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호

박인권 서울대 교수 “초법적 신도시 개발로는 도시변화 대응 못 해”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21-04-06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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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십 년째 되풀이되는 신도시 부동산 투기

    • 부동산 정책 실패로 인한 집값 혼란

    • 부동산 수요에 대응하는 대규모 개발의 문제점

    • 인구 감소 시대 멀지 않았다

    • 도심 고밀도 개발이라는 또 다른 선택지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3기 수도권 신도시 개발 예정지에 막대한 규모의 땅을 보유한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여기서 촉발된 이른바 ‘LH 사태’가 일파만파 확산하는 모양새다. 국민 분노가 들끓고, 정부가 부동산시장 안정화를 목표로 내놓은 각종 정책 신뢰도가 급속히 추락하고 있다. 도시계획 전문가인 박인권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이에 대해 “우리나라 부동산시장 관리의 후진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수십 년째 되풀이 되는 신도시 부동산 투기

    “1980년대 1기 수도권 신도시 조성 때도 공직자들이 땅을 사들인 사건이 적발돼 떠들썩했던 일이 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게 안타깝다. 한국 사회에서 집은 ‘사는 곳’이면서 동시에 ‘투자 대상’이다. 그렇다면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가 부동산시장 규제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점이 문제를 야기한 측면이 있다.” 

    박 교수의 지적이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노태우 정부 시절 진행된 1기 수도권 신도시 투기 수사 관련 자료를 보니, 구속된 ‘투기 사범’ 987명 가운데 131명이 공직자였다. 

    “노무현 정부 시절 진행된 ‘2기 수도권 신도시’ 조성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개발 정보를 빼돌려 사익을 챙기려 한 공무원이 줄줄이 적발돼 형사처벌을 받았다. 이런 일이 반복된 만큼, 3기 수도권 신도시를 추진하기 전 정부가 공직자 투기를 차단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주식시장에는 일찌감치 관련 규제가 마련돼 있다.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주식을 거래하다 적발되면 자본시장법에 따라 이득의 최대 5배까지 벌금을 문다. 반면 부동산 불법 거래의 경우 이득 환수 규정이 따로 없는 게 현실이다. 



    정부는 심지어 부동산 거래 투명성을 지키고자 만들어놓은 여러 제도조차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2006년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제가 도입됐지만, 이후에도 오랫동안 세금탈루 등을 목적으로 한 이른바 ‘다운계약서’ 작성이 횡행했다. 부동산실명제 도입 후에도 다른 사람 이름으로 부동산을 사고팔면서 부당하게 이익을 보는 일이 근절되지 않았다. 이번 ‘LH 사태’ 발생으로 이 문제가 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많은 시민은 LH 직원을 비롯한 공직자들이 주변 사람 이름을 빌려 신도시 예정지 토지를 차명 거래 했을것으로 의심한다. 이에 대한 단속 및 처벌이 제대로 이뤄질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박 교수는 “우리 부동산시장에서는 그동안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대전제가 잘 지켜지지 않았다. 그 결과 부동산투기는 ‘합리적인 경제주체’가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선택하는 수단 정도로 여겨지게 된 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수도권 신도시 개발 예정지는 매력적인 투자처로 손꼽혔다. 신도시는 도심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계획적으로 조성하는 대규모 주거지역을 일컫는다. 정부는 1980년대 말 경기 분당, 일산 등에 1기 수도권 신도시를 건설하는 등 그동안 여러 지역에 ‘새로운 도시’ 조성 사업을 벌였다. 도심 접근성이 좋은 지역 농지 등을 수용한 뒤 상하수도 공사를 하고, 도로를 놓고, 지하철 등 대중교통 기반도 건설한다. 이후 최첨단 아파트를 지어 올리는 방식이다. 마을 곳곳에 잘 꾸민 공원까지 배치하면 신도시는 완성과 동시에 수요가 몰리는 ‘명품 주거지역’으로 거듭난다. ‘신도시 예정지’가 어디인지에 대한 정보는 곧 막대한 수익 실현의 다른 이름이 될 수 있다. 그동안 신도시가 조성될 때마다 공직자가 연루된 대규모 투기 사건이 반복된 이유도 여기 있다. 박 교수는 “이런 환경에서 공직자의 투기를 ‘양심’ 또는 ‘도덕’만으로 통제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며 빠른 시일 내에 관련 규제를 정비할 것을 주문했다.

    부동산 정책 실패로 인한 집값 혼란

    전국 공공주택지 땅 주인들로 이뤄진 ‘공공주택지구 전국연대 대책협의회’가 3월 10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이 불거진 경기 시흥시 현장에서 LH를 규탄하고 있다. [박영대 동아일보 기자]

    전국 공공주택지 땅 주인들로 이뤄진 ‘공공주택지구 전국연대 대책협의회’가 3월 10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이 불거진 경기 시흥시 현장에서 LH를 규탄하고 있다. [박영대 동아일보 기자]

    - 최근 몇 년간 수도권 집값이 큰 폭으로 치솟았다. 그 과정에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던 시민들 분노가 LH 투기 의혹으로 폭발 국면에 접어든 것 같다. 

    “그러잖아도 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신뢰가 매우 낮았다. 요즘 유행하는 ‘패닉바잉’ ‘영끌’ ‘벼락거지’ 등의 신조어를 보면 하나같이 기저에 ‘불안’이 깔려 있다. ‘지금 집을 안 사면 영영 못 살 것 같다’는 심리가 사람들을 부동산 구매 시장에 몰아넣었다. 수요가 커지니 자연스레 집값이 더 올랐다. 정부가 이런 흐름을 끊고자 ‘집값을 반드시 안정시키겠다’고 수차례 공언했지만 시민들 믿음을 얻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이런 일까지 생겨 걱정스럽다.” 

    - 정부가 부동산 수요 억제 정책을 계속 쏟아냈는데도 왜 매수 심리가 꺾이지 않는다고 보나. 

    “한 가지 원인을 꼽자면, 정책담당자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부동산 정책을 발표하는 관료가 집을 몇 채 갖고 있는지, 땅을 어디에 사뒀는지 등에 관심을 둔다. 그걸 통해 정책 신뢰성을 가늠한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본다’는 말이 있다. 딱 그런 거다. 관료의 ‘손가락’에 담겨 있는 메시지를 파악한 사람 상당수는 이 정부에서 집값이 떨어지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말로만 저러지, 실제로는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할 의지가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앞다퉈 ‘영끌’과 ‘패닉바잉’에 나선 거다.” 

    - 정부는 대출 제한 등 온갖 부동산 수요 억제 대책을 내놓아도 집값 급등세가 이어지자 2018년 12월, ‘신도시 개발을 통한 주택 공급 확대’ 계획을 발표했다. 지금 문제가 된 3기 수도권 신도시 개발이 이때부터 추진됐는데. 

    “많은 사람이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이다. 과거 산업화 영향으로 농촌인구가 수도권에 폭발적으로 몰려들던 시기가 있다. 이때 급증하는 주택 수요에 대응할 방법으로 신도시 개발이 추진됐다. 정부는 1980년 ‘택지개발촉진법(택촉법)’을 제정하고, 이를 근거로 수도권 곳곳에서 대규모 택지 조성 및 주택 공급을 진행했다. 이런 흐름에 변화가 생긴 건 2000년대 후반부터다. 수도권으로 유입되는 인구가 줄고 주택 보급률도 100%를 넘어섰다. 그에 발맞춰 오랫동안 초법적으로 진행돼 온 도시개발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잠시 택촉법을 살펴보자. 이 법 1조는 “도시지역의 시급한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주택건설에 필요한 택지의 취득, 개발, 공급 및 관리 등에 관하여 특례를 규정하여 국민 주거생활의 안정과 복지 향상에 이바지하는 것”이 제정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1980년은 전국 주택보급률이 50%도 채 안 되던 시절이다. 1970년대부터 본격화한 도시화 바람을 타고 인구가 몰리면서, 서울지역 부동산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었다. 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을 지낸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의 책 ‘부동산 공화국 경제사’에 따르면 1963~1977년 사이 서울 물가는 6.4배 올랐다. 같은 기간 서울시내 주거지역 땅값은 87배 뛰었다. 강남으로 범위를 좁히면 상승 폭이 176배에 달했다.

    초대형 신도시 개발의 문제점

    경남 진주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외관.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의혹에 대한 항의 표시로 시민들이 던진 계란 자국이 건물 외벽 곳곳에 남아 있다. [뉴스1]

    경남 진주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외관.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의혹에 대한 항의 표시로 시민들이 던진 계란 자국이 건물 외벽 곳곳에 남아 있다. [뉴스1]

    이런 환경에서 정권을 잡은 신군부가 단기간에 주택을 대규모로 공급하고자 마련한 게 바로 택촉법이다. 이 법에 따르면 정부는 택지개발예정지구 땅을 소유주 의사에 관계없이 수용할 수 있다. 또 환경보호, 도시의 계획적 개발 등을 목적으로 19개 법률이 규정한 각종 인가·허가·협의 등의 절차도 생략할 수 있다. 이에 힘입어 우리나라 신도시 개발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이뤄졌다. 1기 수도권 신도시의 경우, 1989년 계획 수립 후 약 30만 호에 이르는 주택을 짓고, 120만 명 정도의 인구가 모두 이주하기까지 채 7년이 안 걸렸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에 도시계획을 공부하러 오는 외국인 학생들은 하나같이 신도시 개발 속도에 깜짝 놀란다”며 “그 배경에 각종 규제를 무력화하는 초법적 힘을 가진 택촉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 서민 주거 안정화라는 ‘대의’가 있다고는 하나, 요즘 시대라면 개발 속도를 높이고자 재산권 침해까지 정당화하는 내용의 법을 제정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미국 등 서구권에서도 서민 주거 안정 등 공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일정 부분 제한하는 게 허용된다. 다만 공익의 정의, 자유 제한의 범위 등에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0년대 접어들면서 이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마침 급속한 인구이동이 멈추고 도시화도 어느 정도 진행된 상황이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제는 일반적인 도시계획 규제를 존중하면서도 수도권 주택 수요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겠다’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2014년 9월 박근혜 정부도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앞으로는 공공이 주도해 대도시 외곽에 대규모 택지를 공급하는 방식의 개발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많은 이가 수도권에 분당, 판교 같은 형태의 신도시가 더는 만들어지지 않을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3기 수도권 신도시를 조성해 주택 약 30만 호를 공급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 이 결정이 잘못됐다고 보나. 

    “앞서 부동산시장은 심리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말씀드렸다. 수요가 조금만 증가해도 집값이 확 뛴다. 반대 방향도 마찬가지다. 공급량이 1% 증가할 때 가격이 1%만 떨어지는 게 아니다. 5% 이상 빠질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부동산 수요가 급증하며 가격을 끌어올린 건 맞다. 하지만 그런 흐름이 무한정 이어지지는 않는다. 어느 순간 한계에 도달하고 침체가 시작될 수 있다. 과거 경험을 보면 부동산 가격은 한번 떨어질 경우 쉽사리 회복되지 않는다.” 

    - 최근 부동산시장을 보면 그런 날이 영영 올 것 같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서울 집값이 한 번이라도 떨어진 적이 있어?’라고 말하는 이도 봤다. 그런데 있다. 오래전 일도 아니다. 박근혜 정부 당시 부동산 가격 약세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사람들이 아무도 집을 사려 하지 않으니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부동산 담보대출 한도를 늘리는 등 온갖 규제를 풀어주며 ‘곧 집값이 오를 거다. 빚내서 집을 사라’고 공공연히 부추겼다. 부동산 정책 효과는 보통 몇 년 간격을 두고 나타난다. 박근혜 정부가 폈던 부동산 정책이 현재의 집값 급등에 일정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이번 정부가 도입한 각종 집값 억제 정책 또한 몇 년 후 시장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 무렵 3기 수도권 신도시를 중심으로 새집 공급까지 쏟아지면 서울 집값이 어떻게 될까. 빚 내서 집을 산 사람이 많은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부동산 가격 변동은 경제 전반에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인구 감소 시대, 멀지 않았다

    박 교수는 “한국이 현재 인구 감소를 목전에 두고 있다”는 것도 강조했다. 그는 “주택 수급 상황을 따질 때는 인구뿐 아니라 가구수도 고려해야 한다. 최근 1~2인 가구가 늘어 주택 수요는 당분간 줄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걸 안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미 인구뿐 아니라 가구수도 줄고 있다. 이런 변화는 아주 급속도로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는 출생아(27만5815명)가 사망자(30만7764명)보다 적은 이른바 ‘데드 크로스’ 현상이 처음 나타났다.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사상 처음으로 내국인 수가 전년보다 떨어지기도 했다. 통계청은 당초 올해를 인구 감소 원년으로 전망했으나, 시기가 1년 앞당겨졌다. 외국인 거주자가 늘어나 총인구(내국인+외국인) 감소세는 피했지만, 현재 추세가 이어지면 2028년 이후 인구 곡선이 본격적으로 하향세에 접어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올해 전국 각지 대학에서 신입생 미달 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보며 인구 감소의 사회적 영향이 생각보다 빨리 나타난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 학령인구 감소에 대해 경고하는 목소리는 많았지만, 당장 올해부터 대학가에 위기가 현실화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변화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다가올 수 있다. 지금은 신도시 개발을 통해 대규모 공급을 쏟아내는 것보다 도시계획 전반을 되돌아봐야 할 때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주택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 경우 먼저 타격을 받는 곳은 수도권 밖 지방 도시가 될 것이다. 사람이 줄고 빈집이 생겨나면 지역은 금세 슬럼화된다. 그 영향으로 남은 사람이 또 떠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도권 인근에 최첨단 신도시를 조성하는 건 더 많은 사람을 중심으로 끌어들이는 정책이 될 수 있다. 그보다는 꼭 서울 주변에 거주하지 않아도 질 좋은 삶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지역 곳곳에 만들어내는 게 시급하다. 눈여겨볼 것은 2010년 이후 농촌 군 지역의 청년인구 증가 현상이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 청년들이 도시를 떠나 농촌에 정착하고 있다는 건가? 

    “통계를 보면 그렇다. 그들이 어떤 이유로 농촌에 가는지, 또 그곳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있게 연구해 봐야 한다. 지금까지 보고된 몇몇 인터뷰 자료를 보면 ‘대도시에 사는 게 힘들어 떠나왔다’는 내용이 많다. 집값이 너무 비싸고, 일자리 구하기도 예전보다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청년들이 농촌에서 기회와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게 해주면 이런 흐름이 가속화될 수도 있다.” 

    - 그러자면 당장 농촌에 일자리가 필요하지 않겠나. 

    “물론이다. 그런데 좀 더 생각을 해보자. 일자리가 꼭 거주지 바로 근처에 있어야 할까. 요즘 교통이 많이 좋아졌다. 그 결과 지방 대도시의 교외화가 급속히 이뤄지는 추세다. 경남 김해에서 부산으로 통근하는 식으로, 도심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지역에 집을 마련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복잡하고 비싼 도시를 떠나 좀 더 쾌적하고 여유로운 삶을 누리고 싶어서다. 

    앞으로 자율주행 기술이 상용화하면 30~40분 정도 거리를 차량으로 오가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게 여겨질 것이다. 이런 미래 변화를 감안한, 큰 틀의 도시계획을 구상할 수 있다. 그 결과로 도시 혼잡도가 낮아지고, 교외지역에 활기가 돌면 양쪽 모두에 ‘윈윈’이 된다. 인구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 돼야 누릴 수 있는 서비스가 농촌에도 생겨나면 거주자 삶의 질이 높아질 것이다.” 

    - 예를 들어 배달음식점 같은 게 생겨날 수 있겠다. 

    “그렇다.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많아지면, 그 인프라가 다시 새로운 사람을 끌어들이는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 

    - 균형발전을 통해 언젠가 인구가 전국에 고르게 분산되고, 그 결과 전반적으로 삶의 질이 높아지는 날이 오면 좋겠다. 하지만 현재 우리 앞에는 한정된 수도권에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현실이 있다. 연일 치솟는 주거비용 때문에 불안을 느끼는 서민에게 당장 필요한 건 충분한 주택 공급을 통한 집값 안정 아닌가.
     
    “주택 공급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나는 신도시 건설 등을 통해 한꺼번에 수십만 호를 시장에 공급하는 방식은 앞으로 우리 앞에 펼쳐질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성장의 시대’를 살았다. 시간이 흐르면 경제 규모가 커지고, 시장이 확대됐다. 이제는 아니다. 이미 인구 정체가 시작됐고, 곧 감소의 시간이 온다. 거기 맞는 ‘뉴노멀’을 만들어야 한다.”

    도심 고밀도 개발이라는 또 다른 선택지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 일각에서는 신도시 건설의 대안으로 도심 고밀도 개발 방식을 제안한다. 

    “충분히 검토해 볼만한 아이디어다. 우리 도시를 살펴보면 좋은 위치에 개발되지 못한 채 묶여 있는 땅이 적잖다. 그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 처지에서 보면 좋은 일이다. 쾌적한 환경이 유지되니 재산 가치가 계속 올라간다. 반면 지금 당장 주거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에게는 부당한 일이 될 수 있다. 현재 최첨단 주거 인프라는 서울, 그중에서도 강남 쪽에 모여 있다. 그러다 보니 땅값이 매우 비싸다. 지금 강남에 있는 아파트를 보면 집값의 70~80%가 땅값이다. 토지 사용 측면에서 보면 매우 비효율적인 일이다. 도시경제학에서는 ‘땅값이 전체 주택가격의 50%를 넘으면 안 된다’고 한다. 개발 밀도를 높이면 좀 더 많은 사람이 좋은 주거지에서 살 수 있게 된다.” 

    - 고밀도 개발의 부작용도 있지 않나.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등 도시개발의 정상적인 절차를 따르며 하나하나 방법을 찾아나가면 된다. 고밀도 개발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을 가진 분들도 있는데 저밀도 개발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난개발 도시로 손꼽히는 LA를 보자. 다운타운이 작고, 주거지는 산 중턱까지 넓게 퍼져 있다. 나지막한 집이 도시를 온통 뒤덮고 있어 길이 엄청나게 막힌다. 그게 과연 최선일까. 좀 더 제한적인 지역을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나머지 구역은 쾌적한 상태로 보전하면서, 대중교통이 도시 곳곳에 이어지도록 하면 어떤가. 이것이 에너지를 좀 더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길일 수 있다.” 

    - LH 사태 이후 3기 수도권 신도시 개발 자체를 원점에서 재검토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정부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 등을 감안할 때, 이제 와서 계획을 파기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정부는 현재 ‘수요 억제와 공급 확대를 통해 부동산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상태다. 앞으로도 이 기조를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 다만 3기 수도권 신도시를 조성한다 해도 주택 공급량은 시장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조절할 여지를 두면 좋겠다. 당초 약속한 만큼을 한꺼번에 다 지을 게 아니라, 택지 일부를 유보지 형태로 남겨두는 것을 검토해볼 만하다.” 

    - 신도시 입주 시점에 주택 공급 과잉으로 부동산시장에 충격을 줄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인가.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할 경우 대처할 방안을 마련해두자는 의미다. 그동안 정치권은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강력한 억제 정책을 펴고, 그 결과 값이 떨어지면 다시 부양책을 내놓아 가격 상승을 유도했다. 정부가 주택 시장 혼란을 부추긴 면이 있다. 이제는 이런 근시안적인 정책 운용에서 벗어나, 장기적으로 부동산 가격을 안정화할 방안을 생각해야 할 때다.” #부동산 #신도시 #LH #박인권 #도심개발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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