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어린이가 달걀말이 등 다양한 반찬으로 채워진 도시락을 먹고 있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요즘 아이들은 내가 자랄 때보다 훨씬 살뜰한 보살핌과 배려 속에 자란다. 부럽기도 하지만 딱 한 가지가 안타깝다. 그들은 내가 누린 ‘도시락의 시간’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포크 달린 숟가락으로 야무지게 먹던 도시락
1980년대 학교 교실에서 도시락을 먹는 학생들. [동아DB]
같은 김치찌개라도 집집마다 재료가 참치, 돼지고기, 꽁치로 제각각이다. 달걀도 삶아온 아이, 구워온 아이, 돌돌 말아온 아이, 햄을 넣고 볶아온 아이가 있다. 마른반찬이며 장아찌 맛도 다 다르고, 소시지에 뿌려온 것도 고추장, 케첩, 머스터드 등으로 다양하다. 너도나도 숟가락 끄트머리가 포크처럼 생긴 일체형 도구를 써서 친구들 반찬을 야무지게 가져다 먹는다.
어느 날에는 삼삼오오 모여 계획을 세운다. 나물 담당, 달걀프라이 담당, 고추장과 밥 담당, 김과 기타 반찬 담당 등으로 역할을 나눈다. 가장 중요한 건 큰 그릇인데, 아무래도 들고 오기가 번거롭다. 그래서 그릇 담당은 그릇과 숟가락만 챙겨오기로 한다.
이런 날은 마치 점심을 먹으러 학교에 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큰 그릇을 가져온 아이 주위에 모여 각자 가져온 것을 탈탈 널어 넣고 한데 비벼 나눠 먹는다. 거의 고추장 맛으로 먹었던 이 비빔밥이 뭐라고, 지금까지도 다시 먹고 싶은 음식으로 내 맘에 깊게 새겨져 있다.
검은 깨로 흰 밥 위에 앙증맞게 그린 마음
흰 밥 위에 검은 깨를 뿌린 도시락. [GettyImage]
도시락을 열었을 때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는 건 달걀프라이거나, 검은콩‧완두콩‧검은 깨 등으로 흰 밥 위에 앙증맞게 그려 놓은 마음이다.
도시락은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느냐보다 누가 싸줬는지,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먹는지가 더 중요하다. 도시락을 둘러싼 기분과 날씨가 그 음식 맛과 함께 시간에 새겨진다. 먹어 본 사람만이 아는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