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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부채망국論

“성장 둔화, 분배 악화, 실업대란…”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최광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부채망국論

  • ●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최근 5년간 11.3%포인트 급등
    ● 코로나19는 핑계, 감염병 유행 전 이미 ‘슈퍼 확장 재정’ 편성했다
    ● 정부 돈으로 일자리 창출, 경기부양? 현실성 없는 얘기
    ● 정부 ‘무엇을 해야 하나’ 말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나’ 고민해야
최광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우리나라는 기축통화국이 아니고 경제의 해외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국가채무를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해윤 기자]

최광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우리나라는 기축통화국이 아니고 경제의 해외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국가채무를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해윤 기자]

“현재 한국 경제 상황을 인간에 비유하면 중환자와 다를 바 없다. 앓고 있는 병증이 다양하고 모두 심각하다. 성장 둔화, 분배 악화, 투자 절벽, 경기 불황, 양극화 등 각종 문제 때문에 어디 하나 성한 데가 없는 지경이다.” 

최광(74)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진단이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공공정책학, 메릴랜드대에서 경제학을 각각 공부했다. 이후 관계와 학계에서 여러 경력을 쌓았다.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내며 김영삼 정부 보건복지부 장관, 박근혜 정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2003년 10월부터 1년여간 우리나라 초대 국회 예산정책처장을 맡기도 했다. 

경제 및 재정 분야 전문가인 그를 만나 정부의 ‘재정확장정책’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최 전 장관은 “문재인 정부는 모든 문제를 재정으로 해결하려 한다. 각종 정책 실패로 국민이 고통을 겪자 이를 극복한다는 명목으로 ‘병 주고 약 주기’식 지원을 하더니, 선거에 즈음해 ‘매표(買票)용 예산 퍼주기’에까지 나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 최근 국가부채 문제가 사회적 논란거리다. 정치권은 경제를 살리려면 정부가 돈을 좀 더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나라 부채가 이미 위험수위에 도달했다고 반박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역사상 많은 나라가 재정파탄으로 멸망의 길에 들어섰다. 1490년경의 베네치아, 1555년경의 제노바, 1650년경의 스페인, 1770년경의 암스테르담 등이 그 사례다. 최근에도 마찬가지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선망의 대상이던 남미 국가들과 최근 경제위기를 겪은 이탈리아·포르투갈·그리스 등을 위기에 빠뜨린 것도 근원을 보면 모두 예산 낭비다.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계속 30%대를 유지하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문재인 정부 들어 급등하고 있다. 2017년 36.0%에서 올해 47.3%(본예산 기준)로 최근 5년 새 무려 11.3%포인트가 치솟았다.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최근 5년간 11.3%포인트 급등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19년 8월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0년도 예산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전 편성된 2020년도 국가예산 규모는 사상 처음 500조 원을 넘어섰다. [뉴스1]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19년 8월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0년도 예산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전 편성된 2020년도 국가예산 규모는 사상 처음 500조 원을 넘어섰다. [뉴스1]

- 지난해부터 세계를 뒤덮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재정 확장이 불가피하다는 견해가 있는데. 

“우리나라 재정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영증(코로나19) 위기가 발생하기 전부터 이미 엄청나게 확대된 상태였다. 2020년은 한국 재정사(財政史)에서 특이한 기록의 한 해였다. 사상 처음으로 국가예산 규모가 500조 원을 넘어섰다. 국가채무 규모는 800조 원,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0% 선을 각각 넘어섰다. 이 또한 모두 사상 최초의 일이다. 우리나라가 ‘슈퍼 확장 재정 시대’를 맞았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이러한 상황은 문재인 정권이 출범 초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등의 정책 슬로건을 발표할 때부터 이미 예상됐다. 코로나19는 재정 확대의 구실과 촉매에 불과하다고 본다. 지금 상황을 초래한 건 집권세력이 애초부터 큰 정부를 지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 과정에서 적자가 확대되고 국가채무가 급증한 게 문제라고 보나. 

“사실 재정수지 적자 또는 흑자라는 결과는 정부 세출과 세입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세출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국민복지에 기여했다면 재정적자 자체를 크게 문제 삼지 않을 수도 있다. 반면 재정이 흑자를 유지한다 해도 정부가 불필요하고 생산성 낮은 부문에 돈을 쓰면 문제가 된다.

현재 문재인 정부의 잘못은 불요불급한 지출 비용을 마련하고자 국공채를 발행해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를 발생시킨다는 점이다. 경제위기 극복, 실업 구제 및 일자리 창출, 코로나 대응 등을 빌미로 국민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 

- 경제위기 극복, 실업 구제 등은 하나같이 매우 긴요한 일 아닌가. 

“그러나 정부 재정 투입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며 쏟아부은 예산이 얼마나 많은가. 그 결과 일자리가 많이 창출됐나. 정부는 화려하고 솔깃한 목표를 내세우며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고도 원하는 목적을 전혀 달성하지 못하거나 매우 미미한 결과만 내고 있다. 사실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건 기업이지, 정부가 아니다.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기고한 칼럼에서 ‘단기적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기적 같은 정부 정책은 없다’면서 “경기부양책보다는 투자를 유인하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 돈으로 경기부양? 현실성 없다

- 정부 돈을 들여 경제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재정을 투입해 경기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주장도 참으로 어설프고 현실성이 없다. 경제학자 케인스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국가가 재정지출을 확장하면 성장잠재력이 커지고 세수가 늘어나며 민간 소비가 증대되는 등 여러 연쇄효과가 발생해 결과적으로 경제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이른바 ‘승수효과(multiplier effect) 이론’을 폈다. 지금도 재정 팽창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논리다. 이들은 ‘민간 부문의 유효수요 부족으로 경제가 침체될 때 정부가 지출을 늘리면 국민소득 증가분이 재정지출 증가분보다 더 커진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국내외 수많은 학자와 경제 관련 연구 기관이 진행한 숱한 실증연구에서 이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나라 재정 담당 부처인 기획재정부도 재정지출 승수의 크기를 0.3∼0.4로 추정한다. 저성장이 ‘뉴노멀’이 된 요즘 시대에는 정부의 확장적 재정 지출이 오히려 민간 부문 지출을 구축(crowding-out)하는 효과를 낸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이에 따라 케인스 이론은 점점 빛을 잃어가는 게 현실이다. 앞서 언급한 제프리 삭스의 칼럼 제목도 ‘포스트 케인시안 시대를 준비할 때’였다.” 

최 전 장관은 이 대목에서 “국가예산이 방대하고 정부가 민간 부문에 원칙 없이 적극 개입하는 나라는 언제나 난관에 봉착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라며 “지금은 세출 규모를 대대적으로 축소하고 세출 내역을 전반적으로 다시 조정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국가채무 비율, 안심할 상황 아니다

-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세계 주요국과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준으로, 지금 상황을 위기로 보는 건 과장된 비판이라고 주장한다.
 
“그게 현 집권세력의 생각인 것 같다. 2019년 5월 16일 열린 ‘2019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국가채무 비율은 GDP 대비 40% 안팎에서 관리하겠다’고 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미국은 100%, 일본은 200%가 넘는데 우리는 40% 안팎에서 관리해야 하는 근거가 있느냐’고 반문하며 경기부양을 목표로 한 적극적 재정확대를 주문했다고 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0월 22일 ‘2020년도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을 할 때도 ’우리 경제 상황이 엄중하니 재정의 과감한 역할이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고 재정 확장을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이런 시각에는 문제가 있다.” 

- 왜 우리나라가 국가채무 비율을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보나. 

“우리나라는 기축통화국이 아니고 경제의 해외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의 재정적자 규모가 커지고 국가채무 비율이 높아지면 국가신용도가 떨어지고 환율이 불안해지면서 외국 투자자로부터 기피 대상이 된다. 신용등급 하락으로 외화 자금이 빠져나가 외화 조달이 어려워지면 정부와 기업의 외화 조달 비용이 증가하고, 그 결과 대외건전성이 추가로 훼손되며 환율 상승(자국 통화가치 하락)으로 이어져 외국인 자본유출이 확대되는 악순환에 빠져들게 될 수 있다.” 

-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 적이 있나.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가 나랏빚을 갚지 못할 경우,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는 그리스와 아르헨티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한때 유럽과 남미의 최우량 국가이던 두 나라는 나랏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여러 차례 구제금융을 받다가 결국 국가파산의 길에 접어들었다. 눈여겨볼 것은 이 두 나라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40% 수준에서 100% 수준에 이르는 데 불과 3∼9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결코 안심할 상황에 있는 게 아니다. 이탈리아도 1980년 53.5%이던 국가부채 비율이 두 배(121%)로 불어나는 데 14년밖에 안 걸렸다. 스페인 또한 2007년 35.5%에 그쳤던 국가부채 비율이 단지 7년 만에 100.4%로 치솟았다. 우리는 이런 나라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최 전 장관은 인터뷰 내내 “현재 정부가 국가채무 문제의 심각성을 간과하고 있다”며 깊은 우려를 표했다. 그는 “현 정부는 처음부터 큰 정부에 대한 지향을 갖고 집권했다. 각종 경제 정책이 실패하자 그것을 감추고 돌아서는 민심을 잡고자 재정에 더욱 의존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 복지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단계를 넘어 예산을 마구잡이식으로 살포한다”고도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최 전 장관은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언급했다. 

“통상적으로 우리는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를 중심으로 생각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찾다 보면 모든 것이 정부가 해야 할 것으로 결론 나기 십상이다. 이제는 정부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살피는 게 필요하다. 개인 또는 시장이 잘할 수 있는 일에까지 정부가 개입하고, 더욱이 국민 세금까지 투입하는 건 큰 잘못이다. 현실의 불가피성에 초점을 맞춰 이런저런 사업을 벌이기보다, 지금은 다소 고통스럽더라도 예산 규모를 상당히 줄이는 것이 국가 백년대계의 시금석(試金石)을 놓는 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 1947년생
●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메릴랜드대 박사(경제학)
● 前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교수
● 前 보건복지부 장관, 국회 예산정책처장,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신동아 2021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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