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국가부채, 늦었다 생각할 때 이미 늦다
세계적 자랑거리 재정건전성, 굳이 훼손해야 하나
국채, 뭐라고 포장해도 결국 미래세대 빚
재정 확장 필요하면 예산 늘리는 게 떳떳한 길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의 정책 결정에 전혀 개입하지 못하는 미래세대에게 막대한 국가채무를 지우는 건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조영철 기자]
유례없이 빠른 국가채무 증가 속도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월 2일 국회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재난지원금 지급’ 구상을 밝혔다. [뉴스1]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찾은 건 이에 대한 전문가 의견이 궁금해서였다. 이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UCLA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사우샘프턴대 교수를 거쳐 2001년부터 서울대 강단에 서고 있다. 1952년 출범한 국내 최대 경제학회 ‘한국경제학회’ 회장 등을 지낸 경제학 분야 석학이다. 그를 만나 현재 우리 재정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 대통령이 언급한 “우리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재난지원금 규모는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지 묻기로 했다.
정부는 지난해 ‘전 국민’에게 가구당 최대 100만 원씩 1차 재난지원금을 주면서 이미 14조3000억 원을 풀었다. 이후 코로나19 피해를 본 소상공인 등을 대상으로 한 ‘선별지원’ 방식으로 2차 재난지원금 7조8000억 원, 3차 재난지원금 9조3000억 원을 지급했다. 이에 더한 4차 재난지원금 규모는 최대 30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660조 원이던 국가채무는 올해 연말이면 본예산 기준 956조 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36.0%에서 47.3%로 높아진다. 여기에 4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추경이 더해지면 나랏빚은 더 많아질 수 있다. 단순 계산해 적자국채를 10조 원만 발행해도 국가채무액 966조 원, 국가채무 비율은 47.8%가 된다. 여기에 민주당이 “코로나19 위기 극복 후”를 전제로 검토하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원’ 카드까지 가세할 경우 연내 국가채무가 1000조 원을 돌파할 수도 있다.
이 교수와 마주 앉아 “현재 우리 경제가 국가채무 때문에 위험한 상황인가”부터 물었다. 이 교수는 “그 문제는 전체적인 맥락을 보며 입체적·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답했다.
“누가 반에서 10등을 했다고 하자. 60등 하던 애가 10등을 했으면 잘한 거다. 반면 1등 하던 애가 10등을 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게다가 죽 1등 하던 애가 지난번 시험에서 5등을 하더니 이번에는 10등을 했다면? 한쪽에서는 이런 상황을 보고 ‘너 그러다 까딱하면 꼴찌 된다’고 말한다. 다른 쪽에서는 ‘10등도 잘하는 거야, 괜찮아’라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 상황이 이렇다.”
-교수님 의견은 어느 쪽인가.
“나는 특정 수치보다 변화 추이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재정건전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전 한 번도 40%를 넘긴 적이 없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사이에 빠른 속도로 악화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1월 말 공개한 ‘세계 재정상황 보고서’를 보면 미국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132.5%에 이른다. 프랑스(117.6%) 영국(110.8%) 등도 우리보다 훨씬 높다.
“맞다. 이들과 비교할 때 한국 국가채무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것을 자랑거리로 여겼다. 우리 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높다. 국가채무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과거 정부들은 이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냈다. 그 결과 우리는 재정건전성이라는 자산을 갖게 됐다. 그에 전혀 기여한 바 없는 사람들이 ‘이거 좋으니까 써먹자’는 식으로 훼손에 나서는 게 좀 답답하다.”
세계적 자랑거리 재정건전성, 굳이 훼손해야 하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높아지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국제 신인도가 하락한다. 자급자족이 가능한 나라라면 외부에서 해당 국가를 믿든 못 믿든 큰 상관이 없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는 타격이 크다. 물건을 다 만들어도 배송이 끝나기 전까지 대금을 못 받는다. 해외에서 제품 생산용 소재 등을 구매하려 해도 ‘너희 나라 돈 못 믿겠으니 달러 가져오라’고 한다. 모든 기업이 달러 확보에 나서야 하고, 이런 온갖 문제가 경제활동을 위축시킨다. 요즘 ‘재정 여력이 충분한데 왜 활용을 안 하느냐’고 하는 사람이 많다. 그거 다 쓰고 나서 ‘아, 늦었네’ 하면 이미 늦은 거다. 한번 떨어진 신용은 쉽게 되돌릴 수 없다. 우리가 지금 잘사는 건 해외와 거래하는 덕이다. 우리는 계속 재정건전성과 신인도에 신경 써야 한다.”
-앞서 언급한 IMF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지난해 코로나19 대응에 쓴 재정은 GDP 대비 3.4% 규모로, 세계 주요 20개국 가운데 15위에 해당한다. 이를 근거로 우리나라가 좀 더 적극적인 재정확장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지 않나. 그러면 다른 나라보다 돈을 좀 덜 뿌려도 되지 않나 싶다. 방역을 잘했다면서 돈은 남들만큼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 또 우리 정부는 코로나19 위기 전부터 이미 재정확장정책을 펴왔다. 그 결과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계속 지출을 늘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이 교수는 이 대목에서 코로나19 유행 전인 2019년 여름, 정부가 60조2000억 원에 이르는 사상 최대 규모 적자국채 발행 계획을 발표한 점을 언급했다. 전년의 33조8000억 원과 비교하면 거의 두 배 수준이라 당시 논란이 됐다. 정부는 이렇게 마련한 돈을 경기 활성화, 사회안전망 강화 등의 정책 추진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그 결과 2020년 일자리 관련 예산이 전년보다 4조6000억 원(21.3%) 늘었다. 저소득가구와 노인·아동 관련 지원책도 많아졌다. 지난해 정부지출에서 보건·복지·고용 부문이 차지한 비중은 35.4%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 교수가 지적한 게 바로 이 부분이다. 그는 “코로나19 경제위기가 시작되기 전, 우리 정부는 이미 사상 최대 규모 예산을 확정한 상태였다. 그 재원을 마련하려고 국채도 60조 원 넘게 발행했다. 이게 다 빚이다. 이후 코로나19를 이유로 추경을 네 번 더 했다. 그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확인하고 점검하는 절차가 필요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돈을 ‘얼마나’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
-이재명 경기지사는 1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전 세계가 재정확장정책에 나서는데 안 그래도 너무 건전해서 문제인 재정건전성 지키겠다고 소비 지원과 가계소득 지원에 극력 반대하는 사람들이 안타깝다”는 글을 올렸다.“앞서 말했듯 재정건전성은 우리의 자랑이다. ‘너무 건전해’ 문제 될 게 없다. 요즘 정치권에서 나오는 얘기를 들어보면 ‘우리 국가채무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또 외국 정부는 우리보다 돈을 훨씬 많이 풀었다. 그러니 우리도 돈을 좀 더 써도 된다’라고 한다. 나는 이 말이 어색하게 들린다. 나랏돈은 필요한 때, 필요한 곳에 써야 한다. 심지어 빚을 내 마련한 재정이라면 더욱 귀하게 써야 한다.”
-정부가 재정을 방만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보나.
“요새 하도 ‘조’ 얘기가 많이 나와 예사로이 들리는데 사실 ‘1조’는 매우 큰돈이다. 100억 원씩 100군데 나눠줄 수 있는 규모다. 한 곳에 1000만 원씩 주면 10만 군데 돌아간다. 정부가 작년 한 해 동안 그 돈의 60배에 이르는 나랏빚을 냈다. 최근 코로나19 재난지원금 논의를 봐도 수십조 얘기가 불쑥불쑥 나온다. 얼마 전 한국판 뉴딜에 2025년까지 160조를 투입해 일자리 190만 개를 만들겠다는 발표도 봤다. 일자리 한 개당 약 8500만 원꼴이다. 이 계산이 어떻게 나온 걸까. 그 많은 돈을 사람들한테 그냥 나눠주는 건 아닐 텐데, 어디에 어떻게 쓰겠다는 걸까. 궁금한 점이 무척 많다. 정부가 내는 빚은 고스란히 미래세대에 부담이 된다. 아무리 신중하게 사용해도 부족하지 않다.”
-최근 국내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고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 아닌가.
“그렇다 보니 정부 재정 확대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내면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게 그렇게 싫으냐’ 같은 반응을 보이는 분이 있다. 그게 아니다. 정말 일자리 문제를 풀려면 ‘160조’ ‘190만 명’ 같은 엄한 숫자를 앞세우면 안 된다. 다소 시간이 걸릴지라도 우리 산업구조를 어떻게 바꿔 어떻게 고용을 늘릴 것인지, 치밀하게 구상해 청사진을 내놓아야 한다. 그동안 정부가 펼친 고용정책 중 상당수는 6개월짜리 ‘디지털 일자리’를 잔뜩 만들어 사람을 뽑고 한 달에 180만 원씩 나눠주는 수준이었다. 이분들이 6개월 만에 스티브 잡스가 될 리 없으니, 약속된 시간이 지나면 일자리를 또 만들어야 한다. 거기에 막대한 돈이 또 들어간다. 이렇게 계속 돈을 쓰면 일자리 상황이 나아질까. 우리 경제에 활력이 생길까.”
이 교수가 한숨을 내쉬며 한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은 2월 1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4차 재난지원금 추경에 고용 위기 상황을 타개할 일자리 예산을 충분히 포함해 주기 바란다. 청년과 여성 고용 상황을 개선할 특단의 대책도 신속히 마련해 달라”고 주문했다. 그동안 수없이 대책을 마련해 왔지만, 여전히 많은 재정이 필요함을 보여준 셈이다.
-이 문제를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행정 일선에 있는 분들과 소통하며 아이디어를 얻어야 한다. 그분들은 책상에 앉아 정책을 만드는 사람보다 시장 작동 방식을 훨씬 더 잘 안다. 고용지원금이나 벤처지원금 같은 걸 지급하면 그게 현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꿰뚫어 보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장래성 있는 벤처기업을 발굴·투자하는 벤처캐피털업계 사람들과 얘기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벤처사업가 상당수가 기술개발에 큰 관심이 없다더라. 창업 후 가장 힘을 쏟는 일이 벤처인증을 받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면 각종 지원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돈을 주는 단기 일자리에 익숙해진 사람 상당수는 굳이 취업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벤처기업가도 그렇다. 혁신 기술을 개발할 유인이 없다. 정부가 돈을 잘못 쓰면 이런 문제가 생긴다. 재정건전성만 훼손하는 게 아니라, 경제주체의 경쟁력까지 떨어뜨린다.”
이 교수는 이 대목에서 정부가 주도해 개발한 온라인 간편결제 시스템 ‘제로페이’에 대해 언급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금융(Financial)과 정보기술(Technology)이 결합된 이른바 ‘핀테크’ 분야는 세계 각국 기업이 뛰어들어 신기술 개발 경쟁을 벌이는 공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수많은 인재가 이 시장을 노리고 뛰어들었다. 그러나 ‘제로페이’가 나타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고 한다.
“정부가 각종 권한을 동원해 ‘제로페이’ 사용을 사실상 강제하지 않았나. 관련 기술을 개발해봤자 큰 쓸모가 없겠다고 판단한 사람들은 다 업계를 떠났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민간을 쫓아내는 이른바 ‘구축효과(crowding-out)’가 나타난 것이다. 요즘 정치권에서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경기부양, 일자리 창출을 해내려면 정부가 돈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경기 대응, 고용지원 등은 정부가 개입하면 안 되는 대표적 영역이다. 민간에 힘을 실어야 돈이 돌고 일자리가 늘어난다. 여기 돈을 쓰려고 적자국채까지 발행한다? 그건 정말 안 될 말이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1월 28일 총리공관에서 열린 당정회의에서 “가계부채가 더 커지는 것을 막으려면 국가가 조금 더 부채 규모를 늘려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현재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1700조 원 수준인 것으로 안다. 막대한 규모인 건 사실이다. 그런데 가계 빚이 이렇게 늘어난 이유가 코로나19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는 건 모두 알고 있다. 우리나라 가계부채 상당 부분은 부동산시장과 맞물려 있다. 먹고살 만한 사람이 집을 사려고 낸 빚이다. 그걸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 주자는 건가. 나는 이런 부분에는 말꼬리를 좀 잡아 꼬치꼬치 캐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을 보자. 가난한 사람은 담보가 없고 신용등급도 낮아 빚을 많이 못 얻는다. 코로나19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사람이 생계 목적으로 빌린 돈은 다 합쳐봐야 얼마 안 될 거다. 사람들이 ‘가계부채 1700조’라고 하면 ‘큰일 나겠네’ 생각할 것을 노리고 가계부채와 코로나19 문제를 뒤섞어 말하는 건 옳지 않다.”
한국은행 발권력 동원? 장기(臟器) 팔겠다는 것
-최근 정치권에서는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면 한국은행이 이를 인수해 정부 재정적자를 보전하는 이른바 ‘부채의 화폐화’ 제안도 나왔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재정 확장 재원을 마련하고자 한국은행 발권력까지 동원하겠다니. 무척 당황스러운 아이디어다. 처음 이 말을 듣고 ‘집안 살림이 어려우면 콩팥 하나를 떼어 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통화는 국가의 혈액이다. 피에 문제가 생기면 언제 어디서 무슨 탈이 날지 모른다. 물론 전쟁이 터진다든지 하는 비상 상황에서는 일단 위기를 모면하고자 최후의 수단까지 동원할 수도 있다. 지금이 그런 상황인가.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평시엔 평시 수단을 써야 한다. 나라를 운영하는 데 돈이 필요하면 국민을 설득해 세금을 더 걷는 게 떳떳한 길이다. 증세는 꺼리면서 국가재정에 부담이 될 만큼 적자국채를 발행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중앙은행을 동원하려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이 교수는 이 대목에서 “만약 정치인이 우리나라를 자기 집이라고 여긴다면 그렇게 하겠나”라고 말하다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해 9월 28일 발표한 장기 재정 전망에 따르면 우리나라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지출을 구조조정하지 않을 경우 2030년 75.5%가 된다. 2060년에는 158.7%까지 치솟을 수 있다. 이 교수는 “지금의 정책 결정에 전혀 개입하지 못하는 미래세대에게 이처럼 막대한 짐을 지우는 게 온당한가”라고 지적했다. “빚은 어떤 말로 포장해도 빚이다. 착한 빚은 없다. 지금은 우리가 가진 재정 여력을 활용해 나라 살림을 잘 꾸리려고 최선을 다할 때다. 그게 안 되면 유권자 동의를 받아 증세를 하고 국채 발행은 최후 수단으로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게 이 교수 의견이다.
이인호
●1957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UCLA 박사(경제학)
●前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원, 영국 사우샘프턴대 경제학과 교수
●現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