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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본 자가 맛을 안다’ 도시락의 추억 [김민경 ‘맛 이야기’]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먹어본 자가 맛을 안다’ 도시락의 추억 [김민경 ‘맛 이야기’]

한 어린이가 달걀말이 등 다양한 반찬으로 채워진 도시락을 먹고 있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한 어린이가 달걀말이 등 다양한 반찬으로 채워진 도시락을 먹고 있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조카가 중학생이 됐다. 입학 며칠 전 교복을 입은 사진을 보내왔다. 조카 사진 위로 그 시절의 내가 쓱 지나간다. 한껏 어른에 가까워진 듯 우쭐한 기분이 들었고, 부쩍 길어진 수업 시간만큼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늘어나 좋았다. 무엇보다 도시락을 먹던 시간은 지금도 자주 들여다보는 즐거운 기억이다.

요즘 아이들은 내가 자랄 때보다 훨씬 살뜰한 보살핌과 배려 속에 자란다. 부럽기도 하지만 딱 한 가지가 안타깝다. 그들은 내가 누린 ‘도시락의 시간’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포크 달린 숟가락으로 야무지게 먹던 도시락

1980년대 학교 교실에서 도시락을 먹는 학생들. [동아DB]

1980년대 학교 교실에서 도시락을 먹는 학생들. [동아DB]

사실 그 시절 우리들 도시락 반찬은 특별할 게 없었다. 엄마들도 사람인지라, 도시락에 넣는 게 매일 어여쁘고 새로울 수 없는 게 당연하다. 내 도시락에 든 것이 어제 저녁에 먹은 찌개일 수 있고, 일주일 내내 먹은 멸치볶음일 때도 있다. 따끈하게 구운 햄이나 소시지가 있으면 횡재, 먹고 싶지 않은 새파란 나물이 가득해도 어쩔 수 없다. 때로는 밥에 조미김 한 봉지와 고추참치 통조림만 들고 학교에 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도시락 뚜껑 여는 순간이 매번 즐거운 건 친구들 반찬 덕이다. 

같은 김치찌개라도 집집마다 재료가 참치, 돼지고기, 꽁치로 제각각이다. 달걀도 삶아온 아이, 구워온 아이, 돌돌 말아온 아이, 햄을 넣고 볶아온 아이가 있다. 마른반찬이며 장아찌 맛도 다 다르고, 소시지에 뿌려온 것도 고추장, 케첩, 머스터드 등으로 다양하다. 너도나도 숟가락 끄트머리가 포크처럼 생긴 일체형 도구를 써서 친구들 반찬을 야무지게 가져다 먹는다. 

어느 날에는 삼삼오오 모여 계획을 세운다. 나물 담당, 달걀프라이 담당, 고추장과 밥 담당, 김과 기타 반찬 담당 등으로 역할을 나눈다. 가장 중요한 건 큰 그릇인데, 아무래도 들고 오기가 번거롭다. 그래서 그릇 담당은 그릇과 숟가락만 챙겨오기로 한다. 



이런 날은 마치 점심을 먹으러 학교에 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큰 그릇을 가져온 아이 주위에 모여 각자 가져온 것을 탈탈 널어 넣고 한데 비벼 나눠 먹는다. 거의 고추장 맛으로 먹었던 이 비빔밥이 뭐라고, 지금까지도 다시 먹고 싶은 음식으로 내 맘에 깊게 새겨져 있다.

검은 깨로 흰 밥 위에 앙증맞게 그린 마음

흰 밥 위에 검은 깨를 뿌린 도시락. [GettyImage]

흰 밥 위에 검은 깨를 뿌린 도시락. [GettyImage]

도시락 반찬은 식어도 맛있어야 한다. 튀김보다는 볶음이 좋다. 전분 등을 넣어 걸쭉하게 조리한 요리는 식으면 재료가 분리되거나 물이 생기니 피한다. 두부전, 호박전, 생선전 같은 것을 넣을 때는 다른 양념 국물에 젖지 않게 주의한다. 아삭하게 씹는 맛을 내기엔 역시 나물, 김치, 장아찌 같은 게 좋다. 고기나 해물을 볶아 다소 푸짐하게 꾸리는 것도 좋지만, 메추리알 혹은 고기 장조림 정도로도 충분하다. 

도시락을 열었을 때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는 건 달걀프라이거나, 검은콩‧완두콩‧검은 깨 등으로 흰 밥 위에 앙증맞게 그려 놓은 마음이다. 

도시락은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느냐보다 누가 싸줬는지,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먹는지가 더 중요하다. 도시락을 둘러싼 기분과 날씨가 그 음식 맛과 함께 시간에 새겨진다. 먹어 본 사람만이 아는 맛이다.



신동아 2021년 3월호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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