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호

윤석열의 反文 정치 시작됐다

  • 김성곤 이데일리 정치부 기자 skzero@edaily.co.kr

    입력2021-03-05 15: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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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의 길로 접어든 ‘칼잡이’ 윤석열

    • 조국·추미애와 血戰…‘우리 총장님’에서 反文 상징으로

    • 대권주자 안 보이는 野, 정치지형 바꿀 매력적 자산

    • 강연, 저서발간 등 진정성 호소하며 ‘정치적 몸 풀기’

    • 여론 관심, 재‧보선 앞두고 정치적 메시지 낼 가능성

    • 중도층 공략 최적임자 평가…신당 창당‧기존 정당 흡수

    • 갈등국면에서 지지율 ‘반사효과’ 평가절하하기도

    • “대선 1년은 조선왕조 500년보다 길다”…예측불허

    • 언론 검증공세 겪으며 尹 정치력 보여줘야

    3월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총장직 사의를 밝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뉴시스]

    3월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총장직 사의를 밝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뉴시스]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저는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 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검찰에서 제가 할 일은 여기까지이다. 그러나 제가 지금까지 해온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3월 4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사퇴 입장문) 

    차기 대선을 1년 앞두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검찰 내 대표적인 ‘칼잡이’로 불렸던 윤 전 총장이 정계입문 및 차기 대권 도전에 나설 것이 확실시되면서 여야 정치지형도 요동치고 있다. 문재인 정부 개국공신에서 반(反)문재인 진영의 상징으로 부상한 그의 향후 행보에 따라 차기 구도는 한순간에 허물어질 수 있다. 윤 전 총장의 사퇴에 여권이 극도의 경계심을, 야권이 끝없는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다. 

    특히 4월 재‧보궐선거 성적표에 따라 정치권의 합종연횡 및 정계개편도 필수코스다. 정치적 주가가 최고로 급등한 윤 전 총장의 거취가 최대 변수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지속적인 차기 인물난에 시달려온 야권의 차기 지형이 급변할 수 있다. 아울러 윤 전 총장을 향한 국민적 지지세가 유지된다면 문 대통령의 레임덕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 이제 남은 건 윤 전 총장의 선택이다. ‘법조인에서 정치인으로, 검찰총장에서 유력 차기주자로의’ 화려한 변신이 가능할까. 전망은 엇갈린다.


    조국·추미애와 血戰…‘우리 총장님’에서 反文 상징으로

    2019년 7월 25일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윤 신임 검찰총장에게 “우리 윤 총장님”이라고 부르며 각별함을 드러냈지만 3월 4일 윤 총장이 사의를 표명하자 한 시간여 만에 수리했다. [동아DB]

    2019년 7월 25일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윤 신임 검찰총장에게 “우리 윤 총장님”이라고 부르며 각별함을 드러냈지만 3월 4일 윤 총장이 사의를 표명하자 한 시간여 만에 수리했다. [동아DB]

    윤 전 총장은 현 정부에서 롤러코스터와 같은 극적인 반전을 경험했다. 국정농단 수사를 통해 현 정부 탄생 일등공신이었지만 반문(反文)진영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문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친문진영이 열광한 우호적 관계였지만, 점차 사이가 나빠지다가 검찰 문을 나서면서는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이 됐다. 

    대표적인 강골검사였던 윤 전 총장은 과거 박근혜 정부 시절 이른바 ‘국정원 댓글수사’로 어려움을 겪었다. 평검사로 좌천당하는 굴욕도 맛봤지만, 현 정부 출범 이후에는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인사권자인 문 대통령과도 찰떡궁합을 과시했다. 2017년 5월 현 정부 출범 직후 서울중앙지검장에 파격 발탁되더니 2년 뒤인 2019년 7월에는 검찰 총수의 자리에 올랐다. 문 대통령은 “우리 윤 총장님”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애정을 보였다. 당시 문 대통령은 “청와대, 정부, 집권 여당에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엄정한 자세로 임해 달라”며 살이 있는 권력에 대한 적극 수사도 주문했다. 검찰개혁을 주요 국정과제를 내세웠던 여권 또한 윤 전 총장에 대해 절대적 신뢰를 보냈다. 초대 대통령민정수석을 거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장관에 지명되자 “‘조국·윤석열 환상의 투톱이 등장했다”며 환호했다.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검찰이 장관 후보자 신분이던 조 전 장관과 일가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를 시작하면서 이상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른바 ’광화문 vs 서초동‘으로 국론이 양분된 조국사태 이후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조 전 장관은 여론악화에 취임 한 달여 만에 물러났다. 후임으로 추미애 체제가 들어섰지만 갈등은 오히려 더 격렬해졌다. 검찰 간부인사를 놓고 추 전 법무부 장관과 윤 전 총장은 사사건건 대립했다. 특히 추 전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과 윤 전 총장에 대한 직무배제 및 징계청구를 놓고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윤 전 총장은 이 과정에서 차기 대권주자로 급부상했다. 여권이 때리면 때릴수록 정치적 체급이 수직상승했다. 윤 전 총장은 사실상 조국·추미애 전 장관을 연쇄 경질시키면서 이재명 경기지사,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빅3 구도‘를 형성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다만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 등 검찰개혁을 둘러싼 여권과의 극심한 파열음을 이기지 못하고 27년간의 검사생활을 스스로 마무리했다.


    인터뷰→ 대구→ 사의표명…긴박했던 ‘고뇌의 시간’

    “검찰 수사권의 완전한 박탈은 민주주의의 퇴보이자 헌법정신의 파괴다.” 

    중수청 설치를 놓고 여권과의 격렬한 대치전선을 이어가던 윤 전 총장의 지난 며칠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했다. 긴박했던 고뇌의 시간이었다. 작심한 듯 언론을 통한 여론전이 시작이었다. 현직 검찰총장의 언론 인터뷰는 사실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만큼 다급했던 것이다. 윤 전 총장은 3월 2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수청 논란과 관련 “단순히 검찰 조직이 아니라 70여 년 형사사법시스템을 파괴하는 졸속 입법이다. 힘 있는 세력들에게 치외법권을 제공하는 것”이라면서 “직을 걸어 막을 수 있는 일이라면 100번이라도 걸겠다”고 강조했다. 

    다음날 대구 방문에서는 정치입문 가능성을 내비치며 한걸음 더 나아갔다. 권영진 대구시장이 직접 마중을 나간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게다가 대구고검 방문 현장에는 여야 유력 정치인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지지자들의 열렬한 환호가 넘쳐났다. 윤 전 총장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부패완판(부패가 완전히 판치게 된다)”이라며 중수청 설치를 맹비난했다. 정계입문 여부를 묻는 질문에도 “이 자리에서 드릴 말씀이 아니다”고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윤 전 총장이 보수의 심장이자 국민의힘 텃밭인 대구를 방문한 것 자체가 예사롭게 볼 수 없다는 분석이 나왔다. 

    윤 전 총장은 4일 대검찰청 출근길에서 마침내 칼을 빼들었다. 사퇴 입장문에서 “오늘 총장을 사직하려고 한다. 이 나라를 지탱해 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며 “검찰에서 제 역할을 여기까지”라고 밝혔다. 특히 “지금까지 해온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며 정계입문을 강하게 시사했다. 짧은 문장이지만 대선 출사표를 요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는 7월 임기 만료 4개월을 앞두고 스스로 거취를 정리한 것이다. 청와대는 윤 전 총장의 사의 표명 이후 약 한 시간 만에 사표를 전격 수리하면서 불쾌감을 드러냈다.


    尹 등판과 野 정계개편

    이제 윤 전 총장의 향후 행보를 둘러싼 최대 관심사는 정계진출 여부다. 구체적으로는 윤 전 총장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정치 도전을 선언하느냐다. 윤 전 총장의 등판 여부에 따라 한 달 앞으로 다가온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는 물론 여야의 차기대권 구도, 내년 3월 차기 대선에까지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여야 모두 주판알을 튕기며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여권은 견제구를 날리면서 날선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지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온 여권 우위 차기 지형이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추 전 장관은 “그분의 정치 야망은 이미 소문이 파다했다. 이 정권으로부터 탄압을 받는 피해자 모양새를 극대화한 다음에 나가려고 계산을 했던 것 같다”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대선에 참여하는 명분으로 삼는 이런 해괴망측한 일이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비판대열에는 민주당 지도부도 가세했다. 이낙연 대표는 “공직자로서 상식적이지 않은 뜬금없는 처신”이라고 꼬집었고, 김태년 원내대표도 “윤 전 총장의 주장은 과대망상 수준”이라고 밝혔다. 역설적으로 민주당의 거친 비판 수위는 윤 전 총장의 정치적 파괴력을 경계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극심한 차기 인물난에 시달려온 야권은 환영 일색이다. 야권은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가 21대 총선 직전 이낙연 대표와 자웅을 겨뤘을 뿐 대부분의 대선 주자들이 지지율 5% 미만의 도토리 키재기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야말로 풍요 속의 빈곤이었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과의 정면대결 속에서 스스로 거취를 정리한 윤 전 총장이야말로 매력적인 정치적 자산이다. 

    한때 윤 전 총장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던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현재로서는 여권과 각을 세우고 나왔으니까, 본인이 결국 어떻게 결심할지는 모르지만 야인이 된 건 사실”이라면서 회동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주호영 원내대표 또한 “필요하면 윤 총장과 힘을 합쳐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앞으로도 굽힘없이 대한민국을 위해 같이 노력해주길 기대한다”고 공개적인 러브콜을 보냈다.


    윤석열의 홀로서기, 엇갈린 전망

    윤 전 총장은 장외 블루칩이다. 레임덕과는 무관할 것으로 여겨졌던 문 대통령을 두 번이나 코너에 몰아넣은 전력도 있다. 과거 조국사태 및 추-윤 갈등이 최고조였을 때였다. 현 정부와 공식적인 이별을 선택한 윤 전 총장이 ‘정치도전’이라는 광야로 나왔다. 당분간 정치권과는 거리를 두며 정중동 행보를 이어가겠지만, 조만간 차기도전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윤 전 총장이 본격적인 정치 도전에 앞서 대중강연, 저서발간, 방송출연 등으로 자신의 진정성을 국민에게 호소하는 ‘정치적 몸 풀기’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윤 전 총장의 차기 대선 경쟁력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우선 낙관론이다. 차기 대권지형에서 태풍의 눈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연말연초 주요 여론조사기관의 차기 지지율 조사에서 ‘빅3 구도’를 형성했던 점을 고려하면 국민적 지지가 탄탄하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차기 대선 최대 승부처로 꼽히는 중도층 공략의 최적임자라는 평가도 나온다. 진영과 이념에 기반 한 적대적 여야 정치구조 하에서 여야 어느 편에도 휘둘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조직과 세력이 없다는 약점이 있지만 차기 경쟁력을 발판으로 신당 창당에 나서거나 기존 보수정당을 흡수하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 

    게다가 4월 재‧보선을 전후로 한 정치지형이 윤 전 총장에게 나쁘지 않다. 윤 전 총장의 일거수일투족에 언론과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윤 전 총장의 언행은 재보선 표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만일 윤 전 총장이 작심하고 정치적 메시지를 쏟아낼 경우 여권으로서는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다. 4차 재난지원금 지급은 물론 가덕도 신공항 추진 등 메가톤급 이슈로 역전승을 노렸던 민주당이 선거에서 참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제3지대 유력주자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최종 당선될 경우 야권발 정계개편 가속화된다는 점은 그에게 유리한 요소다. 국민의힘과 직접 손을 맞잡기보다는 제3지대 잔류 또는 신당 창당을 추진할 것으로 보이는 윤 전 총장의 향후 행보가 더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비관론도 있다. 지금은 국민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마지막에는 ‘찻잔 속 태풍’에 그치고 말 것이라는 분석이다. 윤 전 총장의 경쟁력이 정권과의 갈등국면에서 필요 이상으로 과대평가됐다는 반론이다. 야권에 마땅한 차기 주자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조국·추미애 전 장관과의 갈등국면에서 누린 ‘반사효과’라는 평가절하다. 여의도 정치권에는 “차기 대선까지 1년이라는 시간은 조선왕조 500년보다 길다”는 농담이 있다. 예측불허의 변수들이 넘쳐나서 한 치 앞도 예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더구나 윤 전 총장은 강직한 법조인의 이미지가 강할 뿐 대선주자로서 반드시 갖춰야 할 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식견은 물론 경제, 교육, 복지, 청년·여성정책 문제에 대한 입장은 여전히 베일이 가려져 있다. 

    여기에 정글과 다를 바 없는 정치무대에 등장하는 순간 혹독한 검증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유력 정치인이 대권에 도전하면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속된 말로 ‘탈탈 털린다’. 윤 전 총장 역시 여권과 언론의 검증공세를 피해갈 수는 없다. 이 때문에 그가 차기대선의 깃발을 들었다 하더라도 과거 고건 전 국무총리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처럼 차기 대권 레이스를 완주하지 못하고 중도하차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없지 않다. 어쨌든 윤석열의 반문정치는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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