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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대통령이 더 빨리 백신을 맞아야 하는 이유

OECD 10개 경제대국 중 韓·日 국가수반만 백신 안 맞아 [노정태의 뷰파인더㉕]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文 대통령이 더 빨리 백신을 맞아야 하는 이유

  • ● 접종 참관 대통령·‘모의접종’ 경남지사
    ● 19세기 말부터 백신은 늘 정치적
    ● 일제, 식민지 조선에서 강제 접종 실패
    ● 조선인, 민심 동요 탓 위생업무 非협조
    ● 이승만 정권이 일제보다 두창 예방 잘 해낸 비결
    ● ‘강제 않는 설득’이 백신 접종 출발
    ● 접종 시기마저 정치적으로 이용하나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왼쪽에서 두번째)이 2월 26일 서울 마포구 보건소를 방문, 재활시설 종사자인 김윤태 의사(푸르메 넥슨어린이 재활병원)가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접종받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왼쪽에서 두번째)이 2월 26일 서울 마포구 보건소를 방문, 재활시설 종사자인 김윤태 의사(푸르메 넥슨어린이 재활병원)가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접종받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시사 상식 퀴즈. 다음 중 2021년 3월 14일 현재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사람은? ① 문재인 대통령 ② 김경수 경상남도지사 ③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④ 권영진 대구시장 ⑤ 없다. 

정답은 5번이다. 유명 정치인 중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1호 접종자가 화이자 백신을 맞을 때 옆에서 ‘참관’했다. 김경수 지사는 ‘모의 접종’에 참여했다. 백신을 실제로 맞은 게 아니라, 옷 위로 주사기를 놓고 주사 맞는 시늉을 하며 사진을 찍었다. 대통령을 비롯해 여권 고위층 그 누구도 백신을 직접 맞으며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야권 정치인 및 지자체장들이 ‘나라도 백신 맞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겠다’고 손을 들고 나서기 시작했다. 안철수 대표가 2월 22일 “정부가 허락한다면 정치인으로서, 또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먼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을 용의가 있다”고 나선 게 시초다. 국민의힘 소속 권영진 대구시장 역시 백신을 맞겠다고 자청했다. 권 시장의 접종은 3월 8일로 예정돼 있었다. 같은 날 박성수 송파구청장, 3월 10일에는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도 백신을 맞겠노라고 공언했다.


한반도 역사상 ‘1호 백신 접종자’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난 2월 26일. 서울 마포구 보건소에서 의료진이 접종에 사용할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준비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난 2월 26일. 서울 마포구 보건소에서 의료진이 접종에 사용할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준비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모두 질병관리청에 의해 가로막히고 말았다. 3월 7일 저녁, ‘지자체장은 백신 우선접종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공문을 보낸 것이다. 표면적 이유는 백신 수급이 제한된 만큼 현장대응 업무를 수행하는 인력까지만 우선 접종 대상에 포함한다는 것이었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석연치 않은 게 사실이다. 야권 서울시장 후보나 야당 소속 지자체장이 대통령보다 먼저 백신을 맞는다면 대통령의 위신이 땅에 떨어질 것을 우려하지 않았나 싶다. 



야당과 언론의 비난이 거세지자 청와대와 여당은 전가의 보도를 꺼내들었다. ‘백신을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치적으로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야말로 정치적 발언이다. 처음 이 땅에 예방접종이라는 현대 의학이 들어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백신은 단 한 번도 정치적이지 않은 적이 없다. 그 맥락을 온전히 파악해야 오늘날의 코로나 백신 정국을 이해할 수 있다. 

지석영은 1879년 두창(천연두) 대유행 당시 조카딸을 잃었다. 그는 고향 충주를 떠나 부산에 있던 일본 해군 소속 제생의원에서 일본인 의사에게서 우두술을 익혔다. 그 뒤 우두의 원료 및 종두침을 얻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기술을 배웠고 재료도 갖고 있으니 이제 접종을 해야 할 때. 하지만 주변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그의 장인도 우두를 ‘일본인이 조선인을 죽이기 위해 만든 위험한 약’ 취급했다. 하지만 지석영은 장인을 설득했고 1897년 말 두 살 난 처남에게 우두를 접종해 성공을 거두었다. 한반도 역사상 ‘1호 백신 접종자’는 지석영의 처남이요, ‘1호 백신 접종 참관자’는 지석영의 장인이었던 셈이다. 

당시 지석영이 느꼈던 환희는 1931년 1월 25일자 ‘매일신보’에 생생히 기록돼 있다. 

“평생을 통해 볼 때 과거에 (급제)했을 때와 귀양살이에서 풀려나왔을 때가 크나큰 기쁨이었는데 그때(처남의 팔뚝에 우두 자국이 완연히 나타나는 것을 보았을 때)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었지요.” 

지석영은 고향에서 40여 명에게 추가로 우두 시술을 했다. 이후 한성으로 돌아와 1880년 3월부터 우두국을 개설하고 교육 및 접종 사업에 몰두했다.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온 그해 10월부터는 우두국을 종두장으로 확대 개편해 본격적인 우두 접종 사업을 펼쳤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1882년 7월 임오군란이 터졌다. 개화파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구식 군인 뿐 아니라 ‘개화’에 위세가 눌렸던 온갖 세력이 목청을 높이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무당도 있었다. 무당에게 우두 접종은 자신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적이기도 했다. 

우두 접종으로 천연두가 사라진다고 해보자. 혹은 완전히 박멸되지 않더라도 그 질병에 대한 사람들의 미신적인 공포가 사라지고 그저 ‘질병’의 하나로 취급하게 된다고 해보자. 이는 천연두를 ‘손님’이라 부르며 마마배송굿이나 손님굿 등을 통해 돈을 벌어왔던 무당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이다. 

난리 통이었으니 범인이 정확히 누군지 특정하기는 어렵겠지만, 무속인들에게 직접 불을 지르거나 대중을 부추길만한 동기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석영은 난리가 끝난 후 화재로 사라진 종두장을 복구했고 체계적인 교육 및 접종 사업을 계속해 나갔다.


일제의 강제 접종이 실패한 이유

여러 난관에도 지석영을 중심으로 한 조선의 종두의들은 최선을 다해 결과를 만들고 있었던 셈이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에도 일본은 1895년 반포된 종두규칙을 인정했고, 기존 조선 인력을 활용해 우두를 접종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대한제국 역시 종두 접종을 강제하고 있었으나 행정 역량의 한계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반면 일제는 강제 접종을 실행에 옮겼다. 이는 일본의 식민지였던 대만의 경험을 반복하는 일이기도 했다. 일제의 우두 정책은 효과적이었다. 적어도 초기에는 그랬다. 1913년 총독부는 “두창은 거의 절멸에 가까이 갔다”고 평가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1919년 이후 갑자기 두창 환자가 폭증했다. 1919년에는 2140명의 환자와 700명의 사망자가 나오더니, 1920년에는 1만1532명의 환자와 361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1915~1917년까지 발생한 환자와 사망자가 각각 50명 이하, 10명 이하였던 점을 생각하면 말 그대로 ‘창궐’했다. 한번 되살아난 두창은 일제강점기가 끝나도록 잡히지 않았다. 1930년을 넘기며 두창 환자는 다시 1000명을 넘었고, 1942년에도 1600명의 환자가 발생했다고 기록돼 있다. 

박윤재 경희대 사학과 교수는 2012년 ‘의사학(醫史學)’에 발표한 ‘조선총독부의 우두정책과 두창의 지속’이라는 논문에서 일제강점기 두창 예방접종 정책의 실패를 되짚는다. 총독부는 조선인들의 위생 의식을 탓했다. 두창으로 집안 식구가 사망하면 시체를 나무 위에 걸어둔다거나, 심지어 시신을 집안에 오랫동안 두고 친척들이 모여 밥을 먹기도 한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런 참담한 의식 수준은 조선의 지식인들이 남긴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식민지 조선인들은 두창 예방을 위해 개를 잡아먹거나, 개의 피를 문간에 흘려놓거나, 마마신을 속이기 위해 절구에 쓰는 방아를 시체인 양 꾸며 거꾸로 두고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조선보다 일찍 일본의 식민지가 된 대만에서는 20세기 들어 사실상 두창이 사라졌다. 그러니 일제는 한반도에서 자신들의 실패를 더더욱 용납할 수 없었다. 그들이 택한 방법은 그저 더 많은 강제력을 투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3·1 운동 이후 본격적으로 싹튼 민족의식이 종두법 보급을 가로막았다. 박윤재 교수는 논문에서 “3·1운동의 목표가 식민 지배에 대한 반대였던 만큼 조선인들도 경찰의 위생업무에 협조하지 않았다. 민심은 명백히 동요하고 있었다”고 썼다. 

결국 식민지배가 끝나도록 일제는 조선에서 두창의 ‘집단면역’에 도달하지 못했다. 논문에 따르면 “1920년 통계에 따르면, 두창 환자 중 규정된 제2기 종두까지 완료한 사람은 63.8%에 지나지 않는다.……1930년대 통계에 따르면, 총독부의 행정력이 가장 깊숙이 침투한 경성부조차 접종 예정자 중 70%의 사람만이 춘추 정기 종두에 참여할 뿐이었다. 성공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검두(檢痘)에 오는 사람은 그 중 다시 반이었다.” 

식민지 조선인들이 두창의 위험성을 몰랐을 리는 없다. 적절한 예방접종을 통해 그것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고작 16년 후, 1961년 이래 국내에 두창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미군정을 거쳐 대한민국이 탄생하고 난 후 의무접종을 시행하자 다들 순순히 예방접종을 받았다. 덕분에 수월히 집단면역에 도달했다.


행정 역량 이전에 ‘강제 않는 설득’

지난해 12월 21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델라웨어주 뉴어크에 있는 크리스티애나 병원에서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을 접종받고 있다. 그의 접종 모습은 TV로 생중계됐다. [AP=뉴시스]

지난해 12월 21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델라웨어주 뉴어크에 있는 크리스티애나 병원에서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을 접종받고 있다. 그의 접종 모습은 TV로 생중계됐다. [AP=뉴시스]

두창 백신의 도입과 보급의 역사를 통해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백신을 통한 집단면역 형성과 전염병 퇴치는 ‘직관적’으로 이해 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상당수 혹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정서적 반감을 불러일으킨다. 둘째, 무턱대고 강제만 하는 방역 정책은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 식민지를 다스리던 조선총독부도 해내지 못했다. 

셋째, 가장 중요한 대목. 필요에 대한 설득이 사회적으로 충분히 이루어진다면 백신 접종과 집단면역은 의외로 수월하게 달성될 수 있다. 일제보다 행정 역량이 부족했다고 볼 수 있는 미군정 및 이승만 정권이었지만 두창 예방만큼은 일제보다 외려 더 잘 해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관건은 ‘강제하지 않는 설득’의 방법론이다. 실질적으로는 강제라 해도, 받아들이는 이가 반감을 느껴 비이성적 선택을 하지 않게끔 하는, 그런 설득을 해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백신처럼 본능적으로 거부감과 공포를 자아낼 수 있는 대상이라면 더욱 섬세하면서도 대범한 접근법이 필요하다. 훌륭한 정치적 설득력이 요구되는 셈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에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다. 대체 왜 그는 ‘1호 백신 접종자’가 되지 않았는가? 왜 남이 백신 맞는 것을 멀뚱히 지켜보는 장면을 연출했는가? ‘1호 백신 접종자’의 자리는 의료진에 양보할지라도 최대한 빨리 백신 맞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줬어야 하지 않을까? 여당 정치인들이 ‘대통령을 모르모트로 만들 셈이냐’ 따위 망언을 내뱉을 때 말리는 시늉이라도 했어야 하지 않을까? 

만 65세 이상이니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을 수는 없고 화이자 백신은 더욱 물량이 부족하니 현장 인력과 고위험군에게 먼저 투여해야 한다는 변명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백신을 처음 개발한 미국과 영국에서도 백신의 초기 물량은 부족했다. 미국을 제외한 그 어떤 나라도 완전히 넉넉한 물량을 확보하고 있지는 못한 상황이다. 

하지만 선진국은, 선진국일수록, 대통령이나 여왕 혹은 총리 같은 사회지도층이 먼저 팔뚝을 걷어붙이고 백신을 맞았다. 그런 모습을 대중에게 공개했다. 올해로 78세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식을 하기도 전에 당선인 신분으로 백신을 맞았다. 그래야 백신 거부 세력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다는 점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현 시점에서 문 대통령이 화이자 백신을 맞는 것은 결코 ‘귀중한 물량을 낭비하는 일’이 아니다. 정 반대다. 평범한 의료인 한 사람이 맞는 것보다 대통령이 맞는 게 열 배, 백배는 더 중요하다. ‘백신은 안전하다’, 더 나아가 ‘백신을 맞는 것이 우리 모두를 코로나로부터 지키는 길이다’라는 메시지를 대중에게 퍼뜨리고 설득하기 위한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의 참모진은 무슨 생각일까. 대통령 본인은 안 맞으면서 남에게 백신 맞으라고 권하는 장면을 연출하는 게 대중에게 불러일으킬 의심과 공포에 대해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은 것 아닌가? 아니면, 혹시나 해서 한 사람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물어보고 싶은데, 문 대통령은 백신을 맞는 게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안티백서(Anti Vaxxer: 백신 음모론자)’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며 세계 10대 경제 강국인 만큼 대한민국을 떳떳하게 ‘선진국’이라고 불러보자. 선진국 중 대통령이나 총리 등 국가수반이 백신 맞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나라는 딱 세 곳 밖에 없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던 시절의 미국,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일본, 그리고 대한민국이다. 트럼프는 퇴임했으니 논외로 한다면, 문 대통령이 이 사안에 대해서만큼은 일본에 대한 경쟁심을 불태우지 않는 건 의아한 일이다. 

대통령이나 그에 준하는 국가수반이 앞장서서 백신을 맞지 않는 나라들의 명단을 선진국 너머로 확장해서 채워보면 어떨까. 독자 여러분의 머릿속에 예상 가능한 나라들이 스쳐 지나갈 것이다. 그렇다. 중국, 러시아, 브라질 등 독재자 혹은 포퓰리스트가 집권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백신 솔선수범’이 벌어지지 않았다.


국가수반이 백신 맞지 않은 국가

포퓰리스트로 악명 높은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백신을 안 맞는 차원을 넘어 적극적으로 음모론을 퍼뜨리고 백신의 효능을 부정하며 ‘안티백서’ 노릇을 하고 있다. 중국 시진핑 주석 또한 백신을 맞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찍힌 사진이 있긴 하나, 백신을 맞았다고 홍보하지도 않았으므로, “맞지 않았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3월5일 ‘블룸버그’가 보도했다. 

러시아의 푸틴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홍보 소재로 삼는 푸틴이지만 ‘나는 남자답게 백신을 맞았다’며 인증샷을 올리지는 않았다. 그러니 러시아의 자랑, 국내에서도 위탁생산 중인 ‘스푸트니크 V’ 백신을 푸틴은 맞지 않았다고 봐도 큰 무리가 없다. 중국과 러시아가 세계 각국을 상대로 ‘백신 세일즈’를 하고 있다는 점을 놓고 보면 실로 황당한 일이다. 

지난 3월 4일, 청와대는 “문 대통령은 기꺼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받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다만 접종 시기는 밝히지 않았는데, 6월에 열릴 G7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늦어도 4월 초에는 첫 번째 접종을 해야 한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선진국 국가수반의 선례를 따르자면 문 대통령은 진작 백신을 맞았어야 했다. 그런데도 여태 접종을 미루고 있는 것은 여러모로 석연치 않다. 대통령의 백신접종 시기마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치기 힘들다. 4월 7일 재·보궐선거를 코앞에 두고 백신을 접종하기 위해 아껴두고 있는 건 아닐까? 

백신은 과학과 본능의 싸움이다. 모든 싸움은 곧 정치다. 따라서 과학은 탈정치적일 수 없다. 본능을 이겨내고 과학을 택하는 그 자체가 정치적 결단이기 때문이다. 다만 2021년 현재는 충분히 많은 사람이 본능이 아닌 과학을 택하고 있기에 그 정치적 갈등이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2021년 대한민국에는 백신을 둘러싼 수많은 정치 쟁점이 있다. 대체 왜 다른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매우 적은 양의 화이자 백신을, 그것도 개발도상국을 위한 모금 프로그램인 코백스를 통해 도입해야 했는가? 무슨 근거 혹은 목적으로 아스트라제네카에 백신 정책을 ‘올인’했을까? 당장은 진실을 알 길이 없다. 

더 중요한 건 이후의 행보다. 백신 논란을 방치하고 있는 문 대통령의 행태가 백신에 대한 국민적 불안과 공포를 키운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그렇다면, 이 또한 정치적 선택이다. 그런데 이것은 백신 도입에 차질을 빚은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정치적 악행이다. 우리 사회의 정치적 갈등을 19세기 말 구한말에서나 있었던 ‘의학이냐 무속이냐’, ‘과학이냐 미신이냐’ 차원으로 퇴행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뒷짐 지고 ‘참관’하는 동안 백신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갈등은 깊숙이 곪아가고 있다. 국민 사이에 특히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공포가 퍼져가고 있다. 친문 지식인과 누리꾼들은 그런 여론을 비난하고 매도하기 바쁘다. 마치 일제강점기 총독부 관리와 경찰 및 일제에 복무한 지식인들이 조선인들을 상대로 백신의 효능을 강압적으로 ‘계몽’했던 풍경이 연상된다고 하면 과도한 표현일까. 

필자는 과학주의자이며 이성주의자다. 아직 젊고 의료인도 아니니 한참 순위가 밀리겠지만 내 차례가 온다면 가리지 않고 백신을 맞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대통령은 백신을 맞지 않으면서, 친문 정치인과 지식인, 누리꾼만 목청을 높여가며 반대 세력을 매도하는 정치적 풍경에도 단호히 반대한다. 이건 감히 말하건대 최악의 정치다. 

백신에 대한 불안을 드러내는 이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어서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백신을 거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거부할 수 있다는 안도감을 줘야 한다. 다만 좀 더 영향력 있는 이들이 솔선수범해 효능과 이익을 보여줌으로써 대중을 자연스럽게 백신과 친숙해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일단 분위기가 백신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형성되고 나면 극소수의 불안과 공포 역시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 반대로 일제가 식민지 조선을 상대로 그랬듯 강압과 폭력을 동원하면 오히려 의심과 반감이 커져 목표 달성이 어려워진다.


“누가 즐거이 접종 받겠는가”

이것은 방금 떠올린 이상주의적 몽상이 아니다. 세계 최초로 종두법을 개발한 에드워드 제너의 조국 영국에서 백신 거부권을 보장하면서 제시한 논리다. 1898년의 일이다. 지석영이 조선 최초로 종두법을 시행한 때가 1879년이었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백신을 거부할 권리에 대한 담론은 백신 보급과 불가분의 관계다. 과학은 근대의 산물이며 근대는 개인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근간으로 삼는 만큼 당연한 일이다. 

그 점을 지석영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강압적인 종두법 시행에 대해 우려를 드러낸 바 있다. 박윤재 교수의 논문을 마지막으로 인용해보도록 하겠다. 

“한국 우두법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지석영은 1908년 강제적인 우두 접종을 비판했다. 피접종자의 입장에서 볼 때 낯선 이방인이 갑자기 종두인허원이라 칭하며 강제로 우두를 접종하고자 할 때 누가 즐거이 접종을 받겠느냐는 비판이었다. 이 비판은 우두법에 대한 불신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설명과 설득이 필요했음을 알려준다. 하지만 총독부가 조선인들과 함께 우두를 불신하게 된 원인들에 대해 논의했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런 논의가 공개되지는 않았다.” 

국민 스스로 백신의 필요성을 깨닫고, 인식하며, 부작용이 있더라도 함께 위험을 감당하는 집단면역의 길. 결국은 그 길이 옳다. 일제 36년간 달성하지 못했던 두창 박멸을 해방된 조국에서는 그 절반도 안 되는 시간에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하다. 민주주의가 독재를 이길 수 있는 원동력인 자발성의 힘을 일깨워야 한다는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백신을 맞아야 한다. 가능한 한 빨리 공개적으로 접종받아야 한다. 백신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약간의 부작용이 있더라도 참아낼 가치가 있는 우리 모두의 싸움이라는 것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민주국가의 대통령과 독재국가의 지도자를 나누는 갈림길 위에 그가 서 있다. 문 대통령이 과학과 민주주의의 편에 서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신동아 202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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