근 코로나19 유행으로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워지다 보니, MZ세대가 옛날 감성에서 위로와 즐거움을 찾는 것”이라는 설명이다.MZ세대가 전통문화 유산에 관심을 갖는 건 기존 콘텐츠에서 볼 수 없던 차별성 덕분이라고 분석하는 전문가도 있다. 박기수 교수는 “요즘 젊은이가 전통에 담긴 의미에 깊이 매료됐다거나 우리 선조들의 정신문화를 향유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다만 전통의 변신이 현대적이고 새롭다 보니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쿨’하게 즐기는 것뿐”이라고 분석했다. “새로운 가치나 현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응하지만 깊이 몰입하지는 않는 게 MZ세대 특성”이라는 게 박 교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