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호

“이러다 공멸!” SK·LG ‘배터리재단’ 공동 설립해 화해해야

배터리 전문가 박철완 교수의 ‘중간지대’ 타협안

  •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 myriad@seojeong.ac.kr

    입력2021-03-1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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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K이노, 합의금 지불 배임 될 수 있어

    • ‘K-배터리’ 운운할 때 中이 韓 추월

    • 韓 강점 ‘선점’, 약점 ‘기초’·‘깊이’

    • 펀드, SK이노 더 부담하되 지분 균등

    SK이노베이션이 입주해 있는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본사(위). LG에너지솔루션의 모회사인 LG화학 본사가 입주해있는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뉴스1]

    SK이노베이션이 입주해 있는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본사(위). LG에너지솔루션의 모회사인 LG화학 본사가 입주해있는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뉴스1]

    LG에너지솔루션(전 LG화학의 전지사업부문·이하 LG엔솔)과 SK이노베이션(이하 SK이노)의 ‘파우치형 리튬이온폴리머 이차전지’ 분쟁이 해를 넘겨도 끝나지 않고 있다. 양쪽 다 예민한 모습이다. LG엔솔과 SK이노 중 어느 회사 이름을 먼저 쓰느냐를 두고도 민감하게 반응할 듯하다. 양쪽 주장을 들어보면 각자 사정도 있고 맞는 말도 있다. 물론 각자 틀린 말도 있다. 

    시작은 ‘안전성 강화 분리막(SRS) vs 세라믹 코팅 분리막(CCS)’ 특허 분쟁이었다. 이 해묵은 분쟁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잔불이 남아 여기까지 왔다. 두 회사가 분쟁을 시작할 때도 필자는 당시 LG화학 배터리연구소장인 안순호 박사(현재 애플의 글로벌 배터리 개발총괄)에게 ‘두 회사가 안 싸웠으면 좋겠다’고 연락했다. 하지만 이미 두 회사가 싸움에 들어간 터라 필자의 조언은 외면 받았다.

    잠수함 같은 중국

    LG엔솔은 SK이노에 ‘합의’에 전향적으로 나서라고 하면서 LG엔솔의 손을 들어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판결을 근거로 내세운다. 하지만 SK이노는 합의를 하려 해도 영업비밀 유출 등에 관한 ITC 판결이 없는 상황이다. 설사 해당 내용이 판결에 포함된다 하더라도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는 한 합의금 지불 자체가 배임이 돼 끝까지 갈 수밖에 없다. 

    2019년 LG엔솔은 SK이노가 고의로 증거를 훼손하고 은폐했다며 ITC에 ‘조기 패소’ 결정을 내려달라 요청했다. 이 전략은 단기적으로만 놓고 보면 LG엔솔의 승소에 기막힌 카드가 됐다. 하지만 SK이노가 합의에 나설 근거를 봉쇄해 버린 역설적 결과를 낳았다. 차라리 ITC에서 ‘영업비밀 유출 내용’이 깊게 다뤄진 뒤 SK이노가 패소했다면 SK이노 처지에서도 홀가분하게 합의에 나설 수 있는 상황이 됐을지도 모른다. 지금 시점에서 SK이노가 공시 등을 통해 끝까지 가겠다고 밝히는 것은 법인 입장에서는 극히 상식적이다.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하면 두 회사 공히 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는 단순히 중국 배터리 산업의 위협 때문만도 아니고 SK이노를 편들어서도 아니다. 



    세간에서 ‘K-배터리’ 운운하며 우리나라 배터리 산업이 ‘우주 최고’인양 떠드는 사이에 중국은 잠수함처럼 우리를 사실상 앞질렀다. 그 중요하다는 양극 활물질 삼원계 전구체 산업은 사실상 중국의 주력 산업이 됐다. 하이니켈, 울트라 하이니켈을 놓고 우리 기술입네 항변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껍데기 수준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 쉽진 않겠지만, 한일 무역 분쟁 같은 중국과 무역 분쟁이라도 터진다면 아주 곤란해진다. 출구 전략으로 인도네시아 시장에 진출할 수도 있었지만, 이 시장도 중국이 발 빠르게 선점하고 있다. 하나씩 따져 보면 우리가 초격차로 앞선 분야가 없다. 게다가 배터리업계에서 테슬라와 노스볼트(Northvolt) 등이 경쟁력을 발휘하면서 미국과 유럽의 배터리산업이 깨어나고 있다. 

    언젠가부터 우리의 강점은 ‘선점’이었고 우리의 약점은 ‘기초’와 ‘깊이’였다. 최초가 언제나 최고이진 않았다. 세계 최초로 리튬이온 이차전지 상업화에 성공한 소니 에너지텍이 후발 주자인 산요전기(현 파나소닉)에 밀려 몰락하게 된 것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리튬이온 이차전지 원천 특허가 없는 이유도 짚어봐야 한다. 원천 특허를 보유했던 일본 모 회사가 2000년대 초 무리한 특허 비용을 요구하자 다른 일본 제조사들이 합심해 특허를 무효화했다. 결과적으로 이 분쟁은 일본이 시작하고 벽을 쳐놓은 채 독점하던 리튬이온 이차전지 산업을 개방시킨 ‘나비의 날갯짓’이 됐다. 즉 분쟁으로 자멸한 선례가 이웃나라 일본이다.

    패자는 韓 이차전지업계

    2020년 10월 2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0’ 전시회에 마련된 LG 부스(왼쪽)와 SK 부스(오른쪽).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2020년 10월 2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0’ 전시회에 마련된 LG 부스(왼쪽)와 SK 부스(오른쪽).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결국 패자는 한국 이차전지업계가 될 것이다. 2000년대 최악의 배터리 사고 장본인이 소니 에너지·디바이스였다면, 2010년대에 벌어진 최악의 배터리 사고들은 한국 배터리 제조사의 ‘환상적인’ 합작품이었다. 2016년부터 갤럭시노트7 이상 발화, 대용량 전기에너지저장장치(ESS) 연발 화재, 코나 일렉트릭 화재 모두 한국 배터리 산업 관련 사고였다. 

    한때 삼성SDI와 합작사 SBL(Samsung Bosch Limotive)을 만들었던 굴지의 자동차부품제조업체 보쉬는 배터리 사업에서 한발 물러서며 ‘자동차용 배터리 사업은 ‘too expensive, too risky(너무 비싸고, 너무 위험)’란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보쉬의 우려가 잘 드러난 사태가 코나 일렉트릭 화재다. 이론적으로야 문제가 있는 단전지나 모듈을 마치 족집게로 집어내듯 고치면 되지 않겠나 싶지만 실상은 다르다. 한국 이차전지업계는 다년간 연이은 화재에도 불구하고 ‘화재 원인’을 특정하거나 찾아내지 못하며 ‘전량 교체’라는 ‘산업 대참사’에 직면하기에 이르렀다. 

    여기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에서는 제너럴모터스(GM)의 쉐보레 볼트 배터리 화재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여기에도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가 쓰인다. 이 조사 결과에 따라 진짜 최악의 국면이 올 수도 있기 때문에 대비해야 할 상황이다. 

    한국은 잠시나마 소형 원통형 리튬이온 이차전지 시장에서 1위를 했다. 또 전동화 차량용 배터리 시장에서는 1위다. 그런 한국 배터리산업에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수험생의 실력은 정답률 낮은 고난도 문제에서 드러나고, 산학연의 실력은 참사에 대처하는 위기관리 능력에서 민낯이 드러난다. 연이은 배터리 화재 사태에도 이 나라 산학연은 ‘적극적인’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았다. 좋을 때는 모든 게 다 좋지만, ‘겨울’이 오면 세상은 달라진다. 리튬이온 이차전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일부 인사들이 ‘차세대 전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식의 무책임한 주장을 한 지도 20년이 넘었다. 

    코나 일렉트릭 화재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설상가상 한국 배터리 산업에 악재도 늘고 있다. 삼성SDI가 공급한 배터리가 탑재된 BMW와 포드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는 리콜 조치됐다. 앞서 말한 대로 LG엔솔의 배터리가 쓰인 GM 쉐보레 볼트 배터리 화재는 조사가 진행 중이다. 시장을 선점한 국가의 천형이라 치부할 때도 지났다. 쓰나미처럼 몰려올 리콜 여파도 만만치 않다. LG엔솔이 현대자동차에 준비해줘야 할 리콜용 새 단전지 총량은 확정된 분량만 해도 대략 5GWh(기가와트시) 수준이다. 조사가 진행 중이긴 하지만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면 한국 이차전지 업계는 추가로 6~8GWh 규모의 리콜을 준비해야 할 수도 있다. 그간 발생한 연쇄 화재에 대한 원인 규명에 실패한 결과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소재 부품업체들은 추가 주문으로 대박을 맞을 것이다. 하지만 배터리 제조업체는 리콜에 따른 손실뿐 아니라 수년 후로 예측되는 공급 부족 상황, 비유하자면 ‘배터리 헬(Battery Hell)’ 국면 때 비즈니스 자체가 흔들리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리콜 물량 대량 출하가 없는 지금도 배터리 제조사들이 고객사가 요청하는 물량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니 말이다. 그렇다고 ‘닥치고 증설’만이 답도 아니다. 

    ‘겨울’이 왔을 때 LG엔솔과 SK이노, SK이노와 LG엔솔은 서로 우군일지 적군일지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 지금처럼 감정의 골이 깊을 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훗날 SK이노나 LG엔솔이 서로에게 리콜 물량을 지원해달라는 SOS를 치는 날이 올지 모른다. 뭐, “중국 CATL에게 요청할지언정 상대에게 할 일은 절대 없다”고 지금은 호언장담하더라도 말이다.

    솔로몬의 지혜

    양사에 하고 싶은 말은 각자도생을 위해 좀 더 냉정하게 판단해보라는 것이다. 감정을 삭이고 차가운 머리로 생각해보자.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지친 상황을 벗어나고자 할 때는 차라리 쉬면서 재정비에 나서는 게 나은 선택일 수 있다. 이럴 때 ‘중간지대’가 필요하다. 

    ITC에서 승소한 LG엔솔과 패소한 SK이노 모두 ‘이긴 상황’으로 가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 이를 위한 ‘중간지대’로 SK이노와 LG엔솔이 공동으로 ‘LG-SK 배터리 재단 및 펀드’를 민간 차원에서 만드는 게 어떨까 싶다. 그러기 위해선 LG엔솔과 SK이노가 ‘서로에게 합의금을 지불하지 않는, 분쟁 중단 합의’를 하고, ‘배터리 재단 및 펀드’를 두 회사가 공동으로 출자하되, 출자 비율은 SK이노가 확실히 더 부담하고 LG엔솔은 최소액을 부담하되 동등한 지분을 갖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재단과 펀드는 이렇게 운영돼야 한다. 

    1 정부가 개입해 관제화 되지 않아야 한다. 전지협회와 거기 숨어 있는 전지조합의 개입은 절대 없어야 한다. 지금은 새로운 전지 관련 협회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있고 그 준비가 진행 중이다. 그러니 기존 협회와는 거리를 둬야 한다. 

    2 LG엔솔과 SK이노에서 절반씩 추천한 이사회를 꾸린다. 각 사가 교대로 이사장을 맡거나 공동 이사장 체제로 운영한다. 이 재단은 두 회사의 화해와 상생, 그리고 이익을 위해 우선 운영돼야 한다. 재단과 펀드는 관제화되는 순간 끝이다. 

    3 두 회사의 이익을 우선하되, 그 다음은 공익과 배터리 생태계 재건을 목표로 둬야 한다. 재단과 펀드는 소송의 단초가 됐던 문제점을 해결하는 ‘화해와 상생’을 운영 방향으로 설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인력을 양성한다. 단, 연구비가 풍부한 소위 ‘일류대’ 말고 소외된 대학교에 인건비와 장학금을 지급해야 한다. 지급 방법과 관리 형태는 필자가 그간 이야기한대로 ‘스몰 사이즈 연구’ 기반이 좋다. 수년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최고위층 지시로 임요업 과기부 과장이 찾아온 적이 있다. 그때 필자가 전달한 아이디어와 철학이 일부 반영된 과기부 사업이 ‘세종과학펠로우십’이다. 이와 같은 형태의 사업이 필요하다. 

    4 문제가 된 ‘지식 재산권 보호’를 위한 활동을 펼쳐야 한다. 국가핵심기술인 이차전지 관련 기술이 국외에 유출되지 않도록 국정원 등과 함께 공조해야 한다. 흔히 ‘생계형 외국인노동자’들이 매국노 취급을 받지만 진짜 매국노는 따로 있다. 기술 관련 인력을 조직적으로 유출하는 회사가 있고, 거길 통해 빠져나가는 알짜 산업기술도 있다. 학연 협력을 통해 나온 기초 수준의 아이디어를 ‘생짜’로 팔아먹는 가짜 석학도 다수 있다. 다양한 유형의 기술 유출을 틀어막기 위한 플랫폼이 필요하다. 

    재단 출연기금의 규모는 양사가 싸운다며 들인 돈 수준이 적합하다. 1조원 정도를 공동 출연하되, SK이노:LG엔솔 8:2 혹은 7:3 비율로 하고 운영 지분은 동일하게 하면 LG엔솔 처지에서도 SK이노와 소송을 시작한 사유를 해소할 명분이 될 수 있다. 어찌됐든 SK이노도 LG엔솔 출신 직원들이 와서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선도 기업 덕을 본 셈이다.(*이미 SK이노를 떠나 자동차제작사로 옮긴 연구 인력도 있다.) 

    ‘중간지대’로 ‘화해와 상생을 위한 배터리 재단과 펀드’를 모색할 때다. 서로 간 분쟁이 물장구치다 옷 젖은 정도라면 저 멀리 바다에선 쓰나미가 오기 시작했다. 냉정을 되찾아야 한다.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면 초반에 다투던 인물들이 쓰나미나 외계인 침공으로 인해 희생되는 경우가 있다. 그럼 조연으로 전락한다. SK이노와 LG엔솔이 되새겨야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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