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호

갓 법복 벗은 부장판사가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보낸 편지

“대통령이 판사 앞에서 ‘촛불정신’ 말하던 날, 난 사표를 썼다”

  • 김태규 전 부산지법 부장판사 taekyuster@gmail.com

    입력2021-02-2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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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관으로 일하며 가장 불쾌했던 날

    • 대통령의 자신감과 법원의 비굴함

    • 정권이 사법부 전체를 차지하는 방법

    • 법원 안에서 법원을 허무는 자들

    • 정권 독주에 스스로 무릎 낮춘 사법부

    김태규 전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현직 판사 시절 법조계 안팎 현안에 대한 소신을 거침없이 밝혀 ‘Mr. 쓴소리’로 불렸다. 2월 22일자로 법복을 벗은 그가 사법부를 떠나며 느끼는 소회를 ‘신동아’에 보내왔다. <편집자 주>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9월 1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9월 1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8년 9월 13일 대한민국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사법부뿐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국민에게 경사스러운 날이 될 수 있었지만, 나는 법관으로 근무하던 중 가장 불쾌했던 날로 기억한다. 대통령이 대법원 중앙홀에서 ‘사법 70주년 기념사’를 하면서 한 말 때문이다. 

    “1700만 개의 촛불이 헌법 정신을 회복시켰고, 그렇게 회복된 헌법을 통해 국민주권을 지켜내고 있습니다. (중략) 저는 촛불 정신을 받든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 절감하고 있습니다. 그 무게가 사법부 (중략) 라고 다를 리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무엇이 잘못인지 각성하기 어렵고, 또 어떤 사람은 명문에 깊은 감명을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날 흥분한 나머지 혼자 사직서를 작성하고는 울분에 차서 평소 교류하는 선배 법관에게 전화해 격정을 토로했다. 흥분이 가라앉은 뒤 사직서는 없앴지만, 그날의 모멸감은 지금까지 잔향으로 남아 있다.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지지기반을 형상화한 이미지를 국가 최고 가치로 추어올리고, 그것을 헌법 정신과 등치(等値)한 것은 헌법을 지극히 무례하고 자의적으로 평가한 행위다. 또 이러한 평가를 법원이 받들어야 한다고 말한 것은 법원을 자신이 얼마든지 향도(向導)할 수 있는 조직으로 본 것으로 이해됐다. 이런 모욕적 표현에 오히려 화답하며 “국민주권을 회복했다”고 답사하는 대법원장 기념사에 아마 상당수 법관은 더 큰 절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가정해 보자. 훗날 촛불시위를 주도하던 세력이 쇠퇴하고, 태극기 시위를 주도하던 세력이 부상했다. 그들이 지지하는 대통령이 대법원 중앙홀에 와서 “태극기 정신을 사법부가 받들어야 한다”라고 말하면, 과연 현 정권 구성원과 그 극렬 지지자들은 수긍하고 가만히 있을까. 촛불 시위든 태극기 시위든 이미 정치화돼 굳어진 이미지를 대법원 안마당에 들이면 안 된다. 조금만 생각하고 입장을 바꿔보면 바로 알 수 있는 일을 대통령이 아무 문제의식 없이 말했다.
     
    대통령의 이런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생각해 보면 결국 사법부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법원에서 그런 정도 언사를 해도 누구 하나 자신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지적하지 않을 것이라는 여유와 사법부에 대한 무시가 배경에 있었다고 본다. 

    나는 그날 ‘대한민국 법원’이 새겨진 책자 위에 촛불을 얹은 사진을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대한민국 법원 위에 올라탄 촛불의 오만함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얼마 후 법조인 후배 한 명이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와 “선배님, 그 사진을 빨리 내리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권유했다. 많은 법조인이 그렇게 촛불로 형상화된 권력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살았다. 당시 정권은 사법부를 일개 행정부처에도 못 미치는 위상으로 보고 있었을지 모른다. 대법원장은 이런 대통령의 사법부 독립에 대한 몰이해를 지적할 의지가 전혀 없었다. 

    정권이 찍은 자들에 대한 구속영장은 마치 자동판매기가 물건을 내놓듯 발부됐고, 정권이 지키려는 자들에 대한 구속영장은 마치 자동판매기에 불량 주화를 넣은 듯 기각되는 사례가 빈번했다. 판사끼리 사석(私席)에 모여 구속영장 발부 가능성을 가늠하면서, 해당 사안 내용이나 소명자료 구비 여부를 따지는 게 아니라, 영장담당 판사 성향을 참작해 의견을 내놓았다.

    정권이 대법원 전체를 차지하는 방법

    정권을 가진 자가 사법부를 장악하려 하는 것은, 옳지는 않지만 당연한 심정의 발로일 수 있다. 물론 법원이 검찰처럼 능동적으로 수사하는 권력은 아니다. 하지만 결국 최종 판단이 이뤄지는 곳이니, 법원을 장악하면 그 판단으로 정권의 적을 단죄하고, 정권의 동지에겐 면죄부를 줄 수 있다. 유혹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법원을 장악하는 방법으로는 두 가지가 떠오른다. 하나는 강압으로 정권 요구에 충실하도록 요구하는 방법, 다른 하나는 정권 요구에 충실할 것 같은 자를 사법부에 심는 방법이다. 전자는 직접적이고 당장 효과가 있을 듯 보이지만, 실상은 법관들의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대중은 그런 사법부를 동정하는 태도를 보이게 된다. 들이는 비용에 비해 부작용이 크고 효과가 작다. 반면 사법부 내에 동지를 심는 건 효과적인 방법이다. 저항이 없을 뿐 아니라 개별 사안별로 매번 구체적인 요구를 할 필요가 없다. 모든 사건에서 해당 동지들이 자발적으로 정권에 유리한 판단을 내려줄 것이다. 

    여기서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러니 가정(假定)의 영역에서 고민해 보자. 문재인 정권은 출범 후 사법부 내에서 ‘트로이 목마’가 돼 자기들에게 조력해 줄 내응자(內應者)를 찾았을 수 있다. 그 적임자로 김명수 당시 춘천지방법원장이 물망에 올랐을 가능성이 있다. 전례에 비춰보면 대단히 파격적이고 무리한 인사가 될 수 있지만, 정권 처지에서는 상당한 안전판을 갖게 되는 장점이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대한민국 제16대 대법원장이다. 과거 조진만 대법원장이 3대 및 4대, 민복기 대법원장이 5대 및 6대를 각각 재임했으니, 전직 대법원장 수는 모두 합해 13명이다. 이 중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은 사상 첫 대법원장으로, 당연히 대법관 경력을 가질 수 없다. 그 외 대법원장 12명 가운데 조진만 대법원장을 제외한 전원이 임명 전 대법관 경력을 갖고 있었다. 조진만 대법원장은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1968년 취임한 민복기 대법원장부터 2017년 임기를 마친 양승태 대법원장까지, 약 50년의 세월 동안 대법관을 지내지 않은 사람이 대법원장이 된 전례가 없다. 대법관이 장관급인 점을 감안하면, 장관급 직위를 거치지 않은 사람이 대법원장이 된 경우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처음이자 유일하다. 

    이런 파격 인사를 통해 정권이 노린 수가 무엇인지 추측해 보면 이렇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우리법연구회 회장 출신이다. 이처럼 정권과 공감대가 큰 인물을 승진시킬 필요성이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를 대법관에 임명하면 대법원에서 차지할 비중이 전체 대법관 14명 가운데 1명, 즉 14분의 1에 그친다. 전례를 깨고 무리라는 비판을 감수하며 그를 대법원장으로 임명할 경우, 비중이 14분의 14가 될 개연성이 크다. 대법원장에게는 대법관에 대한 임명제청권이 있다. 대법원장이 정권과 코드가 같다면, 그가 제청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법관의 코드는 충분히 기대할 만하다. 비록 모든 대법관 교체까지 당시로서는 6년의 세월이 필요하긴 했지만 말이다. 

    2017년과 2018년 무렵 세간에는 ‘사법자살’이라는 말이 회자됐다. 법원을 떠난 선배들을 만나면 많은 사람이 “지금 상황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한숨을 쉬며 “대법원장이 왜 스스로 법원을 죽이려드느냐”고 말하곤 했다.

    사법부 안에서 사법부를 허무는 자들

    우리 역사에서 과거 대여섯 차례의 사법파동이 있었지만, 대개 정권이 사법부에 압력을 가하거나, 사법부 수뇌부가 일반 법관을 간섭하는 데 대한 저항이었다. 그런데 2017~2018년에는 전직 대법원장과 전직 법원행정처 소속 법관 등 법원 내에서 더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사람들을 주된 공격 대상으로 삼은 사법파동이 일어났다. 이들을 비판하는 쪽이 오히려 법원 내에서 더 큰 힘을 가진 주류에 해당했다. 형세는 마치 힘이 빠진 전 대법원 수뇌부에게 ‘청산’이라는 날카로운 칼로 보복하는 듯 보였다. 

    물론 동료 법관의 죄를 감싸서는 안 된다. 동시에 분명하지도 않은 의혹으로 동료 법관에 대한 수사를 독촉하며 몰아붙여서도 안 된다. 그런데 당시 사법파동 주역들은 세간에 제기된 의혹이 당연히 진실일 거라 믿고 조사를 거듭 요구했다. 법원 밖에서 ‘사법자살’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게 자연스러웠다. 

    당시 사법부를 허무는 데 큰 구실을 한 건 법원 내 회의체들이다. 그중에서도 전국법관대표회의 역할이 가장 컸다고 생각한다. 애초 전국법관대표회의는,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양승태 대법원장은 임기 말로 영향력을 잃은 상태에서, 특정 성향 법관들이 주동해 만든 조직이다. 이들은 양승태 대법원장을 압박해 기구를 상설화했다. 그리고 철저하게 문재인 정권과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친화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들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에 근무하던 법관들 컴퓨터 파일을 열어보려고 가능한 모든 압박을 가했다. 또 그 내용을 공개하고자 노력했다. 해당 자료를 검찰에 제공하는 데도 지나치게 적극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지켜야 할 적법절차나 영장주의는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법관 탄핵도 당시 이들이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사안 가운데 하나다. 아직 누구 하나 유죄판결을 받지 않았는데, 막연한 의혹과 편향된 일부 언론의 추측성 기사만으로 법관을 탄핵하려 했다. 

    또한 이들은 김명수 대법원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사안들에는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황제노역 논란으로 폐지됐던 지역법관제의 사실상 부활, 법원장 선거제 내지 추천제 도입, 사법행정위원회 도입 등 많은 사안을 전국법관대표회의 내 특정 성향 판사들이 주도해 제안했다. 그 내용이나 제출된 자료 수준이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이 직접 준비했다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충실했다. 놀라운 한편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둔 적이 많다. 이러한 안건은 하나같이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됐다. 반면 정권이나 법원 수뇌부에 불편한 안건은 혹여 비주류 판사들에 의해 제안된다 해도 시간 부족 등을 이유로 상정 자체가 안 되거나, 상정되더라도 압도적인 표차로 부결됐다.

    ‘판사 다수 의견’이라는 허울

    2018년 11월 19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 광경. 이날 모인 전국 법관 대표들은 사법농단 연루 의혹을 받는 법관에 대한 탄핵 필요성에 대해 논의했다. [박영대 동아일보 기자]

    2018년 11월 19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 광경. 이날 모인 전국 법관 대표들은 사법농단 연루 의혹을 받는 법관에 대한 탄핵 필요성에 대해 논의했다. [박영대 동아일보 기자]

    2018년 2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한 재판장을 파면하라”는 청원이 올라온 일이 있다. 이 주장에 동의한 사람 수가 23만 명을 넘어서자 청와대는 그 내용을 법원행정처에 통보했다. 비슷한 시기 “국회의원 급여를 최저시급으로 책정하라”는 내용의 청와대 청원에 대해서는, 지지자가 27만 명을 넘겼음에도, ‘권력분립 원칙’에 반한다는 이유로 국회에 통보하지 않은 터였다. 그래놓고 동의자 수가 오히려 적은 사법부 관련 청원은 법원행정처에 통보했다. 대한변호사협회조차 문제가 심각하다고 봤다. 협회 명의로 ‘재발을 방지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반면 법관들 대표기관인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침묵했다. 그것이 당사자인 법관의 의무를 방기(放棄)하는 것으로 비친다는 생각에, 나는 사법권 독립 침해에 대한 우려를 담은 성명서 초안을 작성해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안으로 제안했다.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장악한 주류 법관들 성향을 알기 때문에 문장 수를 가능한 한 줄이고 표현도 소극적으로 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의안 상정 자체를 미루려 했다. 내가 의안 상정을 강력히 요구하자 회의를 참관하던 법원행정처 심의관까지 나서서 청와대 입장을 변호했다. 이후 주류 판사 다수의 청와대 옹호 발언이 이어졌다. 결국 성명서 채택 의안은 압도적 표차로 부결됐다. 변호사단체도 요구하는 사법부 독립 요구를 거부한 것이다. 그런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이번 김명수 대법원장 거짓말 파문에 침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해 5월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낸 사표를 ‘국회 탄핵 논의’를 이유로 거부해 놓고 국회와 언론에는 “그런 적 없다”고 거짓 해명을 했다. 그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뒤에도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침묵하는 것에 대해 언론 등이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나는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혹자는 임성근 부장판사 탄핵 명분으로 2018년 전국법관대표회의가 법관 탄핵 요구 성명을 채택한 것을 거론한다. 그러나 당시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한 비주류 법관들이 이 회의를 ‘법원 내 정치노조’라고 표현하고, 전국법관대표회의 주류 판사들이 활동하는 국제인권법연구회를 ‘법원 내 하나회’라고 말한 사정을 감안하면, 이 회의체의 공정성을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헌법이나 법률에 근거가 없다. 단지 대법원규칙에 근거를 두고 있을 뿐이다. 그 위상이 대법관회의와 비교할 수 없고, ‘자문기구’인 법원장회의에도 못 미친다. 단순한 ‘건의기구’일 뿐이다. 그런데도 법원을 쥐고 흔들며 모든 처분에 관한 정당성을 가진 듯 처신한다.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가 들어선 뒤 사법부에는 회의나 위원회가 많이 생겼다. 일견 다수 의중을 반영하는 듯해 바람직하고 공정해 보이나, 실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과거 법원 인사나 의사결정에는 관행이 지배하는 영역이 많았다. 자칫 고루해 보일 수도 있지만, 법관이 자기 인사를 예측할 수 있어 인사상 불이익을 우려할 필요가 없었다. 자연스레 소신껏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이를 허물기에 ‘다수의 의사’라는 명분처럼 좋은 게 없다. 특정 위원회를 만들고 그 안에 목소리 큰 사람을 몇 명 심으면, 그들의 추동으로 전체 의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위원회 내에서 강하게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국제인권법연구회 등에서 활동하는 조직화된 사람들이다. 법관이 보통 소극적이고 나서기 싫어하는 품성을 갖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실상 침묵하는 다수 법관의 의중은 묻히고, 조직화된 일부 세력의 영향력만 법원을 덮게 된다. 이런 조직을 통해 전체 법관들 의중을 왜곡하고, 사실상 법원 내 정당처럼 움직이는 국제인권법연구회 해산을 희망한다.

    정권 독주에 스스로 무릎 낮춘 사법부

    최근 문재인 정권의 독주는 깊이를 더해 간다. 국회 상임위원회 대부분을 장악하고, 법의 근본원리를 무시한 입법을 마구잡이로 한다. 최악으로 치닫는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해서는 말도 못 꺼내면서, 북한 전제 권력자의 요구에는 한없이 무너진다. 그러면서 자유주의 정치체제를 지키는 동맹국은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주택거래허가제, 1가구 1주택 원칙, 토지공유제, 이익공유제 등 사유재산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정책이 어색하지 않게 언급된다. 그런 정권 앞에 김명수 대법원장과 일부 정치 법관이 자발적으로 무릎을 꿇었다. 

    이제 ‘사법부 독립’ 같은 말은 피부로 느낄 수 없는 희귀한 용어가 돼간다. 그런 와중에 정권 심기를 건드릴 만한 몇몇 판결이 나오자 2년 전 논의가 사라졌던 법관 탄핵을 갑자기 다시 추진해 국회에서 가결한다. 본인들은 우연이라고 할지 몰라도 보는 사람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6년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로 인해 국정이 사사건건 방해받는다는 생각이 들자 “우리나라 법관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권리를 행사한다”며 불편한 마음을 드러냈다. 이때 초대 대법원장은 대통령에게 “이의 있으면 항소하시오”라고 일갈했다. 

    1891년 러시아 니콜라이 황태자가 일본 시가(滋賀)현 오쓰(大津)를 방문했을 때 황태자를 암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일본은 심각한 외교적 위협에 봉착했고, 이를 풀고자 내각 수뇌부는 해당 암살 시도를 일본 황족에 대한 암살 시도로 봐 대역죄를 적용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당시 일본 대심원장이던 고지마 이켄은 죄형법정주의를 내세우며 사인(私人) 간 모살 미수죄를 적용하려 했다. 사법을 정치로부터 지켜낸 예로 자주 언급되는 이른바 ‘오쓰 사건’ 이야기다. 

    그 옛날에도 사법부 수장들은 사법부를 정치로부터 지키고자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21세기 민주주의와 권력분립의 말잔치가 풍성한 이 시기에 우리는 대한민국 대법원장의 흔적을 찾는다.


    김태규
    ● 1967년생
    ● 연세대 법학과 및 동 대학원, 미국 인디애나대 로스쿨 졸업
    ● 한국해양대 법학박사
    ● 前 헌법연구관, 부산지법 부장판사
    ● 저서: ‘법복은 유니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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