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호

巨與 입법 폭주…“국회의 ‘탈법치’, 문재인판 유정회”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1-02-2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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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헌법학자 장영수 “헌법 테두리 벗어난 ‘탈법치’, 유정회와 똑같아”

    • 공수처법·국정원법에서 판사 탄핵소추까지

    • 민주당, 항구적 다수파 등극 가능성↑

    • 與의 ‘反기득권 레토릭’은 포퓰리즘

    • ‘상호 관용’ ‘제도적 자제’가 민주주의 규범

    • “다수결이 국민주권 부정하면 폭주”

    • “선거가 모든 것을 정당화하지는 않아”

    2020년 12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가정보원법 전부개정법률안이 재석 187인, 찬성 187인으로 통과되고 있다.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2020년 12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가정보원법 전부개정법률안이 재석 187인, 찬성 187인으로 통과되고 있다.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여당은 폭주했고 야당은 무력했다. 세력 간 파열음이라고 하기에는 권력의 무게추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기울었다. 지난해 12월 더불어민주당은 5·18특별법(9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10일), 국정원법 개정안(13일),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14일) 등 쟁점 법안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불과 닷새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각 법안의 찬성표를 순서대로 나열하면 174, 187, 187, 187표다. 2월 4일에는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법관(임성근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찬성 179표로 가결됐다. 이내 입법 폭주라는 말이 나왔다.

    ‘30~34%의 보수’가 뉴노멀

    현재 민주당 의석은 174석이다. 민주당과 전략적 협력관계인 군소야당 의석은 11석(정의당 6석, 열린민주당 3석, 기본소득당 1석, 시대전환 1석)이다. 박병석 국회의장과 여권 성향 무소속 4석(이용호, 김홍걸, 이상직, 양정숙 의원)을 합하면 190석이 된다. 적게는 174석에서 많게는 190석이 현재 범여권의 세(勢)다. 법적으로만 보면, 민주당이 21대 국회에서 할 수 없는 일은 200석이 필요한 개헌 말고는 없다. 물론 패권을 쥔 민주당이 권력구조의 대수술이 필요한 개헌에 나설 이유는 없다. 

    민주당의 거침없는 폭주를 지탱하는 기둥은 달라진 ‘정치 운동장’이다. 단기적으로는 여론이 출렁여도 전반적인 정치 지형이 자신들에 유리하다는 판단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민주당은 싫지만 국민의힘은 혐오스럽다”는 표현은 오늘날의 정치 지형을 가장 압축적으로 상징하는 문구다. 변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흐름을 이해하려면 몇 차례 총선과 대선에서 각 진영이 얻은 득표율의 추이를 살펴야 한다. 

    2012년 4월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비례대표 정당득표율은 42.8%였다. 이 숫자는 4년 뒤 33.5%로 쪼그라들었다. 국민의당이 26.7%를 가져가면서 표가 갈렸다는 분석이 나왔다. 당시 국민의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던 이상돈 전 의원은 “수도권에 있는 호남 출신 유권자에 더해, 지역구에서는 새누리당 후보를 찍었지만 비례대표는 국민의당을 찍은 유권자가 적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2017년 5월 19대 대선에서 홍준표(자유한국당)·유승민(바른정당) 후보가 얻은 지지율 합계는 30.8%였다. 이때 역시 안철수(국민의당) 후보가 21.4%를 득표했다는 이유를 댈 수 있었다. 탄핵 사태 직후 치러진 선거라는 ‘핑곗거리’도 있었다. 즉 ‘보수의 축소’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는 해석이 많았다. 

    2020년 4월 21대 총선에서 미래한국당은 33.8%의 비례대표 정당득표율은 기록했다. 강력한 제3당이 소멸했고 통합에 성공해 단일 대오를 구축했는데도 득표율은 제자리걸음을 했다. 그사이 민주당의 비례대표 정당득표율은 7.9%포인트가 올랐다. 국민의당을 찾아 보수의 울타리를 떠났던 유권자 중 일부는 민주당으로 갔고 또 일부는 무당파가 됐다. 즉 ‘30~34%를 득표하는 보수’는 한국 정치의 뉴노멀(New Normal)이다. 결론은 이렇다. 이제 보수가 한 깃발 아래 총결집해도 범여권을 이기기 어렵다. 민주당이 항구적으로 다수파를 차지하면 입법·행정 등 권력 운용의 열쇠 역시 민주당이 쥔다. 민주당으로서는 자신들이 야당이던 시절 숙원으로 삼았던 법안을 속도전 형태로 쏟아내기에 지금만큼 좋은 시기는 없다.



    민주주의 지키는 건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0년 12월 14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이 가결되자 김태년 원내대표와 주먹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0년 12월 14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이 가결되자 김태년 원내대표와 주먹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민주당의 폭주를 지탱하는 또 다른 기둥은 반(反)기득권의 레토릭(rhetoric)이다. 기득권을 쥔 세력이 이해관계를 따져 개혁에 반대하니 결연히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서민을 대변하는 투사로 포장한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공수처법 개정안 투표를 엿새 앞둔 지난해 12월 4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검찰개혁의 대의가 사라져선 안 되고 그렇게 돼서도 안 된다”면서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민주 정부는 권위주의와 선민의식에 젖은 권력기관 개혁을 위해 노력해 왔으나 그때마다 기득권 세력의 조직적 저항으로 좌절되곤 했다”고 말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1월 4일 페이스북에 “촛불은 비단 박근혜 탄핵만을 위해 켜지지 않았다. 불의한 정치권력은 물론 우리 사회 강고한 기득권의 벽을 모두 무너뜨리라는 명령이었다”며 “검찰개혁, 사법개혁은 물론 재벌, 언론, 금융, 관료 권력을 개혁하는 것으로 지체 없이 나아가야 하는 이유”라고 썼다. 

    이런 레토릭에 따르면 야당과의 타협은 기득권과의 ‘협잡’이 된다. 입법 폭주는 과업을 완수하는 데 부득이하게 거쳐야 할 작은 진통에 불과해진다. 형식상 국회법이라는 절차를 지키고 있다는 점은 이들에게 면죄부를 부여한다. 

    미국 하버드대 교수인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Steven Levitsky)와 대니얼 지블랫(Daniel Ziblatt)이 보기에 이는 민주주의를 가장한 포퓰리즘이다.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연구의 권위자인 두 사람은 포퓰리스트가 어떤 조건에서 잉태하는지, 또 선출된 권력이 ‘합법’이라는 외피로 어떻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 면밀히 연구했다. 그 결과가 담긴 책이 2018년 출간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다. 책의 토대는 이들이 ‘뉴욕타임스’에 쓴 칼럼 ‘트럼프는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가?’다. 책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나오는데, 묘한 기시감이 든다. 

    “그들은 자신이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부패하고 음모를 꾸미는 엘리트 집단과 전쟁을 벌이겠다고 주장한다. 또 지금의 통치 시스템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며, 엘리트 집단이 독점한, 부패하고 상처 입은 가짜 민주주의임을 유권자에게 강조한다. 포퓰리스트는 엘리트 집단을 처단해서 권력을 ‘국민’에게 되돌려 주겠다고 약속한다.” 

    레비츠키와 지블랫은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상호 관용(mutual tolerance)과 제도적 자제(institutional forbearance)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상대를 적이 아닌 경쟁자로 존중하고, 설사 제도상 용인된 권한이라 해도 자제 혹은 절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두 요소는 선순환한다. “정치인이 상대를 정당한 경쟁자로 받아들일 때 그들은 ‘자제의 규범’도 기꺼이 실천하려” 들기 때문이다. 

    이들의 눈에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이 두 가지 규범이 붕괴해 버린 결과다. 결국 민주주의를 지키는 건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이다. 균형과 견제를 바탕에 둬 세계적으로도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 미국 헌법도 트럼프의 출현을 막지 못했다. 미국 헌법과 크게 다르지 않은 헌법을 갖춘 유럽과 중남미 여러 국가도 ‘선출된 독재자’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법과 절차에 따랐다는 명목하에 폭주하는 여권이 되새겨볼 대목이 적지 않다.


    “다수니까 마음대로 한다? 유정회와 무엇이 다른가”

    한국 헌법학의 대가인 장영수(61)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당의 입법 폭주에 대해 심각히 우려하고 있다. 그는 ‘헌법학’ ‘대한민국 헌법의 역사’ ‘민주헌법과 국가질서’ ‘기본권론’ 등의 책을 썼다. 또 헌법재판소 연구위원과 국회 헌법연구 자문위원,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정치학자인 레비츠키와 지블랫이 트럼프의 출현을 보며 미국 민주주의를 성찰했다면, 헌법학자인 장 교수는 ‘문재인 시대’를 살면서 법치주의가 어떤 식으로 훼손당하는지 4년간 지켜봤다. 그가 내린 진단서는 레비츠키와 지블랫의 그것과 결이 통한다.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여당의 입법 폭주가 헌법 파괴라고 보나. 

    “그렇다. 입법부는 헌법의 테두리 내에서 법률을 만들어야 하고, 법률을 통해 국가 질서의 기본 방향을 정한다. 지금은 계속 테두리에서 벗어나고 있다. ‘탈법치’다.” 

    - 여당이 입법의 효율성만 따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효율성도 아니다.” 

    - 자신들은 개혁 과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용어 사용에 엄밀해야 한다. 도대체 ‘개혁이 무엇이냐’부터 따져봐야 한다. 여당에서 그때그때 말이 바뀌는 게 너무 많다.” 

    - 입법 과정에서 말인가. 

    “그렇다. 민주당은 ‘다수로서 정당한 권한을 행사하는데 왜 폭주냐’고 한다. 다수결이 민주주의의 중요한 요소인 건 맞다. 하지만 다수결이 국민주권을 부정하면 인정될 수 있나.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다원주의다. 다양한 의사가 존중되는 가운데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대화·타협으로 문제가 100% 해결되는 건 아니니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고, 그때 어쩔 수 없이 다수결로 가자고 하면 말이 된다. 하지만 다수니까 마음대로 하겠다면 민주주의 정신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다. 다수가 다른 의견을 수렴하는 데 노력하고, 경우에 따라 상대 의견의 일부를 수용하겠다고 하면 독주니 폭주니 하지 않는다. 과반 의석이 아닐 때는 공수처법에서 야당에 비토권을 주겠다고 해놓고 다수 의석을 확보하고 나니 ‘반대하건 말건 비토권 없애겠다’는 게 폭주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폭주인가. 결과가 정당하면 절차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것은 법치가 아니다.” 

    - 박정희 정권 시절의 유정회를 재현하는 행태라고 주장했던데, 

    “다수니까 다 할 수 있다는 게 그것(유정회)과 무엇이 다른가. 그때도 다수였다. 선거를 통해서 여야가 거의 반반의 구도가 됐지만 유정회가 여당에 붙으니 (범여권이) 절반을 훨씬 넘었다. 그러고서 ‘우리가 다수니까’라고 했다.” 

    - 선거라는 절차를 거친 연성 독재라고 표현하는 지식인도 있다. 

    “선거가 모든 것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여당은 선출된 권력이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쓴다. 박근혜 정부는 선출된 권력이 아니었나? 대선 득표율은 박 전 대통령이 더 높았다. 그때는 (지금의 여당이) 대통령이 (추진하는 법안이라) 하더라도 안 된다고 해놓고 지금 와서는 선출된 권력이니 (추진해도) 괜찮다? 앞뒤가 안 맞는 얘기다.”

    민주주의의 토양은 어떻게 단단해지나

    다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로 돌아가자. 레비츠키와 지블랫은 “민주주의 제도를 기반으로 트럼프가 실패하게 만들 수 있다면 미국 민주주의 토양은 더욱 단단해질 것”이라고 했다. 당시 미국 정치권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규범에 얽매이지 말고 트럼프에 맞서 트럼프처럼 싸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레비츠키와 지블랫이 보기에 이는 전체주의로 가는 지름길이다. 자칫 트럼프보다 훨씬 위험한 대통령을 불러들일 위험도 키운다. 

    결국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권력자에게 맞설 방법은 선거뿐이다. 2021년 미국에서는 “미국을 다시 세계의 존경받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조 바이든이 대통령에 취임했다. 문제는 한국이다. 1년 뒤면 차기 대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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