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호

가입은 즉시, 해지는 진땀…구독경제의 ‘두 얼굴’

소비자 피해 늘어나자 디지털 구독 환경 반영한 법 개정 나서

  •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입력2021-02-1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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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투자 은행 크레디트 스위스는 2016년 4200억 달러(470조 원) 규모였던 구독경제 시장이 2020년 5200억 달러(59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GettyImage]

    글로벌 투자 은행 크레디트 스위스는 2016년 4200억 달러(470조 원) 규모였던 구독경제 시장이 2020년 5200억 달러(59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GettyImage]

    “정기 구독하는 연‧월간 서비스가 7개나 되더라고요. 사용빈도가 높은 상품만 빼고 정리하려 합니다.”

    평소 독서를 즐기는 대학생 노모(24) 씨는 지난해 5월 출판사가 운영하는 ‘책 구독 서비스’ 상품에 가입했다. 책 4권과 함께 저자 강연 등을 제공하는 상품이었다. 이를 포함해 노씨가 가입한 상품은 영상·음악·게임 등 모두 7개. 지난 1년 간 낸 구독료는 40만 원이다. 이는 노씨의 한 달 용돈에 해당한다.

    바야흐로 구독경제 시대가 됐다. 글로벌 투자은행 크레디트 스위스는 2016년 4200억 달러(470조 원) 규모였던 구독경제(subscription economy) 시장이 2020년 5200억 달러(590조 원)로 성장했다고 발표했다.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온라인동영상 스트리밍서비스) 서비스뿐 아니라 식음료‧자동차‧집안일까지 다양한 상품 및 서비스를 구독할 수 있다.

    구독경제는 일정 금액을 내면 정기적으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으로, 영상‧음악 등 문화콘텐츠부터 셔츠‧면도기 등 생필품이나 식음료까지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 빨래를 대신 해주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국내 양대 포털사이트 운영사도 구독 사업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5월 네이버는 쇼핑 결제액 5%를 적립해주는 서비스와 자사 디지털 콘텐츠를 결합한 월 구독 상품을 내놨다. 카카오는 1월 카카오톡 이모티콘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다. 일정 금액을 내면 이모티콘을 무제한으로 사용하는 서비스다. KT경영경제연구소는 국내 구독경제 시장 규모를 40조 원(2020년 기준)으로 추산했다.



    ‘자물쇠 효과’과 ‘구독 피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 1372 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콘텐츠 관련 상담 중 계약해제‧해지‧위약금 관련 상담이 35.8%를 차지했다. [한국소비자원 제공]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 1372 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콘텐츠 관련 상담 중 계약해제‧해지‧위약금 관련 상담이 35.8%를 차지했다. [한국소비자원 제공]

    구독경제를 통하면 소비자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재화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기업은 고객을 안정적으로 유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 번 들어온 고객이 특정 서비스를 이용하면 다른 서비스로 이동하는 일이 어려워지는 ‘자물쇠 효과’(Lock-in Effect)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은 월 1만 원 이내의 저렴한 구독료와 무료 프로모션 기간을 걸고 가입을 유도하기 때문에 소비자 처지에선 ‘구독 피로’(subscription fatigue)를 호소하게 되거나, 가입할 때와 달리 해지가 어려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50대 이모 씨는 스마트폰을 구입하며 OTT 무료 이용 프로모션에 가입했지만. 프로모션이 끝난 뒤 유료로 전환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20개월간 스마트폰을 사용했다. 뒤늦게 매달 요금이 빠져나간 사실을 알게 된 이씨는 업체 측에 환불을 요청했으나 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이는 한국소비자원이 접수한 부당행위 사례로, 무료 프로모션 기간이 지난 뒤 ‘유료 전환을 한다’는 고지 없이 자동 결제한 것이다. 이른바 ‘자물쇠 효과’를 악용해 비합리적인 소비를 부추긴 것. 계약 해지 시 남은 결제액을 돌려주지 않는 사례도 있다.

    실제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12월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에서 엔터테인먼트 등 5개 카테고리에서 다운로드 순위가 높은 앱 25개를 분석한 결과, 21개 앱이 정기 결제 서비스를 해지하면 그 효력이 다음 결제일에 발생했다. 해지 신청 후 다음 결제일까지 남은 일수에 대한 금액은 돌려받지 못한 것이다. 2018~2020년 3년간 ‘1372 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콘텐츠 관련 상담(609건) 중 35.8%(218건)도 계약해제‧해지‧위약금 관련 상담이었다.

    ‘구독 피로도’ 큰 중장년

    IT 기기 작동이 익숙지 않은 중장년충의 ‘해지 피로도’는 더욱 심각하다. 한 음원 플랫폼에서 가입한 구독 상품을 해지하려면 로그인 후 7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비밀번호도 한 번 더 입력해야한다. 여기에 향후 일정 기간 동안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는 홍보 내용도 봐야 한다. 반면 정기 결제 가입은 메인 페이지에 나와 있는 버튼을 누른 뒤 결제 정보를 입력하면 끝이다. 일부 외국 업체가 운영하는 구독 상품을 해지하려면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해지 후 환불 절차에서 영어로 소통해야하는 경우도 있다.

    박모(56) 씨는 “가입한 구독 서비스가 많아지며 잘 쓰지 않는 음악 스트리밍 상품을 해지하려고 설명대로 따라했지만 세 번 실패해 결국 포기했다”며 “딸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이처럼 소비자들의 불만이 이어지자 금융위원회는 1월 3일 여신전문금융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구독 상품을 무료 체험 후 유료로 전환할 때 전환 시점 7일 전에 문자나 전화 등으로 미리 안내해야한다. 유료로의 전환을 한 번 더 고지해 소비자가 판단하라는 의미다. 또한 모바일 앱‧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간편하게 구독 상품을 해지할 수 있어야 하고, 해지 시 사용한 일수를 제외한 나머지 지불 금액을 환불해야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가령 한 달에 9000원을 내고 이용하는 서비스를 10일(한 달의 3분의 1) 사용하고 해지했다면 6000원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 사항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구독 서비스 업체가 아닌 결제대행업체에 과태료가 부과돼 실질적 효과에 대해선 미지수다.

    새로운 서비스 유형 법에 반영해야

    물론 개정안 외에도 구독 경제 소비자의 해지 조치를 규정하는 법도 있다.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전자상거래법) 제17조에 1항에 따르면, 소비자는 통신판매 사업자와 계약 후 7일 이내 청약 철회가 가능하다. 또, 전자상거래법 제21조 1항은 통신판매 사업자가 거짓된 사실이나 기만하는 방법으로 청약 철회를 방해하면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구독 서비스 자동연장이나 일(日) 단위 환불에 대한 자세한 규정은 명시돼 있지 않다.

    지난해 12월 30일 국무총리실 산하 소비자정책위원회는 소비자를 기만하는 불공정행위를 막고 변화하는 디지털 환경을 반영해 전자상거래법을 전면 개정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구독 서비스 업체는 전자상거래법, 전기통신사업법, 콘텐츠산업진흥법 등 다양한 법의 규제를 받지만 기존 법령은 스트리밍 서비스 등 새로운 서비스 유형이 등장하지 않았을 때 만들어진 법”이라며 “디지털 구독 경제 서비스 전반을 포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법령이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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