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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 쏙쏙 들리는 윤여정 영어 따라잡기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귀에 쏙쏙 들리는 윤여정 영어 따라잡기

  • ● 영화 ‘미나리’로 연기상 석권하는 한국 대표 배우
    ● 언어교육전문가 선현우 “윤여정 씨, 영어 정말 잘 한다”
    ● 영어 발음 나쁘다고? 천만의 말씀!
    ● R, F, V 소리보다 중요한 건 전체적 어조와 리듬
    ● 성공적인 의사소통 경험이 외국어 자신감의 원천
    ● 단어 생각 안 나도 망설이지 않는 실전 영어 익히려면…
윤여정 씨가 외국인 손님을 대상으로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콘셉트의 예능 프로그램 ‘윤스테이’의 한 장면.  [tvN 제공]

윤여정 씨가 외국인 손님을 대상으로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콘셉트의 예능 프로그램 ‘윤스테이’의 한 장면. [tvN 제공]

“영어를 굉장히 잘 한다. 중간에 사소한 단어가 한두 개씩 빠지는 정도를 제외하면 문제 삼을 게 없다. 일상적인 대화를 하기에 충분한 수준이다.” 

언어교육 전문가 선현우 씨의 ‘윤여정 영어’에 대한 평가다. 

영화 ‘미나리’에서의 열연으로 각종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석권하는 윤여정 씨는 최근 외국인을 대상으로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콘셉트의 TV 예능 프로그램 ‘윤스테이’에 출연하고 있다. 1947년생으로 적지 않은 나이에도 세계 각국 출신 ‘손님’들과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 자기 의사를 손색없이 표현할 뿐 아니라 상대방 말을 잘 알아듣고, 때때로 웃음이 ‘빵’ 터지게 할 만큼 재치 있는 유머까지 구사한다. 이런 윤씨 영어 실력에 놀란 이가 적잖다. 

요즘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나도 윤여정 씨처럼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댓글이 넘쳐난다. 한편에서는 “외국인이랑 말이 통할지 몰라도 발음은 좀 별로다” “문법이 많이 틀리는 것 같더라”처럼 윤씨 영어의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선현우 씨에게 ‘윤여정 영어’에 대한 평가를 부탁한 건 이 때문이다.


실생활에서 익힌 진짜 영어

윤여정 씨가 미국 이민자 가정의 어른으로 등장하는 영화 ‘미나리’의 한 장면. ‘미나리’는 3월 1일 미국에서 열린 제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동아DB]

윤여정 씨가 미국 이민자 가정의 어른으로 등장하는 영화 ‘미나리’의 한 장면. ‘미나리’는 3월 1일 미국에서 열린 제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동아DB]

선씨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토종’ 영어 전문가다. 고1 때 학교 원어민 선생님과 편하게 대화하고 싶어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2년 만에 전국 고교생 영어경시대회 대상을 받고 외국어 특기자 전형으로 고려대에 진학했다. 탄탄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외국인 친구를 두루 사귄 그는 EBSe 채널 ‘생활영어’ 프로그램 강사로 한국인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동시에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알려주는 활동도 한다. 외국인의 한국어 공부를 돕는 인터넷 사이트 ‘Talk To Me In Korean(내게 한국어로 말을 걸어봐)’을 만든 공로로 2013년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그에게 윤여정 씨가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하는 영상을 보고 의견을 말해달라고 청했다. 선씨는 “영어를 오랜 시간 많이 접한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며 입을 열었다. 



-영어를 많이 접한 분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가. 

“영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한다는 뜻이다. 원어민이 쓸법한 표현을 적재적소에 잘 사용한다. 문법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없지 않지만 대화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영어를 아주 잘 한다고 볼 수 있다.” 

-책으로 배운 영어가 아닌 걸로 보인다는 말씀인가. 

“책만 갖고 공부한 사람은 문법에 신경 쓰느라 문장을 잘 못 만드는 경우가 있다. 윤여정 씨는 다르다. 굉장히 실용적으로, 망설임 없이 영어를 한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프로그램 특성상 윤여정 씨가 숙박업소를 찾은 외국인 손님한테 숙박료를 내라고 하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이분이 한 번은 ‘You have to pay’라고 했다. 이 문장은 특별할 게 없다. 내가 인상적으로 본 건 또 다른 손님한테 쓴 표현이다.” 

-그때는 뭐라고 했나. 

“당시 윤여정 씨가 깜빡 잊고 숙박료 얘기를 안 했다. 그러자 옆에서 다른 출연자가 ‘선생님, 돈 받으셔야 합니다’하고 일러드렸다. 이분이 ‘아!’ 하고는 손님 쪽을 바라보며 영어를 시작하는데 말 첫머리가 ‘I have to’로 나온 거다. ‘You have to pay’라는, 처음에 쓴 표현을 다시 쓸 수 없게 된 상황이다. 그때 윤여정 씨가 ‘I have to’까지 말하고 잠깐 멈칫 한 걸 보면 ‘과금하다’라는 뜻의 ‘charge’ 같은 단어가 곧바로 생각나지 않은 것 같다.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이런 때 당황해 말이 꼬일 수 있다. 그런데 윤여정 씨는 망설이지 않고 ‘have money’라고 문장을 이어가더라.” 

-합쳐서 ‘I have to have money’라고 말씀한 건가. 

“그렇다. 직역하면 ‘나는 돈을 가져야 합니다’라고 한 거니 좀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대화 맥락상 자연스럽다. 그 상황에서 윤여정 씨 말을 들으면 누구나 ‘아, 숙박료 내라는 얘기구나’ 하고 알아듣지 않겠나. 그러면 된 거다. 윤여정 씨 영어가 이렇다. 하는 사람이 편하고 듣는 사람도 편하다.”


짧더라도 성공적으로 의사소통한 경험

영화 ‘미나리’에서 윤여정(왼쪽)이 손녀 앤(노엘 조·가운데)과 손자 데이비드(앨런 김)에게 화투 치는 법을 가르쳐주는 장면. [판씨네마 제공]

영화 ‘미나리’에서 윤여정(왼쪽)이 손녀 앤(노엘 조·가운데)과 손자 데이비드(앨런 김)에게 화투 치는 법을 가르쳐주는 장면. [판씨네마 제공]

-보통은 영어를 할 때 ‘이렇게 말하면 외국인이 못 알아듣지 않을까’ 싶어 망설이게 되는데. 

“윤여정 씨는 평소 외국인과 대화한 경험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이 정도로 말하면 상대방이 알아듣는다’라는, 일종의 감을 갖게 된 것이다. 의사소통 수단으로 외국어를 익힐 때는 이런 감을 체득하는 게 중요하다. 외국인과 짧더라도 성공적으로 의사소통한 경험이 쌓이면 이런 센스가 길러진다. 윤여정 씨는 과거 한동안 미국에서 살았다고 들었다. 그때 현지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했을 것이다.” 

선현우 씨는 이 대목에서 “단, 미국에서 산다고 누구나 윤여정 씨만큼 영어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10년을 살고도 영어를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과거 기사를 보면 윤여정 씨는 1973년부터 1984년까지 약 11년 간 미국에서 살았다. 윤씨는 2009년 ‘여성동아’와 인터뷰를 하며 “당시 내가 살던 시골 마을에는 한국 사람이 없고 한국 슈퍼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환경에서 현지인과 더불어 살아가며 ‘생활 영어’에 익숙해진 것으로 보인다. 선씨는 “윤여정 씨가 한국에 정착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정도로 영어를 구사하는 걸 보면, 미국에 살 때는 영어를 지금보다 훨씬 더 잘 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윤여정 씨를 보면 영어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뿐 아니라 상대가 하는 말도 잘 알아듣는다. 이런 듣기 실력은 어떻게 기를 수 있나. 

“영어를 잘 들으려면 단어에서 어떤 소리가 나는지 알아야 한다. 윤여정 씨가 영어를 잘 듣는 건 발음이 워낙 좋아서다.” 

-윤여정 씨 발음이 좋은 편인가. ‘영어로 의사소통은 잘 하지만 발음은 별로’라고 평가하는 사람이 많은데. 

“아니다. 아주 좋은 발음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r’을 얼마나 굴리나 같은 걸 기준으로 영어 발음이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그보다는 전체적인 억양, 문장의 리듬 같은 게 훨씬 중요하다. 윤여정 씨는 이 부분에서 탁월하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설명할 수 있나. 

“영어를 할 때 아주 많이 등장하는 ‘I think’를 보자.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아이~↑ 씽크~↑’ 하는 식으로 단어마다 끝을 올리며 끊어 말하곤 한다. 윤여정 씨는 ‘아이 씽크’를 한 덩어리로 묶는다. 형용사나 부사도 적재적소에 사용한다. 이렇게 영어 호흡으로 말해야 문장이 명료하게 들린다. 영어를 많이 듣고 말했다는 게 느껴지는 발음이다.” 

선현우 씨는 윤여정 씨가 ‘윤스테이’를 찾아온 외국인 어린이에게 ‘Where do you live actually?’라고 물었던 걸 한 사례로 소개했다. 그 문장을 듣고 “이분이 영어를 참 잘하는구나”라고 느꼈다는 것이다. 

-그 말이 왜 인상적이었나. 

“actually라는 단어 때문이다. 영어권 사람들은 수시로 actually를 사용한다. 이 단어가 없다고 문장이 틀린 건 아니지만, 영어 쓰는 사람이 들으면 ‘Where do you live?’보다 ‘Where do you live actually?’가 훨씬 친근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윤여정 씨 입에서 actually라는 단어가 툭 튀어나왔다는 건, 그가 실제 영어 환경에 익숙하다는 걸 보여준다.”


살아있는 영어 콘텐츠의 중요성

EBSe 채널 ‘생활영어’ 프로그램 강사로 한국인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선현우 씨(왼쪽). [방송프로그램 캡처]

EBSe 채널 ‘생활영어’ 프로그램 강사로 한국인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선현우 씨(왼쪽). [방송프로그램 캡처]

선현우 씨는 ‘윤스테이’에서 윤여정 씨가 외국인에게 막걸리에 대해 설명하며 “It’s based on rice”라고 말한 부분도 눈에 띄었다고 소개했다. 

-어떤 면에서 그런가. 

“‘막걸리는 쌀로 만들어요’라는 밀을 영어로 한다고 생각해보자. 한국사람 대부분이 ‘make’라는 단어부터 떠올리고 잠시 망설일 것이다. 학교 다닐 때 ‘~로 만들어진’이라는 숙어가 ‘made of’ ‘made with’ ‘made from’ 등 여러 가지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재료가 화학적으로 결합될 때는 뭘 쓰고, 물리적으로 결합될 때는 뭘 쓴다고 배웠는데…’ 하며 고민하다 보면 말이 바로 안 나온다. 윤여정 씨는 이런 단어 하나 안 쓰고 ‘based on’이라는 표현으로 명쾌하게 말을 마쳤다. 이런 영어가 잘 하는 영어다.” 

선현우 씨는 한국에 사는 사람도 영어 콘텐츠를 꾸준히 접하면 이런 살아 있는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미국 드라마를 보면 좀 안타까운 상황이 생겼을 때 주인공이 ‘Oh well’ 이라고 말하곤 한다. 직역하면 ‘어, 잘’ 정도가 될까. 처음엔 ‘저게 무슨 말이지’ 할 수 있다. 그런데 두 번, 세 번 비슷한 상황을 보면 ‘뭔가 일이 잘 안 풀릴 때 원어민은 ‘Oh well’이라고 하는구나’라고 깨닫게 된다. 자연스레 그들의 억양과 몸짓에도 익숙해진다. 이렇게 맥락을 통해 영어를 익히면 언젠가 드라마 주인공과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Oh well’ 하며 어깨를 으쓱할 수 있는 거다.” 

그의 설명을 듣고 영어 사전에서 ‘Oh well’을 검색해봤다. 풀이가 ‘그래, 할 수 없지!(체념의 의미)’라고 적혀 있다. ‘oh’와 ‘well’을 따로 찾았으면 알기 어려웠을 뜻이다. 선현우 씨는 “이런 표현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려면 평소 원어민이 사용하는 실제 영어에 자주 노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 윤여정 씨만큼 영어를 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더 필요한 게 있다. 영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마음가짐이다. ‘윤스테이’에서 윤여정 씨가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이런 태도가 느껴진다. ‘너 한국어할 줄 모르지? 나는 한국어를 잘 하고, 영어도 할 줄 알아. 그러니까 내가 너를 위해 영어를 사용해줄게.’ 윤여정 씨만이 아니다. 영어를 잘 하는 60~70대 어르신 상당수가 이런 자세를 보인다. 그러니 당당하다. 실수할까봐 쩔쩔 매지 않는다. 나는 젊은 사람들도 이런 생각을 가지면 훨씬 자연스럽고 편하게 영어로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언어교육자로서 선현우 씨가 ‘윤스테이’ 프로그램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는 “이 프로그램은 시청자에게 ‘영어를 완벽하게 못해도 된다. 그냥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걸 알려주고 있다. 지금 한국에 딱 필요한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나는 한국이 빠른 속도로 다문화 사회가 돼가고 있다고 본다. 저출산 추세가 이어지고, 외국인 입국자는 점점 많아진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우긴 하겠지만, 그들과 소통하고자 우리가 영어를 쓸 일도 늘어날 거다. 이때 영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구사할 필요는 없다. 윤여정 씨처럼, 서로 편하게 의미가 통할 만큼만 하면 된다. 영국 BBC를 보면 독일 장관이 출연해 자국 억양이 잔뜩 들어간 영어로 정책을 설명하곤 한다. 문법이 자주 틀리지만 아무도 신경 안 쓴다. 내용 전달이 중요하다는 걸 알아서다. 우리도 이제는 이런 영어에 익숙해질 때다.” 

선현우 씨는 “사람들이 윤여정 씨를 보며 영어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고, 좀 더 편하게 일상적으로 영어를 사용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동아 2021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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