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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속까지 파릇파릇, 깨끗한 물처럼 상쾌한 유채 [김민경 ‘맛 이야기’㊾]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 속까지 파릇파릇, 깨끗한 물처럼 상쾌한 유채 [김민경 ‘맛 이야기’㊾]

유채씨를 짜서 만든 유채기름. [GettyImage]

유채씨를 짜서 만든 유채기름. [GettyImage]

며칠 전 친환경 제품 매장에서 사은품을 하나 받았다. 손바닥만한 병에 든 ‘유채기름’이었다. 유전자 변이를 거치지 않은 호주산 유채씨를 저온에서 압착 추출했고, 부자연스러운 화합물이 전혀 들어 있지 않다는 등의 직원 분 말씀이 귀를 지나갔다. 병에 그려진 노란 유채꽃을 보는데 문득 ‘곧, 봄이구나’ 싶다. 노란 불이 머릿속에 켜지는 것 같다. 온갖 것에 무덤덤해진 몸을 깨울 때다. 

봄에 캐 먹는 것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넘친다. 톡 쏘고, 쌉싸래하고, 향이 진하고, 맛도 세다. 여러 가지 것을 작은 몸에 응집시켜 꽁꽁 추운 겨울을 보낸 뒤 봄보다 앞서 파란 움을 틔운다. 우리는 이르게 움튼 것을 먹으며 그 맛과 향으로 봄이 왔음을 느낀다. 달래, 냉이, 씀바귀, 머위, 취 등이 그렇다. 유채도 봄채소 가운데 하나지만 앞서 말한 것들과 조금 다르다. 봄 이파리치고는 맛이 순하고, 언뜻 고소하며, 시원함도 있다. 

유채는 주로 가을에 심는다. 10월 즈음 돋아난 잎을 솎아 먹기도 하고, 봄이 끝날 즈음 심어 여름 열무처럼 먹기도 한다. 하지만 제 맛이 나는 건 겨울 끝에 나는 봄 잎이다. 한겨울에는 마치 다 말라죽은 것처럼 엎드려 있던 유채가 어느 봄날 줄기를 세운다. 그때부터 무럭무럭 자라는데, 꽃대가 생기면 잎이 질겨지니 그 전에 수확한다. 유채가 나오는 때는 대표적인 봄나물보다 조금 늦고 여름 잎채소보다는 일러 그 사이에 먹기 좋다. 맛도 딱 그렇다. 쌉쌀함이 있지만 깨끗한 물처럼 상쾌한 맛도 난다.


은은하고 풋풋한 유채 꽃대의 매력

유채를 무쳐 만든 나물. 밥 반찬으로 그만이다. [GettyImage]

유채를 무쳐 만든 나물. 밥 반찬으로 그만이다. [GettyImage]

유채는 물에 살살 헹궈 물기만 잘 빼 그대로 버무리면 된다. 버무리는 양념도 어지간하면 다 맛있다. 간장, 다진 마늘, 고춧가루, 식초, 매실액을 섞어 새콤달콤하게 무쳐도 좋고, 소금 식초 오일에 버무려 샐러드처럼 먹어도 된다. 소금 넉넉히 뿌리고 매실액과 통깨 끼얹어 버무려 먹으면 반찬과 샐러드 중간쯤의 맛이 난다. 

된장과 고추장으로 양념해도 좋으나 아삭함이 사라지지 않도록 살살 버무리는 게 중요하다. 소스 농도를 좀 부드럽게 해 버무리자. 샌드위치 만들 때 햄과 유채를 같이 넣어도 조화롭고, 루콜라처럼 피자 위에 듬뿍 올려 아삭하게 먹어도 잘 어울린다. 마늘만 넣고 간단하게 만든 오일 파스타에 유채를 수북이 올려 재빠르게 섞어 맛보면 근사한 봄 기분이 난다. 




유채는 기름을 넣고 볶아도 맛있다. [PhotoACwork 제공]

유채는 기름을 넣고 볶아도 맛있다. [PhotoACwork 제공]

유채는 기름진 맛과도 잘 어울린다. 조개류나 새우살 등과 같이 볶아 소금으로 간하면 맛있다. 간장을 넣으면 감칠맛이 더해진다. 매운 고추 송송 썰어 넣으면 입맛 살리기에 제격이고, 돼지고기나 닭고기를 썰어 넣으면 든든한 일품요리가 된다. 유채를 고기나 큼직한 해산물과 섞어 볶은 뒤 두반장과 굴소스로 간을 맞추면 뜨거운 밥에 곁들이기 좋다. 중화풍 양념 사이에서 파릇파릇 살아나는 유채가 또 다른 맛의 재미를 준다. 

유채 꽃대도 별미다. 여린 꽃대를 익히면 은은하고 풋풋한 향은 물론 구수한 맛이 진하게 난다. 호박꽃처럼 얇게 옷을 입혀 기름에 튀기거나, 물이나 기름에 살짝 볶아 심심하게 간해 먹는다. 감자‧브로콜리‧콜리플라워 수프 등에 유채꽃 볶음이나 튀김 조각 가볍게 올려 먹는 맛, 맑은 된장국에 꽃대 넣고 살짝 끓여 먹는 맛은 어느 하나 고를 수 없게 담담하고 좋다. 봄에 심어 여름 전에 수확하는 유채는 열무처럼 김치를 담가 먹을 수 있다. 연한 양념에 버무리거나, 물김치로 시원하게 맛을 내도 된다. 


봄이 무르익는 시기, 전국 각지에서 만날 수 있는 노란 유채꽃. [GettyImage]

봄이 무르익는 시기, 전국 각지에서 만날 수 있는 노란 유채꽃. [GettyImage]

봄나물과 여름 푸성귀 사이 징검다리 같은 유채는 꽃도 그렇다. 봄꽃으로 치면 계절의 끄트머리에 노란 꽃을 온 밭에 펼쳐 놓는다. 바다 건너 있는 따뜻한 제주부터 부산, 남해, 상주, 안산, 안성, 구리, 인천, 한강변 등까지 우리와 멀지 않은 곳에 크고 작은 유채밭이 꽤 많다. 조심스레, 호사스레 유채밭으로 봄 마중 가보고 싶다.



신동아 2021년 3월호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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